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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6. ‘키스’로 시작 그들의 性

 

 

"사춘기에 드러나는 성 관념은 이제껏 자라면서 경험한 세상에 영향을 받는다.
양육 환경에서 부모를 통해 배운 가치관은 또래문화가

강해지는 사춘기에도 쉽게 바뀌지 않는다"

 

 

 

독 사과를 먹고 쓰러진 백설 공주는 왕자님의 키스로 눈을 뜬다. 어쩌면 왕자님의 키스로 성(性)에 눈을 떴을지도 모른다. 육체적 사랑을 굳이 단계별로 표현하자면 키스는 시작이다. 사춘기의 성 역시 키스로 시작된다. 정확히는 ‘키스 유전자(KISS-1)’다. 이 유전자는 생식 호르몬의 분비를 촉진해 어른이 되는 2차 성징을 유발한다. 2차 성징의 스위치인 셈이다.

 

 

性 관념, 사춘기 이전부터 학습


“성폭력 피해자들이 그 사실을 폭로하는 거예요!”


3월 10일 서울 영등포구 아하!서울시립청소년성문화센터(아하센터). 이른 주말 아침, 초등학교 5학년 남학생 11명이 성교육을 받기 위해 모였다. 이들에게 성교육은 이번이 처음이다. 강사가 ‘미투 운동’이 뭐냐고 묻자 아이들은 ‘정부 주요 인사나 연예인이 일반인을 성폭행하는 것’ ‘명예훼손으로 신고하는 것’ ‘자살하기도 하는 것’ 등 다양한 답변을 내놨다.

 

이날 교육을 진행한 류정남 성교육 전문강사는 미투 운동의 정의를 “성폭력 피해자에게 사과하고, 피해자가 남은 인생을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독려하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아이들은 이해가 안 간다는 듯 고개를 꺄우뚱했다. 학교폭력위원회를 예로 들어 성폭력도 다른 폭력처럼 피해자와 가해자 사이에 용서의 기회를 만들어주는 것이라고 설명하자,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아하센터와 같은 성교육 또는 성상담 전문기관은 단순히 신체의 변화나 신체의 기능 등 2차 성징에 관한 기본적인 설명에서 더 나아가 쉽게 이야기를 꺼내기 힘든 성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교육으로 풀어낸다. 프로그램에 참여한 아이들은 미투 운동과 같은 성 이슈나 또래의 성문화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하는 시간을 갖는다.

 

이제 막 변화가 시작된 시기이지만, 성 이슈에 대한 시선은 확연히 다르다. 가령 또래 여학생들은 미투 운동에 대해 ‘적극 지지한다’는 반응과 함께 피해자의 입장에서 할 수 있는 일을 고민하고, 사건의 전말을 세세하게 기억하는 등 관심의 정도가 남학생들에 비해 크다.

 

 

정수현 아하센터 교육팀원은 “태아 때부터 아이들은 부모를 통해 세상을 배우며, 양육 환경이 아이들의 행동과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에도 영향을 미친다”며 “이는 또래문화가 강해지는 사춘기에도 쉽게 바뀌지 않는다”고 말했다. 사춘기에 나타나는 성에 대한 관점 차이가 사춘기 이전부터 학습된 결과라는 뜻이다.

 

 

음란물에 대한 관심, 초등 이후 증가


“아, 그거 있잖아. 야구 동영상!”


성교육 프로그램 중 스피드 퀴즈 시간. 한 아이가 ‘야구 동영상’이라고 얘기하자, 아이들이 자지러졌다. 야한 동영상을 뜻하는 은어인 ‘야동’을 표현한 것이다. 실제로 이들과 같은 초등학교 고학년 초기 사춘기에 음란물은 아직 어색하다.

 

아하센터와 서울시가 초등학교 6학년을 대상으로 진행한 조사에서 62.7%가 ‘19금’ 표현물을 관람한 적이 없다고 응답했다. 대부분 직접 찾기 보다는 인터넷으로 우연히 봤고, 인터넷 창을 끄는 식으로 바로 없애버렸다. 보고 난 뒤의 감정은 꽤나 충격적이고, 더럽다고 느꼈으며, 따라하고 싶지도 않고, 친구들이 절대 봐서는 안 된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연령이 올라갈수록 성 표현물의 접촉 경험은 점점 늘어난다. 중학생이 되면 호기심이 생기고, 고등학교에 진학하면 성충동을 해소하는 수단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2013 서울시청소년성문화연구조사’에 따르면 남자 중고생의 56.8%, 여자 중고생의 7.4%가 음란물을 본 뒤 자위를 시도한 것으로 조사됐다. 2010년 조사와 비교해 성 표현물을 ‘경험한 적 없다’는 응답은 절반 가까이로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심재웅 숙명여대 언론정보학부 교수팀은 2010년 ‘한국여성커뮤니케이션학회’에 음란물 노출 시기가 청소년의 성관련 인식 및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연구진은 남녀 고등학생 527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초등학생일 때 처음 음란물을 접한 학생들은 고등학생일 때 처음 음란물을 접한 학생들에 비해 음란물 이용량이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 성에 대해 더 개방적인 사고를 가진 것으로도 조사됐다. 처음만난 사람과의 성관계를 의미하는 ‘원나잇 스탠드’에 동의하는 경향이 높았다.

 

3월 10일 아하!서울시립청소년성문화 센터에서 열린 성교육 프로그램에 참석한 청소년들이 뱃속 태아의 발달 과정을 흥미로운 듯 관찰하고 있다.

 

 

심 교수는 “음란물을 일찍 접한 학생일수록 정부의 음란물 규제 정책 강화에 대해서도 불만이 많았다”며 “이는 성별과 무관하게 남녀 모두에게서 공통적으로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변화하는 미디어 환경이 청소년들의 음란물 접촉을 높인 이유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심지어 인터넷으로 열심히 찾아다니지 않아도 TV에서 꽤 야릇한 방송을 방영하기도 한다. 심 교수팀은 2008년 청소년이 가장 좋아하는 프로그램 10개를 선정한 뒤, 이들 프로그램에 내재된 성적 묘사를 분석하는 연구를 진행했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미디어 콘텐츠에 포함된 성적묘사는 전체의 4%로 나타났다. 성적 묘사는 가슴, 다리, 엉덩이 등 배우의 특정 신체 일부를 보여주는 방식이 30%로 가장 많았고, 남녀 배우 사이의 가벼운 키스나 애무, 또는 간접적이거나 로맨틱한 성적 표현이 15%로 그 뒤를 이었다.

 

심 교수는 “신체의 성적 부위나 성관계를 대사로 묘사하고, 결혼하지 않은 남녀의 성관계가 등장하는 경우도 많았다”며 “청소년들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콘텐츠에서 사춘기의 성을 진지하게 다루거나 성과 관련된 건강에 대한 내용은 다뤄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성 정체성 혼란도 겪어


사춘기에는 자신의 성 정체성을 고민하는 경우도 많다. 아하센터가 서울시와 공동으로 진행한 ‘2013년 서울시청소년성문화연구조사’에 따르면 남학생의 23.1%, 여학생의 32%가 동성애에 대해 고민한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조사는 남녀 중고생 2346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것으로, 동성 친구에게 설레는 감정을 느낀 적이 있는지, 스킨십을 생각한 적 있는지, 성 정체성을 고민하거나 성전환 수술을 생각한 적이 있는지 등에 대한 질문이 포함됐다.

 

2003년 한국청소년상담원의 조사에서 동성애를 고민한다고 응답한 청소년은 약 11%였다. 연구 기관은 다르지만 10년 뒤 동성애를 고민하는 사춘기 청소년의 비율이 늘어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들은 영화와 TV 등 대중매체(53.6%)와 동성애자 연예인(19.3%)을 통해 동성애에 대해 인식한 것으로 조사됐다.

 

사람의 발달 단계에서 젠더를 인식하는 시기는 두 번이다. 바로 유아기와 사춘기다. 3~5세 유아기에는 자신의 성별이 부모 중 어느 쪽과 일치하는지 인식한다. 이때 성별과 함께 그 역할도 학습한다. 남자 아기는 아버지의 성향을, 여자 아기는 어머니의 성향을 따라간다. 그러다가 2차 성징이 나타나는 사춘기가 되면 생물학적으로 자신의 신체 성별을 확실히 인지한다.

 

사춘기에 경험하는 성 정체성에 대한 혼란은 스스로에 대한 궁금증에서 출발한다. 자신의 신체를 평가하기 위해 동성 친구의 몸과 성격에 관심을 가진다. 가령, 자신의 어깨가 넓은 편인지, 성기는 큰 편인지, 가슴은 큰지, 허리는 잘록한 편인지 등 신체의 생물학적인 상태를 남과 비교한다.

 

또 여성(남성)스러운 동성 친구와 비교해 상대적으로 자신의 여성성(남성성)이 부족하지는 않은지 확인한다. 이 때문에 여성적 또는 남성적으로 느껴지는 동성 친구를 선망하고, 이로 인해 자신의 동성애적 성향을 의심하는 경우도 있다.

 

사춘기는 자신의 성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시작되는 시기기도 하다. 대부분 지나가는 현상이지만, 일부는 실제로 동성애적 성향을 지니기도 한다. 무지개는 동성애자와 트랜스젠더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심볼로, 소수의 취향과 다양성을 인정하자는 의미가 담겼다.

 

 

성별비순응자치료 전문가인 이은실 순천향대서울병원 산부인과학교실 교수는 “사춘기에 겪는 성적 혼란은 대부분 자연스럽게 지나가지만, 혹시 혼란을 느끼는 기간이 길어진다면 전문가에게 상담을 받는 것이 좋다”며 “호르몬 치료, 심리 치료 등을 병행하면서 비순응자들이 자신의 젠더를 찾도록 돕는다”고 말했다.

 

동성애자 인권운동의 중심지인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는 매년 ‘프라이드 퍼레이드’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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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4월 과학동아 정보

  • 권예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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