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가 쓰는 컴퓨터 영문 자판을 보면 왼쪽 윗부분 철자들이 Q, W, E, R, T, Y의 순서를 하고 있다. 이런 순서 때문에 이 자판은 일명 ‘쿼티’(QWERTY) 자판이라고 불린다.
쿼티는 컴퓨터가 보편화되기 이전인 타자기 시대에 표준 자판이었는데, 이것이 컴퓨터 시대까지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쿼티 자판의 우수성이 오랜 세월 독보적인 지위를 가능케 했던 것일까. 1930년대 쿼티 대 드보락(Dvorak) 자판의 경쟁은 그렇지만은 않았음을 보여준다. 최초로 실용적인 타자기 개발에 성공한 사람은 52번째 타자기 발명자로 기록된 미국의 크리스토퍼 라삼 숄즈였다.
그는 밀워키 지방의 인쇄업자로 발명이 취미였는데, 1867년 친구인 칼로스 글리든과 사무엘 소울의 도움으로 타자기 특허를 획득했다. 이들이 만든 타자기는 작은 피아노와 식탁을 합친 모양이었다.
이들은 타자기를 직접 생산할 자본이 없었으므로 기업가였던 덴스모어와 요스트에게 특허를 팔아버렸다. 하지만 이들 역시 자체적으로 타자기를 제작할 능력이 없었기 때문에 당시 재봉틀과 권총을 만들던 레밍턴사와 생산 계약을 맺었다. 이렇게 탄생한 것이 상업적으로는 최초로 성공을 거둔 ‘숄즈와 글리든 타자기’(Sholes and Glidden Type-Writer)였다.
숄즈가 처음에 이 타자기를 개발해 특허를 냈을 때 타자기의 철자 막대는 알파벳 순서로 두 줄이었다. 하지만 타자기를 제작하고 작동 실험을 하면서 자판 배열에 문제가 있음이 발견됐다. 조금만 빨리 자판을 쳐도 철자 막대들이 서로 뒤엉키곤 했던 것이다. 이에 숄즈는 T나 H처럼 함께 자주 쓰이는 철자들을 서로 띄어 놓으면 뒤엉킴이 덜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자주 쓰이는 철자쌍을 연구해 이들을 가능한 서로 떨어지도록 배치한 결과 총 4열에 왼쪽 위에는 QWERTY가 배열된 자판을 내놓았다.
1873년 레밍턴에서 생산한 최초의 타자기는 이 자판이었다. 이 자판은 그 뒤 약간의 변형을 거쳐 레밍턴 타자기가 대량으로 생산되던 1880년대에는 거의 지금의 모습을 하게 됐다.
숄즈의 해결책은 인체공학적으로 보면 합리적인 것은 아니었다. 철자 막대의 엉킴은 확실히 줄었지만 엉킴을 막기 위해 자판을 배열하다보니 가장 많이 쓰이는 철자들을 상대적으로 약한 손가락들이 쳐야 했다. 때문에 당시 유명 작가들은 숄즈가 일부러 타자 속도가 빠른 타자수들의 속도를 낮춰 엉킴을 방지할 속셈으로 쿼티 배열을 택했다고 불평하기도 했다.
레밍턴 타자기가 대량으로 보급되면서 숄즈의 자판 역시 널리 퍼졌다. 이에 힘입어 더 이상 철자 막대를 사용하지 않게 된 1880년대 말에도 숄즈의 자판은 그대로 쓰이게 됐고, 1895년 이후로는 보편적인 표준 자판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표준 자판을 써본 사람들은 인체공학적 결점을 쉽게 알아차릴 수 있었다. 때문에 몇몇 발명가들은 레밍턴 타자기가 시장을 석권한 뒤에도 계속해서 새로운 자판을 내놓았다. 하지만 이내 실패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던 중 1932년 워싱턴대 오거스트 드보락 교수가 카네기재단의 지원을 받아 쿼티를 대체할 수 있는 자판을 발명했다.
드보락 자판은 중앙에 5개의 모음(A, O, E, U, I)과 가장 많이 쓰이는 자음(D, H, T, N, S)을 배치했다. 자주 쓰는 철자들을 모으고 가능한 한 오른손으로 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왼손이 놓이는 곳에는 잘 쓰지 않는 철자를 배치했다. 이로써 드보락 자판에서는 양손을 번갈아 고루 쓸 수 있어 타자를 치는 리듬이 고르게 유지됐다.
중간 자판만으로도 일상적으로 쓰이는 단어 400개는 충분히 칠 수 있어 타자일의 70%를 해결할 수 있었다. 반면 쿼티 자판으로는 32%인 100개밖에 치지 못했다. 드보락 자판은 공학적으로 합리적이고 우수한 기술이 틀림없었다. 그런데 불행히도 드보락은 쿼티 자판보다 뛰어나다는 점을 입증하는데 실패했다.
드보락 교수는 자신의 자판이 무엇보다도 속도에서 효율적임을 입증하고자 했다. 드보락 자판이 나온 후 이를 입증하는 연구들이 많이 나오는 것 같았다. 그런데 이내 이 연구들이 드보락 교수가 개입한 주관적인 연구였다는 것이 밝혀졌다. 1953년에 미국 행정부에서 발행된 보고서는 객관적인 것으로 판명됐지만 보고서는 타자기의 속도와 자판은 상관관계가 없음을 말해줄 뿐이었다.
드보락 자판이 실패한 결정적인 이유는 숄즈 자판에 익숙해진 사람들의 습관이었다. 이미 수십 년 동안 타자수, 작가, 일반 이용자들은 숄즈 자판에 익숙해졌다. 드보락 자판을 사용하려면 이를 버리고 새로운 습관을 익혀야 했다. 옛 기계에 관성이 붙어버린 이용자들에게 새로운 작동법이 필요한 새 기계는 대개 외면당한다. 게다가 드보락 자판이 억지로 관성에서 벗어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할 만큼 큰 이점을 가진 것도 아니었다.
경영자 입장에서도 드보락 자판을 산다는 것은 이 자판을 다루기 위해 타자수들을 새로 훈련시켜야 함을 의미했다. 추가로 비용이 드는 만큼 이를 상회할 만한 이점이 없다면 투자할 가치가 없는 것이었다.
결국 이런 이유들 때문에 드보락 자판은 기술적인 합리성에도 불구하고 시장에서 사라지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