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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지긋한 노(老)교수는 기술 발달을 지켜보며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말을 기회 있을 때마다 했다. “로봇이 도입되면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겠죠. 모름지기 사람이 노동 현장에 있어야 삶의 가치를 찾고 자아도 펼치는 법인데…” ‘미래 사회에 대한 여러 모델을 만들어 사람들과 의논해야겠다’고 생각하던 백종현 서울대 철학과 명예교수의 눈 앞에, 지난해 7월 협력자가 나타났다. IT 전문 변호사인 김경환 법무법인 민후 대표변호사가 동참 의지를 전해온 것.
두 사람이 의기투합하고 두 달여 만인 지난해 9월 18일, ‘한국포스트휴먼학회’가 탄생했다. 포스트휴먼이란 전통적인 개념의 인간과 겉모습은 같지만 다른 방식으로 탄생해 소멸하는 유사인종을 일컫는다. 완전한 자율 의지를 가진 로봇이나 신체 일부를 기계로 대체한 사이보그, 혹은 유전자조작으로 태어난 인간 등이 포함될 수 있다. 한국포스트휴먼학회에서는 다가오는 포스트휴먼 사회에 대비해 인문학자, 법학자, 공학자 등이 모여 새로운 사회적 규범을 논의한다. 초대 학회장으로 선임된 백 교수를 5월 9일, 서울 역삼동에 위치한 민후 사무실에서 만났다.
첨단 분야 일선 연구자와 함께 하고파
“포스트휴먼을 만드는 여러 기술들이 가져올 결과, 예컨대 낡은 장기를 인공장기로 대체해 100세 이상 사는 게 인간적으로 더 좋은 삶인지 검토할 필요가 있습니다.” 백 교수는 “포스트휴먼시대를 앞당길 첨단 분야의 일선 연구자들과 실질적인 논의를 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문헌 연구가 아니라, 실제 현장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정확히 파악해 이에 대한 사회적 규범을 마련하겠다는 얘기다.
이를 위해 현재 학회는 매월 셋째 주 토요일마다 정기세미나를 개최하고 있다. 하대청 국가생명윤리정책연구원 선임연구원이 지난해 10월 17일 제1회 세미나에서 ‘장기이식기술의 새로운 윤리와 정치’라는 주제로 발표했고, 이규용 한국노동연구원 통계분석실장(한국 노동 시장의 현황과 쟁점), 구본권 한겨레신문 기자(인공지능시대가 묻는 인간), 강양구 프레시안 기자(과학기술의 덫에 갇힌 언론), 김정하 국민대 자동차공학과 교수(자율주행자동차의 최근 현황과 주요기술), 임종우 한양대 컴퓨터공학부 교수(로봇과 자율주행을 위한 컴퓨터 비전 기술), 황재호 현대모비스 연구개발본부 팀장(ADAS 양산화 기술 및 향후 전망), 서승우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교수(자동차 혁명과 완전자율주행기술) 등 다양한 분야의 인사들이 세미나에 참석했다.
“우리더러 별난 조직이라고 하더군요. 예를 들어 로봇학회에서 연구자들끼리 만나면 로봇의 기능을 어떻게 향상시킬지 논의할 뿐 인간성과 연관해 생각해본 적은 없대요.” 그는 “이런 경험이 기술을 직접 개발하는 연구자들의 뇌리에 남아 기존과는 다른 방식, 예컨대 인간성을 고려하는 방향으로 기술을 개발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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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체 플랫폼화 기술이 경계 대상 1호
그는 장차 가장 걱정되는 기술로 인체 플랫폼화 기술을 꼽았다. “인간 동일성 문제가 불거질 겁니다. 인간이란 자유 의지에 따라 행동하고 결과에 책임지는 존재인데, 사이보그 수술로 몸과 머리가 다른 존재로 바뀌면 누구에게 책임을 물어야 할까요? 모든 사회적 규범이란 동일인이라는 걸 전제로 하고 있는 겁니다. 만약 실체적 변조가 생기면 이에 혼란이 생길 거예요.”(3파트 참조)
학회는 이런 상황에 대비해 실질적으로 법제화할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윤리는 넓은 의미에서 느슨한 정도의 규율일 뿐이고요. 어떤 건 구체적으로 접근해서 법제화해야만 사회의 새로운 문화로 흡수시킬 수 있습니다.”
백 교수는 현재 ‘포스트휴먼 사이언스’라는 총서를 준비 중이다. 포스트휴먼 사회에 대한 전반적인 개괄을 다룬 제1권과, 자율주행자동차와 관련된 기술, 법률, 철학을 총망라한 제2권을 올해 가을에 동시 발간할 예정이다. “뜻있는 사람들이 토론한 내용을 시민사회가 공유하기를 바랍니다. 기술 발달로 생길 급격한 변화에 따른 충격을 완화하고 싶어요.”
그는 “‘아름다운 사회’를 지향하는 인간 고유의 가치를 이어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합리적이고 유기적이며 효율적인 사회만이 좋은 건 아닙니다. 전체 모양이 아름다워야 해요. 으레 신기술이 나오면 상당수는 혜택을 받고 그만큼 음지가 생겨서 누군가는 괴로움을 받잖아요. 그늘에 놓이는 사람 수를 최소화시키는 게 우리 학회의 장기적인 과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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