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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박통합당 기호3 이석사] 과학 생태계를 건강하게

기회는 평등하게 취업은 공정하게

 

대학원생은 전공 분야를 공부하는 학생이면서 동시에 정부의 연구과제 등에 참여하는 연구원이다. 석사과정 4만5099명과 박사과정 2만9052명의 대학원생들이 전국 각지에서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2018년 기준). 국내 전체 과학기술인력의 14.4%를 차지하는 이들은 가가 필요로 하는 고급 이공계 인력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한다.

 

※ 조사방법

과학동아는 3월 7~12일 전국의 이공계 대학원생 5명을 직접 만나거나 전화 인터뷰를 진행해 이번 총선에 출마할 국회의원 후보들에게 하고 싶은 얘기를 들었다. 이들은 학문 분야별 연구비 지원 정책, 지역별 연구인력 수급 불균형, 취업 정책 등 다양한 고충을 토로했다.  

 

“기초과학의 범주 확대해야”   


강찬신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석박통합과정 연구원은 대학원 5학기째를 맞았다. 강 씨는 순수하게 지식을 탐구하고 싶어서 대학원에 진학했다. 그의 전공은 물리학 중에서도 소수만 연구하는 생물물리학이다. 밧줄처럼 감긴 DNA의 구조를 물리학적으로 분석한다. 몸속의 유전정보를 담은 DNA는 평소에는 히스톤 단백질에 촘촘히 감겨 있다가 DNA를 복제할 때만 풀리는데, 이 원리를 찾는 것이 강 씨의 최대 관심사다.


“국내에서는 생물물리학이 응용과학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아요.”


과학기술 최대 강국인 미국에서는 생물물리학이 다섯 손가락에 드는 기초물리 분야다. 아서 애슈킨 미국 벨연구소 전 연구원이 개발한 ‘광학 집게’는 대표적인 생물물리학 연구 성과로 꼽힌다. 광학 집게는 레이저 빛으로 원자나 살아 있는 세포 같은 매우 작은 물체를 붙잡을 수 있는 기술로, 애슈킨 연구원은 이 공로로 2018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다. 


광학 집게는 세포나 박테리아만큼 매우 작은 물질을 집어낼 수 있어 지금도 생물물리학의 중요한 기술로 사용된다. 강 씨는 “국내에서는 기초물리학을 입자, 광학, 고체 등 세 개 분야로 한정하는 경향이 있다”며 “생물물리학의 경우 물리학도, 생물학도 아닌 경계학문으로 취급된다”고 말했다. 
연구자 규모가 작은 기초과학은 연구비 경쟁에서 상대적으로 불리하다. 수년 안에 실용적인 성과를 낸다는 보장이 없어 뒤로 밀리기 쉽다. 강 씨는 “짧은 기간에 산업에 기여할 수 있는 현실적인 연구가 우선시되는 경향이 있다”며 “연구비를 신청할 때 3~5년간 연구계획을 작성하는데, 기초과학의 경우 이 기간 내에 실용적인 성과를 내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기초과학 연구가 당장에는 쓰임새가 없어 보일지 몰라도 나중에 산업계에 어떤 파급력을 갖게 될지 알 수 없다. 기초과학 연구 과정에서 밝혀지는 하나의 실마리가 향후 세계적인 기술특허의 근간이 될 수도 있다. 강 씨는 “기초과학은 퍼즐의 구멍 난 부분을 메꾸는 작업과 같다”며 “기업도 연구비 지원 기준의 다양성을 확대해 기초과학에 대한 연구지원을 늘리면 좋겠다”고 말했다.  

 

 

“연구 교류의 불편함 해소돼야”


지역별 연구 인력 수급의 불균형에 대한 지적도 나왔다. 한국과학기술평가원(KISTEP)의 ‘2019 과학기술  통계백서’에 따르면 교수, 박사급 연구원 등 국내 이공계 인력의 71.3%(36만6562명)가 서울과 수도권, 대전지역에 편중된 것으로 조사됐다. 


강원 출신으로 2012년 울산과학기술원(UNIST) 생명과학부에 입학한 김남우 씨는 2018년 동대학원 석박통합과정에 진학해 DNA 복제와 손상복구에 관한 연구를 하고 있다. 김 씨는 “대학 진학 당시 한양대에도 합격했지만, UNIST가 과학기술특성화대학이라는 점에 끌려 망설임 없이 UNIST를 선택했다”며 “전공만 보고 대학원에도 진학했는데, 수도권이 아니라는 점에서 불편한 점이 있다”고 말했다.   


대표적인 불편함은 연구 교류다. 유전체 항상성을 연구하는 김 씨는 학회 참석을 위해 서울과 대전을 자주 오간다. 학회는 연구자들이 서로 실험 정보를 교류하고 연구를 위한 아이디어를 얻는 중요한 자리인데, 김 씨에게는 물리적 거리가 부담이다. 


김 씨는 “지난해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한국분자·세포생물학회 정기학술대회’가 열렸는데, 이동에 시간이 많이 걸리는 만큼 실험 일정까지 조정하며 학회 참석에만 온전히 하루를 썼다”며 “서울 지역 대학원생들은 오전에 연구하다가 오후에 학회에 들러 필요한 세션을 듣더라”라고 말했다.


다른 실험실의 장비를 써야 하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유전체 항상성 연구는 온도와 충격에 취약한 세포를 주로 다루기 때문에 보관 조건이 특히나 까다롭다. 다른 실험실에서 실험해야 할 때는 연구원이 직접 37도로 유지되는 보온박스에 세포를 넣어 가져간다. 간혹 세포를 얼려서 동결상태로 만든 뒤 택배를 보내기도 하지만, 얼리고 녹이는 과정에서 시료에 문제가 생길 수 있는 만큼 선호하지 않는다. 


김 씨는 “이동에 대한 부담과 같은 불편은 지방의 다른 대학들도 똑같이 느끼는 문제일 것”이라며 “연구 교류뿐 아니라 문화 교류를 위한 프로그램을 늘려 연구 환경을 개선하면 좋겠다”고 밝혔다.
김 씨와 대조적으로 충남대 선박해양공학과 박사과정에 재학 중인 박주헌 씨는 물리적 환경이 주는 장점을 십분 활용하고 있다. 대전에 위치한 충남대 인근에는 한국기계연구원, 선박해양플랜트연구소 등 정부출연연구소가 모여 있다. 박 씨는 “정부출연연구소는 KAIST, 충남대 등과 연구 협력을 진행하는 경우가 많다”며 “대학의 물리적인 위치가 연구 활동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안정적 취업 환경 마련돼야”


대학원생의 가장 큰 고민 중 하나는 진로다. 석사학위를 받은 뒤 취직을 할지, 연구자의 길을 계속 갈지, 박사학위를 받더라도 대학에 남을지, 기업 연구소나 정부출연연구소에 취업할지 선택해야 한다. 


오민석 건국대 의대 줄기세포연구실 연구원은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현재 졸업을 위해 논문을 준비하고 있다. 그는 학부에서 화학을 전공한 뒤 식품분석 연구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취업을 결심했지만 쉽지 않았다. 식품분석 업무를 수행하는 회사가 많지 않고 식품영양학 등 타 전공자와 경쟁해야 했기 때문이다.


취업 대신 연구를 계속하기로 결심한 오 씨는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학연 박사과정에 입학해 KIST 특성분석센터에서 생체 내 줄기세포 추적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오 씨는 “한 분야만 전공해서는 취업이 쉽지 않아 박사과정에서는 아예 전공을 바꿨다”며 “박사학위를 받고 나면 다양한 연구 경험을 토대로 다시 취업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강찬신 씨처럼 기초과학을 연구하는 경우에는 국내 채용 규모 자체가 작아 선택지조차 별로 없다. 강 씨는 정부출연연구소의 경우 생물물리학자로 연구할 수 있는 곳은 고등과학원(KIAS)이나 기초과학연구원(IBS) 정도여서 독일이나 오스트리아 등 해외에서 연구자로 경력을 쌓는 것도 염두에 두고 있다. 그는 “국내에서 기초과학 연구가 활성화되려면 이공계 인력의 해외 유출을 막을 방안이 마련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전문연구요원, 선발 방식 개선 필요”  


이공계 대학원생 가운데 군 미필 남학생이라면 군 복무도 중요한 문제다. 정부는 국가가 필요로 하는 고급 과학 인력을 양성하고 이들의 해외 유출을 줄이기 위해 1973년 전문연구요원 제도를 도입해 운영하고 있다. 병무청장이 지정한 연구기관 등에서 전문연구요원으로 근무하게 하고 군 복무로 인정하는 병역특례 제도다. 대학원 성적, 3급 이상 한국사검정능력시험, 공인영어시험 텝스(TEPS) 점수를 토대로 매년 2500명이 전문연구요원으로 선발된다.


이공계 대학원생들은 군 복무에 전문연구요원 제도를 활용하는 분위기다. 취재 당시 방문한 연구실 두 곳의 남자 대학원생 10명 가운데 4명은 전문연구요원이었고, 5명은 전문연구요원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들은 전문연구요원 선발 제도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서강대 생명과학과 박사과정인 김근태 씨는 “대부분 대학원의 학점이 상향평준화 돼 있고, 한국사 3급 점수는 자격요건으로만 활용되기 때문에 사실상 영어점수에 따라 선발 여부가 결정된다”고 말했다.


불합격한 사람들이 계속 재도전해 경쟁률은 매년 올라간다. 영어점수 합격선도 800점 수준으로 높아졌다. 김 씨도 2017년과 2018년 탈락의 고배를 마시고 지난해 세 번 만에 합격했다. 김 씨는 “이공계 박사과정 학생들을 전문연구요원으로 선발하는 데 연구 능력보다 영어 점수가 중요한 현실은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전문연구요원 제도는 대학원 진학률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곽승엽 서울대 재료공학부 교수가 2018년 3월 발표한 서울대 자체 보고서인 ‘전문연구요원 제도 운영 및 선발의 현황과 성과 분석’에 따르면 서울대, 포스텍 등 대학원생 1565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80%가 전문연구요원 제도가 박사과정 진하게 영향을 미쳤다고 답했다.


전문연구요원 시험을 준비 중인 강찬신 씨는 “군대에 다녀오면 최소 1년 반의 공백이 생긴다”며 “단순한 시간의 문제가 아니라 그동안 공부하던 것들을 멈춰야 한다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말했다.


현재 국방부는 2022년부터 전문연구요원을 단계적으로 감축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지만, 과학계의 거센 반발로 보류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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