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가 시작되는 시기는 사람마다 다르다.
신체적으로는 키의 급성장이 나타나고, 2차 성징을 통해 성적 성숙이 완성된다.
이때부터 남녀의 신체가 변하며 각자 다른 길을 걷게 된다"
‘10대의 하루는 시속 10km, 20대는 20km, 60대는 60km의 속도로 흐른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나이가 들면서 살아온 누적 시간이 길어진 만큼 하루가 더 짧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체 성장의 속도는 이 ‘공식’에 안 들어맞는다. 출생 이후 3년, 그리고 사춘기의 신체는 인간의 일생에서 ‘폭풍성장’을 겪는 시기다.
사춘기 결정하는 유전자
어린이에서 어른으로 변하는 길목에서 사춘기의 신체는 하루가 다르게 변한다. 키의 급성장이 나타나고, 2차 성징을 통해 성(性)적 성숙이 완성된다. 정신적으로는 추상적인 인지발달 능력이 완성된다.
사춘기 동안 여학생은 15~25cm가, 남학생은 평균 25~30cm가 자란다. 특히 여학생은 평균 12세, 남학생은 평균 14세에 키가 가장 많이 자란다. 여학생은 키가 자란 뒤 6~9개월 뒤에 몸무게가 급속히 늘고, 남학생은 키와 몸무게가 동시에 늘어난다.
이런 급격한 성장은 호르몬의 변화로 발생한다. 여학생은 여성호르몬인 에스트로겐의 분비가, 남학생은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의 분비가 활발해진다. 성호르몬의 증가는 혈액 속 성장호르몬과 성장인자의 증가를 자극해, 키의 성장을 유발한다. 이때부터 남녀의 신체가 성숙하고 각자 다른 길을 걷게 된다. 사춘기의 시작점 역시 이 변화를 기준으로 삼는다. 의학적으로는 여학생의 가슴에 몽우리가 생기고, 남학생의 고환 지름이 2.5cm가 됐을 때 사춘기에 접어들었다고 판단한다.
사춘기가 시작되는 시기는 사람마다 다르다. 그간 과학자들은 사춘기의 시작에 관여하는 유전자들을 대거 발견했다. 영국 케임브리지대 의학연구위원회(MRC)와 미국의 유전자분석기업 23앤드미(23andMe)가 공동연구를 통해 꾸준히 유전자를 찾아내왔다.
시작은 2015년 11월이었다. 존 페리 수석연구원이 이끄는 연구팀은 남성 5만5000명의 유전자 정보를 분석해 사춘기의 시작을 결정하는 유전자 20개를 특정했다. 변성기를 기준점으로 삼아 사춘기가 일찍 시작되는 남성의 유전적 특징을 추려낸 결과였다. 이들 유전자는 성지연증, 성조숙증 등 사춘기와 관련된 증상에 영향을 미쳤다.
페리 수석연구원은 국제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에 발표한 논문에서 “사춘기 남녀의 신체 발달은 극명히 다른 양상으로 진행되지만, 근본적인 생물학적 과정은 동일하다”고 설명했다. 여성의 사춘기를 결정하는 유전자들이 남성의 사춘기에도 관여하기 때문이다. ‘RORB’ ‘RXRA’ 유전자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최근에는 사춘기의 시작을 결정하는 유전자를 무려 389개나 발견했다. 국제 학술지 ‘네이처 유전학’ 2017년 4월 24일자에는 페리 수석연구원 팀이 32만9345명의 유전 정보를 분석한 결과가 실렸다. 지금까지 진행된 유전자 분석 연구 중에 가장 큰 규모다.
이 연구를 통해 사춘기가 시작되면서 일부 암의 발생 위험이 덩달아 증가한다는 사실도 처음 확인됐다. 유전자 389개 대부분이 유방암, 난소암, 전립선암 등 성호르몬에 민감한 암의 발생 위험을 높이는 특성을 지닌 것으로 분석됐다.
흥미로운 결과도 나왔다. 동일한 유전자라도 부모 중 누구에게서 받는지에 따라 사춘기의 시작 시점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연구진은 상염색체를 통해 유전되는 일부 ‘각인 유전자(imprinted gene)’를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경우 사춘기가 더 빨리 찾아오지만, 어머니에게 물려받는 경우에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페리 연구원은 “사춘기는 수많은 환경 요인뿐 아니라 수천 가지의 유전적 요인이 영향을 미칠 것으로 추정된다”며 “아직 그 비밀은 4분의 1 밖에 풀리지 않았다”고 말했다.
2차 성징에는 성장통 동반
사춘기에 나타나는 변화는 사람마다 다르다. 다만 의학적인 치료가 필요한 경우를 가늠하기 위해 학계에서 ‘평균치’를 제시할 뿐이다.
여성의 2차 성징은 유두의 발달, 음모의 발달, 신장의 급성장, 초경의 순으로 나타난다. 평균적으로 4~5년이 걸리는 과정이다. 유두가 발달하는 11세를 사춘기의 시작으로 보며, 초경의 평균 나이는 12.4세다. 월경 주기가 생기기까지는 1~2년의 시간이 걸린다. 신체 성장 속도는 초경 전 최고치에 도달했다가 초경 이후에는 약 2년 동안 5~7.5cm 더 클 수 있다.
반면 남성의 2차 성징은 고환의 발달, 음모의 발달, 몽정, 키 급증, 얼굴 털의 발달 순으로 나타난다. 사춘기의 시작은 12.7세로 보며, 이 과정이 끝날 때까지 평균 3년이 걸린다. 자다가 자신도 모르게 사정하는 몽정은 평균 13~14세에 경험한다. 급성장은 사춘기 후반에 나타난다.
신체의 성적 성숙도는 ‘태너 척도(Tanner stage)’를 지표로 삼아 판단한다. 태너 척도는 1차 성징과 2차 성징을 기반으로 육체의 발달을 가늠해, 유방, 성기, 음모의 크기나 발달 정도를 기준으로 삼는다. 1단계가 아이, 5단계가 발달을 마친 성인이며, 2단계부터 초기 사춘기에 해당한다. 가령, 음모의 경우 10세 이하에서 음모가 없는 시절이 1단계, 음경과 음낭의 기저부에 솜털 같은 털이 생기는 시기가 2단계, 털이 허벅지 내측까지 뻗친 상태를 5단계로 정의한다.
그렇다면 어떤 경우에 의학적인 치료가 필요할까. 정상적인 사춘기의 시작점은 여성이 8.5~13세, 남성이 9.5~13.5세로 본다. 만약 이 시기를 넘어서도 2차 성징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전문가의 상담을 받아야 한다. 남아가 14세까지 고환의 성장이 시작되지 않거나, 여아가 13세까지 유방 발육이 없거나, 15세까지 초경을 하지 않는 경우에는 사춘기 지연을 의심할 수 있다. 병원에서는 키의 성장과, 2차 성징의 발현을 평가하고 외부 생식기를 진찰해 체질적인 문제인지 병적인 상태인지 확인한다.
여아가 8세 이전에 유방의 멍울이 잡힌다거나 9.5세 이전에 초경이 시작되는 경우, 남아가 9세 이전에 고환이 발달하는 경우는 성조숙증에 해당한다. 정상 시기보다 일찍 사춘기가 시작되면 당시에는 또래보다 신장이 커 보일 수 있으나, 결국 어른이 됐을 때에는 상대적으로 키가 크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또 성적 행동이 일찍 나타나 성적 남용의 위험성과 정신적 불안감이 동반될 수도 있다.
예측 신장이 여아 150cm, 남아 160cm 이하인 경우나, 유전적 예상 신장보다 10cm 이상 작을 경우 성선자극호르몬 방출 효능 약제와 성장호르몬 치료를 진행하기도 한다. 저용량 에스트로겐을 투여하면 성장호르몬이 촉진되고, 고용량 에스트로겐을 투여하면 성장호르몬이 감소한다.
2차 성징에는 성장통도 따른다. 사춘기 남아의 절반가량은 일시적으로 여성형 유방을 보인다. 태너 척도의 2~3단계에서 여성형 유방이 나타날 수 있으며, 14세 전후에 흔하다. 이는 여성흐로몬에 대한 남성호르몬의 비율이 감소해 호르몬 균형이 깨지면서 나타나는 현상으로 수개월~2년 정도 지속된다. 혈중 호르몬 등은 정상 남아와 같으며 심한 경우에는 항에스트로겐 약제를 사용할 수 있다.
사춘기 여아는 월경과 관련된 다양한 성장통에 시달린다. 월경과 함께 찾아오는 생리통은 자궁 내막에서 분비되는 ‘프로스타글란딘’이라는 화학물질에 의해 자궁의 혈관이 수축돼 혈류량이 감소하면서 피가 잘 통하지 않아 발생한다. 자궁과 난소에 이상이 없는 상태에서 생리통이 있는 경우를 일차성 생리통이라고 하며, 사춘기에 발생하는 생리통이 대부분 여기에 해당한다.
한편 때에 맞춰 월경이 찾아오지 않는 생리불순도 흔히 나타난다. 사춘기의 생리불순은 주로 뇌하수체가 아직 성숙하지 않은 탓에 생기는 무배란성 무월경 형태가 가장 흔하다. 무배란은 무월경도 일으키지만, 부정출혈과 같은 지속적인 출혈도 유발한다. 성숙하면서 자연스레 좋아지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90일 이상 생리를 안 한다면 의사의 상담을 받는 것이 좋다.
반대로 무배란성 출혈이 지속되면 빈혈이 생길 수 있어 교정이 필요하다. 생활습관이 제대로 교정되지 못한 상태에서 성인이 될 경우 다낭성 난소 증후군으로 발전하거나 향후 성인병이 발병할 확률이 높아진다.
과거보다 초경 시기가 당겨지고, 학업 스트레스나 장시간 앉아서 공부하는 습관 등으로 최근 여성 질환을 호소하는 청소년이 증가하고 있다. 하지만 사회적인 인식 때문에 산부인과 방문을 꺼리는 경우가 많다. 치료가 필요한 시기를 놓쳐서 증상이 악화되는 안타까운 경우도 있다. 사춘기 청소년이 2차 성징과 관련된 정확한 정보를 알고, 자신의 신체 변화를 마주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박희진_coolsome72@chamc.co.kr
강남차병원 산부인과 전문의로, 현재 차의과대 산부인과 교수를 역임하고 있다. 2010년부터 청소년을 비롯한 미혼 여성의 산부인과 질환 진료를 위한 ‘소녀들愛 클리닉’ 진료를 통해 10대 청소년들과 만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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