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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노 화폭에 펼친 명장의 솜씨

나노입자제어기술연구단

젓가락으로 깨알을 집을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더구나 깨알 수천 개를 정확하게 한 줄로 늘어놓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젓가락질 고수’에 가깝다.

여기서 조금 더 나가보자. 머리카락 굵기의 1만분의 1밖에 안 되는 입자를 원하는 모양대로 늘여 세운다면?

나노입자제어기술연구단을 이끄는 서울대 기계공학과 최만수(49) 교수는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작은 나노 입자를 마음대로 부리는 사람이다. 그래서 그에겐 ‘세상에서 가장 손이 작은 사람’이란 칭호가 그리 어색하지 않다.

사람마다 기준이 조금씩 다르지만, 일반적으로 수 나노미터(nm)에서 100나노미터 사이의 크기를 가진 입자를 나노 입자로 정의한다. 이런 나노 단위의 미세구조가 모여 100nm 이하의 공 모양 구조로 이뤄진 물질을 ‘나노 벌크’(nano bulk)라 부른다. 나노 벌크로 만들어진 입자는 원래의 물질과 다른 성질을 갖기 때문에 새로운 재료로 주목받고 있다.

나노 입자는 물감, 에어로졸은 붓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고, 나노 입자도 내가 원하는 모습대로 만들 수 있어야 가치가 있다. 최 교수는 지난 2000년 기체 상태의 에어로졸(aerosol)을 이용해 나노입자의 이동을 제어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이 기술을 사용하면 나노 입자를 성장시킬 때 서로 엉키지 않은 고농도의 나노 입자를 얻을 수 있다. 입자의 모양도 구형, 비구형으로 선택할 수 있다.

“에어로졸을 이용하면 액체 콜로이드를 이용하는 기존의 방법보다 불순물이 끼어들 가능성이 낮습니다. 그리고 중간에 멈추지 않고 계속 입자 성장을 제어할 수 있습니다.”

입자 성장을 제어할 수 있다면 나노 입자를 원하는 대로 기판 위에 정렬하는 ‘패터닝’(patterning)도 쉬워진다. 물론 나노 입자로 그림을 그리는 것도 가능하다.

에어로졸로 나노 입자의 운동을 어떻게 제어할까. 나노 입자는 크기가 작아 물속에서 분자들이 무작위로 움직이는 것과 같은 브라운 운동을 하고, 전기적 인력에 따라서도 이동 경로가 수시로 바뀐다. 이런 특성을 이용해 우리가 원하는 이동 경로를 따라 입자를 움직일 수 있다.
 

에어로졸을 이용해 나노입자의 크기와 형상을 제어하는 실험 장치.


탄소로 만든 양파

최 교수팀이 다루는 나노 입자는 다양하다. 금이나 은 같은 금속 입자, 각종 산화물, 나아가 단백질을 붙인 나노입자까지 모두 그의 손 안에서 ‘앞으로 나란히’ 정렬한다.

연구팀의 기술은 미래 반도체 나노소자를 대량생산하는데 필수적인 기술이다. 단백질로 된 효소를 나노 입자에 붙여 기판 위에 패터닝하면 특정 질병을 진단하는데도 사용할 수 있다.

“2~3년 전까지는 나노입자를 만들어 크기나 성질을 제어하는 것이 목적이었죠. 하지만 앞으로는 대량으로 생산한 균일한 나노입자를 원하는 대로 배열하고 조작하는 기술까지 개발할 예정입니다.”

연구팀은 2004년 탄소 덩어리인 검댕(soot)에 레이저를 쏴 공 모양의 ‘탄소 양파’를 대량생산하는데 성공했다. 동심원 형태로 이뤄진 모습이 마치 여러 껍질로 구성된 양파와 비슷해 붙은 이름이다. 그런데 탄소 양파를 만들어서 어디다 쓸까.

“탄소 양파는 최근 각광받고 있는 탄소나노튜브와 비슷한 전기앞 특성을 갖고 있습니다. 이 점을 이용하면 탄소나노튜브 대신 디스플레이 장치의 광원이나 연료 전지의 전극재료로 활용할 수 있죠.”
 

새로운 에어로졸 제어 기술


나노 기술의 표준화가 목표

최근에는 탄소나노튜브와 탄소 양파 같은 나노 입자를 물이나 기름에 섞은 나노 유체를 개발해 유동성과 열 전도성을 높이는 연구도 함께 진행하고 있다.

지난 2003년 연구팀은 금속을 연소시켜 정육면체 모양의 마그네시아(MgO, 산화마그네슘) 나노큐브를 만들었다. 마그네시아 나노큐브는 에너지를 주면 강한 빛을 뿜는 특성을 갖고 있어 나노 광전자 소자 개발에 응용할 수 있다.

현재 연구팀에는 최 교수와 박사후연구원 5명을 포함해 20여명의 연구원들이 나노 입자를 제어하는 재미에 흠뻑 빠져있다.

이들의 최종 목표는 나노 입자 제어기술을 계속 발전시켜 세계적인 표준 기술로 공인받는 것. 이 분야에서는 아직 국가 간에 표준화 된 기술이 없기 때문에 최 교수팀의 목표는 시간문제다.

“우리 연구팀의 기술은 전자, 바이오, 화장품 등 어떤 분야에도 응용할 수 있는 폭넓은 가능성을 갖고 있습니다. 이 가능성이 현실이 되도록 산업화에 관심을 두고 한층 더 연구에 몰두할 계획입니다.”

나노의 매력에 빠진 기계공학자 최만수 교수

최만수 교수는 원래 서울공대 기계공학과 76학번이다. 기계공학을 전공한 사람이 왜 별 관계 없어 나노 입자를 연구하는 걸까.

“원래는 열 전달을 전공했습니다. 열 전달은 나노 입자의 크기나 성질을 바꾸는데 핵심적인 제어 과정입니다. 원래 전공에서 조금씩 나노 공학으로 관심을 넓혀간 거죠.”

1987년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주립대 기계공학과로 유학을 떠난 그는 박사과정에서 광섬유를 전공했다. 열 전달을 이용해 광섬유를 값싸고 균일하게 제작하는 공정에 연구 초점을 맞췄다.

이때 100~300나노미터 수준의 에어노즐 입자를 이용하는 광섬유 제조 공정 연구를 수행하다가 ‘입자 크기를 줄여보면 어떨까’하는 의문을 가졌다. 지금 연구하고 있는 나노 입자 제어기술도 그때부터 관심을 갖게 됐다. 그 뒤로 자연스럽게 나노 과학에 끌렸고, 1991년 귀국해 서울대 교수로 임용된 뒤로는 본격적으로 나노 연구에 뛰어들었다.

최 교수는 현재 이 분야의 세계적인 학술지 ‘저널 오브 에어로졸 사이언스’의 편집장을 맡고 있다.

“주로 화학공학이나 환경공학자들이 논문을 많이 투고하는 학술지인데, 여기에 기계공학자가 나노 입자에 대한 논문을 투고하니 재미있게 봐 준 모양입니다.”

그의 말에서 눈치 챌 수 있듯 나노 공학은 재료공학, 물리학, 화학, 전자공학 등 여러 전공이 결합한 융합 학문이다. 그래서 연구실에는 다양한 분야를 전공한 대학원생들이 있다.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는 과정엔 늘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필요합니다. 여러 분야의 학생들과 함께 토론하면서 문제 해결방법을 찾아내는 것이 큰 즐거움이죠.”

최 교수는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면 부인과 많이 이야기를 나눈다. 원자력의학원에서 세표생물학을 연구하고 있는 부인과 실험 얘기를 하다보면 새로운 관점에서 아이디어를 얻을 때가 많다.

“가끔 부부가 함께 나노와 바이오 분야를 결합시켜 연구하면 재미있겠다고 얘기해요. 단백질을 금속 나노입자에 코팅시켜 패터닝하면 병을 진단하거나 원하는 단백질을 검출할 수 있겠다던가…. 단백질 나노소자는 살아있는 세포의 미세한 움직임을 관찰하거나 신경세포(뉴런)를 원하는 방향으로 자라도록 유도하는 도구로 사용할 수도 있습니다.”
 

최만수 교수(오른쪽에서 네 번째)와 연구원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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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05월 과학동아 정보

  • 이상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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