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콘은 조물주가 이 세상을 창조할 때부터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인간들은 표정, 자세, 손가락 등을 통해 의사소통을 했고 그들의 생각이나 관념을 전달하고 기록하기 위한 방법들을 탐구해 왔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아이콘의 조상인 그림이다. 그림은 고대 인간들이 사용했던 최초의 기록방법이었다.
동굴벽화에서 보는 이미지들은 교육, 주술적인 기능을 담당했다. 그림문자로부터 시작해 여러 종류의 표의문자들이 생성됐으며, 이것은 중세시대 각 가문을 상징하는 문장(紋章)의 형태로 발전했다. 예를 들면 백년전쟁을 ‘장미전쟁’이라 부르는 것은 장미를 문장으로 사용한 가문끼리의 싸움이었기 때문이다. 또 일본 황족 가문을 상징하는 것은 국화이다.
근대적 의미의 아이콘은 국제적인 행사에서 사용되는 픽토그램의 형태로 발전했는데, 1881년 프랑스 파리의 한 국제회의에서 시각적인 심벌을 사용한 것이 근대 아이콘의 시작이다. 현재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아이콘들의 효시라고 볼 수 있다.
이후 컴퓨터 문화가 보급되고, 사용자 인터페이스 중 그래픽 유저 인터페이스(GUI)가 발달하면서 아이콘들이 다시 등장하게 됐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선사 시대적인 의사소통 방식을 현대 생활에 다시 적용시키는 것이다.
동굴벽화
아이콘의 발달을 이야기할 때 구석기시대로 부터 신석기 시대(기원전 3만5천-4천년) 동굴벽화부터 시작하는 듯하다. 동굴벽화는 널리 알려져 있듯이 예술의 시초가 아니며 오히려 시각적으로 의사교환을 하고자 하는 노력의 시작이었다. 예를 들어, 남프랑스의 라스코(Lascaux) 지방에서 발견된 벽화는 생존을 위한 방법이다. 동물상 옆에는 창 모양, 혹은 기하학적 부호들이 그려져 있기도 한데 이는 사냥의 과정을 전수하는 교육 수단이나 동물사냥에서의 성공을 비는 제의적인 목적에서 동굴벽화가 제작되었음을 암시하는 것이다.
그림문자
그림문자의 발달은 현재로서는 문자발달의 시초로 여겨지지만, 나타내고자 하는 내용이 시각적으로 표현됐다는 맥락에서 이것도 아이콘의 발달과정에 포함시킬 수 있다. 수메르인들의 그림문자(기원전 3천년경)에서는 그래픽 형태가 진화해 가면서 정보를 기록하는 능력도 확대돼 갔다. 이는 설형문자라고 불리는 추상적인 기호문자로 진화했다.
또 이집트와 중국에서 시각적인 형태의 문자가 각각 발달했는데, 이집트에서는 그림문자와 표의문자가 섞여 사용되고 있었다. 신왕조(기원전 1570-1085)가 되면서 7백개가 넘는 상형문자 중 1백개 남짓이 그림문자로 남게 된다.
중국의 한자는 오늘날 가장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고 있는 그림문자의 체계로 남아 있다. 전설에 의하면 창힐이라는 사람이 기원전 1800년경 사람과 동물의 발자취를 유심히 관찰해 한자를 발명했다고 한다. 이후에도 중국한자는 자연물의 모양을 형상화해 의미 전달을 광범위하게 발전시켰다.
알파벳
알파벳은 대표적인 표음문자이다. 표음문자는 인간이 나타내고자 하는 대상의 첫소리를 대표성 있는 형태로 기록하고 , 그 후 같은 소리를 전달할 때에는 이 형태를 빌어서 적는 방식으로 발전됐다. 알파벳은 시각적인 커뮤니케이션의 형태는 아니지만 영어의 국제화에 힘입어 아이콘 개발에 가장 구체적으로 응용되고 있다.
문장
중세시대 각 가문을 상징하는 문장(紋章) 또한 아이콘 발달의 한 과정으로서 존재한다. 각 가문이 내세우는 전통과 철학 등 추상적인 정보들이 구체적인 형태를 빌어서 표현됐다(그림7). 또 북미, 오스트레일리아를 떠돌아 다니던 5백만명의 집시들은 상호 커뮤니케이션을 위해 ‘호보’라는 기호문자를 사용했다. 호보문자는 어린이들의 낙서처럼 보이는데 “이집에 가면 주인이 친절함” “개가 많으므로 주의” 등을 뜻하는 그래픽심벌을 석필로 표현했다.
아이소타입
1925년 오스트리아의 사회교육학자인 노이라스가 통계도표를 만들기 위해 간결한 심벌을 만들어 사용한 것이 시초가 됐다. 아이소타입(ISOTYPE)은 국제그림 글자 교육기구(International System of Typographic Picture Education)의 약자이다. 아이소타입은 사람이나 동물을 시각화함으로써 언어가 통하지 않은 사람이나 어린이들도 한눈에 이해할 수 있게 만든 것이다. 현재는 기호를 포함한 2천종류 이상의 심벌을 모은 시각사전이 있다. 1940년 무렵부터 아이소타입은 영화, 도해잡지, 도해교과서, 아동그림책에 사용되고 있으며, 현대 그래픽 심벌의 모체가 됐다.
시멘토그라피
노이라스의 제자였던 블리스는 세계대전 중 나치의 탄압을 피해 오스트레일리아로 피신하면서, 전쟁이 일어난 이유는 언어가 서로 다르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한자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하나의 세계를 위한 한 가지 문자’를 목표로 시멘토그라피를 개발했다.
아이소타입과 비교해 시멘토그래피는 추상적이다. 1백개의 기본문자가 있고, 한 단어를 만들기 위해서는 여러개의 기본문자가 합해져야 하지만, 아이소타입보다 더 다양하게 의미를 구사할 수 있다. 시멘토그라피는 청각장애자들의 의사교환 수단으로 많이 사용됐다.
픽토그램
무엇보다도 현재 우리의 실생활과 가장 깊은 관계를 가지는 아이콘은 만국공통의 픽토그램의 발달에 힘입었다고 할 수 있다. 인류학자 마가렛 미드여사와 시각디자이너 루돌프 모들리에 의해서 국제 그래픽 심벌 플랜이 주창됐고, 이어서 1920년대 모들리는 국제적인 픽토그램 제정의 가능성을 타진한 픽토리알 스태티스틱(Pictorial Statistics Co.)을 결성했다. 픽토리알 스태티스틱에서는 1976년 3천2백50개의 시각적 심벌 핸드북을 세상에 내고, 모들리가 사망할 때까지 현재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아이콘들의 효시라 할 수 있는 전형들을 만들어냈다.
1949년에는 UN에 의해 제출된 제네바 프로토콜이 도로표지판 제정의 효시가 됐다. 이보다 1년 앞선 런던 올림픽 경기에서 각종 경기 및 행사를 구별하기 위한 픽토그램들이 사용됐는데, 제네바 프로토콜과 함께 아이콘 국제화의 시작이었다.
1956년에는 국제그래픽 디자인 협의회(ICOGRADA)라는 연구기관이 생겨나 국제적으로 통용 가능한 그래픽 심벌의 연구를 현재까지도 계속하고 있다. 1964년 UN이 ‘심벌의 사용 대중화를 통한 국제협력’을 주창하면서 심벌 사용 계획안을 발표했고, 언어장벽을 깨기 위한 국제 위원회(ICBLB)가 결성되고 공모를 통해서 1965년 ‘여자’ ‘남자’ ‘화장실’ ‘물어보세요 사무실(infor-mation office)’을 대표하는 아이콘을 결정했다.
현재는 국제표준화 기구인 ISO에서 ‘그래픽 심벌 기술평가위원회’(TC145)라는 분과를 마련해 아이콘의 표준화를 연구하고 있다.
컴퓨터 아이콘
컴퓨터 문화가 보급되고 사용자 인터페이스 중 그래픽 유저 인터페이스(GUI)가 발달하면서 물리적인 공간의 제한없이 세계인들이 소통할 수 있는 아이콘의 개발이 요구되고 있다. 컴퓨터 화면상에서도 복잡한 컴퓨터 언어보다는 한눈에 알 수 있는 아이콘의 개발이 미래를 지향하는 컴퓨터 문화에 보다 적합한 대응 방안일 것이다.
아이콘 사용의 잠재력은 무진장하다. 각각 다른 나라 언어로 화장실이 어디인가, 비상구가 어디인가, 어떻게 문서를 편집해야 하는가를 말하는 것은 의미가 없으며, 모든 지각과 지식의 표시는 아이콘을 통해서 민주적으로 또 오차없이 행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아이콘에 대한 몇가지 환상들
인간이 짓는 표정 하나에서부터 컴퓨터 문화에 이르기까지 아이콘은 매우 넓은 영역을 포괄하고 있다. 따라서 아이콘에 대한 우리의 의견은 매우 분분하다. 아이콘에 대해 우리가 잘못알고 있는 몇가지를 윌리암 호르톤(W. Horton)은 그의 책 '아이콘 북'(The Icon Book)에서 다음과 같이 지적하고 있다.
1.아이콘은 문자를 완전히 대체할 수 있다. 따라서 아이콘은 문자와 함께 사용하면 안된다.
2.아이콘은 문자만 못하다.
3.아이콘은 완벽하게 명확해야 한다.
4.아이콘은 그림이다.
5.아이콘을 디자인하는 것은 순수 예술이다. 따라서 아이콘은 아름다와야 한다.
아이콘의 어원 및 특성
아이콘을 크게 분류하면 넓은 의미의 아이콘과 좁은 의미의 아이콘으로 나눌 수 있다. 넓은 의미의 아이콘은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시각적인 형태로서 대화기능을 갖는 것이다. 좁은 의미의 아이콘은 성화상(동방정교회에서 사용되는 회화의 한 장르)을 말한다. 아이콘이라는 말은 그림을 의미하는 그리이스어 'eikoon'에서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