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라이브러리









[Issue] 설마 내가 우울증? 우울증 검사 직접 받아봤습니다

최근 한 아이돌 그룹의 멤버가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젊고 아름다우며 능력을 인정받던 사람이었다. 그를 죽음으로 이끈 건 다름아닌 ‘우울증’이었다. 그의 충격적인 죽음은 우리 자신을 되돌아보게 했다. 우리는 과연 우울증의 안전 지대에 있는 걸까.

 

 

“우울증의 정도가 심합니다. 우울증센터 방문을 권합니다.”


한 대형 병원의 정신건강의학과 인터넷 사이트에서 확인한 기자의 우울증 자가 진단 결과다. 최근 결혼 준비로 스트레스가 쌓여 좀 우울하다는 생각은 했지만, 이런 결과가 나올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얼마 전 우울증으로 생을 마감한 아이돌 그룹 멤버가 생각났다. 그래, 우울증 검사를 받는 게 좋겠다.

 

BDI 검사-면담-심리검사 3단계 진료


1월 11일 서울 회기동에 위치한 경희의료원을 찾았다. 총 검사 시간은 약 3시간. 간단한 질문지 작성과 전문의의 면담을 통한 면담과 심리검사가 뒤따랐다. 검사 과정이 생각보다 길고 복잡했다.

 

정신건강의학과 진료실로 들어가자 김나리 경희대 의대 정신건강의학과 연구원이 기자를 맞았다. 먼저 21개 문항으로 이뤄진 ‘BDI(Beck Depression Inventory) 검사’를 진행했다. BDI는 아론 벡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명예교수가 1961년 처음 제안한 우울증 검사로, 두 차례 개정되면서 지금의 BDI가 완성됐다. 우리나라에는 1993년 처음 도입됐다.

 

BDI 검사는 ‘나의 앞날에 대해 얼마나 절망적으로 느끼는지’ ’요즘 생활이 재미있는지’ ’죄책감을 느끼는지’ ‘체중 변화는 어떤지’ 등의 문항으로 이뤄졌다. 각 문항에 대해서는 4개의 보기 중에 자신이 해당하는 상태에 체크하면 된다. 가령, (1)나는 슬프지 않다 (2)나는 슬프다 (3)나는 항상 슬프고 기운을 낼 수 없다 (4)나는 너무나 슬프고 불행해서 도저히 견딜 수 없다 같은 식으로 주어진다.

 

검사를 마치자 간단한 면담이 시작됐다. 안은지 경희대 의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가족 관계, 부모님과 의 관계, 지금까지 살면서 어떤 갈등을 겪어왔는지 등을 물었다. 안 전문의는 “이 면담을 통해 환자가 단순한 우울감을 가지고 있는지, 아니면 우울증 상태인지 확인하고, 회복탄력성을 확인한다”고 말했다. 회복탄력성은 큰 갈등을 마주했을 때 느끼는 우울한 감정을 잘 견디고 극복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한다.

 

이어지는 심리 검사에서는 그림을 이용해 심리 상태를 확인했다. 심리검사는 개인정보에 해당하는 만큼 자세한 내용은 공개하지 못하게 하고 있다.

 

3시간의 검사 끝에 기자는 다행히 ‘우울감이 높은 상태이기는 하나, 결혼과 같은 큰 변화의 상황을 마주하고 있어 나타나는 일시적인 현상으로 보인다. 우울한 감정이 지속되지 않도록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는 진단을 받았다.

 

우울증을 포함한 정신질환 환자의 경우 뇌의 해마 부위가 작아진다는 연구 결과들이 있다. 위의 사진은 정상인의 해마 크기이며(하얀 선, 붉은 부위).

 

우울 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의 해마로, 크기가 확연히 작다.

 

코티솔, fMRI, 심전도 활용


단순히 우울감인지 우울증인지 어떻게 구분하는 걸까. 둘의 가장 큰 차이점은 ‘기능 장애’를 보이는지 여부다. 학업이나 일을 할 때 집중력이 과도하게 떨어지거나 아예 손을 놓아버릴 경우 우울증을 앓고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안 전문의는 “무기력하거나 집중력이 떨어져 회사를 나가지 않는 등 일상 생활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면 우울증일 수 있다”며 “무기력하더라도 주변의 평가가 그렇지 않다면 단순한 우울감일 수 있다”고 말했다.

 

면담 결과 우울증이 의심되는 환자는 갑상선저하와 같은 신체질환이 있는지 검사하고 혈액검사, 심전도, 자기공명영상(MRI), 뇌파 검사 등을 시행한다. 오랜 시간 다양한 검사를 받게 하는 이유는 우울증의 증상도 다양하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는 잠을 제대로 못 자고 입맛이 떨어지는 등의 증상이 나타나지만, 이와 정반대의 증상을 보이는 우울증 환자도 있다.

 

우리가 보편적으로 알고 있는 우울증은 ‘멜랑콜리아(melancholia) 우울증’이라고 한다. 일상적인 즐거움을 잃고, 아침에 일찍 깨서 잠에 들지 못하거나, 체중이 줄고, 심한 죄책감에 시달리는 증상을 보인다. 반면 ‘비전형 우울증’은 너무 많이 자고, 식욕이 늘고, 몸무게가 급증하며, 팔다리에 하나도 힘이 들어가지 않아 움직이기 어렵고, 대인관계에 매우 민감하다는 특징을 보인다. 망상이나 환각을 보는 ‘정신병적 우울증’도 있다.

 

 

학계에서는 유전자나 호르몬, 뇌의 특정 부위 변화 등으로 우울증을 진단하기 위한 연구를 계속해왔다. 가령 멜랑콜리아 우울증의 경우 다른 우울증에 비해 렘(REM) 수면에 돌입하기 전까지 걸리는 시간, 즉 렘 수면 잠복기가 짧고, 스트레스 호르몬으로 알려진 코티솔이 과도하게 분비되는 특징을 가진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doi:10.1016 / S0006-3223 (97) 00148-0

 

환자에게 코티솔을 주입한 뒤 코티솔 분비량의 차이를 확인할 수도 있다. 백종우 경희대 의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정상인의 경우 코티솔을 주입하면 신체가 항상성을 유지하기 위해 코티솔 분비를 억제한다”며 “우울증 환자의 체내에서는 코티솔이 과잉 분비되고 있어 외부에서 추가로 코티솔이 주입돼도 수치가 떨어지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 방식은 우울증 환자의 치료 효과를 예측하기 위해 주로 사용되며 실제 진단에서는 정확성이 떨어진다는 한계가 있다.

 

지난해 12월 에드먼드 롤스 영국 워릭대 교수팀은 뇌의 특정 영역 사이의 연결에 주목한 연구 결과를 내놨다. 한 영역이 다른 영역에 미치는 영향을 비교한 것이다. 연구팀은 우울증 환자 336명과 건강한 성인 350명의 뇌를 기능성자기공명영상(fMRI) 장치로 촬영했다.

 

그 결과 우울증 환자에서는 보상에 관여하는 영역과 즐거움을 담당하는 영역 간의 연결은 약한 반면, 처벌과 괴로움의 영역 사이의 연결은 더 강했다. 즉 건강한 사람에 비해 행복감은 덜 느끼고, 괴로움은 더 느낀다는 의미다.doi:10.1016/j.bpsc.2017.10.004

 

심전도를 비교해 우울증과 조울증을 구분하는 연구결과도 있다. 과도하게 들떠있는 상태가 유지되는 조증과 우울한 감정이 지속되는 우울증이 번갈아 나타나는 조울증은 우울증과 구분하기 매우 어렵다. 백 교수는 “두 질환은 비슷해 보여도 처방하는 약이 전혀 다르다”며 “조울증 환자에게 우울증 환자의 항우울제를 처방하면 오히려 증상을 악화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앙헬로스 알라리스 미국 로욜라대 의대 교수는 우울증 환자 64명과 조울증 환자 37명을 대상으로 15분간 휴식을 취하게 한 뒤 다시 15분간 심전도를 측정했다. 이어서 이 정보를 이용해 호흡동성부정맥(RSA·Res piratory Sinus Arrhythmia)을 확인했다. RSA는 숨을 들이마실 때 증가하는 심박수와 숨을 내쉴 때 감소하는 심박수의 변동을 의미한다. 분석 결과 우울증 환자가 조울증 환자보다 RSA 수치가 유의미하게 큰 것으로 나타났다.doi:10.1080/15622975.2017.1376113 백 교수는 “뇌 영상과 같은 바이오마커로 우울증을 진단할 수 있는 날이 멀지 않았다”고 말했다.

 

심리부검, 자살률 절반으로 떨어뜨려


최근에는 우울증을 포함한 정신질환으로 인한 자살을 줄이기 위해 ‘심리부검’을 실시하기도 한다. 심리부검은 자살자의 유가족과 주변인과의 면담을 통해 자살자의 심리 행동을 파악해 원인을 추정하는 것을 말한다. 고인의 사망 원인이 자살인지 타살인지 확인하기 위해 처음 도입되면서 심리부검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최근에는 자살 예방을 위한 효과적인 정책 수립을 하기 위해 심리부검을 실시하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핀란드는 1987~1988년 1397건의 심리부검을 실시했다. 1986년만 하더라도 핀란드는 인구 10만 명당 자살률이 30.3명에 달했다. 같은 해 우리나라는 10만 명당 8.8명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매우 높은 수치다. 핀란드 정부는 의사, 심리학자 등 전문가 245명을 동원해 심리부검을 했고, 그 결과를 토대로 자살 원인을 분석해 자살예방프로그램을 마련했다. 그 결과 2012년에는 10만 명당 15.8명으로 절반 가까이 떨어졌다. 반면 우리나라는 28.5명으로 과거 핀란드와 비슷한 수준으로 자살률이 증가했다.

 

국내에서는 2009년 처음 심리부검이 도입됐고, 보건복지부 산하 중앙심리부검센터도 설립됐다. 백 교수는 “심리부검 사례가 최소 1000건 이상 충분히 쌓이면 국내 실정에 맞는 자살예방대책을 수립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GIB

 

2012년 한국심리학회지에 실린 ‘한국자살 사망자 특징: 사례-대조 심리부검 연구’ 논문에 따르면 자살한 이들은 사망 전 4주 이내에 의사를 만나거나, 정신과 약물치료를 했던 과거 기록이 있다는 공통점이 있었으며, 결혼, 건강, 대인관계 갈등 등에 따른 높은 스트레스가 유의미한 위험 요인으로 조사됐다.

 

백 교수는 “지금까지 심리부검 사례를 보면 우울증과 같은 정신질환을 앓다가 자살한 사람의 경우 90% 이상이 자살의 경고 신호를 보낸다”며 “하지만 주변에서 이를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80%에 이른다”고 말했다. 그만큼 우울증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는 의미다. 백 교수는 “수면 패턴이나 식욕이 갑자기 바뀌는 경우 예의주시할 필요가 있다”며 “정신과 진료를 받는 것에 대한 부담을 버릴 수 있도록 주변의 격려도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2014년 SBS에서 방영한 드라마 ‘괜찮아, 사랑이야’는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인 지해수(공효진)와 조현병을 앓고 있는 유명 작가인 장재열(조인성)의 사랑을 그린 드라마다. 극 중 지해수는 “감기를 앓듯 마음의 병은 수시로 온다. 마음에 감기가 들 때 정신과를 찾아오는 것도 희망차게 사는 방법 중 하나”라고 말한다.

이 기사의 내용이 궁금하신가요?

기사 전문을 보시려면500(500원)이 필요합니다.

2018년 02월 과학동아 정보

  • 최지원 기자
  • 자료출처

    OECD, 한국심리학회지

🎓️ 진로 추천

  • 심리학
  • 의학
  • 교육학
이 기사를 읽은 분이 본
다른 인기기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