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하고 쾌적한 미래도시를 만들어 「철수 아버지」의 하루를 책임져 줄 작정이다.
20××년 5월 ××일 월요일. 대전시 주거전용지역에 위치한 드림(Dream)아파트 53층 5312호.
오전 8시 20분, 철수 아버지의 출근시간이다. 가볍게 식구들과 식사를 마친 후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엘리베이터 안에는 아침을 알리는 음악이 가득해 상쾌함을 한층 돋우어 준다. 출근을 위해 역까지 운행하는 모노레일을 기다리고 있는 이웃들과 가볍게 인사를 나누고는 함께 모노레일에 오른다.
커다란 모노레일의 창밖으로 대전시가 펼쳐진다. 가까이 보이는 주거전용지역에는 단조로움을 피하기 위해 계획된 고층과 중층 저층 아파트들이 조회를 이루며 서 있다. 회색 일변도의 예전의 아파트들과는 달리 건물마다 특징이 있다. 하늘을 배경으로 해 펼쳐진 거대한 벽화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든다.
길을 따라 연이어 있는 잘 조경된 푸른 나무들을 감상하다 보니, 공장지대가 눈에 들어 온다. 히늘을 찌를 듯이 솟아 있는 공장 건물들. 공장은 태양열을 이용하기 때문에 굴뚝이 없는 세련되고 멋진 모습이다.
곧 이어 펼쳐지는 넓은 채소밭. 무공해로 길러지는 갖가지 채소들이 아침 햇빛에 싱그럽다. 채소밭에 물을 공급하는 스프링클러들이 계속 도리질을 하면서 뽀얀 물줄기를 사방에 뿜는다. 허공에서 가늘게 부서져 고운 무지개를 만들어낸 후 채소에 내려 앉는 뽀얀 물방울들은 5월의 신선함과 풍요로움을 한층 더해준다. 모노레일에서 내려다 본 도시는, 푸르른 녹음속에서 솟아 나온 다양한 모양의 건물들이 마치 춤을 추는 듯한 생동감을 느끼게 해준다. 자기부상열차역에 도착한 철수 아버지는 깊게 심호흡을 해본다. 맑은 공기의 쾌감이 가슴 구석구석까지 느껴진다.
도시 전체에 잘 조성돼 있는 숲과 나무들이 언제나 신선한 공기를 마음껏 호흡할 수 있게 해 주는 것이다.
자기부상열차인 모던레일이 도착함을 알리는 차임벨 소리가 역안에 잔잔히 흐른다. 천천히 역으로 들어와 멈춰선 모던레일의 문이 열리고 철수 아버지는 많은 사람들과 함께 서울행 모던레일에 올랐다. 좌석에 앉아 안내방송에 따라 안전벨트를 착용한다. 공중으로 살짝 뜨는 듯한 느낌, 약간 뒤로 밀리는 듯한 기분을 느끼는 듯 했는데, 벌써 창밖의 풍경들은 빠른 속도로 뒤로 밀리고 있다.
모던레일에 감사하며
전혀 흔들림과 소음이 없어 안락한 분위기를 갖추고 있는 열차 안에는 새로운 아침을 맞이하는 사람들로 활기가 넘친다. 서로 담소를 나누고 있는 사람들이 있고, 조용히 신문이나 책을 읽고 있는 이들, 그날의 업무를 준비하는 이들이 눈에 들어온다. 그래서 어느 때는 사무실에 앉아 있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킬 때도 있다.
열차는 어느 새 한강을 지나가고 있다. 얼른 눈을 돌려 창밖에 펼쳐져 있는 모습을 본다. 파아란 하늘과 함께 맑고 깨끗한 한강에는 유람선이 유유히 강물을 가르며 흐르고 있다. 여기저기서 많은 철새들의 비상하는 모습이 보이고, 무얼 생각하고 있는지 점잖게 물위에 떠있는 새들도 보인다.
9시 서울역 도착.
빠르고 편안하게 수송해준 모던레일에게 고마움을 느끼며, 철수 아버지는 광장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철수 아버지의 코를 통해 호흡되는 공기. 대전에서의 상쾌함과 신선함 그대로다. 넓게 뚫린 도로에는 러시아워인데도 지동차들이 정상속도로 질주하고 있고, 소음 또한 거의 없다. 철수 아버지의 근무지인 오피스빌딩은 광장에서 멀지않은 곳에 위치해 있다. 광장에서부터 오피스빌딩까지 잘 다듬어진 보행로는 상쾌한 출근길을 더욱 상쾌하게 해준다.
그림 그리기 취미를 살려
이상은 내가 가상해본 21세기의 도시 계획상이다.
대학 입학원서를 내기 위해 며칠을 고민한 끝에 얻어낸 결론은 '서울시립대학교 도시계획학과'였다. 그림을 그리는 것에 흥미도 있었지만, 나의 결정에 큰 역할을 한 것은 도시를 계획한다는 생소한 학과 이름이었다.
입학과 동시에 교양과목과 함께 나에게주어진 것은, 전공기초과목인 묵직한 원서한권이었다. 한 학기는 원서와 씨름하면서 지냈다. 2학기에는 설계표현기법이 전공과목으로 배당돼 있었다. 그림 그리는 것에 흥미가 있던 터라 정말 재미있게 또 한 학기를 보냈다.
그러나 2학년이 되자 전공에 관계된 약간은 무거운 과목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도시 계획사를 특히 흥미롭게 배웠다. 과거와 현재를 정확히 알아야 미래를 예측하고 계획할 수 있다는 가정아래. 이와 병행하여 기초설계에도 들어 갔다.
다양한 도시문제들을 해결하려면 어느 한 부분만 가지고는 어림없다. 때문에 이를 종합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주택 교통설계 등 다양한 과목을 접하게 되었다. 나는 그중에서도 설계과목이 제일 마음에 들었다.
설계실에서 학우들과 함께 밤을 꼬박 새워 설계를 하던 일이 지금도 인상깊게 남는다. 새로 맞이하는 아침은 정말 상쾌하다.
학우들과 함께 붉어오는 동쪽 하늘을 바라보며 새 아침을 맞는 신선함이란…. 이를 어찌 표현할 수 있으랴. 어느 때는 후배들과 함께 밤을 새워 설계를 하기도 하는데, 후배들은 가끔 이런 질문을 해온다.
“선배님, 지금하고 있는 것이 나중에 우리에게 정말 도움이 되나요. 밤을 새우면서까지 할 가치가 있나요"
이에 대해 나는 언제나 이렇게 대답해준다.
“아우야, 무슨 일이든지 말이다. 처음부터 완벽해질 수는 없겠지. 조그마한 기계 하나를 보아도 금방 알 수 있지. 그것들은 따로 떼어놓으면, 아무 소용이 없지만, 그것들이 합쳐지면 비로소 기계로서의 역할을 다하는 것이 아니겠니. 우리가 지금 밤을 새워가며 하는 일들이 언젠가는 밝아오는 새 아침의 동녘 하늘처럼 네 앞에 나타나게 될거야”
2년간 공부하면서 도시를 계획한다는 것이 생각처럼 쉽고, 단순한 작업이 아님을 깨달았다. 실제로 변화성과 복잡성을 그 특징으로 하고 있는 현대도시의 미래상황을 예측하고, 도시를 계획한다는 것은 매우 어렵고 까다로운 작업이다.
도시계획이란 학문은, 그래서 경제 사회 문화 지리 환경 등 모든 학문의 결정체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까다롭고 어려운 학문, 그러나 그 학문 속에 풍요로운 인간의 '주'(住)생활이 있다는 짜릿한 보람과 긍지가 있기에, 젊은이라면 한번 부딪쳐볼 만한 학문이라 생각한다.
인간과 함께 숨쉬고 움직이는, 건강하고 쾌적한 21세기의 도시를 나의 손으로 꼭 계획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