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1월 창원터널 유조차 폭발 사고, 2017년 12월 충북 제천 스포츠센터 참사. 화재는 늘 주변에서, 예고 없이 일어난다. 이때 인명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는 소화나 경보 설비도 중요하지만, 연기 확산을 제어하고 대피로를 확보하는 시스템이 필수다. 화재 시 ‘골든타임’을 지키는 건물 속 화재안전공학을 실험으로 알아봤다.
[터널] 하나뿐인 출입구, 연기 제어해 대피로 확보
“점화!”
터널에 우렁찬 목소리가 울리고, 잠시 뒤 터널 끝에 있던 흰색 소나타에서 불길이 치솟았다. 1월 10일 경기도 화성에 있는 한국건설기술연구원 화재안전연구소. 영하 13도의 강추위에도 터널 화재연기 실험 현장은 후끈했다.
연기의 위력은 실제로 보니 더 대단했다. 차에 불이 붙은 지 1분이 채 되지 않았는데, 밀폐된 터널 안이 삽시간에 검은 연기로 가득 찼다. 심지어 터널 밖에서 지켜보는 기자와 연구진 쪽으로도 유독가스가 넘어오는 상황이었다. 신현준 선임연구위원은 “에어커튼 가동!”을 외쳤다.
순간 터널 출구 천장에 설치된 에어커튼이 날개(블레이드)를 15도 각도로 움직이더니 공기를 초속 30m 속도로 뿜어내기 시작했다. 숨쉬기가 한결 편해졌다. 2분쯤 지났을까. 에어커튼의 효과는 눈으로도 보였다. 터널 입구에 투명한 커튼을 친 것처럼 검은 연기가 터널 안으로 되돌아 들어가고 있었다.
1. 한국건설기술연구원에서 진행된 터널 내 자동차 화재 실험. 앞좌석 시트에 가연성 물질을 붓고 점화했다.
2. 에어커튼을 가동하면서 연기의 유동, 터널 내외부 온도, 일산화탄소 농도 등을 측정했다.
농연 순환시켜 연기 확산 막는 에어커튼
“연기가 퍼지는 것만 막아도 대피 시간을 10분 이상 벌 수 있습니다.”
유용호 연구위원은 터널이나 지하철 승강장, 대피구역 등 밀폐된 공간에 화재가 발생했을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연기 확산을 제어하는 시스템이라고 강조했다.
화재 시 인명 피해의 대부분은 연기로 인한 질식사가 원인이다. 연기는 불보다 먼저 퍼지고 대피로를 가린다. 대한민국 사람들의 머릿속에 트라우마로 남아 있는 2003년 대구 지하철 화재가 대표적인 예다. 사망자 192명 대부분이 연기에 질식해 목숨을 잃었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마땅한 대비책은 없다. 2000년대 이전에 건설된 길이 1km 미만의 터널은 대부분 소화기 외에는 아무런 화재안전 시스템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터널의 60%는 이런 1km 미만의 터널이다. 또한 2000년대 이전에 건설된 터널은 ‘피난갱’이 750m 간격으로 떨어져있다. 연기가 잘 빠져나가지 않는 구조이고, 출구가 한쪽밖에 없다는 점을 감안하면 안일한 대비책이다.
에어커튼은 화재 시 연기 확산을 제어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다. 원리는 고깃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환풍기와 유사하다. 다만 일반적인 환풍기는 외부의 신선한 공기를 흡입해 대류현상을 유도하는 반면, 이번에 실험한 에어커튼은 화재가 난 내부의 연기, 즉 농연을 순환시킨다. 외부의 산소 공급을 차단하기 위해서다. 산소 농도가 올라가면 불은 더 커진다.
이런 에어커튼은 외부의 공기를 터널로 직접 가져오지 않아도 돼 별도의 덕트(duct·공기가 흐르는 구조물)를 설치할 필요가 없다는 장점도 있다. 연구팀은 뜨거워진 상부의 농연을 흡입해 터널 하부로 분사하면 농연이 냉각돼 깊이 가라앉으며 대류현상을 더욱 활발하게 만드는 효과도 노렸다. 에어커튼의 재료는 250도에서 한 시간 이상 견딜 수 있게 설계했다.
이날 실험 결과, 에어커튼 작동 시 터널 안쪽의 온도 센서는 50도까지 기록한 반면 외측의 온도센서는 22도를 유지했다. 터널 내부의 일산화탄소(CO) 농도도 터널 내부는 60ppm(공기 1kg당 60mg의 비율)으로 높았지만 외부는 2ppm 수준이었다. 유 연구위원은 “호남~제주를 잇는 16km 해저터널 내부 구난역(Rescue Station)에 이 기술을 활용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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