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성한 잎이나 가지를 쳐내며 나무는 태풍에 더 잘 견디고,
미관상으로도 한층 아름다워진다.
사춘기의 뇌도 나무처럼 ‘가지치기’를 한다.
유아기에 급성장하며 가지를 뻗어온 신경세포들을 정리하는 과정이다"
“친구들 신경 쓰면서 부모님 눈치도 봐야 하고, 공부에 집중을 해야 하는데 외모에도 자꾸만 신경이 쓰여요.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아야 할지 순간순간 갈피 잡기가 어려워요.”
현장에서 청소년을 상담하다보면 종종 듣게 되는 말이다. 1904년 미국의 심리학자인 스탠리 홀은 ‘청소년기’라는 두 권의 책을 출간하며 사춘기를 ‘아이도 아니고 어른도 아닌 청소년들은 변화의 과정에 있으며 정서적·지적으로 혼란을 겪는 일종의 독특한 집단’으로 정의했다. 사춘기가 되면 아이들은 마치 ‘마법’에라도 걸린 것처럼 달라지는 모습을 보인다. 이런 변화는 어디에서 시작되는 걸까.
사춘기 뇌는 여전히 발달 중
우리는 아이에서 어른으로 성장하는 길목에서 사춘기를 만난다. 과거에는 사춘기의 ‘마법 같은 변화’의 주범으로 호르몬을 지목했다. 하지만 기능성자기공명영상(fMRI), 양전자단층촬영(PET) 등 첨단 의학기술의 발전으로 움직이는 뇌를 직접 들여다보게 되면서 사춘기 행동변화의 주범은 뇌로 옮겨갔다.
6세가 되면 뇌는 이미 성인의 95% 수준까지 발달한다. 정보 처리, 인지 기능, 정서 조절 등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는 뇌의 회백질은 출생 이후 꾸준히 두꺼워져서 여성은 11세, 남성은 12세에 정점에 이른다. 대략 사춘기의 시작점과 일치하는 시기다.
뇌에는 약 1000억 개의 세포가 존재한다. 이 1000억개의 세포는 다시 1000조에 이르는 세포 간의 연결을 만든다. 이는 전 세계에 연결된 인터넷 망보다 많은 수다. 청소년기 동안 뇌는 일종의 ‘가지치기’를 한다. 무성히 자란 나무의 가지를 쳐내듯 불필요한 연결을 끊어내고 뇌 세포간의 연결을 재정비한다는 의미다.
흔히 ‘공부에도 때가 있다’는 말은 이런 청소년기 뇌의 특성과도 일치한다. 청소년기의 뇌는 엄청나게 많은 세포를 만들며 왕성한 ‘가지 뻗기’를 하는 동시에, 세포 연결의 15% 정도를 가지치기로 잘라낸다.
제이 기드 미국 샌디에이고 캘리포니아대(UC샌디에이고) 정신의학과 교수는 자기공명영상(MRI)으로 뇌를 관찰해 이 사실을 증명했다. 기드 교수는 뇌의 행동통제센터 격인 전두엽이 사춘기에 급속한 성장을 거치면서 한창 변화의 과정에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이 시기 뇌에서는 결과 예측과 문제 해결 등을 담당하는 전두엽의 연결이 계속 일어나고, 충동적인 반응을 억제하고 흥분된 상황에 직면했을 때 합리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뇌 기제가 여전히 발달한다.
기드 교수는 청소년이 자라고 성숙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뇌 변화를 살피기 위해 1991년 연구를 시작해 지금까지 22년간 청소년 3500명의 뇌를 9000회에 걸쳐 MRI 장치로 촬영했다. 2001년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에 발표한 논문은 현재까지 무려 1371회나 인용되면서 사춘기 뇌 분야의 ‘바이블’로 꼽힌다. 이 연구에 따르면 사춘기의 뇌는 말 그대로 ‘제2의 탄생기’를 거치고 있다.
가지 뻗기와 가지치기를 반복하는 특성을 두고 사춘기의 뇌가 ‘변화가능성(plasticity·가소성)’이 있다고 표현한다. 하지만 동시에 사춘기의 뇌에는 ‘가단성(malleability)’도 있다. 얼마든지 펴서 늘릴 수 있는 상태이지만, 이때 사용하지 않으면 그 기능을 잃어버릴 수 있다는 의미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사춘기에 충동적인 행동을 하고 싶은 욕구를 단순히 억눌러서도 안 되지만, 목표를 향해 노력하고 전략적으로 판단하고 사회적 규범을 준수하는 활동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것도 배워야 한다고 지적한다. 결국 사춘기는 새로운 뇌를 조각해 가는 시기여서 한 사람의 인생 궤도가 설정되는 시기이기도 하다.
이성적 판단 관여하는 전두엽 발달 시작
기드 교수팀은 사춘기 청소년의 ‘반항 메커니즘’도 규명했다. 연구진은 사춘기 청소년에게 공포, 분노, 놀람, 슬픔 등 다양한 표정이 담긴 얼굴 사진을 보여준 뒤 이들 감정을 파악하도록 했다. 그 결과, 어른들과 달리 사춘기 청소년은 분노와 놀람을 잘 구분하지 못했다.
이는 아직 뇌가 ‘공사’를 마치지 않은 탓이다. 공포가 담긴 표정을 볼 때 성인은 이성적 판단에 관여하는 뇌의 전두엽을 사용한다. 하지만 사춘기 청소년은 원초적인 감정을 다루는 원시 뇌인 편도체를 사용한다. 사춘기 청소년이 부모와 교사의 말을 오해하거나 지시에 반항하는 이유도 뇌과학적인 관점에서는 편도체가 반응해 이성적 판단보다는 원초적 감정이 앞서기 때문으로 설명할 수 있다.
편도체는 뇌에서 가장 깊숙한 곳에 자리한다. 주위의 위험을 알아차리고 자신을 보호하는, 생존에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는 부분이다. 반면 사춘기가 돼서야 비로소 발달을 시작하는 전두엽은 어떤 일을 하기 전에 먼저 논리적으로 생각하는 힘을 길러준다. 또 충동적인 행동을 하기 전에 브레이크를 거는 역할도 한다.
그간 뇌 영상연구를 통해 이성적인 판단을 담당하는 전두엽이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발달을 시작해, 사춘기가 끝나고 성인으로 가는 20대 중반이 돼서야 비로소 발달이 완성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 연구에 따르면 사람은 출생 직후 시각, 청각, 후각 등의 감각정보를 처리하는 영역과 운동을 조절하는 영역이 가장 먼저 발달한다. 이어서 발성과 언어 발달에 관여하는 영역에 변화가 생긴다. 의사 결정이나 판단과 같은 고차원적인 사고를 담당하는 부위는 10대 후반에야 변화가 시작돼 20대에도 발달이 이어진다. 이 때문에 최근에는 사춘기를 10~24세로 정의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유 없는 반항, 신경전달물질 때문
10대는 때로 이유 없이 반항한다. 어느 정도 반항심을 가지고 엉뚱하게 행동하는 경우를 모두 비정상적이라고 할 수는 없다. 학교생활을 잘하고 친구들과 원만하게 지낸다면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지난 수십 년간의 연구를 통해 이유 없는 반항의 원인도 밝혀졌다. 뇌 세포 간의 화학 작용이 문제다. 뇌의 신경세포들은 서로 연결돼 전기 신호를 주고받는다. 전기 신호로 전달되는 메시지에 따라 사람은 특정한 행동을 한다. 이 신호를 연결해주는 고리가 바로 시냅스다. 시냅스가 신경전달물질을 전달하기 때문에 뇌세포들이 서로 의사소통을 할 수 있다.
지금까지 중개 역할을 하는 수십 개의 신경전달물질이 규명됐다. 이유 없는 반항을 유발하는 신경전달물질은 세로토닌, 도파민, 노르에피네프린 등이다. 세로토닌은 주로 청소년에게 자살 충동을 느끼게 하거나 우울증상과 강박증상을 유발한다. 도파민은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면 분비되는 호르몬으로 주의력과 기억력을 떨어뜨린다. 노르에피네프린은 불안을 조절하는 화학물질로 각성이나 공포와 깊은 관련이 있다.
사춘기의 좋은 경험은 뇌세포에 양분이 될 수 있다. 너무 공부만 하는 것도 뇌 발달에서는 한쪽으로만 가지를 뻗는 나무가 될 우려가 있다. 공부뿐만 아니라 인성과 사회성 교육에 도움이 되는 다양한 경험과 오감을 자극하는 예술 활동,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자원봉사 활동은 뇌의 균형 잡힌 발달에 도움이 된다.
영양가 있는 식사와 뇌의 혈액 순환을 돕는 적당한 운동도 필요하다. 입시 스트레스와 지나치게 바쁜 학업에 쫓겨 식사를 제때 못 하거나, 운동을 게을리 하는 것은 뇌 발달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풍부한 감정적인 경험도 필요하다. 사춘기 청소년은 문제를 감정적으로 판단하기 때문에 좋은 감정 경험은 건강한 뇌 발달에 도움을 준다.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자신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친구와 가족에게 사랑을 느끼는 것은 사춘기 뇌가 건강하게 자랄 수 있는 필수 항목이다.
김영화
강동소아정신과의원원장. 23년째 소아청소년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로 활동하고 있다. 여성가족부
정책자문위원을 역임했으며 수년간 TV, 라디오 등에서 정신의학 상담을 진행해왔다. 저서로는 ‘마음이 아닌 뇌를 치료하라’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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