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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지구는돈당 기호2 김교수] 과학기술 전문가를 국회로!

연구비, 묻고 더블로!

 

4월 총선을 앞두고 여야는 정치신인 영입에 각축전을 벌이고 있다. 군인, 운동선수, 소방관 등 각계 전문가를 영입해 그들의 지식을 토대로 전문성 있는 정책을 다루겠다는 취지다. 여야를 막론하고 비례대표 후보 중 과학기술 분야 전문가는 소수다. 과학기술의 경쟁력이 국가의 경쟁력이라는 시대에 국회의원 후보들이 귀담아들을 만한 과학자들의 목소리를 정리했다.

 

※ 조사방법

과학동아는 3월 9~12일 4일간 e메일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설문 대상은 한국과학기술한림원(KAST)이 2020년 정회원으로 선출한 석학 23명으로 정했다. 한국과학기술한림원은 국내 과학기술계를 대표하는 석학들이 회원으로 활동하는 단체로 매년 엄격한 심사를 거쳐 정책학부, 이학부, 공학부, 농수산학부, 의약학부 등 5개 학부에서 정회원을 선발한다. 전공 분야 연구 경력이 20년 이상 돼야 정회원에 선출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 설문에는 23명 중 16명이 응했고(약 70%), 조사 문항은 객관식과 주관식을 섞어서 진행했다. 

 

 

“나눠주기식 예산 집행 지양해야” 


설문에 응한 과학자들은 현재 정부의 과학기술 정책에 대해서는 대체로 만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행 과학기술 정책의 만족도를 ‘매우 만족한다’부터 ‘매우 불만이다’까지 다섯 단계로 구분해 조사한 결과 ‘보통이다’가 56.3%(9명), ‘만족한다’가 37.5%(6명)로 나타났다. 


그럼에도 일부 정책에는 아쉬움을 표현했다. 응답자 중 절반이 ‘국가 연구개발(R&D) 사업 예산 편성 관련 정책’의 보완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특히 R&D 사업 평가 방식과 예산의 배분 방식이 개선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부 R&D 예산은 2019년 전년 대비 4.4% 상승한 20조5000억 원으로 사상 처음으로 R&D 예산이 20조 원을 넘었고, 올해는 2019년 대비 18% 증가한 24조2000억 원으로 편성되는 등 최근 10년간 꾸준히 늘고 있다.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연구개발투자 비율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요 국가들 가운데 가장 높은 수준이다.


문제는 예산 편성 방식이다. 응답자의 37.5%(6명)가 일정 수준의 연구 성과를 내기 위해서 연간 3억 이상의 연구비 지원이 다년간 필요하다고 답했다. 세계적인 수준의 연구자에게는 연간 최대 10억 원을 지원할 필요가 있다는 응답도 13%(2명)로 나왔다. 


2019년 9월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발표한 ‘2018년도 국가연구개발사업 조사·분석 결과’에 따르면, 총 6만3697개 정부 과제 중  1억 원 미만의 과제가 절반이 넘는 57.9%를 차지했다. 1억 원 이상 2억 원 미만이 18.1%, 2억 원 이상 5억 원 미만이 13.7%, 5억 원 이상 과제는 10.3%였다. 


이관영 고려대 화공생명공학과 교수(공학부)는 “1년 단위의 나눠주기식 예산 집행보다는 다년간 예산을 확보해 목적과 필요에 맞게 연구비 예산을 운영하는 시스템이 마련돼야 한다”며 “중견연구자의 경우 연간 1억 원씩 10년간 안정적으로 지원돼야 제대로 된 연구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창수 고려대 기계공학부 교수(공학부)는 “정부 연구비를 지원받기 위해 세부 연구 주제를 자주 바꾸는 게 유리하다는 분위기가 있다”며 “한 주제를 지속적으로 연구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한 교수는 또 “새로운 연구과제를 수주하기 위해 들이는 시간과 노력에 비해 연구가 진행되는 기간은 상대적으로 너무 짧다”며 “불필요한 행정 절차도 줄여야 한다”고 덧붙였다.

 


연구비 사용 규제가 연구 효율을 낮춘다는 지적도 나왔다. 최도일 서울대 식물생산과학부 교수(농수산학부)는 “3책 5공(한 연구자가 수행하는 연구 수를 최대 5개, 책임자는 3개로 제한하는 제도), 과제참여율 100% 제한 등 실제 현장과 맞지 않는 연구 규제는 조정될 필요가 있다”며 “연구자의 연구 자율성과 수월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규제가 축소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도전적 기초과학 연구 지원 필요”  


특정 연구 분야에 연구비 쏠림 현상이 심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모험적이고 도전적인 연구보다 연구 트렌드에 따라 특정 분야에 연구비가 집중된다는 것이다. 최근에는 인공지능(AI), 시스템반도체, 소재·부품·장비 분야의 연구개발 필요성이 커지자 이 분야에 쏠림 현상이 심해졌다. 


익명을 요구한 한 과학자는 “정부가 중점지원 분야에 연구비를 몰아주는 경향이 있다”며 “산업계의 필요에 따라 산업계의 연구개발 투자를 유도하고 정부는 기초과학 연구에 집중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김영훈 서울대 수리과학부 교수(이학부)는 “지식기반의 산업사회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추격자형 연구를 지양하고 수십 년 뒤를 내다보는 선도자형 연구로 바꿔야 한다”며 “이를 위해서는 당장은 실효성이 없어 보이더라도 기초적이고 창의적인 연구에 정부가 연구비를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기초연구개발 관련 정책에 대한 정부 지원이 부족하다고 응답한 경우는 전체의 37.5%(6명)로 조사됐다. 이들은 기초 연구의 다양성이 확보되지 못하고 있고, 도전적인 기초 연구과제에 대한 지원이 부족하다고 강조했다. 


정해명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이학부)는 “도전적이거나 탐구형 기초 연구에 대한 지원이 상대적으로 부족하다”며 “기초과학 연구개발 관련 정책이 개선돼야 한다”고 말했다.

 

“지역 인재 양성 정책 나와야”


이공계 인재의 지역 격차 해소를 위한 지역 인재 육성과, 이공계 인재의 취업 및 다양성 확보를 위한 벤처 창업 지원 등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또 젊은 연구자에게 독립적인 연구 기회가 제공돼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이유미 경북대 약대 교수(의약학부)는 “이공계 대학원생 등 연구 인력이 수도권에 집중돼 지역 과학자들이 연구 의욕을 잃고 있다”며 “지방 대학이나 연구소에서 우수 연구 인력이 양성되고, 새로운 연구 인력을 채용할 수 있는 정책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또 이 교수는 “이공계 졸업생들이 전문 연구자로 성장할 수 있는 안정적인 일자리 환경이 필요하다”며 “과학계 전반에 고급 일자리 창출이 이뤄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과학기술의 장기적인 발전을 위해서는 연구 성과를 내는 것 외에 대중과의 소통도 중요하다는 의견도 있었다. 김영훈 교수는 “학문적 성과를 논문으로 발표해 전문가 그룹에서 인정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대중이 이해할 수 있는 단행본이나 기사 등으로 알려 청소년이 관심을 갖게 해야 학문이 계속 발전할 수 있다”며 “이를 위해 교육 목적의 저술 활동과 출판에 대한 지원 정책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국회 이공계 출신 할당제, 찬성 87.5%


현재 20대 국회에는 문미옥 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1차관, 신용현 민생당 의원, 오세정 서울대 총장 등 과학기술 전문가들이 영입돼 과학기술계의 목소리를 전달하고 과학기술 정책 법안을 발의하는 등 활발히 활동해왔다. 그럼에도 소속 정당의 상황, 정치 신인의 한계, 뿌리 깊은 정치계 관행 등 제약이 많았다. 


21대 국회의원을 뽑는 이번 총선의 경우에는 여야를 막론하고 인재 영입 기조 자체가 법조계, 산업계 등 사회적, 경제적으로 성공한 명망가들이나 대중에게 이슈가 된 인물 등 보여주기식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조형희 연세대 기계공학부 교수(공학부)는 “법조계, 노동계 등은 각 분야에서 몸담고 있던 전문가가 국회의원으로 발탁돼 전문성을 갖고 활동하는 경우가 많다”며 “현재 국회에는 과학기술 전문성을 가진 사람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만큼 21대 국회에서는 이공계의 목소리를 대변할 과학기술 전문가가 국회의원으로 활동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설문 응답자의 87.5%(14명)도 ‘국회에 이공계 출신 할당제 도입’과 같은 과학기술 전문가의 정치 활동의 필요성에 공감했다. 김지현 연세대 시스템생물학과 교수(농수산학부)는 “기초연구와 산업연구의 균형 있는 예산 배분이 중요하다”며 “과학기술 관련 정책을 마련할 때 한국과학기술한림원 등 과학기술 단체의 의견을 관심 있게 들어주면 좋겠다”고 밝혔다. 


김상욱 KAIST 신소재공학과 교수(공학부)도 “전문성이 높고 연구역량이 우수한 과학자들이 과학기술 정책이나 평가에 참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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