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기도 성남의 한 5층 공동주택. 3층 세대의 주방쪽 창문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가스레인지에 올려 둔 프라이팬 식용유(대두유)가 18분 만에 발연점인 261도를 넘어 불이 붙은 것. 잠시 뒤 창문이 깨지고, 화염은 발코니를 타고 순식간에 위층으로 옮겨 붙었다.
집 안은 연기로 가득 찼다. 불이 거실에 있는 커튼, 책장으로 차례차례 옮겨 붙으면서 화염의 온도가 400도까지 상승했다. 그러나 끝이 아니었다. 가장 큰 거실 베란다 창문이 깨지면서 다량의 산소가 추가로 공급되자 화염의 온도는 700도까지 치솟았다. 연기는 아파트 복도를 통해 옥상까지 올라갔다.
연기, 수직 확산이 수평보다 5~10배 빨라
화염과 연기가 수평보다는 수직 방향으로 움직인다는 사실을 잘 보여주는 실험이다. 화재가 나면 아래층보다는 위층의 피해가 클 수 있다. 한국건설기술연구원은 주택의 화재 전파 특성을 알아보기 위해 한국기계연구원과 공동으로 성남 재개발 지역의 빈집에서 이 같은 실험을 진행했다.
연기가 수직으로 확산되는 속도는 수평으로 확산되는 속도의 5~10배다. 불은 탈 것이 있어야 옮겨 붙지만, 연기는 복도는 물론이고 욕조나 주방, 하수도, 배관 등 작은 틈으로도 올라간다. 실제로 2011년 경기도 성남시 분당동의 빌라 화재 당시 사망자는 화재 현장의 위층에서 발생했다. 사망 원인은 질식사였다.
따라서 화재 시 건물 외부로 즉시 피난하기 어렵다면 아랫집 혹은 옆집으로 대피해야 한다. 1992년 이후 시공 된 3층 이상의 공동주택에는 옆집으로 통하는 경량칸막이가 있다. 경량칸막이는 9mm 가량의 석고보드로 만들어져 사고 시 부수고 탈출할 수 있다. 유 연구위원은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를 방치한다”며 “경량칸막이가 있는 위치에 수납장을 설치하거나, 통행이나 환기를 이유로 방화문을 열어놓는다”고 지적했다.
드라이비트 외벽 2분 만에 다 타
화재는 건물의 재료도 큰 영향을 미친다. 2017년 12월 참사가 벌어진 제천 스포츠센터는 외장재로 ‘드라이비트’ 공법을 사용했다. 드라이비트는 건물 외벽에 단열재와 이를 지탱하기 위한 섬유 유리층을 붙이고 석고나 시멘트를 덧붙이는 마감 방식이다. 습기가 적고 단열이 더 잘된다는 장점이 있어 대중화됐다. 가격이 싸고 시공이 간단하기도 하다.
안타까운 점은 사고 건물이 단열재로 스티로폼 같은 가연성 자재를 썼다는 사실이다. 가연성 자재는 화재에 특히 취약하다. 한국건설기술연구원 연구팀이 가로 3m, 세로 6m 외벽에 드라이비트 공법으로 외장재를 시공해 벽 안쪽에서 불을 붙여보니, 불과 1분 30초 만에 불이 외벽으로 번졌다. 이후 불은 급격히 상승하며 약 2분 만에 벽 전체를 태웠다.
정부는 2015년 1월 경기도 의정부시 아파트 화재 참사 이후 6층 이상의 건물 외벽에는 드라이비트용 단열재를 가연성 소재로 쓸 수 없도록 건축법을 바꿨다. 한국건설기술연구원은 페놀수지와 발포제를 반응시켜 생성한 열경화성 셀룰러 폴리머(페놀릭 폼)로 외벽에 부착할 수 있는 경량 불연성 자재를 개발해 상용화했다.
단열재를 불연성 자재로 바꾼다고 100% 안심할 수는 없다. 모든 건물의 외벽은 위층과 아래층 사이에 이를 연결하는 ‘슬리브’ 부위가 있다. 이 부분은 흔히 불이 이동하는 통로가 된다. 건물이 낡으면서, 또는 지진에 의해 미세하게 흔들리면서 파괴되기 때문이다. 유용호 연구위원은 “슬리브를 열에 견디는 내화성 재료로 메우면 화재가 위층으로 번지는 현상을 막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건설기술연구원은 450도에서 3시간 동안 견딜 수 있는 내화충진재로 슬리브를 채우는 기술을 2014년 특허 등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