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5일(한국시간) 제27회 ‘이그노벨상(Ig nobel Prize)’수상자가 발표됐다. 이그노벨상은 과학유머잡지 ‘황당무계 연구 연보’에서 선정하는 괴짜상으로, ‘사람들을 웃게 하고 생각하게 만드는’ 색다르고 기발한 업적에 수상한다. 이그노벨상에는 다양한 동물에 대한 연구가 선정되는 경우가 많은데, 올해도 그 추세가 이어졌다.
‘고양이 액체설’이란 게 있다. 어떤 모양의 용기에든 자유자재로 몸을 욱여 넣는 고양이를 일컬어 생긴 우스개 소리다. 그런데 이를 진지하게 분석한 과학자가 있다. 파르딘 마크-앙투안 프랑스 리옹대 물리학연구소 박사후연구원은 이 논문으로 2017 이그노벨상 물리학 부문 수상자로 선정됐다. 연구팀은 수학 공식을 이용해 어린 고양이가 늙은 고양이보다 모양을 오래 유지할 수 있다는 결론을 도출했다(Rheology Bulletin, vol. 83 No. 2, Jul 2014).
듬이벌레를 관찰했다. 놀랍게도 암컷과 수컷의 생식기가 뒤바뀌어 있었다. 곤충은 보통 수컷이 암컷 위에 올라타고 교미하는데, 이조차도 반대였다. 연구팀은 시상식에서 “이제 더 이상 단순히 페니스를 가진 개체를 수컷이라고 말할 수는 없게 됐다”고 말했다(doi:10.1016/j.cub.2014.03.022).
인간의 피가 흡혈박쥐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한 엔리코 버나드 브라질 페르남부쿠연방대 동물학과 교수팀은 영양학(nutrition)상을 받았다.
인간 속성에 대한 연구 다수 선정
우리 자신이 인간이지만, 스스로도 왜 이런 행동을 하는지 알 수 없을 때가 많아서일까. 인간의 속성에 대한 다양한 연구도 올해 수상자 목록에 올랐다.
치즈를 싫어하는 사람의 뇌를 기능성자기공명영상(fMRI)으로 연구해 뇌가 혐오감을 느끼는 과정을 연구한 장-피에르 로이트 프랑스 리옹신경과학연구센터 박사팀이 의학상을 받았고, 나이 든 남자의 귀가 큰 이유를 연구한 영국의 물리학자 제임스 히스콧 박사는 해부학상을 받았다. 일란성 쌍둥이가 멀리서도 각자의 사진을 구분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낸 마테오 마티니 영국 이스트런던대 교수팀은 인지(cognition)상을 받았다.
이 밖에도 길이 1m가 넘는 악어를 접촉하면 도박 욕구가 줄어든다는 연구 결과를 낸 매튜 록로프 호주 CQ대 교수팀은 경제학상을, 호주 원주민의 전통 악기 디저리두(didgeridoo)가 코골이 치료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밝힌 오토 브렌들리 스위스 취리히대병원 박사팀이 평화상을, 엄마의 질 내부로 넣어 태아에게 음악을 들려주는 기계인 ‘베이비팟’을 개발한 스페인 연구팀은 산과학(obstetrics)상을 수상했다.
커피 안 쏟으려면? 뒤로 걸어!
올해 이그노벨상 유체역학 부문에는 한국인이 선정됐다. 주인공은 미국 버지니아대 물리학과에 재학 중인 한지원(Jesse Han) 씨. 한국인으로는 네 번째다.
그는 커피 컵을 들고 움직일 때 커피가 어떻게 흔들리는지, 넘치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연구한 결과를 지난해 6월 생명과학 분야 국제학술지(Achievements in the Life Sciences)에 발표했다(doi:10.1016/j.als.2016.05.009).
한 씨는 과학동아와의 e메일 인터뷰에서 “2015년 민족사관고등학교에 다닐 때 국가대표로 국제물리토너먼트에 나간 게 커피 컵 연구의 계기가 됐다”며 “기대하지 않고 논문을 투고했는데, 실제로 출판돼 많이 기뻤다”고 말했다.
논문이 제시한 결론은 “뒤로 걸어라”이다. 이그노벨상에 선정될 만하다. 한 씨는 논문에서 “물론 뒤로 걸으면 커피의 흔들림이 점점 커지다가 흘러 넘치는 현상을 억제하는 효과보다, 돌부리에 걸려 넘어질 위험이 더 커진다”며 “이는 가장 확실하게 커피를 넘치게 하는방법”이라고 너스레도 떨었다. 그리고는 두 번째 방법으로 고양이처럼 손가락을 펼쳐 아래로 향하게 한 뒤 컵의 윗부분을 감싸 쥐고 걸으라고 제시했다.
한 씨는 “한국에서는 나이가 어리면 연구를 못할 거란 편견이 있다는 걸 느끼곤 했는데, 꼭 그렇지 않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며 “이번 수상을 계기로 또래 고등학생과 대학생이 과학 연구에 관심을 더 가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 씨는 현재 입자물리, 우주론, 군이론 등에 관심을 갖고 연구를 진행 중이다. 세 주제 모두 너무 재미있어서 향후 목표는 아직 정하지 못했다고. 커피와 음악에 대한 열정도 커서 언젠가 재즈 카페를 운영하는 것도 소원이란다.
“지금까지 제가 흥미를 느끼는 것들을 해왔고, 앞으로도 그럴 거예요. 언젠간 ‘즐거운 과학자’가 될 수 있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