이번 실패주간 행사를 기획한 KAIST 실패연구소는 2021년 6월 이광형 총장이 설립한 조직입니다. ‘KAIST의 역량은 이미 세계적 수준으로 올라온 상태인데, 왜 세계를 놀라게 할 만한 아이디어가 그만큼 나오지 않을까’란 고민에 대해 이 총장이 내놓은 해답이었죠. 실패를 교훈이 있는 성공으로 해석할 수 있도록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도전하는 문화를 만들 것. 이것이 KAIST 실패연구소의 설립 목적입니다.
11월 1일 오전, KAIST 실패연구소에서 학생들의 실패를 연구하는 사회심리학자 안혜정 교수를 만나 실패주간의 뒷이야기를 물었습니다. 그는 “실패 이야기는 성공한 사람들이 하는 경우가 많아서, 아직 내놓을 만한 성취가 없는 자신이 그런 이야기를 해도 될지 두려워하는 학생들이 많았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조금 더 가볍게 실패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습니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문화를 만들기 위한 첫 발짝은 KAIST 학생들이 어떤 실패를 겪는지 알아보는 것부터 시작했습니다. KAIST 실패연구소에선 2023년 6월 ‘일상에서 포착한 실패의 순간들’이란 연구 프로젝트를 진행했습니다. 프로젝트에 참가한 KAIST 학생 31명에게 3주간 자신의 일상을 관찰한 다음, 실패가 벌어진 현장 또는 실패감을 떠올린 순간의 사진을 찍도록 한 겁니다. 학생들은 사진을 왜 찍었는지 메모도 남겼습니다. 이같이 사진을 매개로 연구 참여자의 가치관이나 생각을 표현하게 하고, 이를 심층적으로 탐구하는 방법을 ‘포토 보이스(Photo Voice)’라고 합니다.
3주의 실험기간이 끝나자, 360여 개의 ‘실패 장면’이 모였습니다. 학생들은 실패 장면들을 공유하며 이야기 나누는 워크숍을 가졌습니다. 안 교수는 “학생들이 굉장히 막연한 실패감에 사로잡혀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안 교수는 한 학생의 사례를 예로 들었습니다.
“그 학생은 KAIST에 와서 매일 실패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어요. 그래서 이 프로젝트에 참여했을 때 실패 사례 수집을 잘할 줄 알았대요. 그런데 막상 자신의 일상에서 실패가 자주 일어나지 않았던 거예요. ‘왜 나는 그간 실패하고 있다고 느꼈지?’란 깨달음을 얻은 거죠. 워크숍이 끝나고 참가 소감을 물으면 ‘사람 사는 거 되게 비슷하구나’란 말이 굉장히 자주 나오는데요. 프로젝트엔 31명의 학생이 참여했지만, 그보다 더 많은 KAIST 학생들이 혼자 외로웠을 거예요. ‘너 혼자 그런 생각을 하는 게 아냐. 누구나 이런 고민을 하며 버티고 있다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다’고 말을 걸고 싶었어요.”
KAIST 학생들은 한국에서도 손꼽히는 수재들 사이에서 공부하고, 커리어의 정점에 있는 교수진의 성취를 매일 같이 접합니다. 그들과 비교해서 자신이 잘하고 있는지 막연히 불안해하는 학생들이 많다는 겁니다. 그런 학생들에게 ‘말을 걸기 위해’ 실패주간 내내 창의학습관 1층에서는 작은 사진전이 열렸습니다. 일상에서 포착한 실패의 순간들 프로젝트에서 수집된 장면 중 30개를 선별해 전시했죠. 안 교수는 “KAIST 교수들도 전시를 보며 공감한다”면서 “학생들이 실패가 보편적이란 걸 알아줬으면 한다”고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