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은 자타공인 로봇과 의료 기술 강국이다. 이 둘을 융합한 인체 플랫폼화 기술을 연구하기 위한 토양은 이미 훌륭하다는 뜻이다. 최근 국내 로봇공학자와 의료진이 ‘생각대로 움직이고 느끼는 인공 팔(바이오닉 암)’ 개발에 시동을 걸었다. 미래창조과학부의 ‘생체모사형 메카트로닉스 융합기술개발 사업’으로, 2014년부터 2019년까지 총 6년간 365억 원이 투입될 대형 연구 프로젝트다. 총괄 책임연구자이자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강릉분원장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오상록 박사를 5월 4일 KIST 서울 본원에서 만났다.
신경 신호로 기존 전자 의수와 차별화
“인체의 신경과 직접 연결해 사람 손처럼 자유롭게 움직이는 바이오닉 암을 개발할 겁니다. 더 다양한 동작을 더 정교하게 구현하자는 거죠. 또, 전자 피부에서 얻은 촉감까지 느낄 수 있게 하는 게 목표입니다.”
현재 상용화돼 있는 전자 의수와 다른 점이 무엇이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가 답했다. 현재 시판 중인 최첨단 전자 의수는 주로 팔뚝의 피부를 통해 전달되는 표면 근전도를 측정해 사용자의 의도를 파악하는데, 동작 수가 제한적이라는 한계가 있다. 촉감도 느낄 수 없다. 반면 삽입형 신경 인터페이스를 이용해 신경 신호를 직접 받으면 훨씬 다양한 동작의 의도를 구별할 수 있다. 그는 “매우 도전적이지만 관련 연구가 세계적으로 조금씩 시작되는 걸 보면, 우리가 완전히 틀리진 않은 것 같다”며 웃었다.
국내 최고 수준의 연구자들이 연구단에 합류했다. 김기훈 KIST 로봇연구단 책임연구원(신경신호 측정 및 분석시스템 개발), 최혁렬 성균관대 기계공학부 교수(인공 피부 및 근육 개발), 최영진 한양대 전자공학부 교수(인공 골격 및 관절 개발)가 선정됐고, 삽입형 인터페이스 개발을 위한 마지막 연구팀이 추가로 선정될 예정이다. 신경 다발에 직접 전극을 꽂아 넣기 위한 수술이 동반되는 만큼, 다수의 의료진도 연구단에 포함됐다.
오 박사는 KAIST 전기및전자공학부에서 1987년 박사 학위를 받은 뒤 지금껏 로봇 개발에 매진해 온 순수(?) 공학도. 그런 그가 의학 등 학문의 기반이 다른 이들과 함께 연구하는 데 어려움은 없을까. 그는 “의료진과의 협업에는 문제가 없다. 모르면 물어보면 된다”며 “그보다는 인체 플랫폼화 기술을 우리 몸에 구현하기 위해 필요한 배경지식이 달라 애를 먹곤 한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저를 비롯한 로봇공학자들은 인체 친화적인 재료로 전극을 만들어서 신경 다발에 찔러 넣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의사 선생님 말이, 신경 다발이 잘 안 뚫릴 거라는 거예요. 이해가 안 갔죠. 수술 장면을 직접 보니 그제야 알겠더라고요. 신경을 감싼 관이 두툼해서 힘을 한참 줘야 뚫립니다. 신경 다발을 둘러싼 관을 뚫을 기계를 추가로 개발해야만 하는 거죠.”

공공 의료복지 차원에서 접근해야
연구단은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바이오 메카트로닉스와 재활 및 수술 로봇에 관한 원천 특허를 확보할 계획이다. 또, 뇌 질환을 비롯해 인간-기기 인터페이스, 신경 컴퓨터, 지능형 반도체 칩, 생물 전자 소자, 신경 회로망, 뇌·신경 유전체 기능 연구 등 다양한 분야에서 시장을 창출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프로젝트가 마무리 되는 2019년엔 과연 제품을 만날 수 있을까. 그는 “곧 기업도 참여시킬 예정”이라며 “그러나 장애인을 위한 의수 시장이 너무 작기 때문에 개발하려는 기업을 찾는 게 쉽진 않다”고 토로했다. 실제로 기자가 이번 특집 기사를 위해 만난 전문가들은 하나같이 상용화가 어렵다고 말했다. 한 교수는 노인을 위한 웨어러블 로봇을 개발했지만 생산하려는 기업을 찾지 못해 그만둬야 했을 정도다. 오 박사는 “공공 의료 복지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인체 플랫폼화 기술의 1차 목표는 장애인의 삶의 질을 향상하는 겁니다. 의지만 있다면 상용화도 가능할 거라고 봐요. 좀 더 큰 그림도 그려야지요. ‘바이오닉 암’이라는 통합된 결과물뿐 아니라 그 과정에서 개발하게 될 세부 기술들, 그러니까 인체 친화적 전극 재료, 생체신호 처리 기술 등이 우리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데 분명 기여할 겁니다.”
▼관련기사를 계속 보시려면?
Intro. 인체 플랫폼
Part 1 인체 플랫폼화 기술, 어디까지 왔나
Part 2 인체 플랫폼화 기술이 넘어야 할 장벽 5
[Interview] 차세대 전자 의수 도전하는 오상록 KIST 박사
Part 3 "취업로봇 수술 하고 싶은 나, 비정상인가요?"
[Interview] “포스트휴먼시대 앞장서 대비해야” 백종현 한국포스트휴먼학회장
Part 4 인간과 기계의 경계가 무너진다 ... 우리의 선택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