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화로 인한 호르몬 변화가 40대를 더 외롭게 만든다.
고민이 많아진 이들을 일컫는 ‘사십춘기’라는 말도 생겨났다.
자녀가 사춘기에 접어들 무렵 부모의 사십춘기도 시작된다"
미운 네 살, 미운 일곱 살, 중2병, 고3병, 대4병…. 각종 ‘미운’ 시기를 지나 어른이 된다. 최근에는 여기에 ‘사십춘기(40대+사춘기)’까지 더해졌다. 40대에 들어서며 직장과 가족 걱정에 제 몸 돌볼 시간 없이 바쁘고, 이런저런 고민이 많아 ‘제2의 사춘기’를 겪는다는 뜻에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 흔들리는 사춘기 자녀를 양육해야 할 사십춘기 부모가 흔들리고 있다. 누가 이들을 흔들었을까.
외로울 때 활성화되는 뇌의 배측봉선핵
사람은 25세에 신체적인 성장이 멈추며, 35~45세에 급격한 노화가 진행된다. 사십춘기는 노화를 몸으로 느끼기 시작하는 시기다. ‘100세 시대’에서는 너무 이르지도 늦지도 않은 나이다. 세상의 온갖 책임과 의무를 짊어지고 있는 나이이기도 하다.
전문가들은 일차적으로 사십춘기가 외로움에서 비롯된다고 분석한다.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40대 1인 가구는 2005년과 2010년 조사에서 15%로 집계됐지만, 2015년에는 16.9%로 증가했다. 혼자 사는 이유는 이혼(32%)이 가장 많았고, 미혼(29%)이 그 뒤를 이었다.
이들은 전 연령대를 통틀어 거주 환경의 변화를 가장 크게 겪었다. 현재 30대는 혼자 사는 삶에 익숙한 세대다. 성인이 될 무렵부터 1인 가구가 하나의 사회현상으로 굳어졌다. 하지만 40대의 경우 20대 초반이던 2000년에는 1인 가구의 비율이 5.7%에 불과할 만큼 혼자 사는 경우가 드물었다. 하지만 30대 초반인 2015년에는 1인 가구 비율이 9.9%로 급증했다.
혼자 사는 삶은 뇌에 ‘고독’이라는 흔적을 남긴다. 길리안 매튜스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뇌인지과학과 교수팀은 거주 형태에 따라 우울감을 조절하는 뇌의 활성 정도가 달라진다는 연구결과를 2016년 국제학술지 ‘셀’에 발표했다.
연구진은 실험쥐를 두 그룹으로 나눠 실험을 진행했다. 어릴 때부터 식구들과 모여 산 ‘대가족 쥐’와 혼자 자란 ‘독신 쥐’다. 연구진은 이들이 성체로 자란 후 자기공명영상(MRI)을 촬영해 뇌를 분석했다. 그 결과 독신 쥐에서만 ‘배측봉선핵(DRN)’이라는 뇌 부위가 특이적으로 활성화됐음을 발견했다. 우울감 등 기분과 관련된 배측봉선핵은 활성화될 경우 세로토닌을 분비해 불안감을 키운다. 이는 불면증과 같은 수면장애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고독은 뇌에 각인되기도 한다. 연구진은 여럿이 모여 사는 공간에 머물다가 다시 혼자가 됐을 때 독신 쥐가 대가족 쥐에 비해 더 쉽게 외로움을 느낀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문제일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뇌·인지과학전공 교수는 “한번 외로움을 느낀 사람은 다음번에 찾아오는 외로움을 더 견디기 어려워한다는 뜻”이라며 “극단적인 사례지만 교도소 독방에 머문 죄수들의 절반 이상에서 뇌 손상이 발견됐고 치매 증상을 나타냈다는 연구결과도 있다”고 말했다.
40~70세 뇌의 노화, 사람마다 제각각
성호르몬이 분비되기 시작하고, 뇌가 구조적으로 변하면서 사춘기가 시작된다. 마찬가지로 사십춘기도 호르몬과 뇌의 변화로 해석할 수 있다. 성호르몬은 사춘기부터 점차 증가해 20세 전후로 가장 왕성하게 분비된다. 이후 의학적으로는 ‘갱년기’라고 부르는 시기에 일정하게 유지되던 양이 점차 감소한다. 여성호르몬은 사춘기 이후 증가해 생리 주기나 임신에 따라 그 양이 변하지만, 역시 갱년기에 급격한 감소를 보인다.
사십춘기는 갱년기의 시작점에 놓인 시기다. 사람마다 차이가 있지만 이런 호르몬 변화는 신체적, 정신적변화를 유발한다. 남성의 경우 무기력감, 홍조, 수면 부족 및 성기능 장애가 대표적인 증상이다. 여성도 생리 불순, 폐경과 더불어 무기력감, 우울증 등이 나타난다.
경윤수 서울아산병원 건강증진센터 교수는 “노화로 인한 자연스러운 호르몬 변화와 함께 사회적 지위의 불안정, 스트레스, 영양 불균형 등 현대인이 겪는 여러 불안 요소들이 호르몬 불균형을 유발하기도 한다”며 “이런 불균형이 감정의 변화를 유발해 사십춘기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말했다.
사람의 뇌도 20대에 완전히 성숙한 뒤 40대가 되면 점차 노화한다. 성인이 된 뒤 뇌세포는 평균 1초에 하나씩 사라진다. 사십춘기까지 약 20년간 대략 6억 개의 뇌세포를 잃는 셈이다. 10년마다 뇌가 2%씩 수축한다는 연구도 있다. 이와 함께 깜빡하고 잊지 않게 도와주는 도파민과 같은 신경전달물질의 분비는 뚜렷이 감소한다.
사십춘기의 뇌는 하나의 특징으로 정의하기는 어렵다. 브루스 얀크너 미국 하버드대 의대 신경과학과 교수는 나이에 따른 뇌의 특징을 정의하기 위해 청년, 중년, 노인의 뇌를 MRI로 분석해 2004년 국제 학술지 ‘네이처’에 발표했다. 여기서 청년은 40세 미만, 중년은 40~70세, 노인은 71세 이상으로 정했다.
연구진의 분석 결과 청년의 뇌는 손상이 거의 없고 뇌가 활발한 활동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노인의 뇌는 손상이 많고 활동도 적은 것으로 분석됐다. 연령별로 공통적인 특징이 발견된 것이다. 하지만 중년의 뇌에서는 공통적인 특징을 찾지 못했다. 70세 노인의 평균 뇌를 지닌 45세가 있는가 하면, 30대의 평균 뇌를 지닌 50대도 확인됐다.
얀크너 교수는 “청년이 될 때까지 뇌는 비슷한 속도로 노화하지만, 중년이 되면 개인별 편차가 매우 커진다는 뜻”이라며 “주로 학습과 기억에 관여하는 부분, 에너지를 조절하는 부분, 뇌 세포를 손상으로부터 보호하는 부분에서 차이가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40대 소뇌 부피, 20대의 약 91%
‘이거 좀 가져와봐’ ‘너 그거 했니?’.
사십춘기인 독자라면 물건의 이름이 바로 떠오르지않는 경험을 한 번쯤 했을 것이다. 사춘기 자녀와 대화를 나누는 과정에서도 ‘이거’ ‘저거’ ‘그거’ 등 지시대명사가 먼저 나오지는 않았는지 생각해보자.
결혼 및 출산 연령이 점차 늦어지면서 자녀가 사춘기에 접어들 무렵 부모는 갱년기에 해당하는 경우가 과거보다 늘었다. 30대에 결혼해서 출산하는 경우 아이가 사춘기에 접어드는 10세 즈음엔 부모에게 사십춘기가 시작된다. 부모와 아이의 호르몬 급변 시기가 일치한다는 점은 양측의 갈등을 증폭시키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경 교수는 “부모와 아이 모두 호르몬의 급격한 변화가 있는 시기에 해당돼 감정적으로 민감해지고 이로 인한 갈등이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부모가 사춘기 자녀의 행동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처럼 아이들도 부모의 행동이 불만일 수 있다. 사춘기에 자아가 확립되면서 완벽해보였던 부모의 결점을 발견하고 실망하는 것이다. 가령 학교에서는 흡연과 음주의 위험성을 배우지만, 퇴근하고 집에 돌아온 부모에게서 술이나 담배 냄새가 난다면 어떨까. 자녀에게는 ‘우상’이 붕괴되는 것과 같은 충격일 것이다.
특히 사십춘기에는 뇌의 변화로 술이나 담배에 대한 의존도가 늘기도 한다. 정순철 건국대 의대 교수팀은 20대와 40대의 뇌 차이를 MRI로 분석해 그 결과를 2004년 ‘대한영상의학회지’에 발표했다. 분석결과 가장 큰 차이를 나타내는 부위는 소뇌였다. 40대의 평균 소뇌 부피는 121.83cm³로 20대 평균인 133.73cm³에 비해 11.9cm³ 가량 작은 것으로 나타났다. 연령의 증가에 따른 부피 감소는 남자가 여자에 비해 컸다.
정 교수는 “부피로 따지면 소뇌는 전체 두뇌의 10%에 불과하지만, 뉴런의 수는 전체의 50%에 해당한다”며 “소뇌는 알코올 중독, 약물 중독 등과 깊이 관련된 만큼 뇌의 노화로 술이나 담배에 의존하는 현상이 강해진다는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사회적으로는 사십춘기 부모가 겪은 사회와 사춘기 자녀가 겪는 사회가 다르다는 점이 갈등을 촉발하는 주요 원인이다. 만화영화 ‘태권 V’를 보며 자란 부모와 미드(미국 드라마)를 보고 자란 아이의 가치관과 생각이 일치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게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중2병의 비밀’이라는 책을 펴낸 김현수 명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초등학교 때 시작된 부모와 아이의 세대 차이는 중학교에 올라가 아이가 자기주장을 펼치면서 문제로 나타난다”며 “부모의 강요가 계속되면 아이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 만큼 차이를 차별로 만들지 않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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