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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3. [생리의학상] 생체시계 유전자들의 하모니 ‘분자시계’ 규명

 

대전에서 학부 4년을 마치고 1999년 필자가 입학한 대학원 실험실에는 한 가지 특별한 규칙이 있었다. 오전 9시 30분 출근, 이후 30분씩 늦을 때마다 1000원씩 벌금을 내 모인 돈으로 10명 남짓한 구성원들이 함께 점심을 사먹는 단순하지만 엄격한(?) 규칙이었다. 사람들이 말하는 전형적인 ‘올빼미형’ 생활패턴을 갖고 있던 필자는 가장 많은 벌금을 내야 했다.

 

‘사람의 성실함이 아침형 인간과 올빼미형 인간의 생활패턴을 결정하는 것은 아닐 텐데, 혹시 내 올빼미형 생활 패턴은 부모님께 물려받은 것은 아닐까?’

 

분자생물학 연구를 막 시작한 필자가 개인 차이를 무시하고 출근 시간을 일괄적으로 정해버리는 실험실 규칙의 부당함에 맞설 수 있는 방법은 이처럼 귀여운(?) 가설을 세우는 것뿐이었다.

 

필자는 형질전환 초파리를 이용한 생체시계 연구를 국내에서 본격적으로 시작한 2004년 무렵에서야, 위와 똑같은 가설을 초파리 동물 모델을 이용한 실험으로 증명해낸 연구 논문이 1971년에 이미 발표됐다는 사실을 알았다.

 

 

최초로 찾아낸 생체시계 유전자 ‘피어리어드’


행동유전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시모어 벤저 미국 캘리포니아공대의 교수는 1960년대 말, 학습과 기억, 수면 같은 행동이 특정한 유전자에 의해 조절될 수 있다는 가설을 세웠다. 하지만 당시 과학자들은 이 가설에 호의적이지 않았다. 동물의 행동은 너무 복잡해서 단순히 몇 개의 유전자들에 의해 조절되는 현상을 관찰하기란 쉽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벤저 교수와 그의 제자인 로널드 코놉카 박사는 가설을 입증하기 위해 초파리를 이용한 유전학적 실험법을 도입했다. 이 실험법은 초파리 염색체에 무작위로 유전자 변형을 일으킨 뒤, 비정상적인 행동을 하는 돌연변이 초파리를 찾아내 행동을 변화시킨 돌연변이 염색체와 유전자 부위를 밝혀내는 방법이다.

 

실험 결과, 특정 유전자 하나의 기능이 마비된 돌연변이 초파리가 정상 초파리와는 매우 다른 행동 양상을 나타내는 현상을 관찰하는 데 성공했다. 벤저 교수가 결국 자신의 가설을 입증한 것이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성체 초파리들이 매일 아침에는 번데기에서 부화하고, 낮 동안에는 활발히 움직이는 24시간 주기의 생체리듬은, 최초의 생체시계 유전자로 명명된 ‘피어리어드(period )’ 유전자에 의해 조절된다. 피어리어드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생긴 초파리는 24시간보다 길거나 짧은 주기의 생체시계를 갖거나 아예 그 주기성을 잃어버린다.

 

이 연구 결과는 유전자 하나하나의 기능이 동물 행동을 조절한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증명했을 뿐만 아니라, 올해 노벨생리의학상의 공동 수상자로 선정된 홀, 로스배시, 영 교수의 생체시계 유전자 연구의 뿌리가 됐다. 안타깝게도 벤저 교수와 코놉카 박사는 각각 2007년, 2015년에 사망해 노벨상 수상자가 되지 못했다.

 

 

‘분자시계’의 블랙박스를 풀다


인간을 포함해 다양한 생명체의 생체시계는 크게 세 가지 구성 요소로 이뤄져 있다. 외부 환경의 빛이나 온도 변화 등을 통해 시간에 관한 정보를 생체 내로 전달해주는 ‘입력’, 우리 몸을 구성하는 각 세포들이 24시간 주기로 유전자를 반복적으로 발현시키는 ‘분자시계’, 그리고 이런 분자 시계에 따라 생체 리듬과 관련된 우리 몸의 생리현상을 조절하는 ‘출력’이다.

 

올해 노벨생리의학상 수상자의 가장 큰 업적은 이 중 ‘분자시계’를 구성하는 생체시계 유전자들 을 발견하고, 이들 유전자의 작동 원리 모델을 확립한 것이다. 이를 전문용어로는 ‘전사-번역 되새김 고리(transcription-translation feedback loop)’ 모델이라고 한다.

 

초파리 유전학자인 홀 교수와 분자유전학자인 로스배시 교수는 미국 브랜다이스대에 함께 근무하는 동안 공동연구를 통해 생체시계의 작동 모델과 관련된 주요 연구 논문들을 발표했다. 영 교수는 록펠러대에 재직하며 독립적으로 연구 결과를 발표했는데, 브랜다이스대 팀과 치열한 경쟁 관계였다. 노벨상위원회가 공식 웹사이트에 공개한 인터뷰에서 영 교수는 “달리기 시합과도 같은 연구 경쟁을 통해 서로의 퍼즐조각을 맞춘 결과 분자시계 작동 모델을 확립할 수 있었다”고 언급했다.

 

이들이 협력으로 완성한 분자시계 작동 원리는 다음과 같다. 하루 중 특정 시간에 피어리어드 유전자의 ‘전사’가 활성화된다. 피어리어드 유전자의 DNA 염기서열이 RNA 중합 효소에 의해 동일한 염기서열을 갖는 RNA분자로 합성되는 것이다. 즉, 피어리어드 전령RNA(mRNA)가 증가한다.

 

이어서 RNA 번역 과정이 일어난다. 단백질 합성을 담당하는 세포소기관인 리보솜이 피어리어드 mRNA에 결합해, RNA 염기서열에 따라 특정 아미노산 서열을 가진 ‘피어리어드 단백질’이 합성되는 것이다. 생성된 피어리어드 단백질은 세포질 내에 쌓인다.

 

 

일정 시간이 지나면 또 다른 생체시계 유전자에 의해 만들어진 ‘타임리스 단백질’이 피어리어드 단백질을 끌고 세포핵 안으로 들어간다. 그 결과 피어리어드 유전자의 전사 과정이 방해를 받게 된다. 이에 따라 피어리어드 mRNA와 단백질의 양이 감소하고, 피어리어드 유전자의 전사가 다시 활성화된다. 이 과정이 24시간을 주기로 반복적으로 일어난다.

 

생체시계 연구 초기의 이 같은 전사-번역 되새김 고리 모델은, 이번 노벨생리의학상 수상자뿐만 아니라 필자를 포함한 여러 과학자들이 후속 연구를 통해 계속 개선하고 있다.

 

그 결과 지금까지 전사를 조절하는 생체시계 유전자들이 3개의 전사-번역 되새김 고리로 서로 맞물려 있으며, 포유류에서도 이와 유사한 모델이 작동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또, 전사 조절뿐만 아니라 RNA 번역이나 단백질 합성 및 변형, 단백질 분해단계에서의 유전자 발현 조절도 24시간 주기의 분자시계를 만들어내는 주요 원리로 규명되고 있다.

 

 

건강과 양질의 삶 연구에 영향


초파리의 생체시계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생기면 생체 리듬의 주기성이 사라지기도 한다. 흥미롭게도, 인간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진다. 인간이 가진 피어리어드 유전자에 변형이 일어날 경우 생체 리듬 주기가 변하고, 이에 따라 아침형 혹은 올빼미형 생활 패턴을 동반하는 유전질환이 나타난다. 생체리듬을 구성하는 생체시계 유전자와 그 작동 원리가 초파리와 인간뿐만 아니라 다양한 종에서 매우 유사하게 작동하기 때문이다.

 

이유는 이렇다. 24시간 주기의 지구 자전은 낮과 밤, 대기 온도 등 매일 규칙적인 환경 변화를 일으킨다. 최초의 원시 생물이 생겨난 이래로, 이런 일주기적 환경 변화는 지구상에 존재하는 생명체의 생존과 진화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즉, 박테리아에서부터 인간에 이르기까지 지구상에 존재하는 대부분의 생명체는 이런 24시간주기의 환경 변화를 예측해 적응하고 살아갈 수 있도록 24시간 주기의 생체시계 유전자를 유지해 온 것이다.

 

이에 따라 모든 생명체는 다양한 생리 작용을 하루 중 특정 시간에 최적화해 조절하고 있다. 식물의 개화, 동물의 수면 조절, 호르몬 분비, 대사 작용, 인지 능력, 포유류의 체온 및 혈압 조절 등이 해당한다.

 

요컨대, 생체시계 유전자와 분자시계 모델로 대표되는 ‘일주기 생물학’은 궁극적으로 우리 건강과 양질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생체시계 국제학회에 참석할 때마다 필자는 70세가 넘은 나이에도 현역 과학자로서 여전히 왕성하게 활동하는 로스배시 교수와 영 교수를 마주친다. 이들의 학회 발표와 연구 논문, 다양한 질문은 필자와 같은 젊은 과학자들에게 영감과 교훈을 준다.

 

로스배시 교수 실험실의 박사후연구원으로 있으면서 생체시계 유전자 중 하나인 ‘클락(clock )’을 처음으로 발견한, 필자의 박사후연구원 지도교수였던 라비 알라다 미국 노스웨스턴대 교수는 로스배시 교수에 대해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때로 엉뚱하고 말도 안 되는 모델을 세우고, 많은 경우, 어쩌면 대부분의 경우 틀리지만, 끊임없이 생각하고 질문한다”고. 바로 이런 점이 생체시계 발견을 이끈 원동력이었을 것이다.

 

 

임정훈
울산과학기술원(UNIST) 생명과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RNA 번역에 의한 유전자 발현, 분자시계 및 루게릭 병의 조절 원리를 연구하고 있다. clim@unist.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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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1월 과학동아 정보

  • 임정훈 울산과학기술원(UNIST) 생명과학부 교수
  • 자료출처

    Mattias Karlen
  • 에디터

    우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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