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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4. ‘어른아이’의 진화생물학

 

 

 

"진화론적인 관점에서 식량과 안전을 책임지는 아버지의 부재는 엄청난 위기 상황이다.

 

아버지와 어머니를 직장에 빼앗긴 아이들의 몸이 ‘위기 상황’

이라고 판단해 빠른 2차 성징을 유발했을지도 모른다"

 

 

 

 

“사춘기는 우리 인간에게 그렇듯 몇몇 침팬지들에게도 힘들다. 그리고 좌절을 경험하게 되는 시기이기도 하다.”

 

‘침팬지의 어머니’로 불리는 세계적인 동물학자 제인 구달은 침팬지의 사춘기를 이렇게 기록했다. 사춘기가 된 침팬지들은 짝짓기 흉내를 내는가하면, 어른에게 반항도 한다. 사춘기가 인간의 전유물이 아니란 얘기다. 하지만 다른 동물의 사춘기를 ‘감히’ 인간의 사춘기에 견주긴 어렵다. 인간과 침팬지가 분기된 시점부터 따져보면 사춘기는 적어도 600만 년도 더 된 진화의 산물이다. 현대 사회에서 인간의 사춘기는 더욱 복잡한 양상으로 진화하고 있다.

 

 

‘이시성’이 인간의 사춘기 늘려


지극히 생물학적인 의미에서 사춘기를 기점으로 여학생은 여성답게, 남학생은 남성답게 변한다. 2차 성징의 결과다. 영장류 역시 사춘기를 기점으로 암컷과 수컷의 외모 차이가 확연해진다. 수컷 영장류의 몸과 근육이 암컷에 비해 튼튼해지며, 치아와 턱도 암컷보다 발달한다. 강해진 몸으로 경쟁자들과 싸워 암컷을 차지하도록 오랜 세월에 걸쳐 진화해왔기 때문이다.

 

분자생물학적인 관점에서 인간과 영장류의 차이는 매우 미미하다. DNA의 차이도 단 1.6%에 불과하다. 이미 일부 동물은 직립보행을 하며 앞발을 손처럼 사용하고, 도구를 이용하는 것은 물론, 도구를 직접 제작하는 영장류도 있다. 이런 사소한 차이를 딛고, 인간의 사춘기를 특별하게 만든 것은 긴 아동기다. 진화적 관점에서는 이를 ‘이시성(heterochrony)’이라고 한다. 이는 발달의 특정 시점을 조정해 특정 형질의 출현을 당기거나 늦추는 것을 말한다. 즉, 특정 발달 단계가 앞이나 뒤의 단계보다 느리거나 빠르다는 의미다. 인간의 이시성은 아동기와 청소년기를 연장시키는 형태로 진화했다.

 

개체별로 차이가 있지만 암캐는 생후 6~8개월 초경을 시작한다. 평균 수명이 15년인 개는 인간으로 치면 3~4세에 2차 성징이 시작되는 셈이다. 설치류는 생후 5주부터 임신이 가능하며, 인간과 가장 유사한 침팬지는 8~10세면 번식이 가능하다.

 

 

인간의 이시성은 뇌 발달을 위한 기간을 확보하기위해 생겨났다. 실제로 침팬지 새끼와 인간 아이의 두개골 형상은 꽤 비슷하다. 하지만 성체가 되면서 차이가 크게 벌어진다. 침팬지의 골격은 성장하면서 대폭 변하지만, 인간은 어린 아이의 골격을 오랫동안 유지하며 어른이 돼서도 크게 바뀌지 않는다. 어린 모습 그대로 최대한 오래 살며 발달을 지속한다는 것이다.

 

사람은 아동기에 어미의 보살핌을 받고, 오랜 시간 부모의 품에서 양육되는 동안 생존에 필요한 행동을 학습하며 사회성을 터득했다. 이것이 인간의 사춘기가 다른 동물과 달라진 원인이다. 이를 이시성의 일종인 ‘유형화(Neotany) 현상’으로 해석할 수 있다. 생물학적 성장이 끝났는데도 새로운 것에 대한 배움의 욕구, 호기심, 상상력과 같은 초기 성장 단계를 밟아간다는 것이다.

 

 

이른 사춘기, 부모의 부재와 관련


하지만 근래 들어 사춘기의 시작이 점점 당겨지고 있다. 이는 다시 말해 아동기가 짧아진다는 의미다. 이런 현상은 특히 여성에게 두드러진다. 보건교육포럼이 2015년 조사한 내용에 따르면 1970년 14.14세였던 평균 초경 연령이 2014년 11.7세로 44년 만에 약 2.5세 어려졌다.

 

 

비만, 식이습관의 변화 등 초경을 앞당긴 많은 원인중에는 사회적 배경의 변화도 있다. 과거와 달라진 가족 상황이 대표적이다. 인류생물학자인 웬다 트레바탄 미국 뉴멕시코주립대 교수는 저서 ‘여성의 진화’에서 “성인 여성과 함께 지낸 여자 아이의 경우 초경이 늦어지며, 이는 페로몬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과거에는 어머니나 이모, 언니가 여자 아이의 초경을 늦추는 데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하지만 여성의 사회 진출이 증가한 현대 사회에서는 이런 역할을 해줄 성인 여성, 즉 대표적으로 어머니와 같이 지내는 시간이 줄어들다보니 과거에 비해 초경이 빨라졌다는 것이다. 심지어 자녀의 수가 줄어 그 역할을 대신할 언니도 없는 경우가 많다.

 

아버지의 부재도 조기 초경을 유발하는 요인이다. 미국 소아내분비학회는 2010년 어린이 1200명을 대상으로 대규모 조사를 진행해 아버지의 양육 형태에 따라 사춘기가 일찍 올 수 있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친아버지가 없거나, 생물학적으로 낯선 남성인 양아버지와 함께 사는 경우 유방의 2차 성징이 약 4개월 일찍 나타났다.

 

진화론적인 관점에서 식량과 안전을 책임지는 아버지의 부재는 엄청난 위기 상황이다. 사춘기까지 살아남을 수 있을지의 여부가 불확실한 상황이라면, 일단 최대한 빨리 성숙하는 전략을 취할 수밖에 없다. 아버지와 어머니를 직장에 빼앗긴 아이들의 몸이 어쩌면 이를 ‘위기 상황’이라고 판단해 2차 성징이 일찍 나타나는지도 모른다.

 

 

최대 20년간 ‘어른아이’로 존재


‘질풍노도의 시기’로 정의되는 사춘기의 방황은 보편적인 현상이 아니다. 전통사회에서는 사춘기나 청소년기라는 개념이 없었다. 아동기가 끝나면 바로 성인으로 인정됐다. 적어도 현대사회처럼 10년 이상 지속되는 사춘기는 존재하지 않았다. 미국의 사회학자인 에드거 프리덴버그는 “고도로 복잡한 사회에서만 청소년기가 필요하며, 상당수의 전통사회에서 아동기의 끝은 성인기의 시작이었다”라고 말했다.

 

 

이런 의미에서 사춘기는 신체적 조건이나 연령보다 사회적 상황에 크게 좌우된다. 10대 중반이면 상투를 83틀던 전통사회에서 19세 청년과, 현재 19세인 고등학교 3학년 학생의 사회적 책임과 의무, 권리의 범위는 크게 다를 수밖에 없다.

 

우리 조상들은 10대 초반이면 남성의 경우 견습 일을 시작하고, 여성의 경우 아이를 낳아 길렀다. 하지만 현재는 법적으로 만 19세가 넘어야 부모의 동의 없이 결혼할 수 있다. 취업도 제한적으로만 허용된다.

 

중앙의 두 얼굴은 21세 유럽 남녀의 평균 얼굴을, 양 끝의 두 얼굴은 각각 여성성과 남성성의 특징을 부각시켜 표현했다. 사춘기 시절 호르몬에 의해 남녀의 외모 차이가 생기지만, 진화 심리학적으로 이러한 차이는 ‘끌리는 얼굴’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성인으로서의 사회적 의무가 유보되는 기간이 늘어난 것이다.

 

이는 다시 말해 사춘기가 앞뒤로 연장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마음은 아직 어린아이지만, 성숙한 몸을 가진 청소년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이들의 사회적 독립이나 첫 임신은 30대 초반까지 늦어지는 것이 현실이다. 이시성에서 시작돼, 무려 20년 동안 아동기와 성인기 사이에 갇힌 ‘어른아이’로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어떤 결과를 낳을까. 이른 사춘기는 높은 우울감이나 불안 장애, 약물 남용으로 이어지기도 하며, 아직 미성숙한 뇌가 성호르몬에 일찍 노출돼 성인기 이후 정신적 문제를 야기할 가능성도 있다.

 

뒤로 늦춰진 사춘기도 문제다. 13~19세를 뜻하는 ‘틴에이저(Teenager)’라는 용어는 20세기 중반 이후에 등장했다. 10대들이 상당한 구매력을 가지게 된 시기에 등장한 용어다. 독립을 꿈꾸는 사춘기 청소년의 소망이 ‘질풍노도’라는 반항적 문화 코드를 입고 다양하게 상품화됐지만, 역설적으로 긴 청소년기를 보내고 싶어 하는 모순적 심리도 상품화된다.

 

과거에는 남보다 빨리 배우고, 먼저 익히는 아이를 수재로 판단했다. 하지만 인간의 수명이 늘어나고, 사춘기도 길어지는 상황에서 빠른 학습 능력을 계속 수재의 근거로 삼아야 할지 생각해볼 문제다. 게다가 청년의 기준 역시 점점 늘어나 35세, 심지어 40세를 이야기하기도 한다. 반면 유아기는 10세 무렵에 끝나버린다. 어쩌면 사춘기를 겪고 있는 10대 청소년을 그냥 ‘어린이’로 대해주는 것도 진화적인 관점에서는 나쁘지 않을 것이다.

 

 

박한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이자 신경인류학자다. 현재 서울대 인류학과에서 진화와 사회에 대해 강의하고 있으며, 서울대 비교문화연구소에서 정신의 진화 과정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재난과 정신건강’ ‘정신과 사용설명서’ 등을 썼으며, 저서 ‘행복의 역습’ ‘여성의 진화’를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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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4월 과학동아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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