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라이브러리









기술과 안전, 맹목적 기대 경계해야│심지원 동국대 철학과 교수

인간중심주의

“인간은 편리함에 금세 적응합니다. 바라지도 않았고 상상하지도 못했던 기술에 적응하고 나면 과거로 돌아가는 것은 곧 불편을 의미하죠. 미래 모빌리티가 인간을 더 편리하게 할 것이 분명한 만큼, 우리가 다시 과거로 돌아오지 못할 것도 분명합니다. 편리함에 적응하기 전에 사회가 그 기술을 받아들일 준비가 됐는지 충분히 논의해봐야 합니다.”

 

심지원 동국대 철학과 교수는 인공지능(AI) 시대의 철학과 윤리 문제를 연구하는 인문학자다.

 

2020년 ‘자율주행 자동차 논의에 있어서 인간의 자리’라는 제목의 논문을 인문학 학술지 ‘인문사회21’에서 발표하며 자율주행차에 대한 논의가 얼마나 알고리즘 기술에 치우쳐 있는지, 안전성에 대한 믿음과 맹목적 기대가 얼마나 만연해 있는지를 비판했다. 그는 “미래 모빌리티 기술을 누리기 위해서는 사회가 충분한 준비를 마쳐야 한다”며 “인간 중심의 자율주행을 논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심 교수는 유명한 윤리적 사고실험을 제시하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고장난 전차가 달리고 있다. 궤도 앞에는 5명이 일하고 있다. 갈림길을 사이에 두고 다른 궤도에는 1명이 묶여 있다. 전차는 그대로 궤도를 달려야 할까, 아니면 방향 조작 레버를 당겨 궤도의 방향을 바꿔야 할까.


일명 ‘트롤리 문제’다. 트롤리 문제는 자율주행차가 등장하면서 가장 먼저 수면 위에 떠오른 윤리적 질문이다. 자율주행차는 이 같은 상황에 처했을 때 어떤 논리로든 결정을 내려야 한다. 문제는 그 결정이 알고리즘에 따른다는 사실이다. 알고리즘은 사람의 설계를 따른다. 그러니까 이 문제에 대해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것은 사람의 몫이다.


이에 따라 자율주행차와 관련해 윤리적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기 위한 논의가 활발하다. 한국에서는 국토교통부가 2020년 ‘자율주행자동차 윤리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재산보다 인간 생명을 최우선해 보호할 것’, ‘사고 회피가 불가능할 경우 인명 피해를 최소화할 것’과 같은 기준이 포함됐다. 


심 교수는 “자율주행차를 포함한 미래 모빌리티에 관해 숙고해야 할 논의 대상이 트롤리 문제뿐만은 아니다”라며 “‘어쩔 수 없는’ ‘만일의’ 상황도 중요하지만 미래 모빌리티가 바꿔놓을 일상도 점검해야 한다”고 말했다. 

 

Q. 모빌리티 생태계에 새로운 개념과 운송수단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비행기를 ‘인공새’라고 불렀다면 ‘새처럼 알을 낳는 거야?’라는 궁금증이 나올 수도 있었을 것이다. 용어는 대상에 대한 인상을 좌우하고, 용어에 따라 새로운 논의가 생기기도 한다. 그러기에 새로운 개념과 운송수단에 어떤 용어를 붙일 것인가도 굉장히 중요한 문제다.


자율주행차에서 ‘자율’은 인간에게만 사용하던 단어였다. 철학자 이마누엘 칸트는 인간을 규정하는 핵심 개념으로 자율을 내세우기도 했다. 자율주행차는 외부 자극에 적절하게 대응하도록 프로그램화 된 것으로 ‘자율’과 어울리지 않는다. 자율은 책임의 전제조건으로, 자율주행차라는 용어가 책임의 문제에서 논의를 방해할 수 있다. 마치 사람이 아닌 기계가 모든 책임을 질 수 있다는 듯한 인상을 준다. 무인자동차와 같은 명확한 용어가 필요하다. 

 

Q. 미래 모빌리티 기술의 발전에서 경계해야 할 부분은?


새로운 기술이 등장하면 기존 기술의 개선이나 발전을 저해한다. 자율주행차가 안전을 위한 기술로 꼽히면서 안전에 관한 논의는 대부분 자율주행차로 귀결된다. 당장의 안전을 위해서는 신호등 하나를 더 만들고 노인보호구역을 지정하고 도로를 정비하는 등의 투자가 필요한데, 안전은 곧 자율주행차로 실현할 수 있다는 환상에 기존 인프라에 대한 투자가 줄 가능성이 있다.

 

Q. 편리함만을 좇다 보면 부작용이 생길 수도 있을 것 같다.


편리함이 좋은 가치라는 것은 부정하지 않는다. 전치형 KAIST 과학기술정책대학원 교수는 저서 ‘사람의 자리’에서 ‘가벼운 기술에는 무거운 것들이 숨어 있다’라고 적었다. 미래 모빌리티도 마찬가지다. 이동이 지금보다 쉬워지고 간단해질테지만 그 이면엔 분주하게 움직여야 하는 플랫폼 노동자와 실직한 운전노동자 등 간과해선 안 될 무거움이 있다. 편리함에 적응해 이들을 잊어버리기 전에 무거움의 존재를 인정하고 대책을 세워야 한다. 


미래 모빌리티가 실현되면 장애인, 노약자, 어린이와 같은 교통약자의 이동권이 향상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런 면에서 미래 모빌리티가 가져올 편리함은 필수적이다. 하지만 이동권의 향상만큼 중요한 것은 이동 수요를 만드는 것이다. 단순히 이동수단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 교통약자들이 활발하게 활동할 수 있는 인프라와 문화를 먼저 갖춰야 한다.

 

Q. 기술은 미래지향적임에도 구태를 그대로 반영할 때도 있다.


2017년 경기 판교신도시에서 열린 자율주행모터쇼에 전시된 자율주행차 앞엔 레이싱 모델이 서 있었다. 사람이 필요 없는 차를 전시하는 곳에서 레이싱 모델이라니 모순적이었다. 이외에도 안전 테스트를 할 때 여전히 평균 남성의 마네킹을 활용한다거나 AI를 학습시킬 때 백인, 남성 위주의 데이터가 그대로 사용되는 등 새로운 기술에서도 기존 사회의 문제를 계속 이어가는 예는 많다. 기술이 사회를 혁신할 것이라는 환상이 있지만, 오히려 기존 사회를 공고하게 만들 수도 있다는 점을 경계해야 한다.

 

Q. 인간 중심의 모빌리티란 무엇일까?


인간이 모든 문제의 책임에서 주체가 돼야 한다. 기술을 통제하지 못하거나 기술 뒤에 숨는 등 책임에서 벗어날 수 있는 핑계를 만들어서는 안 된다. 인간의 자리를 최대한 지키려고 노력하는 것이 인간 중심의 모빌리티라고 생각한다.

이 기사를 읽은 분이 본
다른 인기기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