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년 중 반 이상이 겨울인 북유럽의 핀란드가 정보통신 분야에서 선도국가로 우뚝 섰다.유럽에서도 두드러지지 않는 나라.숲과 호수가 78%를 차지하는 핀란드가 어떻게 해서 인터넷과 휴대폰 분야에서 앞서 갈 수 있게 됐을까.
주방에 있는 40대 후반의 어머니가 집에 오고 있는 자녀에게 음성인식 시스템을 이용해서 문자메시지를 보낸다. 아버지는 디지털 신분증을 이용해 집에서 세금신고서를 제출하고 은행 업무를 본다. 집에 오는 딸은 휴대폰으로 위치정보 서비스를 받아 집으로 가는 버스 시간과 정거장에 도착하는 시간을 확인하고 버스를 기다린다. 이 모습은 인터넷과 휴대폰 보유율 세계 1위인 핀란드의 멀지 않은 미래이다.
통신 강국의 비결
핀란드는 숲과 호수의 나라이다. 전국토의 68%가 삼림으로 덮여 있고, 10%가 호수(약 19만개)로 이뤄진 세계에서 가장 맑은 물을 가진 곳이다. 한반도의 1.5배 면적에 5백15만명의 인구를 가진 스칸디나아반도의 작은 국가. 우리나라도 삼림지역이 넓어 경제적인 활용성이 떨어진다고 하는데 이런 면에서 핀란드는 더 열악한 조건이다.
그러나 여성의 사회적 진출이 대단히 활발하고, 남녀평등이 세계적으로 잘 실현돼 있다. 또한 아동건강과 육아에 대한 사회보장 제도가 가장 뛰어난 국가중 하나로 1세 미만의 유아 사망률이 0.4%로 세계에서 가장 낮다. 그리고 사우나와 산타클로스로도 유명하다. 하지만 이러한 몇가지를 제외하고 핀란드는 유럽의 평범한 작은 국가일 따름이다.
그런데 최근 세계는 핀란드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핀란드가 인구 대비 이동전화 보급률과 인터넷 이용률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나라이기 때문이다. 인터넷 이용자의 비율이 25%를 넘어 미국보다 높으며, 5백만 인구에 정보통신 분야 회사는 1만6천여개, 관련종사자는 민간기업 전체 근로자의 1/4이다. 또한 1994년부터 급격히 보급되기 시작한 휴대전화 보급률은 60%를 넘어섰고, 1998년에 이미 무선전화가 유선전화 대수를 앞질렀다. 경제활동인구의 99%가 휴대전화를 가지고 있으며, 핀란드의 모든 공무원은 e메일 주소를 가지고 있고 전자결제도 보편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이처럼 핀란드가 세계 정보통신을 선도하며 21세기 디지털 시대의 성공국가로 성장하게 된 배경은 무엇일까? 여기에는 핀란드 특유의 지리적 환경과 역사적 배경, 그리고 국가의 정책과 국민들의 열정과 결의가 숨어있다.
핀란드의 평균 기온은 여름(7월)이 16.4℃, 겨울(2월)이 -3.6℃이다. 숲과 호수가 많아 이동하기 어려운 조건에 따라 핀란드는 이웃과의 의사소통에 남다른 관심과 노력을 가지게 됐다. 특히 산업기반이 2·3차 산업으로 변모하면서 경제활동 인구의 이동이 활발해졌다. 이동이 잦아지면서 이들에게 이동통신의 필요성은 절실해졌다. 이것이 통신산업의 강국이 될 수 있게 한 밑거름이다.
또한 핀란드는 지난 8백여년 동안 대부분을 이웃나라에게 지배받았다. 1917년에서야 비로소 독립을 했지만 이후에도 소련과의 ‘겨울전쟁’, 독일과의 ‘라플란트전쟁’ 등을 통해 많은 시련을 겪었다. 하지만 1995년 소련이 붕괴한 후 진정한 통일 국가로 유럽연합(EU)에 가입했으며, 1999년에는 유럽연합(EU)의 의장국이 됐다. 이런 주변국과의 관계 속에서 합리적이고 매우 현명한 기술자 의식을 통해 한가지 목표를 위해 모든 국민이 단결했던 것이 오늘날 세계 첨단 기술 공업국가로 탈바꿈하는 원동력이 됐다.
특히 통신강국으로 탈바꿈하는데는 무엇보다 국가적인 지원이 큰 역할을 했다. 정부와 기업의 연구 개발비가 핀란드 내 총생산(GDP)의 3%나 된다. 정부로부터 벤처 자금을 지원 받는 회사도 나날이 증가하고 있다. 게다가 오울루라는 도시는 ‘오울루테크노폴리스’라는 기업이름으로 지역전체가 하나의 회사로 주식시장에 상장돼 있다. 오울루에 있는 1백30여개 기업 직원과 주민이 모두 주주이다. 오울루의 연평균 경제성장률은 9%다. 핀란드는 이처럼 정부와 국민이 하나가 돼 경제성장을 이룩하고 있다.
또한 대학까지 무료로 실시되는 교육제도를 통해 기술 능력을 갖춘 고급 노동력이 계속 양성되고 있다. 또한 경제활동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인터넷 공용 언어인 영어도 능숙해 국제적인 경제활동이 활발하다. 심지어 핀란드 정부에서는 ‘정보기술 운영 면허증’이란 자격증까지 발급해서 정보화를 생활화하고 있다. 이런 결과로 1990년대 초까지 경제 불황을 겪었던 핀란드는 1998년부터 저물가, 고성장, 높은 경상수지 흑자 실현 등 괄목할만한 성과를 얻었다.
고무장화 업체의 화려한 변신
화사업에서 거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노키아가 차지했다. 노키아는 1980년대 말까지 휴대폰보다는 고무장화 생산업체로 더 잘 알려진 회사였다. 1991년 펄프, 타이어, 전화케이블 등의 사업을 과감히 축소하고, 회사의 중점분야를 휴대전화와 네트워크 장비 사업으로 전환했다. 주력 사업을 통신쪽으로 전환하기 무섭게 노키아의 주식은 폭등했다. 이런 주식시장의 활황으로 몰린 투자자금을 연구개발에 집중하기 시작한 것이 노키아가 세계기업으로 나설수 있었던 결정적인 모태가 됐다.
때마침 스칸디나비아의 이동전화 표준 설정에서 노키아가 추진한 방식이 선정돼 상당한 혜택을 보았다. 이를 계기로 스웨덴의 경쟁사인 에릭슨사와 함께 스칸디나비아에서 휴대폰 사업을 발전시켰다. 1987년 유럽 전역이 이동통신방식 표준을 GSM(Group Special Mobile)으로 선정한 후 핀란드의 이동통신회사인 라디올리냐사가 세계 최초로 GSM망을 개발했다. 노키아도 이 프로젝트에 참여했으며 1991년 세계에서 가장 많이 통용되는 표준을 만들어 성장하기 시작했다.
작년에 노키아는 휴대폰을 3천8백만대나 판매해 세계 시장 점유율 23%를 기록했다. 또한 노키아는 주식시가 총액이 우리나라 돈으로 약 2백40조원인 유럽 최대 기업이다. 전체 매출액의 9%인 약 1조5천억원을 연구개발에 투입했으며, 전체 종업원의 1/3인 1만3천명이 연구 개발 분야에서 일하고 있다. 또한 세계 12개국 45개 연구소에서 신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이런 기술력은 독립 이전부터 쌓여왔다. 1930년대에 핀란드의 전화회사는 8백15개에 달했다. 다수의 기업이 합병을 통해서 자연스럽게 경쟁과 협력을 했고, 몇개의 전화회사로 재편되면서 대형화되는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휴대폰으로 모든 일을 처리
최근 핀란드는 ‘호주머니에 인터넷을’이라는 정책을 앞세운 노키아를 중심으로 무선인터넷을 통해 휴대폰으로 신용카드 기능을 대신할 수 있는 전자 뱅킹 시스템을 도입하고 있다. 비자카드와 은행을 인터넷과 이동통신으로 묶은 이 서비스를 통해 어디서나 자유롭게 휴대폰으로 접속해서 물건이나 서비스를 주문하고 요금을 결제할 수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차세대 IC형 신용카드와 직불카드를 휴대전화에서 이용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이런 예들은 우리나라에서도 준비중인 다양한 이동통신 정보서비스의 참고사례로 삼을 수 있다. 특히 금융 관련 상품의 거래와 대중교통 결제 수단으로의 활용은 무선인터넷의 보안성을 강화하고 정보서비스 이용률을 높여 세계적인 기술을 축적한다는 측면에서 좋은 예가 될 것이다.
올 봄부터 노키아는 우수한 기술력과 시스템 구축 능력을 앞세워 한국과 동아시아의 이동통신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 적극적이다. 핀란드도 초기에는 에릭슨 등 다른 나라의 기업들에게 초기부터 문호개방을 통해 기술 이전 및 신기술을 받고 나름대로의 기술 개발을 해온 경험을 가지고 있다. 부호분할다중접속(CDMA) 방식의 종주국인 우리나라도 노키아 같은 업체와 경쟁하기 위해서는 핀란드의 통신회사 성장과 무선인터넷 발전과정 등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도 핀란드 못지 않은 우수한 인력과 기술력을 지니고 있다. 그런데도 우리가 핀란드에 비해 뒤떨어진 가장 큰 이유는 국가 정책이 체계적이고 지속적이지 못했기 때문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의 협조를 받아야할 만큼 좋지 않은 금융 시스템과 미래 예측력이 부족한 정부정책, 그리고 중심을 잡지 못하는 정부의 추진력이 발전의 걸림돌로 작용해 왔다. 게다가 외국 업체에 대한 부정적인 사회 인식도 신기술을 도입하거나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상실하는데 한몫 했다.
하지만 IMF 이후부터 추진한 벤처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과 정보통신 분야에 대한 체계적인 지원 등이 지속적으로 추진돼 점차 상황이 나아지고 있다. 이제 우리나라도 휴대전화 보급률이 58%로 세계 6위, 인터넷 이용자수도 1천3백만이 넘어 인터넷 이용률에서 세계 7위에 해당할 만큼 성장했다. 연구개발비도 GDP 대비 3%에 이르고 있으며 정보통신분야의 기술력도 세계적인 수준을 자랑한다.
핀란드의 땅과 하늘에는 보이지 않는 정보고속도로가 스칸디나비아의 침엽수림처럼 빽빽이 채워져 있다. 집과 학교, 그리고 회사에서 통신 단말기는 생활의 필수품이 됐으며, 앞으로 정보의 무한한 창구를 여는 통신의 신기술로 정부와 국민, 그리고 기업 모두가 디지털 시대의 정보시민으로 거듭나고 있다. 디지털 강국으로 성장한 핀란드는 지식 정보화를 바탕으로 정보통신 강국을 추구하는 우리나라에게도 좋은 모범임에 틀림없다.1
-용어설명-
GSM:Group Special Mobile의 약자로 유럽에서 채택하고 있는 디지털 이동전화 방식이다. 현재 국내에 보급되고 있는 CDMA와 디지털 이동전화 시장을 놓고 치열하게 경쟁을 벌이고 있다. 1989년 범유럽 표준규격으로 제정된 GSM은 협대역 시분할다중접속(TDMA) 방식을 적용, 유럽 17개국을 단일통화권으로 묶게 됐다.
CDMA: Code Division Multiple Access의 약자.
1. 디지털 셀룰러 통신의 하나로 실제 정보 전송에 필요한 주파수 대역보다도 아주 넓은 대역에 신호를 확산시켜 전송한다. 수신 측에서는 원래 주파수 대역으로 되돌려 잡음 등 방해를 거의 받지 않고 수신하는 방식이다. 송신전력이 작아도 통신이 가능하며 확산의 규칙이나 변수 등을 알지 못하는 경우 수신하여도 잡음밖에 인식 할 수 없는 비밀통화성을 가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