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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1. [물리학상] 100년 만에 중력파 존재 확인

 

1916년 아인슈타인은 잔잔한 중력장 위에 돌을 던지면 어떤 일이 발생할지 생각했다. 거대한 별이 갑작스럽게 폭발하는 등 중력에 변화가 생기는 상황을 수학 모델로 만들고, 중력 변화가 사방으로 전파된다는 파동방정식의 해를 구했다. 아인슈타인은 이를 ‘중력파’라고 명명했다.

 

그런데 이 기묘한 해에서 예측한 중력파는 세기가 너무 작아서 의구심이 생겼다. 계산 결과, 극렬한 천체의 운동에서 발생하는 중력파의 최대 진폭 변화가 10-21으로 추정됐다. 아인슈타인 스스로도 수학적 해일뿐이라고 치부했다. 설령 존재하더라도 실험으로 입증하기는 불가능해 보였다.

 

하지만 인류는 결국 해냈다. ‘라이고(LIGO)’라고 불리는 ‘레이저 간섭계 중력파 관측소’를 만들어 중력파를 검출해낸 것이다.

 

 

1983년 ‘블루북’에서 중력파 역사 시작


10-21보다 감도가 좋은 레이저 간섭계 개발은 성패를 가늠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용감하게도 1970년대부터 이를 연구한 사람이 바로 올해 수상자 중 한 명인 라이너 바이스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명예교수다. 그는 미국의 물리학자 조셉 웨버가 개발한 ‘웨버 바’ 막대검출기 발표를 듣고 ‘내가 더 잘할 수 있겠다’고 생각해 연구에 뛰어들었다.

 

바이스는 수십 m 길이의 간섭계를 만들어 실험하면서 장치가 가질 수 있는 잡음원을 분석했다. 이를 기록한 1974년 보고서는 1983년 미국과학재단(NSF)에 라이고 설립을 제안하기 위해 쓰인 ‘블루북(Blue Book)’이란 보고서의 초안이 됐다.

 

당시 로널드 드레버 영국 글래스고대 교수는 독자적으로 레이저 간섭계를 제작했다. 역시 웨버의 강연이 계기가 됐는데, 흥미롭게도 바이스와는 정 반대로 ‘나는 경쟁이 심한 바 검출기 개발에 자신이 없으니 아주 새로운 길(레이저 간섭계)로 뛰어들어야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드레버 교수는 시험을 거듭하면서 거울을 때리는 레이저 빛을 안정화 할 수 있는 방안을 찾기 위해 훗날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한 존 홀 미국 콜로라도대 표준과학연구원 산하 실험천체물리학합동연구소(JILA) 박사를 찾아갔다. 그 결과로 탄생한 ‘파운드-드레버-홀’ 효과는, 오늘날 라이고 검출기의 감도를 향상시키는 데 중요한 핵심 기술이 됐다.

 

한편 또 한 명의 수상자인 킵 손 미국 캘리포니아공대 명예교수는 1970년대까지 초창기 레이저 간섭계 아이디어에 대해 부정적이었다. 그러나 오랜 시간 수많은 과학자들과 생각을 나눈 끝에 결국 레이저 간섭계가 유망한 대안이라는 점에 동의했다. 그는 러시아 과학자들과 토론한 뒤 생각을 바꿨다고 스스로 밝혔으나, 바이스는 자신과의 토론이 계기가 됐다고 굳게 믿었다(바이스의 자신감(?)에는 끝이 없다).

 

손 교수는 캘리포니아공대에 중력파 실험을 주도할 실험그룹을 꾸리기로 하고, 자신과 토론했던 러시아 물리학자인 블라디미르 브래긴스키 박사를 영입하고자 했다. 그러나 브래긴스키 박사는 미국으로 이주했을 때 모국이 가할지도 모를 보복에 대한 두려움, 새로운 프로젝트에 대한 부담감 등으로 결국 제안을 거절했다(이렇게 또 한 명이 노벨상에서 멀어졌다).

 

대신 그 자리에 드레버 교수를 추천했고, 이렇게 드레버 교수는 1984년 캘리포니아공대로 옮겨 본격적으로 레이저 간섭계를 개발했다. 올해 수상자가 됐을 뻔한 드레버 교수는 안타깝게도 치매로 고생하다가 올해 3월 7일 타계했다.

 

 

라이고 프로젝트’의 탄생


수백 m에 이르는 간섭계 개발에 성공한 바이스는 거대관측소 설립을 제안했다. 1984년 미국과학재단은 이 프로젝트를 캘리포니아공대와 MIT가 공동으로 추진하기를 원했다. 이것이 라이고 프로젝트의 탄생이었다.

 

그러나 드레버와 바이스 교수의 일하는 스타일이 너무 달라 갈등이 불거졌다. 손 교수가 중재하려고 했지만 오히려 악화됐다. 결국 미국과학재단은 3명의 설립자를 물리고 전문책임자를 영입했다. 제1대 라이고 책임자로 로커스 보트 캘리포니아공대 교수가 지명됐다.

 

 

 

이후 갈등 국면이 수습됐고, 라이고 제안서가 미국 의회를 통과해 미국 루이지애나 주 리빙스턴과 워싱턴 주 핸포드가 관측소 설립지로 선정됐다. ‘ㄴ’자 모양에서 팔 하나의 길이가 4km에 이르는 거대한 간섭계 측정 장치를 만드는 대규모 프로젝트였다.

 

1994년 첫 삽을 뜨면서 라이고 제2대 책임자가 선임됐다. 바로 올해 수상자 중 한 명인 배리 배리시 캘리포니아공대 교수다. 그의 능력은 탁월했다. 1998년까지 이어진 초기 건설을 지휘 감독했고, 2002년까지 초기 라이고 설치와 가동을 감독했다. 2005년까지 이어진 가동과 관측에도 참여했다. 라이고가 기틀을 잡고 건전한 조직 문화와 연구개발 문화를 갖게 된 데는 배리시 단장의 공이 컸다.

 

‘ㄴ’자 모양인 라이고는 중앙에서 발사한 레이저가 90도를 이루는 두 팔 끝까지 갔다가 반사돼 다시 돌아오도록 설계됐다. 이렇게 돌아온 두 개의 레이저 빔을 합성하면 간섭 현상이 생긴다. 이를 이용해 두 팔의 길이가 상대적으로 어떻게 변했는지 측정함으로써 중력파를 검출한다.

 

라이고는 2005년 목표했던 감도에 도달했고, 2007년부터는 유럽 중력파 관측소 ‘버고(Virgo)’까지 가세해 삼중 관측이 진행됐다. 2010년까지 총 6차례 가동을 했는데, 초기 라이고 감도 내에 유의미한 중력파를 발생하는 중력파원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결론을 얻었다. 냉정하게 말해, 실패였다.

 

기기의 감도가 관건이었다. 라이고는 5년간 업그레이드를 거쳤다. 2015년 8월, 더 정밀해진 ‘어드밴스드 라이고’가 공개됐다. 그리고 마침내 ‘그 일’이 벌어졌다.

 

 

2015년 9월 중력파 첫 검출


본격 가동을 위해 마지막 점검을 하던 2015년 9월 14일 오후 6시 50분(한국시간), 미세한 신호가 포착됐다. 라이고의 실시간 분석 소프트웨어가 바빠졌다. 신호의 통계 수치와 물리값을 계산해 데이터베이스에 전송했다. 여기에 걸린 시간은 고작 3분. 몇몇 연구자가 속속들이 신호를 분석해 그 결과를 회신 e메일로 공유하기 시작했다. 불과 몇 시간 만에 최초 e메일 회신이 100통을 넘어섰다.

 

결과는 놀라웠다. 몹시 정교하고 아름다운, 전형적인 쌍성계의 충돌로 생긴 중력파 신호가 담겨있었다!

 

 

당시 연구자들 사이에서 가장 화제가 됐던 것은 과연 ‘암맹주입’과 같은 절차가 이뤄졌는가 하는 점이었다. 이는 기기나 소프트웨어를 점검하기 위해 가짜 신호를 주입하는 절차로, 만약 그랬다면 실제 중력파 신호가 아닐 수 있었다. 연구자들 사이에 논란이 일자, 이례적으로 신호가 발견된 당일 당시 라이고 과학협력단 대변인 가브리엘라 곤잘레스 미국 루이지애나주립대 교수가 “암맹주입은 없었다”고 확인했다.

 

더 정밀한 검증을 통해 중력파가 틀림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2015년 12월 26일 두 번째 중력파 신호가 포착됐다. 그리고 2016년 2월, 연구단은 전세계인을 향해 외쳤다. “우리가 해냈다(We did it)!”

 

이후 올해 8월까지 중력파를 세 차례 더 검출했다. 특히 10월 17일(한국시간) 발표한 다섯 번째 중력파(8월 17일 검출)는 최초로 블랙홀이 아닌 중성자별 쌍성이 충돌하면서 발생한 중력파 신호다(100~101쪽 기사 참조). 어드밴스드 라이고는 8월 25일을 마지막으로 관측을 마쳤고, 업그레이드와 정비를 거쳐 2018년 9월 이후 3차 관측 가동을 시작할 예정이다.

 

 

우주에 대한 이해 폭 넓어져


중력파 발견은 아인슈타인이 100년 전에 예측한 중력파의 존재를 직접 확인했다는 의미가 가장 크다.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이 여전히 우리 우주를 묘사하는 공고한 이론임을 말해주는 새로운 증거다.

 

이뿐만이 아니다. 앞으로 중력파, 전자기파 등 우주에서 오는 여러 신호를 통합적으로 분석하는 ‘다중신호 천문학’이 활성화되면 우주의 기원과 진화 과정에 대한 인류의 이해는 지금보다 훨씬 넓고 깊어질 전망이다. 새로운 물리학과 천문학 시대를 열 수 있는 이 혁명적인 성과는, 아인슈타인이 우리에게 남긴 마지막이자 가장 큰 선물이 아닐까. 이를 가능케 하는 데 핵심 역할을 한 수상자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노벨상 축하하듯 5번째 중력파 검출


전자기파로만 우주를 관측하던 인류에게 중력파라는 또 다른 ‘눈’이 생겼다.
이 같은 ‘다중신호 천문학’을 통해 인류가 우주를 더 깊게 이해하게 될 거라는 기대가 커졌다.
그리고 중력파의 노벨물리학상 수상을 축하라도 하듯,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
10월 17일(한국시간) 공개된 다섯 번째 중력파 신호(8월 17일 검출)와 후속 광학관측 결과가 더해져 짧은 감마선 폭발 현상과 함께 희미하고 짧은 초신성인 ‘킬로노바’의 존재와 원인이 증명됐다.

 

 

보단 팩진스키 미국 프린스턴천문대 교수와 그의 제자 리신 리 박사(현재 중국 베이징대 카블리 천문학및천체물리학 연구소 교수)는 1998년 두 개의 중성자별이 충돌하면 짧은 주기를 갖는 초신성인 ‘킬로노바(Kilonova)’가 발생할 거라는 이론을 제안했다. 이 광학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이후 많은 모델이 제안됐는데, 중성자 별의 충돌로 2초 이내의 짧은 감마선 폭발이 관측될 것으로 예상됐다. 그리고 미국항공우주국(NASA)이 운용하는 허블망원경이 2013년 이런 특성을 갖는 감마선 폭발체(GRB130603B)를 실제로 관측하면서 킬로노바의 존재가 확인됐다.

 

그러나 반쪽 짜리 결과였다. 킬로노바의 광학 현상과 감마선 폭발의 관련성만 봤을 뿐, 이론이 제안한 것처럼 실제 중성자별 쌍성에 의한 것이라는 직접적인 증거를 확인하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동시에 같은 우주에서 중력파, 감마선 포착


8월 17일 오후 9시 41분 4초(한국시간), 라이고 중력파 관측소에 약 100초간의 긴 꼬리를 가진 중력파 신호가 포착됐다. 분석 결과, 지구로부터 1억3000만 광년 떨어진 우주에서 발생한 신호였다. 질량이 태양의 0.86~2.26배인 중성자별 쌍성의 충돌로 인해 발생한 중력파로 추정됐다. 공교롭게도 1.7초 뒤, NASA의 페르미 감마선 우주망원경에 감마선 폭발이 감지됐다. 위치는 ‘NGC4993’이라 불리는 타원은하 근방. 놀랍게도 라이고 중력파 관측소가 분석한 중력파원의 위치와 정확하게 일치했다.

 

과학자들의 가슴이 떨리기 시작했다. 신호에 오류가 없다면, 중성자별 쌍성 충돌로 짧은 감마선 폭발 현상과 함께 킬로노바가 생긴다는 가설이 사실로 입증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중력파 검출 이후 꿈꾸던 다중신호 천문학이 최초로 동작하는 순간이었다.

 

중력파 관측 정보는 곧바로 전 세계 천문대에 전송됐다. 과학자들은 후속 광학 관측을 시작했다. 중성자별 쌍성 충돌이 맞다면, 다른 전자기파도 검출돼야 하기 때문이다. 속속들이 광학 망원경으로 관측한 결과가 보고됐고, 9일 뒤엔 찬드라 X선 우주망원경이 X선을 감지했다는 보고까지 이어졌다.

 

이 후속 관측에서 한국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서울대와 한국천문연구원 팀이 공동으로 칠레-호주-남아프리카공화국에 설치한 망원경 네트워크인 외계행성탐색시스템(KMTNet)과, 호주의 이상각 망원경(서울대 천문학과 교수를 역임한 이상각 교수가 기증해 2014년 10월 호주에 설치한 구경 43cm 광학망원경)을 이용한 광학 관측 결과를 보고했다.

 

다른 관측소와 달리 한국 연구팀은 남반구 전역에 수평으로 걸쳐진 네트워크 관측시스템을 이용한 만큼 관측에 훨씬 더 유리한 위치를 차지할 수 있었다. 특히 하나의 천체를 24시간 연속으로 관측할 수 있는 KMTNet의 조밀한 관측 자료는, 킬로노바의 밝기 변화를 파악하는 데 중요한 자료를 제공했다.

 

 

최초의 다중신호 천문학


분석 결과, 지구로부터 1억3000만 광년 떨어진 우주에서 발생한 중성자별 쌍성 충돌이라는 한 이벤트에 대해 중력파뿐만 아니라 가시광선, X선, 자외선, 적외선, 전파의 모든 영역에서 신호를 관측하는 데 성공했다.

 

다중신호 천문학이 실제로 동작하고 있다는 설렘과 흥분을 모든 연구자들이 공유한 극적인 사건이었다. 이는 라이고 과학협력단이 수 년 전부터 다중신호 천문학의 관측 체계를 구성하기 위해 전 세계의 천문대, 위성 프로젝트들과 긴밀하게 협력해온 데에 따른 쾌거였다.

 

이번 관측은 중력파를 이용한 다중신호 천문학이 시작된 최초의 사건으로 기록될 것이다. 이는 시작일뿐이다. 앞으로 중력파를 이용해 그 동안 광학 관측만으로는 볼 수 없었던 우주의 새로운 비밀을 파헤치고 이해하게 될 것이다. 정말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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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1월 과학동아 정보

  • 오정근 국가수리과학연구소 선임연구원
  • 에디터

    우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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