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추’를 하루 넘긴 8월 9일, 절기가 무색하게 기승을 부리는 폭염을 뚫고 서울대 19동을 찾았다.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으로 별의 탄생을 연구하는 이정은 물리천문학부 교수를 만나기 위해서다. “지난 일주일간 너무 바빴다”며 회의를 마치고 막 연구실에 도착한 이 교수에게 바로 지금, 서울대에서 진행될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 연구에 대해 물었다.
▲2023년 7월,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이 관측한 Herbig-Haro 46/47. Herbig-Haro 46/47은 형성된지 겨우 수천년 된 원시별이다. 좌우로 별에서 분출된 제트가 붉은색으로 보인다. 주위로는 푸른색 성운이 두 별을 감싸고 있다.
“정신이 없었어요. 관측 계획에 변화가 생겨서 지난 일주일 동안 밤을 새가며 관측 계획 제안서를 수정했거든요.” 관측 계획이 바뀐 이유를 묻자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의 성능이 너무 좋아서”라는 예상치 못한 답변이 돌아왔다. “최근 다른 팀에서 EC 53과 가까운 곳을 관측했는데 예상과 다른 점이 발견됐어요. 그때문에 천체 주변을 더 자세히 관측할 필요가 생겼죠.”
GO 프로그램에 선발될 확률은 그야말로 ‘하늘의 별 따기’다.
1600여 건의 제안서 중 최종 선발된 제안서는 249개.
이 교수의 제안서도 그중 하나다
이 교수는 작년 12월,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을 이용한 국제 공동연구에 참여해 원시별 주위에서 다양한 유기 분자를 찾아내는 데 성공했다. doi: 10.3847/2041-8213/aca289 그리고 올해 7월에는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 ‘일반 제안서 관측(GO)’ 사이클 2 프로그램에 한국인 연구 책임자로서는 유일하게 이름을 올렸다. 연구자들이 제임스 웹을 사용하는 방법은 세 가지인데, 그중 전 세계 연구자들이 지원하는 방법은 GO 프로그램이다. 제임스 웹을 운영하는 우주망원경 과학연구소(STScI)에 ‘이러저러한 연구를 위해 망원경을 몇 시간 쓰려한다’는 제안서를 제출하는 것이다. 이미 지난 1년 동안 첫 번째 GO 프로그램인 ‘사이클 1’이 진행됐다.
말이 쉽지, GO 프로그램에 선발될 확률은 ‘하늘의 별 따기’다.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 과학 정책 그룹 책임자인 크리스틴 첸은 “이번 GO 사이클 2에 52개국 5450명이 넘는 과학자들이 1600여 건의 제안서를 제출했다”고 밝혔다.
적외선으로 성간 먼지 너머 아기별을 보다
1600여 건의 제안서 중 최종 선발된 제안서는 249개. 이 교수의 제안서도 그중 하나다. 이 교수는 이번 제안서에 뱀자리에 있는 원시별(protostar) ‘EC 53’을 관측한다는 계획을 담았다. 미국항공우주국(NASA)이 제시한 제임스 웹의 관측 목표 네 가지 중 ‘별의 생활사’에 해당되는 계획이다. 특히 별의 탄생 과정을 보기 위해서는 적외선 관측이 필수적이다.
별은 성간 구름을 재료로 만들어진다. 성간 구름은 주로 수소로 구성된 기체 99%와 1%의 먼지로 이뤄져 있는데, 이들이 서로의 중력에 이끌려 뭉치기 시작하면서 원시별이 탄생한다. 이름은 ‘별’이지만 원시별은 질량이 낮아 홀로 빛을 낼 수 없다. 이 교수는 원시별의 중력 포텐셜 에너지가 열에너지로 바뀌면서 만들어진 미약한 적외선을 방출하는 게 전부라고 설명했다.
“태양의 표면 온도가 약 5770K(켈빈〮5770K는 약 5496。)인데 원시별의 표면 온도는 겨우 2000~4000K입니다. 태양 질량의 8%가 될 때까지 커져야 핵융합 반응으로 스스로 에너지를 생성해 빛을 뿜는 진정한 별이 될 수 있어요.”
또한 원시별은 성간 구름의 잔해인 먼지에 둘러싸여 있는데, 먼지 또한 가시광선을 흡수하고 적외선을 통과시킨다. 그렇다보니 원시별을 관측하기 위해서는 적외선 파장대를 보는 것이 무척 중요하다. “하지만 지상에서는 지표부터 관측 장비, 심지어 천문학자까지 모두가 적외선 잡음을 내뿜고 있어 관측이 어렵습니다. 적외선 망원경이 지구를 벗어나야 하는 이유입니다.”
제임스 웹, 적외선 망원경의 신세계
제임스 웹은 IRAS, 스피처, 허셜 등 선배 적외선 우주망원경들에 비해 훨씬 뛰어난 성능을 자랑한다. 크기부터 일단 크다. 허블이 직경 2.4m의 주경을 장착했는데, 제임스 웹 주경은 직경이 6.5m다. 빛을 모으는 집광력이 약 7.3배 좋아졌다. 그만큼 어두운 천체도 관측할 수 있다. 분해능은 스피처보다 약 20배 정도 좋다. 관측 가능한 적외선의 파장대도 허블보다 넓다. 천문학자들이 제임스 웹에 거는 기대가 큰 이유다.
실제로 제임스 웹은 이런 기대를 뛰어넘는 활약을 보여주고 있다. 2022년 10월 19일 NASA에서 공개한 ‘창조의 기둥’ 사진이 대표적이다. 창조의 기둥은 약 7000광년 떨어진 독수리 성운의 일부분인데, NASA는 허블이 가시광선으로 관측했던 장소를 제임스 웹으로 다시 관측했다. 제임스 웹의 적외선 이미지에서는 허블의 이미지에서는 드러나지 않았던 수많은 별들을 볼 수 있었다. 성간 먼지에 가려 보이지 않던 별들이 나타난 것이다.
게다가, 제임스 웹은 적외선 분광기를 통해 망원경이 포착한 적외선의 스펙트럼을 분석할 수도 있다. 빛의 스펙트럼을 분석하면 어떤 분자가 빛을 방출했는지, 반대로 성간 구름에 있는 어떤 분자가 지구로 날아오던 별빛을 흡수했는지 알 수 있다. 즉, 원시별을 둘러싼 물질의 종류가 무엇인지, 성간 구름 속에 어떤 물질이 있는지 파악할 수 있는 것이다.
“역동적인 별 탄생 과정 밝힐 것”
이 교수는 오는 9월부터 제임스 웹으로 EC 53을 관측할 계획이다. 이를 통해 원시별의 탄생 과정을 밝히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다.
그동안 천문학자들은 성간 구름의 물질이 원시별로 꾸준히 유입되면서 원시별이 차분히 몸집을 불려나간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2003년, 우주로 올라간 스피처 적외선 우주망원경이 원시별을 관측하면서 그 과정이 생각만큼 조용하진 않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어떤 원시별은 갑자기 밝아졌다 어두워졌다를 반복했고, 어떤 원시별은 위 아래로 제트를 뿜어내기도 했다.
“저희는 원시별의 밝기가 바뀌는 이유가 원시별을 둘러싸는 강착 원반(accretion disk)에 있다고 추측하고 있어요. 강착 원반은 원시별이 만들어질 때 주위의 성간 물질이 원시별을 원반 형태로 둘러싸는 구조입니다. 원시별에 물질을 공급하는 컨베이어 벨트 역할을 하죠.”
한동안 성간 물질이 강착 원반에 모이다 무거워져서 중력적으로 불안정해지면 물질이 원시별로 한꺼번에 유입된다. 이를 ‘간헐적 강착’이라고 하는데, 이때 원시별의 밝기가 갑자기 밝아진다. 너무 많이 먹은 사람처럼 위아래로 제트를 뿜기도 한다. 별의 탄생은 이전의 추측보다 훨씬 역동적인 과정이었던 것이다.
원시별의 변광은 대부분 불규칙적으로 일어난다. 그런데 EC 53은 지금까지 발견된 원시별 중 유일하게 1.5년을 주기로 변광이 일어난다. 이 교수팀이 EC 53을 주목하는 이유도 가장 어두울 때와 밝을 때를 비교해서 원시별을 둘러싼 강착 원반의 물리적, 화학적 변화를 알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교수는 이 연구를 통해 행성의 기원 또한 알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별을 만들고 남은 강착 원반의 물질이 모여 행성이 만들어집니다. 즉 행성을 만들 물질의 상태, 나아가 행성의 기원과 우리의 기원을 알 수 있는 거죠.”
이 교수팀의 관측은 EC 53이 가장 어두운 9월부터 10월까지 1차로 진행되고, 내년 4~5월 EC 53이 가장 밝아졌을 때 다시 한 번 진행된다. 그렇다면 내년 이맘때쯤에는 EC 53의 아름다운 사진이 NASA 홈페이지에 공개될 수도 있지 않을까. 우주 팬으로서 두근거리는 마음을 뒤로 한 채, 지구 최고의 장비로 새로운 연구를 시작하는 이 교수의 감회를 물었다.
“2000년대 초반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을 때, 그곳 연구자들로부터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 프로젝트에 관한 이야기를 처음 들었습니다. 그때는 ‘쟤네 SF소설 쓰나?’ 하고 생각했는데, 20년이 지난 지금 현실이 돼 제가 그 망원경으로 연구를 하게 됐군요. 기대가 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