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날, 같은 장소에서 인간게놈프로젝트의 완성을 발표한 두 주체. 바로 다국적팀과 셀레라다. 다국적팀과 셀레라를 직접 이끌면서 인간게놈지도를 완성한 주인공들은 누구일까. 그들만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인류의 진화와 발달의 미스터리를 풀기 위한 인간게놈프로젝트에 의해 인간게놈의 99%가 해독됐다. 이것은 하나의 끝이라기보다 앞으로 우리가 풀어야할 더 큰 도전을 의미한다. 수수께끼와 같은 인류진화, 거대한 우주와 비교되는 인체, 인간 유전자에 이미 입력돼 있는 알 수 없는 질병들. 이제 이런 의문점들을 한꺼풀씩 밝힐 대항해가 시작된다는 얘기다. 대항해를 떠나기 앞서 오래전부터 출항을 준비한 인간게놈 연구의 주역들을 만나보자.
인류역사 바꿀 프로젝트의 시작
1953년 DNA의 ‘이중나선구조’를 밝혀 노벨 생리의학상을 공동수상한 제임스 왓슨. 왓슨박사는 1988년 9월 미국 에너지성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다국적팀의 초대 책임자로 선정됐다. 그는 인간게놈프로젝트를 세계에 홍보하고 필요한 자금을 미국 정부로부터 지원받는데 성공했다. 또한 여러 연구소들과 협력하면서 인간게놈프로젝트의 기초를 다졌다.
그러나 왓슨박사는 미 국립보건원(NIH)의 한 연구원과 심한 마찰을 빚는다. 유전자에 대해 특허를 출원할지에 관한 문제 때문이었다. 왓슨박사에 맞서 특허를 내겠다고 주장한 연구원이 바로 나중에 셀레라를 설립한 크레이그 벤터다.
벤터박사와의 마찰 때문에 왓슨박사는 결국 1992년 4월 인간게놈프로젝트의 책임자 자리를 떠나게 됐다. 다국적팀의 아버지라고 할 수 있는 왓슨박사는 2000년 6월 인간 게놈지도 초안이 발표됐을 때, “이 방대한 자료가 인류역사를 바꿀 것이다”라고 평가했다.
왓슨박사가 떠난뒤 미국 미시간대의 분자생물학자인 프란시스 콜린스가 다국적팀의 책임자로 선정됐다. 그는 1992년 4월부터 현재까지 인간게놈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이끌어 왔다. 콜린스박사의 연구소는 질병과 관계되는 유전자 분석에 주력해 왔다. 유전적으로 섬유질이 인체의 기관에 두껍게 쌓이는 낭섬유증(cystic fibrosis), 중추신경계가 점차 망가지는 헌팅턴병(huntington Disease), 그리고 성인당뇨병 등을 일으키는 유전자를 발견하고 연구했다.
1990년대 초 인간게놈프로젝트가 막 시작됐을 무렵에는 연구를 진행하는데 지금보다 더 많은 시간과 비용이 필요했다. 다국적팀은 게놈 해독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유전자지도를 먼저, 염기서열분석은 나중에’라는 전략을 세운다. 유전자의 위치를 먼저 판별하고 그 안의 염기서열을 분석하면, 복잡한 게놈 연구를 단축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1995년부터 다국적팀은 3백50개 실험실에서 공동으로 2005년까지 인간게놈프로젝트를 완성하겠다는 목표로 본격적인 연구에 착수했다.
A. 다국적팀
다국적팀은 생명의 책(①)에서 각 장(chapter)을 분리한 후(②), 그 중 한 페이지만을 선택해(③) 문장을 읽는 방법을 사용했다(④). 위치에 맞게 모든 페이지를 읽으면, 생명의 책 전체 내용을 알 수 있다(⑤).
B. 셀레라
셀레라는 생명의 책의 복사본을 여러개 만든 후(①), 이 책을 임의로 자른 다음(②) 조각들을 맞추는 방법을 사용했다(③). 문장을 서로 비교해 일치하는 부분을 찾아 페이지를 읽어(④) 생명의 책 전체 내용을 알아내는 방법이다(⑤).
늦은 출발, 빠른 완성
1996년 2월 다국적팀에 참가하고 있던 과학자들이 대서양에 있는 버뮤다섬에 모였다. 이 섬에서 그들은 ‘정리된 유전자 데이터는 24시간 안에 공개한다’는 유전자 정보 사용안에 동의했다. 이것이 바로 ‘버뮤다 원칙’이다.
한편 1992년 왓슨박사와의 마찰 때문에 미 국립보건원을 떠난 벤터박사는 자신의 ‘게놈연구소’를 설립했다. 그는 폐렴의 원인이 되는 헤모필루스 인플루엔자(Haemophilus influenzae)라는 박테리아 게놈 해독에 착수했다. 그로부터 6년이 지난 1998년 5월 벤터박사는 민간 바이오벤처 셀레라를 설립했다.
셀레라를 설립하면서 벤터박사는 다국적팀과는 전혀 다른 연구방법을 제시했다. 그는 유전자지도 없이 염기서열만 분석하는 ‘샷건’ 방식을 통해 2001년까지 미국 정부의 재정지원도 받지 않고 독자적으로 인간게놈프로젝트를 완료하겠다고 발표한 것이다. 벤터박사는 연구과정에서 버뮤다 원칙을 지키지 않고 자신이 발견한 유전자정보를 공개하지 않았다.
다국적팀보다 무려 8년이나 뒤늦게 시작했지만 4년이나 빨리 인간게놈프로젝트를 완성하겠다는 벤터박사의 도전에 자극을 받은 미국 정부는 1999년 초 인간게놈프로젝트를 2000년 안에 완료할 수 있다고 발표했다. 이를 위해 1999년 4월 미국, 영국, 일본, 프랑스, 독일, 그리고 중국의 20개 연구소 유전학자 40명이 화이트헤드 유전연구소의 소장 에릭 랜더박사를 중심으로 ‘유전분석가 그룹’을 결성했다. 이들은 완성된 유전자지도를 20개의 연구소에 분산해 본격적인 염기서열 집중분석에 들어갔다.
E메일 5천여통을 주고 받으며 짜맞추기를 꼬박 6개월. 인간의 22번 염색체 염기서열이 처음으로 해독돼 1999년 11월 과학전문지 ‘네이처’에 발표됐다. 또 5개월 뒤에는 21번 염색체 염기서열이 독일과 일본 연구팀의 공동작업으로 완성돼 네이처 2000년 5월호에 발표됐다.
2000년 6월 26일 다국적팀의 책임자 콜린스박사와 셀레라의 벤터박사는 미국 에너지성의 주최로 백악관에 모였다. 그들은 라이벌간의 서먹한 감정을 감추며 인간게놈지도의 초안을 함께 공개했다. 이 자리에서 콜린스박사는 “창조자의 고유영역을 어렴풋하게나마 경험했다는 사실에 겸허해진다”고, 벤터 박사는 “우리는 새로운 도전이 시작되는 역사적인 사건을 보고 있다”고 말했다.
2001년 2월 12일 다시 한번 세계를 게놈열풍으로 흥분시킨 인간게놈프로젝트의 완성. 다국적팀은 네이처에, 셀레라는 사이언스에 각각 연구논문을 발표했다. 또다시 다국적팀의 콜린스박사와 셀레라의 벤터박사에게 전세계의 이목이 집중됐다.
이렇게 빨리 완성될 줄 몰랐다
콜린스박사는 “인간게놈프로젝트의 완성은 이 프로젝트에 참여한 수백명의 과학자들이 보여준 열정의 산물이며 인류를 위해 모두 함께 일할 수 있다는 의지를 보여줬다”면서 “인간게놈프로젝트의 완성으로 이름 모를 질병으로 고통받고 일찍 죽음을 맞는 사람들을 돕는 연장을 만들 수 있게 됐다”고 밝혔다. 그는 “창조주만이 이해하는 언어로 쓰여진 인간 유전자가 이 생명의 책에 해독돼 있다”며 그 감격을 표현했다.
다국적팀은 최초로 단백질 화학구조식를 밝힌 업적으로, 또 게놈의 염기 배열을 알아내는 방법을 개발해 노벨화학상을 두번 수상한 영국의 생어박사를 비롯해 여러 과학자들에게 감사를 표했다. 만약 이들이 개발한 게놈 분석 기술이 없었다면 인간게놈프로젝트는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생어박사는 2000년 6월에 인간게놈 초안이 공개됐을 때 “이렇게 빨리 완성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고 놀라워했다.
한편 민간 바이오벤처 셀레라는 홀로 인간게놈을 해독하는데 성공했다. 셀레라를 이끈 벤터박사는 영국의 타임지에 ‘2000년, 올해의 인물’로 선정되기도 했다. 벤터박사는 저렴한 비용으로 다국적팀보다 늦게 시작한 인간게놈해독연구를 다국적팀과 같은 날 완결했다.
유전자 염기서열 연구의 진행상황을 공공에게 개방한 다국적팀과는 다르게 셀레라는 연구결과를 끝까지 비밀로 하다가 결과만 공개했다. 이 사실 때문에 다국적팀의 공개된 자료 덕분에 더 빨리 적은 비용을 들여 인간게놈해독을 끝낼 수 있었다는 루머가 나돌기도 한다. 어쨌건 벤터박사의 획기적인 연구방법과 진취적인 사업진행을 보면 인간게놈에 대한 그의 도전정신과 실력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
2001년 2월 12일에 있었던 셀레라의 게놈발표 현장에서 벤터박사는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는 이 시점은 세계의 모든 과학자들에게 아주 특별한 시간이다”며, “셀레라의 정확한 연구결과를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앞으로 인간의 불치병과 난치병을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일이 남았다”고 기쁨을 표시했다.
다국적팀을 이끈 주요 연구소들
화이트헤드 생의학연구소 (www-genome.wi.mit.edu)
세계에서 가장 큰 국립 게놈연구소로써 이번에 발표된 인간 염기서열의 25%가 이 연구소에서 완성됐다. 게놈연구를 위한 기기의 자동화와 컴퓨터를 이용한 게놈분석시스템을 개발했으며 게놈 연구자료를 세계 과학계에 무료로 제공하는 정책을 선도했다. 이 연구소는 최초로 인간과 쥐 등의 유전자지도를 완성하기도 했다.
이 자료는 인간의 유전자들을 밝혀내는데 큰 도움을 주었다. 분자생물학자이며 수학자인 화이트헤드 생의학연구소장 랜더박사는 2월 12일 기자회견에서 “우리는 마치 히말라야산을 정복한 것과 같은 놀라운 과학사의 중심에 서 있다”면서 “앞으로 수년 안에 복잡하게 얽힌 매듭이 풀릴 것이며, 유전자의 언어를 인간이 이해하기까지는 아직도 먼 길을 가야한다”고 말했다.
생거 센터 (www.sanger.ac.uk)
1998년 워싱턴대 게놈 연구팀과 함께 선충(C. elegans)의 염기 10억개의 서열을 완성했다. 이 자료는 유전자의 기능을 이해하는데 귀중한 자료로 사용되고 있다. 생거 센터의 소장인 설스톤박사도 게놈 연구자료를 세계 과학계에 무료로 제공하는 정책에 크게 기여했다. 설스톤박사는 2000년 6월에 인간 유전자 초안을 공개하는 자리에서 “인간이 인간을 만들 수 있는 매뉴얼이 우리 손에 쥐어지는 역사적인 시간이다”라고 말했다.
워싱턴대 게놈 센터 (genome.wustl.edu/gsc)
1998년 생거 센터 연구팀과 함께 선충의 게놈 분석을 완성했다. 이 연구결과로 대규모 염기서열을 분석하는 탁월한 능력을 인정받았다.
미 에너지성의 협력 게놈 연구소 (www.jgi.doe.gov)
로렌스 리버모어 연구소, 로렌스 버클리 연구소, 로스알마모스 국립연구소가 미 에너지성의 지원을 받아 1996년도부터 협력연구소로 다국적팀에 참여했다.
2000년 4월에 5번, 16번, 19번 염색체는 모두 이 협력연구소에서 완성됐다. 1999년 10월부터 새로 협력관계를 맺은 스텐포드대 게놈 센터에서 5번, 16번, 19번 염색체의 미흡한 부분들을 현재 채우고 있다.
베이어 칼리지 인간 게놈 센터 (www.hgsc.bcm.tmc.edu)
1999년 3월부터 화이트헤드 생의학 연구소, 워싱턴대 게놈 센터와 협력 관계를 맺고 대규모 염기서열을 정리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