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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2. [화학상] 현미경의 ‘혁명’을 이끌다

10월 4일. 여느 때와 다름없는 수요일 오전이었다. 필자는 영국 케임브리지에 있는 의학연구위원회(MRC·Medical Research Council) 산하 분자생물학연구소(LMB·Laboratory of Molecular Biology)에서 오후에 있을 전자현미경 실험을 위해 시료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복도 여기저기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극저온전자현미경’이 노벨상을! 리처드가 받았어!”

 

모두들 기뻐하고 있었다. 하지만 크게 놀라지는 않았다. 언젠가 이 분야에서 노벨상이 나올 것이라고 다들 확신하고 있었다.

 

 

복잡한 단백질 구조 확인 열망


생명체는 단백질과 RNA, DNA 등 다양한 종류의 생체 분자로 이뤄져 있다. 이들의 3차원 구조는 그 기능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로, 생체 분자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그 구조부터 밝혀야 한다. 특히 0.4nm(나노미터·1nm는 10억 분의 1m) 이하의 원자 수준의 해상도로 구조를 파악하면 생체 분자의 기능을 이해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신약 개발과 유전자 치료에도 활용할 수 있다.

 

극저온전자현미경(Cryo-Electron Microscopy)이 등장하기 전까지 과학자들은 주로 X선 결정학과 핵자기공명법(NMR)에 기댔다. 이 두 기술은 높은 해상도로 구조 정보를 얻을 수 있지만 몇 가지 단점이 있다. NMR은 50kDa 이상인 비교적 큰 분자의 구조 정보는 규명하기 매우 어려워 작은 단백질 분석에만 쓰인다.

 

kDa(킬로달톤)
Da는 달톤이라 부르며 원자의 질량을 나타내는 단위다. 탄소원자 질량을 12로 나눈 값을 1Da로 정의한다. k는 1000을 뜻한다.

 

X선 결정학은 결정을 강한 X선으로 회절시킨 뒤 그 패턴을 역으로 계산해 구조 정보를 얻는다. 이 방법의 경우 분자 크기에는 제한이 없지만 반드시 목표 분자를 규칙적인 분자 배열로 결정화시켜야 하는데, 일정 크기 이상으로 결정화되지 않는 일부 생체 분자의 경우 그 구조를 얻을 수가 없었다. 또 이 두 기술을 이용하려면 반드시 많은 양의 농축된 시료를 확보해야 하는 문제가 따른다.

 

기동안 서서히 완성돼 왔으며, 최근 기술 수준이 일정 궤도에 올라 X선 결정학과 NMR을 빠르게 대체하고 있다. 올해 노벨상 수상자들은 극저온전자현미경 기술을 개척해 생체 분자를 높은 해상도로 관찰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전자현미경으로 구조 확인 시도


리처드 헨더슨 박사는 1970년대 전자현미경을 이용해 단백질의 구조를 규명하려는 시도를 시작했다. X선 결정학자였던 그는 자신이 연구하던 단백질인 ‘박테리오로돕신’을 X선 회절에 적합한 결정으로 만들기 어려워지자 전자현미경을 이용할 방법을 고안했다.

 

15년 가까이 전자현미경을 이용해 단백질 구조 연구에 매달린 그는 해상도를 제한하는 여러 문제를 하나씩 해결해 나갔다. 그 결과 1990년 박테리오로돕신의 전자현미경 이미지를 원자 수준의 해상도로 얻는 데 최초로 성공했다.

 

그의 연구는 현재의 극저온전자현미경이라기보다는 X선 결정학의 X선을 전자로 대체한 ‘전자 결정학’이라고 할 수 있다. 생체 분자를 결정으로 만들고 농축된 시료를 이용해야 한다는 점에서 X선 결정학의 단점을 그대로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생체 분자 연구에 전자현미경을 활용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

 

 

 

2차원 사진으로 3차원 구조 만들어


요아힘 프랑크 교수는 헨더슨 박사의 방법을 직접적인 접근법으로 바꿨다. 헨더슨 박사는 전자빔을 이용해 규칙적으로 배열된 분자의 회절 정보를 얻은 뒤 이를 역으로 계산해 분자 구조를 확인하는 간접적인 방법을 사용했다. 반면 프랑크 교수는 생체 분자를 여러 방향에서 무작위로 사진을 찍은 뒤 각도에 따라 분자의 2차원 이미지를 계산한 뒤 이를 3차원 구조로 변환했다. 이를 ‘단입자분석법’이라고 부른다.

 

사실 이 방법은 여러 연구자들이 생각은 했지만 실행에 옮기지 못한 방법이었다. 생체 분자가 상하지 않는 수준의 약한 전자빔을 이용해 전자현미경 사진을 찍으면 매우 흐릿하게 나와서 결과적으로 생체 분자와 배경을 구분하기 어려워서였다.

 

프랑크 교수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유사한 입자들의 패턴을 같은 그룹으로 분류한 뒤 평균화시키는 방법에 몰두했다. 유사한 패턴을 같은 방향에서 찍은 사진으로 보고 마치 흐릿한 사진을 여러 장 겹쳐서 선명한 사진을 얻는 것처럼 평균화시키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각 방향에서 본 분자의 선명한 2차원 이미지를 계산할 수 있다.

 

결국 프랑크 교수는 1980년대 초 2차원 이미지를 분류하는 알고리듬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또 여러 방향의 2차원 이미지를 모아 3차원 구조를 모델링 하는 방법도 1980년대 중반에 완성했다.

 

 

저온 동결법 등장

 

자크 뒤보셰 교수는 1970년대 후반부터 독일 하이델베르크에 있는 유럽분자생물학연구소(EMBL)에서 생체 시료를 본연의 상태에서 전자현미경으로 관찰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했다. 진공 상태의 전자현미경 내부에서 시료를 둘러싼 용액이 증발하지 않으면서도, 전자빔이 용액을 통과할 수 있게 최대한 얇게 시료를 제작하는 기술이다.

 

이전까지는 주로 중금속 등으로 염색한 시료를 건조시켜서 증발을 피하는 방법에 의존했는데, 코팅된 금속에 의해 전자가 산란돼 해상도가 떨어지고, 건조로 인한 생체 시료의 변화로 구조 정보가 왜곡되는 현상을 피할 수 없었다.

 

대안은 시료를 동결시키는 것이다. 문제는 생체 분자를 둘러싼 용액이 얼면서 생긴 얼음 결정이 전자빔을 산란시킨다는 것이었다. 뒤보셰 교수는 물을 얼릴 때 나타나는 결정의 종류가 다르다는 데 주목했다. 물 분자가 규칙적으로 배열되는 일반 얼음 결정과 달리 매우 낮은 온도로 빠르게 냉각시킬 때 생기는 얼음은 결정이 불규칙한 유리질 얼음이 된다.

 

그는 실험을 반복하면서 액체 질소로 냉각한 액체 에탄을 이용하면 시료의 용액을 유리질의 얼음으로 만들 수 있다는 걸 확인했다. 이후 얇은 그물망에 용액을 얇게 바른 후 액체 에탄을 이용해 동결하는 방법으로 전자현미경에 이상적인 시료를 제작할 수 있었다. 뒤보셰 교수는 결국 1980년대 중반 저온에서 생체분자 이미지를 최초로 얻을 수 있었다.

 

 

‘극저온전자현미경 혁명’으로 불려


프랑크 교수의 단입자분석법과 뒤보셰 교수의 동결시료 제작법은 전자현미경을 이용한 생체 분자 연구에서 현재 가장 이상적인 방법이다. 다만 이 기술이 만들어진 1980년대에는 해상도가 3nm 이상으로 생체 분자를 선명하게 관찰하기에는 상당히 낮았다. 헨더슨 박사는 그 원인이 전자현미경 때문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적당히 강하면서도 정확하고 균일하게 전자빔을 쏘아줄 수 있는 전자총과, 시료를 통과한 개별 전자를 정밀하게 검출할 수 있는 카메라가 필요했다.

 

이후 약 20년간 많은 과학자와 기술자들이 협력해 전자현미경을 개선하는 데 힘을 쏟았다. 그 과정에서 해상도가 차츰 높아졌고, 결국 2013년부터 최적화 된 극저온전자현미경이 여러 대학과 연구소에서 본격적으로 가동되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고해상도의 생체 분자 구조가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특히 X선으로는 수십 년을 노력해도 얻기 힘들었던 리보솜, ATP 합성효소, RNA 합성효소 등 생체 분자 중에서도 크고 복잡한 거대 복합체의 구조가 너무나도 쉽게 밝혀지고 있다. (얼마나 어려웠냐 하면, 리보솜과 ATP 합성효소, RNA 합성효소 복합체를 결정화시켜서 그 구조를 X선으로 규명한 사람들은 모두 노벨상을 받았다.) 그래서 지금은 ‘극저온전자현미경에 의한 혁명’이라는 표현까지 등장했다.

 

필자는 현재 헨더슨 박사의 연구 터전인 LMB에서 연구하고 있다. 극저온전자현미경 혁명이 막 시작되던 2013년부터 이곳에서 일하기 시작해, 그 과정을 전부 지켜볼 수 있었다. 헨더슨 박사 덕분에 LMB는 최적화된 전자현미경을 가장 먼저 시험해볼 기회를 가졌다. 그 결과 극저온전자현미경을 이용한 최초의 고해상도 결과들은 대부분 LMB에서 나왔다. 그리고 더 좋은 결과를 얻기 위한 개선 작업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헨더슨 박사는 70을 넘은 나이에도 여전히 쉬지 않고 일하면서 이 개선 작업에 참여하고 있다. 필자는 매일 복도를 열심히 뛰어다니는 그의 모습을 본다.

 

헨더슨 박사의 노벨상 수상 발표일 저녁 LMB에서는 샴페인 파티가 열렸다. 연구소에서 일하는 약 400명의 연구원이 모두 모였다. 그 자리에서 헨더슨 박사는 수상 소감을 전하면서, 가장 먼저 공동 수상자인 뒤보셰 교수와 프랑크 교수에게 경의를 표했다. 또 지금까지 극저온전자현미경에 공헌했던 모든 사람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호명하며 그들의 업적을 설명하고 감사를 표했다. “올해 노벨상 수상자는 세 명이지만, 극저온전자현미경 기술을 발전시켰고 앞으로 더 발전시킬 모두가 주인공”이라는 말과 함께. 

 

 

이병길
고려대에서 구조생물학을 전공해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영국 MRC 분자생물학연구소에서 박사후연구원으로 일하며 세포분열과 관련된 생체분자의 구조를 연구하고 있다.
blee@mrc-lmb.cam.ac.uk

 

 

 

‘과학동아’가 1년 먼저 알아본 리처드 헨더슨 박사

 

리처드 헨더슨 박사는 1996년부터 2006년까지 무려 10년 동안 LMB의 소장을 지낸, LMB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다. 1947년에 설립된 LMB는 헨더슨 박사를 포함해 지금까지 노벨상 수상자만 15명을 배출해 ‘노벨상 공장’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DNA 이중나선 구조를 밝힌 프랜시스 크릭과 제임스 왓슨이 이 연구소의 원년 멤버다.

 

기자는 지난해 핸더슨 박사를 직접 취재할 기회가 있었다. 과학동아 10월호 특집기사로 노벨상 탐사보도를 준비하면서 LMB를 방문해 헨더슨 박사를 인터뷰했다. 핸더슨 박사는 인터뷰 전날, 기자가 사전에 보낸 질의서에 답변을 일일이 달아 e메일로 회신해 준 세심한 과학자로 기억된다. 물론 기자는 인터뷰에서 하나라도 더 물어보고 싶은 마음에 추가 질문을 만드느라 밤늦게까지 노트북을 붙들고 있긴 했지만 말이다.

 

LMB는 케임브리지 외곽에 자리 잡고 있다. 당시 8월이었는데도 한국의 초가을처럼 서늘한 바람이 불었다. 헨더슨 박사는 자신의 연구실에서 기자를 맞았다. 파란색 니트와 카키색 바지 차림이었던 그는, 흰 머리카락에도 일흔이 넘었을 거라고는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 에너지가 넘쳤다. 목소리도 또렷하고 힘이 넘쳤다.

 

당시 인터뷰에서 그는 “연구 그룹이나 예산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연구할 수 있도록 보장한 제도가 뛰어난 연구 성과를 쏟아내는 LMB의 비결”이라고 밝혔다. 헨더슨 박사 본인도 이런 제도의 수혜자였다. 2009년 노벨화학상 수상자인 토머스 스타이츠 예일대 교수가 1967~1970년 LMB에서 연구했는데, 당시 다른 연구 그룹에 있던 헨더슨 박사는 스타이츠 교수와 차를 마시다가 얻은 아이디어로 이튿날부터 새로운 연구를 시작했다. 6개월 뒤 두 사람은 키모트립신이라는 효소의 구조와 작용 원리를 세계 최초로 밝혔다.

 

 

헨더슨 박사는 기자에게 그림 한 장을 보여줬다. LMB 연구원들의 공동 연구 관계를 나타내는 네트워크였다. 마치 거미줄처럼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LMB에서는 연구 그룹 간의 장벽이 없다는 게 새삼 피부에 와 닿았다.

 

그는 “티타임을 포함해 LMB의 모든 문화와 시설, 조직은 연구자 사이의 네트워크를 견고하게 다지기 위해 존재한다”며 “그룹별로 정해진 연구 예산은 따로 없고 모든 그룹이 필요한 만큼 나눠 쓰기 때문에 협력 연구에 장벽이 없다”고 말했다. 협업의 결과가 여러 차례 노벨상 업적으로 이어지는 것을 직접 경험한 만큼 연구소의 모든 조직과 구조는 협업을 장려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인터뷰를 마치기 전, 그는 기자에게 LMB에서 함께 일했던 한국인 동료 이야기를 했다. 이현숙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와 이수재 충북대 약대 교수 등이다. 인터뷰를 마친 뒤에는 이병길 박사에게 “함께 사진을 찍자”며 “사진이 언론에 나가면 이 박사도 한국에서 유명해질 것”이라며 농담을 건네기도 했다.

 

지난해 10월호 과학동아에 한 번 소개되고 끝났을 사진이 헨더슨 박사의 노벨상 수상으로 한 번 더 실리게 됐으니 그의 말이 어느 정도는 사실이 된 셈이다. 덕분에 기자도 노벨상 수상자를 1년 일찍 만났다는 흐뭇한 기억을 가질 수 있게 됐다.

 

이미지 출처: Columbia University, MRC LMB, Felix Imhof ⓒUNIL,ⓒ Martin Hogbom/The Royal Swedish Academy of Sciences, Nature, Royal Swedish Academy of Sciences, ⓒ Johan Jarnestad/The Royal Swedish Academy of Sciences, 최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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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1월 과학동아 정보

  • 이병길 영국 MRC 분자생물학연구소 연구원
  • 에디터

    최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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