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눈만 맞으면 망원경 짊어지고 관측회를 떠나는 폴라리스 회원들. 요즘은 여기저기 초청돼 '별사랑 펼치기'에 바쁘다.
"토끼가 방아찧는 달의 모습, 과학책에서 보았던 토성의 고리, 2백만광년 떨어진 안드로메다 은하, 그 과거의 모습까지
그리고 그 안 우리들의 어렴풋한 위치를 느껴보지 않으시렵니까?"
지난 10월1일 이화여자대학교 아마추어 천문서클인 '폴라리스'에서 일반인을 대상으로 개최한 열한번째 공개관측회의 '모시는 글' 중 일부다.
연 이틀밤 대학 캠퍼스에서 계속된 공개관측회에는 지역 주민들, 이웃 대학 아마추어천문인들은 물론 지금은 아기 엄마가 된 폴라리스 선배들, 평소 밤하늘에 관심이 많은 동네 꼬마들까지 1백여명이 모여 조그만 별잔치를 펼쳤다. 첫날은 상현 전의 달도 자세히 살폈고 아이들에게 토성의 고리도 살짝 맛을 보여주었지만 둘째날은 퉁퉁 불어버린 달 이외에는 아무 것도 볼 수 없었다. 하늘이 돕지를 않았다나…
밤을 낮삼아 활동해야하는 천문서클에서 여대생들이, 자체 활동하기도 버거운데 일반인을 대상으로 공개관측회까지 개최한다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다. 폴라리스 (Polaris, 북극성을 의미함)는 여느 대학생 아마추어 천문서클보다도 알차다. 어떻게 알찬가를 현회장 정세미(과학교육과 2년)양에게 직접 들어보기로 하자.
관측회가 생명
"천문서클의 생명은 관측이지요. 자주 밤 하늘의 별을 봐야 정도 들고 재미도 느끼고 지식도 늘지요. 그런 의미에서 저희들은 한달에 한번씩은 꼭 관측회를 갑니다. 무거운 장비를 짊어지는 고생을 마다하지 않고 을왕리로 치악산으로 누비고 다닌 우리 회원들이야말로 가장 별을 사랑하는 사람들일 것입니다."
말이 한달에 한번이지 방학동안에는 1주일에 한번씩도 마다하지 않고 다닌다. 자주 가는 관측지에는 단골 민박집도 확보하고 있어 경제적인 부담도 크지 않다. 심하게는 어느날 갑자기 날씨가 좋아 눈이 맞은 서너 사람이 부리나케 짐을 챙겨 하룻밤 별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천체 관측은 날씨가 생명이기 때문에 아무리 천지신명께 빌어 날짜를 잡았어도 당일날 하늘이 심술을 부리면 소용이 없다. 따라서 별사랑에 깊숙이 빠진 유경험자들은 날씨가 좋은 날 갑자기 눈을 맞추는 일이 생기는 것이다.
매년 폴라리스의 문을 두드리는 예비 천문 숙녀들은 50여명이 넘는다. 하지만 이 인원들이 모두 별지기가 되는 것은 아니다. 이들이 얼마만큼 남아 활동을 지속적으로 하느냐는 신입생 관측회가 결정한다. 관측회날 날씨가 청명하면 그해 신입생 농사는 별노력 없이도 풍년이지만, 시커먼 먹구름이 심술을 부리면 세미나를 열심히 개최하고 후배들을 감언이설로 아무리 꼬드겨도(?) 몇명 남지 않는다. 그래도 해마다 평균 20명씩은 남아 끊임없이 폴라리스의 맥을 굵게굵게 이어나가고 있다.
폴라리스가 가지고 있는 관측장비는 화려 하지 못하다. 반사 6인치 하나에 굴절 4인치 망원경 하나가 고작이다. 최근에 회비를 아껴 써 그럴듯한 쌍안경(11X80㎜) 하나 구입해놓고 서로 대견해하고 있다. 남자 대학처럼 망원경 자작의 중노동을 감당해내기 어렵고, 굵직한(사업을 해 돈을 많이 버는) '선배 물주'를 가지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폴라리스 별바라기들의 실력이 뒤처지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1년에 한번씩 발간하는 그들의 회지를 보면 천문과 우주에 대한 지식이 전공 관련학과 학생들보다 뒤처지지 않는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전공은 영문이니 수학이니 생물로 표기돼 있지만 천체의 운행원리나 우주의 생성 원인, 성운성단의 세부적 관찰기는 아마추어라고 생각 할 수 없을 정도로 깊고 세밀하게 묘사돼 있다. 언뜻 생각하기에 여학생들이 별을 본다면 별에 대한 사춘기적인 이상과 동경이라고 생각하겠지만 그것은 폴라리스의 한 단면에 불과하다.
과학대중화의 기수
그들의 별보는 이유를 들어보자. "물론 별을 보는 정서를 무시할 수는 없지만 그것만이 다는 아닙니다. 폴라인들 중에는 학술적인 관심과 애착을 가지고 천문학 전반에 걸쳐 체계적인 연구를 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별을 유심히 관찰하다 보면 우주의 생성에 대해 당연히 의문을 갖게 되고 자연의 질서를 알고자하는 욕구가 솟구치기도 합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학술부와 관측부에서는 1주일에 한번씩 정기세미나를 개최하고 이를 기반으로 매분기별로 계보를 발간합니다." 지금은 일선에서 물러나 졸업생들의 모임인 '화이트홀'에 가입을 앞둔 김미남(물리학과 4년)양의 말이다.
대학아마추어천문서클 중 졸업생 모임이 이대처럼 활발히 되고 있는 곳은 드물다. 최근에서야 여자대학(덕성여대 상명여대 숙명여대 등)에 아마추어 천문회가 탄생할 정도. 상식적으로 여자가 시집가서 망원경 둘러메고 천체관측 간다는 사실이 우리네 현실에 익숙치 못하지만, 폴라리스 선배들은 아이들을 데리고 후배들을 찾아와 망원경을 빌려달 라고 자연스럽게 부탁한다. 요즘은 스스로 돈을 모아 망원경을 장만하고 자기네 자식들을 중심으로 소규모 '과학캠프'도 개최한다고 한다. 80년에 처음 폴라리스가 탄생했으니까 초창기 선배들은 어엿한 학부모. 대학 때 열심히 습득한 붉은 별 '안타레스의 신비'를 아이들에게 들려주고 있다.
오리온의 삼태성과 함께 밤을 꼴딱 새우고 새벽에 금성을 맞으면서 폴라인들의 우정은 깊어만 간다. 대자연의 장엄함 속에 신뢰는 쌓이고 그 앞에서 맹세한 믿음은 쉽사리 무너지질 않는다. 이런 경험을 자신들만이 독점한다는 것은 '매우 이기적'이라는 생각이 들어 매년 학교에서 공개관측회를 개최한다고 한다. 지역 주민들과 동네 꼬마들에게 거문고자리의 직녀별을, 페르세우스자리 이중 성단을, 안드로메다은하를 설명하다보면 자신들이 '과학대중화'의 기수가 된듯한 착각을 일으키기도 한다. 교과서에 파묻혀 지루하게만 보냈던 지구과학 시간의 경험이 되살아나 하나라도 열심히 설명하려고 애쓴다.
폴라리스의 실력이 널리 알려지면서 여기저기서 초청강사 요구가 쏟아지기도 한다. 대기업의 연수회에 초청을 받아 별사랑 방법을 널리 알리기도 하고 라디오프로인 '별이 빛나는 밤에'가 주최하는 별밤 행사에서 밤하늘 정서의 폭을 대폭 늘려주기도 한다. 한국아마추어천문학회 주최의 중학생 과학캠프에도 전회원이 열성적으로 참여해 천체의 운행원리를 자세히 설명하기도 한다.
밤에 주로 활동하고 무거운 장비를 들고 다녀야 하는지라 '많이 먹는 동아리' '억센서클'로 알려져 있지만 알고보면 폴라리스 선배들처럼 부드러운 여자들도 없다고 동아리의 막내인 노승림(독어독문학과 1년)양은 말한다.
"별이 움직이는 것을 보면 우리가 사는 세계가 살아 움직이는 것을 느낄 수 있어요. 별자리를 익혀 놓으면 아는 것이 많아져 자꾸만 자꾸만 하늘을 쳐다보게 돼요. 매번 정직하게 그 모습 그대로 자신을 보여주는 성운 성단에게서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를 얻기도 하지요." 졸업해도 기회가 닿는대로 관측회를 다닐 생각이라는 오신정(물리학과 4년)양의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