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사방법
중·고등학생이 학교에서 받고 싶은 과학교육은 어떤 것일까. 과학동아는 이에 대한 의견을 듣기 위해 과학동아 정기구독자 가운데 중학교 1학년부터 고등학교 3학년까지 총 49명을 대상으로 문자메시지와 전화 인터뷰 등을 통해 개별 설문을 진행했다. 조사 기간은 3월 5~11일로 총 7일이었다. 설문 내용은 학교 과학 수업에 대한 평가, 진학, 입시 정책 등 교육 전반에 관한 4개 문항을 단답식으로 구성했다. 또 올해 총선부터 선거권 연령 하향으로 만 18세(2002년 4월 16일까지 출생자)가 투표에 참여할 수 있게 된 만큼, 10대 투표권 부여에 대한 의견을 묻는 문항도 포함시켰다.
“학교에 천문대 지어주세요”
중·고등학교 과학 수업에 흥미를 느끼기 위해서는 ‘실험 위주의 수업’ ‘프로젝트형 메이커 수업’ 등 체험형 수업을 늘려야 한다는 응답이 69%(34명)로 가장 많았다.
최나윤 양(서울 세화여중 1학년)은 “컴퓨터, 코딩 등에 관심이 많아 코딩 메이커 프로그램에 참여한 적이 있는데, 우리 학교에서는 이 프로그램을 운영하지 않아 다른 학교에서 배워야 했다”며 “다양한 학습 프로그램이 운영되면 좋겠다”고 답했다.
전공별 특성화중학교를 지정하자는 아이디어도 나왔다. 김준현 군(서울 강동중 3학년)은 “평소 천문학에 관심이 많은데, 실제로 별을 볼 기회가 거의 없었다”며 “학교에 천문대를 설치하고 천문특성화 학교로 지정해 주변 지역의 관심 있는 학생들을 모아서 프로그램을 진행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현재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제76조에는 교육감이 교육부 장관의 동의를 받아 특성화중학교를 지정·고시할 수 있게 하고 있다. 국제 분야, 예술 또는 체육 분야, 대안 교육 분야, 그리고 교육부 장관이나 교육감이 지정하는 분야에서 특성화중학교를 지정할 수 있다. 아직 이공계 분야에 특화된 특성화중학교는 없다.
고등학교의 경우 일반고의 과학 수업 환경을 업그레이드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가령 전자현미경, 액체크로마토그래피 등 대학 수준의 전문적인 실험 장비가 마련돼 충분히 다양한 실험을 시도할 수 있는 과학고나 영재고와 달리, 일반고에는 광학현미경과 같은 기본적인 실험 장비만 갖춰진 경우가 많아 과학실험과 수업의 질에서 차이가 크다는 것이다.
유한구 한국직업능력개발원 선임연구원이 2017년 8월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일반고, 과학고, 특성화고 등 고등학생 1만558명을 대상으로 교과교실과 전공실습실을 포함한 학교 시설 및 환경 만족도를 조사한 결과에서 일반고는 5점 만점 기준 3.6점, 과학고는 4.38점으로 차이가 큰 것으로 조사됐다.
한성윤 양(경기 평택고 2학년)은 “모든 일반고의 과학 학습 환경이 과학고 수준으로 갖춰지기는 현실적으로 어렵겠지만, 실험기구들이라도 일부 갖춰진다면 다양한 실험을 해보고 싶다”며 “과학실험에 관심이 많은 과학동아리에 예산을 더 지원해주는 방안도 마련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밖에 정진우 군(서울 석관고 2학년)과 최경진 군(충북 오창고 1학년) 등 5명은 “방학 기간에 대학 실험실에서 인턴연구원으로 직접 연구할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밝혔다. 또 김기율 군(서울 영락중 2학년)은 “중학교 3년간 로봇을 제작하는 등 장기 프로젝트를 진행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고등학교 자유학기제는 왜 없나요?”
이공계 진학을 고민 중인 학생들이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은 교과 수업 위주의 입시 준비보다는 진로 탐색의 기회였다. 조사 대상 49명 중 절반가량인 55%(27명)가 ‘대학 학과 설명회’ ‘과학자와의 멘토링’ 등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정경수 군(강원 임계고 1학년)은 “아직 진로를 구체적으로 결정하지 못했다”며 “학교에서 지식은 배울 수 있지만 앞으로 내가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진로 교육은 충분하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이공계 세부 전공에 대한 정보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박강준 군(충남 설화고 2학년)은 “인문사회계열은 인터넷이나 유튜브 등에서 진로에 대한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는데, 이공계열은 상대적으로 정보가 부족한 것 같다”며 “학교 차원에서 과학자들을 초대해 세부 전공에 대한 정보를 얻을 기회를 제공해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교육부는 중·고등학생에게 교과서 위주의 교육에서 벗어나 여러가지 활동을 하면서 적성과 진로를 탐색할 기회를 제공하겠다는 취지로 2016년 자유학기제를 도입했다. 현행법상 한 학기 동안 시험을 치르지 않는 자유학기제는 모든 중학교가 의무적으로 실시해야 한다.
최근 교육부 조사 결과 올해는 자유학기제를 중학교 1학년 한 해로 확대해 ‘자유학년제’를 시행하는 중학교가 96.2%(3222곳 중 3101곳)로 사실상 전국 대부분의 중학교가 자유학년제를 실시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자유학기제 운영에 대한 평가는 일단은 긍정적이다. 2017년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은 총 1469명의 학생을 대상으로 자유학기제 시행 전·후 역량 평가와 만족도를 조사했다. 그 결과 전체적인 진로개발역량 점수에서는 큰 차이가 없었지만, 자기 이해, 진로 계획성 등 세부항목에서는 자유학기제에 참여한 학생의 점수가 유의미하게 높았다고 분석했다.
다만 중학교 1학년이 실제 진로를 선택하는 시기와는 차이가 있다는 점에서 아쉽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이건중 군(경기 중흥고 1학년)은 “중학교 1학년 때는 컴퓨터를 좋아해서 자유학기제를 통해 컴퓨터 관련 활동을 했었는데, 지금은 기계공학을 전공으로 선택하고 싶다”며 “좋아하는 분야가 계속 바뀔 수 있는 만큼 고등학교 1학년 때도 자유학기제가 운영이 된다거나 방학 기간에 진로를 탐색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마련되면 도움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한편 진로 탐색과 진학을 위한 과학기술 관련 각종 대회나 공모전 일정을 정리한 이공계 소식지를 제작해 전국 고등학교에 배포하자는 이색 제안도 나왔다.
“그나마 1년에 수능 2번 치르면…”
현행 입시제도에 관해서는 진지한 고민에서 우러나온 답변이 많았다. 최주니 양(경기 안곡고 3학년)은 공교육의 수업 방식을 조정해 사교육을 줄이는 방안을 제안했다. 최 양은 “학교에서는 기초, 심화 등 수준별 수업이 이뤄지기 어렵고 그러다 보니 사교육이 많아진다고 생각한다”며 “난이도에 따라 수업을 개설해 학생들이 선택해서 들을 수 있도록 교과 운영 방식을 바꾸면 좋겠다”고 말했다.
1년에 한 번 치러지는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을 두 번으로 늘려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수능 한 번으로 대학 진학이 결정되는 현행 제도가 입시 스트레스와 과도한 경쟁을 부추긴다는 것이다. 실제로 1년 2회 수능 시험은 2019년 11월 전국 시도교육감협의회 총회에서 현행 대입제도 개선안으로 거론되기도 했다.
강재희 양(부산여고 3학년)은 “중·고등학교 6년간의 노력이 단 한 번의 수능으로 평가된다”며 “수능을 1년에 두 번으로 늘리면 실수나 컨디션 관리에 대한 부담이 확실히 줄어들 것 같다”고 말했다.
최대 6개 대학까지만 지원할 수 있는 현행 수시 입학제도에서 최대 지원 대학 수를 늘려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대입 전형 중 가장 많은 인원이 수시로 선발되는데, 6곳 지원이라는 제한 때문에 원하는 대학에 소신 지원이 어렵다는 것이다. 수시 원서 접수 제한은 학생들의 원서 접수비 부담을 이유로 2013학년도 전형부터 도입됐다.
그밖에 ‘대입 제도가 너무 자주 바뀐다’ ‘불합격자에게는 불합격 사유를 알려주면 좋겠다’는 의견도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