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산의 고산지대에 피는 꽃들은 식물체에 비해 꽃이 크고 또한 꽃색깔이 다양하고 화려해 장관을 이룬다.
세계 생물권 보존지구의 하나인 백두산은 한반도 북쪽 북위 42°7′에 있는 산이다. 중국과의 국경선지대 내에 있어 중국에서는 장백산(長白山)이라 한다. 백두산은 가장 높은 봉우리인 장군봉이 해발 2천7백49m에 달하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산이며 많은 고산식물들이 1천8백m이상 높은 지대에 살고 있다.
이 고산식물이 나는 곳은 온통 풀로 덮여 있는 것같이 보이나 그 속에는 풀과 같이 키가 작은 나무종류가 함께 자라고 특이한 풀과 나무종류가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남한의 높은 산인 설악산 지리산 한라산 등에 나지 않는 색다른 식물들이 많다. 이 식물들은 5월 중순경부터 9월 중순사이에 생활을 활발히 하고 10월에서 5월 중순까지는 동면한다. 한라산의 산정 부근에서 3월경부터 11월경까지 식물들이 생활하고 12월에서 2월 말경까지 동면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1천8백m 이상에서 자라는 식물
백두산의 고산식물대는 백두산 남부, 즉 북한측에서는 대략 해발 2천m 이상과 백두산 북부, 즉 중국측에서는 대략 해발 1천8백m 이상의 고지대에 해당한다. 따라서 남한에는 고산식물대를 이루고 있는 산이 없다.
지금까지 조사된 백두산 고등식물은 1천3백여 종, 그중 백두산의 고산에 나는 꽃피는 고등식물은 2백여 종에 불과하다. 이 고산지대에 피는 꽃들은 식물체에 비해 꽃이 크고 또한 꽃색깔이 다양하고 화려해 장관을 이룬다.
1886년 7월13일 외국인으로서 처음 백두산정에 올랐던 영국의 제임스는 아름다운 식물들의 꽃들을 발견하고 감격했을 것이다. 그리고 러시아의 학자 코마로프는 1899년, 일본학자 나카이(中井)는 1914년에 각각 백두산에 올라 탐사했고 우리나라의 정태현(鄭台鉉)선생은 나카이와 같이 여러 차례 백두산정을 올라 나카이에게 학문적 도움을 주었다. 그 후 1941년 기타가와(北川)가 만주측에서 백두산 식물을 조사 발표했다.
그리고 해방 후에는 중국학자들의 연구가 계속돼 상당한 진전이 있다. 북한측에서도 연구가 있는 것으로 생각되나 정확한 것은 찾아 볼 수 없다.
늦은 감이 있으나 필자는 1988년 10월, 1989년 8월 초, 1990년 7월, 1991년 7월, 1992년 6월, 1992년 9월과 1994년 7월, 모두 7차에 걸쳐 백두산정에 올라 특히 고산 식물대의 식물을 조사했다('백두산의 꽃' 이영노편 참조, 1991). 갈때마다 고산지대 꽃밭의 아름다움과 경이로운 장관은 찌드는 머리를 말끔히 씻어주고도 남았다.
백두산정에서 수목 한계선까지 고산꽃밭을 걸어보면 산정의 화산암에는 지의류(地衣類)가 들러붙어 있는 것을 볼 수 있고 초고(草高)가 2-3cm에서 5-60cm까지 고도가 낮아짐에 따라 점차적으로 커지는 것을 볼 수 있다. 정상 부근은 화산암과 화산재로 덮여 있는 땅이 그대로 노출돼 있는 곳이 많다. 그러나 밑으로 내려감에 따라 점차적으로 고산식물이 땅을 완전히 덜어 풀방석을 이루고 풀방석의 두께도 점차 두꺼워져 마침내 스펀지와 같은 풀밭을 이룬다.
꽃밭을 이루고 있는 식물종류는 벼과 사초과 국화과 석죽과 버드나무과 진달래과 콩과 미나리아재비과 식물들이 주류를 이룬다.
6월경에 백두산정을 장식하는 꽃으로는 첫째로 철쭉과에 속하는 노랑만병초를 들 수 있다. 특히 수목 한계선에 이르면 절정을 이룬다. 만병초꽃이 흰 데 비해 노랑만병초는 노랗다. 대개 땅에 깔려 반짝이는 짙은 녹색(常緣)의 잎 위에 노란 꽃이 잔설을 젖히고 핀다.
그리고 철쭉과에 속하는 담자리참꽃을 들 수 있다. 이 꽃은 키가 10여cm 밖에 되지 않는 목본식물로서 꽃이 진분홍색으로 군락을 이룬다. 잎이 약간 두껍고 타원형이며 진달래잎과 닮았으나 아주 작다. 7, 8월 필자가 등산했을 때 꽃은 없고 곧게 선 길쭉하고 작은 열매만 보여 어리둥절했었다.
다음으로 떼지어 희게 피는 고산식물은 장미과 식물에 속하는 담자리꽃나무다. 땅에 딱 들러붙어 있는 풀모양의 나무다. 잎이 타원형인데, 잎뒤는 희고 잎의 윗면은 짙은 녹색이며 흰색의 꽃잎은 8장이다. 이 식물의 학명은 Dryas octopetala다. 속명 Dryas는 그리스어로 여신이라는 뜻이고 종을 나타내는 형용사 octopetala는 꽃잎이 8장이라는 뜻이다.
콩과 식물의 자주꽃이 피는 두메자운도 군락을 이루고 연약한 백합과 식물인 하얀 개감채꽃도 6월 백두산 고산초원의 대표적인 식물이라 할 수 있다.
7월에 절정 이루는 고산식물대의 꽃
7월경에는 백두산 고산식물대의 꽃이 절정을 이룬다. 첫째로 노란 두메양귀비꽃을 들 수 있다. 산정에서 수목한계선까지 바위틈과 자갈밭에 나는 넓은 꽃잎 4장이 꽃대 위에 1개씩 달리는 양귀비 닮은 아름다운 꽃이다. 이와 비슷한 종류는 북극해에 면하는 동토대는 물론 천산(天山) 고산초원에도 나있어 학술적 분포 가치를 더해 주고 있다.
둘째로 좀참꽃을 들고 싶다. 이는 철쭉과에 속하는 아주 작은 나무다. 키가 10여cm 되고 분홍색의 꽃이 식물체에 비해 훨씬 크게 핀다. 온 산정을 꽃방석처럼 덮고 있어 그 장관은 어디에 비길 데가 없다. 필름을 아끼는 필자가 30여번 셔터를 누르고도 아쉬움이 있었다.
가솔송도 철쭉과에 속하는 풀같은 작은 나무다. 이 나무에는 붉은 꽃이 방울처럼 주렁주렁 매달린다. 잎은 소나무 같으나 소나무가 아니라서 가솔송으로 불린다. 이 식물도 북극 한대 식물로서 동토대를 대표할 아름다운 꽃식물이다.
그리고 약간 습한 곳에 잘 나는 백두산 특산식물로 국화과의 껄껄이풀이 노랗게 핀다. 화살분취는 잎이 화살 같고 꽃이 노랗게 대형으로 피는 곰취를 닮은 국화과 식물이다. 대개는 초원 골짜기 다습한 곳에 떼를 지어 난다. 제임스가 1886년 최초로 채집했기에 학명을 Ligularia jamesii로 지었다.
한라산과 가야산 등지에서 볼 수 있는 현삼과의 구름송이풀은 백두산정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아름다운 붉은 꽃이다. 우리나라 중부 설악산과 대암산 등에 나는 비로용담은 짙은 하늘색으로 싱싱하고 풍부하게 분포돼 있다.
산매발톱 구름국화 산용담 손바닥난초 염주황기 두메분취 들쭉 린네풀 돌꽃 오리나무더부살이 등도 7월에 볼 수 있는 아름다운 백두산의 고산꽃밭 식물들이다.
2천7백m가 넘는 고산, 그리고 그 가운데에는 광대하고 파란 천지(天池)로 돼 신비스럽기 한이 없는 이 산정둘레에는 고산의 꽃들로 덮여 있다.
백두산은 지금으로부터 3백년이 채 못되는 1702년 4월 마지막으로 폭발해 식물 한 포기 살 수 없었던 벌거숭이 화산이었다.
오늘날 이 꽃밭을 형성하고 있는 식물들은 화산분출이 끝나고 식물이 살 수 있는 환경조성이 이루어진 뒤에 백두산을 둘러싸고 있는 북한의 고산, 시베리아 캄차카와 북구 등의 식물 종류들이 자연적인 여러 경로를 통해 들어 왔을 것으로 보고 있다.
백두산은 고산 식물대가 있는 산이고 고산 식물의 꽃밭이 발달된 식물보고에 속한다. 백두산의 고산 식물대는 백두산의 존재가치를 높이고 학술적인 연구도장 교육도장 그리고 관광명소로 오래 잘 보존해야 할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