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가 10~24세로 확장되면, 이들의 인구는 전체의 25%가 된다.
인구 구성에서 가장 큰 집단이다.
하지만 인간 발달의 가장 중요한 단계인 사춘기는 지금껏
과학적으로 주목받지 못했다"
사춘기(思春期)를 그대로 풀이하면 ‘봄을 생각하는 시기’다. 인간의 일생에서 봄을 생각하는 시기는 언제일까. 지금까지 사춘기는 10대와 동의어처럼 쓰였다. 일반적으로 10~19세를 사춘기의 시기로 정의했다. 학계에서 엄밀하게 정의된 사춘기는 없었다는 뜻이다.
10~19세에서 10~24세로 바꿔야
국제학술지 ‘네이처’ 2월 22일자는 스페셜 이슈로 사춘기를 다루면서 논문 9편과 뉴스 3건을 한꺼번에 실었다. 사춘기의 뇌부터 호르몬, 신체, 성향, 문화적 특성 등 사춘기 전반을 다뤘다. 네이처가 사춘기에 주목한 이유는 지금까지 세계적으로 과학이나 의학 정책이 아동기와 성인기에 초점을 둔 탓에 인간 발달의 가장 중요한 단계인 사춘기가 주목받지 못했다는 문제의식 때문이다.
가령 의학계에서는 3세 전인 출생 뒤 1000일까지의 유아기에 주로 관심을 가져왔다. 유엔(UN)의 ‘새천년 개발 목표’도 모성 건강과 아동 사망률 및 초등교육 향상으로 설정하고 있다. 실제로 1990년 이후 이 시기에 대한 과학적, 정책적 관심이 폭발적으로 증가한 덕에 5세 미만 유아의 사망률은 절반으로 줄었다. 하지만 사춘기는 관심 밖이었다.
앤리즈 고딩 영국 런던대 발달신경과학과 교수는 ‘네이처’에 “청소년 연구에 대한 재정적인 지원 자체가 적은 탓에 사춘기에 관한 연구가 많이 이뤄지지 않았다”며 “사춘기의 연구 주제가 정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연구비를 지원받기가 어려운 것도 사실”이라고 밝혔다.
사춘기를 정의하려는 첫 시도는 1904년에 있었다. 미국의 심리학자인 스탠리 홀이 14~24세 청소년을 사춘기라고 주장했다. 이는 2차 성징으로 대표되는 사춘기의 징후를 시작으로 삼고, 결혼(혹은 동거)을 사춘기의 끝으로 판단해 나온 것이었다.
이후 1970년 영국의 소아과 의사인 제임스 태너가 사춘기의 신체 변화를 살필 수 있는 5단계 지표인 ‘태너 척도’를 발표했다. 태너는 신체 변화를 중심으로 사춘기를 정했다. 여아의 경우 11~15세, 남아의 경우 12~15세를 사춘기로 정의했다. 15세는 2차 성징이 완성돼 신체적으로 성인과 유사해지는 시점이다.
하지만 15세 청소년이 성인과 동등한 법적 지위와 책임을 가질 수 있는지에 대한 지적이 이어졌다. 사춘기의 시작은 신체 변화로 따진다고 해도, 그 끝을 정의하기가 쉽지 않다. 이후 세계보건기구(WHO)는 1986년 사춘기를 10~19세로 정의했고,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이 정의에 맞춰 정책을 만들어왔다.
이번에 ‘네이처’ 스페셜 리포트를 통해서 사춘기에 관한 논문을 실은 연구자들은 사춘기의 정의를 바꿔야 한다고 주장한다. 논문에 따르면 사춘기는 10~24세로 보는 게 적합하다. 이는 뇌의 발달 과정을 근거로 삼고 있다. 뇌의 성장과 노화를 부피의 관점에서만 보던 과거에는 12세경 뇌의 성장이 끝난다고 간주했다.
하지만 뇌 속을 정밀하게 들여다 볼 수 있는 영상기술이 발달하면서 뇌가 20세 이후에도 계속 성장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사라 블레이크모어 영국 런던대 인지신경과학과 교수는 “뇌가 19세에 갑자기 어른이 되지는 않는다”며 “20세가 지나서 서서히 발달이 마무리 된다”고 말했다.
사회의 구조적인 변화도 사춘기에 영향을 미친다. 과거에 비해 교육 시간이 늘었고, 부모와 함께 지내는 시간도 길어졌다. 동시에 결혼을 하고 부모의 역할을 하는 시점은 늦춰졌다. 유엔에 따르면 여성의 결혼 연령은 20년간 세계적으로 두 살이 늘었다.
10~19세를 사춘기로 보는 기존 정의에 따르면 사춘기 인구는 세계 인구의 약 16%인 12억 명이다. 10~24세로 따지면 사춘기 인구는 무려 전체의 25%를 차지한다. 전 연령대를 통틀어 인구가 가장 많다.
수전 소여 호주 로열아동병원 청소년건강센터 교수는 ‘네이처’ 논문에서 “사춘기의 정의를 10~24세로 바꿔야 한다”며 “대신 성인이 되는 만 18세부터 만 24세까지는 권리의 일부를 제한하되, 국가에서 정착을 위한 도움을 주는 완충시기로 하자”고 주장했다. 이 경우 결혼과 선거권은 만 18세로 유지되지만, 음주와 흡연을 규제하는 나이는 올라갈 수 있다. 아직 뇌가 완전히 성숙하지 않은 이들이 해로운 자극을 절제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좋아요’ 문화에 움직이는 사춘기
사춘기는 인간의 발달 과정에서 그 어느 때보다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사춘기의 경험은 성인이 된 이후 결혼하고 자녀를 양육하는 방식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급격한 사회 환경 변화는 기성세대와 사춘기 사이의 간극을 만들었다. 사춘기 청소년은 학교에서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신체 활동이 줄고, 이는 비만이라는 사회적인 문제와 함께 새로운 식문화 트렌드를 만들었다. 문화적인 면에서는 아이돌에 열광하는 ‘팬덤’이 생겨났다.
사춘기의 문화를 결정하는 대표적인 채널은 미디어다. 요즘 사춘기는 TV, 책 등 전통적인 미디어보다 인터넷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영화를 보고, 음악을 다운받아 듣는 일방적인 소통에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한 쌍방 소통으로 커뮤니케이션 방식도 옮겨갔다.
온라인에 대한 집착은 더욱 커졌다. 스테파니 카시오포 미국 웨스트버지니아대 교수팀은 2016년 국제학술지 ‘행동연구방법론’에 SNS에서 소외됐을 때 사춘기의 뇌에 어떤 변화가 생기는지 조사했다.
그 결과 다수의 팔로워와 원활하게 소통하는 청소년과 달리, SNS에서 소외된 청소년은 뇌의 전대상피질(ACC)의 활성화 정도가 줄어 우울해하는 증상이 나타났다. 전대상피질은 집중력을 높이고 내면의 감정을 조절하는 부위다. 이런 경향은 초기 사춘기(12~13세)보다 후기 사춘기(15~16세)에 두드러졌다.
카시오포 교수는 “성인의 경우 특정 행동에 대한 금전적인 보상을 받을 경우 전대상피질이 활성화되는 경향이 있다”며 “사춘기 청소년에게는 SNS의 ‘좋아요’가 일종의 금전적 보상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알렉산드라 로만 미국 하버드대 교수팀은 2017년 12월 사춘기 청소년의 취향이 미디어에 노출되는 ‘다수의 문화’를 따르는 경향이 있다는 연구결과를 국제 학술지 ‘미국국립과학원회보(PNAS)’에 발표하기도 했다.
연구진은 실험 참가자인 사춘기 청소년들에게 여러 종류의 음악과 이성의 얼굴 사진 여러 장을 제시하면서 매력적으로 느끼는 것을 선택하게 했다. 이후 실험 참가자들이 또래 참가자들끼리 음악과 사진에 대한 의견을 나누게 했다. 그런 뒤 실험 참가자들에게 동일한 내용으로 다시 선택하게 하자 대다수가 자신의 의견을 다수의 의견과 동일하게 조정한 것으로 나타났다. 다수의 ‘좋아요’ 문화를 따른 셈이다.
흡연, 음주 등 자극적인 경험에 도전하거나 위험해 보이는 일에 쉽게 뛰어드는 것도 ‘좋아요’ 문화로 설명할 수 있다. 로렌스 스타인버스 미국 템플대 교수팀은 사춘기의 뇌가 위험을 감수하는 방식을 평가하기 위해 간단한 실험을 설계했다. 가상의 게임에서 참가자들은 6분 동안 신호등 20개를 건너는 미션을 받는다. 타이밍을 잘 맞추지 못하면 자동차에 치일 수 있다. 게임 도중 참가자들의 뇌 변화는 기능성자기공명영상(fMRI)으로 분석했다.
그 결과 사춘기 청소년과 성인이 위험을 감수하려는 빈도는 비슷하게 나타났다. 흥미로운 점은, 사춘기 청소년의 경우 주변의 시선에 따라 위험 감수 정도가 달라졌다는 것이다. 가령, 연구진이 사춘기 참가자에게 옆방에서 친구가 이 장면을 지켜보고 있다고 말하자 더 위험한 행동을 했다. 반면 어머니가 지켜보고 있다고 말하면 위험을 줄였다.
스타인버스 교수는 “친구가 지켜본다고 생각한 경우에는 보상에 민감한 뇌 영역인 선조체가 활성화됐고, 어머니가 지켜본다고 생각한 경우에는 인지능력을 조절하는 전두엽이 활성화됐다”며 “SNS에서 ‘좋아요’를 받으려는 것처럼, 또래집단의 시선이 뇌를 자극해 위험한 행동을 하도록 만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에바 텔저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 신경과학과 교수는 “사춘기와 10대를 떠올리면 대부분 부정적인 생각부터 먼저 하지만 이 자체가 고정관념”이라며 “사춘기 청소년은 성인으로서의 사회적 역할과 책무를 다할 수 있는 상태로 성장하고 있는 중”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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