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라이브러리









03. 물고기 호텔, 바다목장이 양식 확 바꾼다

어류가 좋아하는 환경 조성 기술이 핵심

 

물고기 호텔, 바다목장이 양식 확 바꾼다


“이놈 좀 보소, 아가미를 다쳤는갑다.”

경남 통영에서 횟집을 경영하고 있는 김씨는 회를 뜨려다가 아가미 뚜껑 한쪽 귀퉁이가 반달 모양으로 약간 잘린 우럭 한마리를 발견한다.

“당신 온동네에 붙어있는 포스터도 못 봤는교? 퍼뜩 바다목장연구센터로 전화 넣으이소.”

김씨는 어리둥절해서 아내가 알려준 번호로 전화를 건다. 얼마 있다가 바다목장연구센터 직원이 찾아와 아가미 잘린 우럭을 살펴본다.

“사장님, 제보 감사합니다. 통영 앞바다에 조성 중인 바다목장에 방류했던 우럭입니다. 얼마나 컸는지, 어디로 이동했는지 파악하려고 아가미에 표시를 해둔 것입니다. 주민들이 이렇게 협조해주셔서 어류 생태 연구에 많은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연구센터 직원과 함께 온 마을 계장도 한마디 덧붙인다.

“어이구, 고맙다아이가. 이래 고기 많이 잡히게 해주니께 우리도 먹고 살 맛 난대이.”

요즘 통영 앞바다에는 바다목장이 제법 완성된 모습을 갖춰가고 있다. 바다목장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지길래 어민들의 표정이 한결 밝아지고 있는 걸까.

5개 바다목장 시범 해역 선정
 

기존 양식장은 그물 안에 물고기를 가두는 형태다(사진). 울타리가 없는 바다목장에선 물고기가 도망가지 않도록 새로운 인공어초를 개발하거나 물고기를 훈련시킨다.


언젠가부터 우리나라 어민들은 바다에 물고기가 없다고 하소연하기 시작했다. 체계적으로 관리하지 않고 무작정 잡아댔으니 남아날리 없다. 어민들은 새끼고기라도 싹쓸이하지 않으면 생계를 걱정해야 할 판이다. 게다가 최근 수산물이 건강식품으로 각광받고 있어 소비량이 크게 증가해 비싼 돈을 주고 일본에서 수입까지 하는 지경이다.

정부는 1970년대 초부터 수십년간 바다에 물고기집인 인공어초를 만들어주거나 수많은 어린 물고기들을 방류해왔지만 어민들의 하소연은 여전하다. 인공어초를 해역별 특성이나 어종별 생태를 고려하지 않은 채 획일적으로 만들었거나 방류 시기·장소·방법에 대한 연구와 방류 후 과학적 조사가 미흡했던 점이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그물로 울타리를 만들어 물고기가 도망가지 못하도록 가둬두고 키우는 가두리양식장의 경우 어느 정도 규모 이상이 되면 더이상 확대가 어렵다. 인위적으로 먹이를 주는데 한계가 있고, 제한된 공간에서 고밀도 사육이 가능한 어종이 한정돼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환경파괴를 우려해 일정 면적 이상은 설치하지 못하도록 법이 규제하고 있다.

그래서 과학자들은 바다목장에 주목했다. 바다목장이란 전 바다 공간을 체계적으로 이용·관리해 가축을 기르는 목장처럼 자연산 수산자원을 지속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뿐만 아니라 국민들이 레저활동을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활용한다는 개념도 포함된다.

한국해양연구원은 1994년부터 3년간 과학기술부 사업으로 바다목장 조성을 위한 예비조사에 착수해 동·서·남해안과 제주 연안의 특성에 맞는 바다목장 모델을 제안했다. 이를 토대로 해양수산부는 각기 다른 유형의 바다목장을 5개 지역에 시범적으로 만든 다음 그 성과에 따라 인근해역으로 확장하기로 결정했다.

가두리양식을 국내에서 처음 시작한 양식의 메카인 경남 통영을 시작으로 1998년 본격적인 바다목장 조성 사업이 시작됐다. 통영은 어업과 수산물 가공을 포함한 수산업의 여러 분야가 가장 종합적으로 모여있는 곳이기도 하다. 실무와 연구는 한국해양연구원이 주관하고 국립수산과학원, 해양수산개발원과 여러 대학 전문가들이 참여하고 있다.

좁고 그늘진 집 좋아하는 우럭

바다목장을 조성하려면 우선 그 해역의 환경과 수산자원 상태를 철저히 파악하는 것이 필수. 현재 어떤 물고기가 얼마나 있는지, 어느 정도 가격으로 팔리는지 등을 조사한다. 또 한정된 면적 안에서 물고기를 관리해야 하기 때문에 그 해역에서 연중 머무는 어종을 길러야 한다. 통영 바다목장에서 기를 어종으로 우럭과 볼락이 선정됐다. 방어, 참치, 멸치, 고등어 등은 밝은 곳을 좋아하고 이리저리 계속 움직여 다니기 때문에 한곳에 모아둘 수가 없다. 따라서 이 같은 회유성 어종은 바다목장에서 키우지 못한다.

다음은 물고기들이 좋아하는 환경을 만들 차례. 우럭이나 볼락은 그늘이나 약간 어두운 곳을 좋아한다. 그래서 바위틈이나 바위 밑 그늘에 많이 모인다. 사람으로 치면 하늘이 바로 보이는 곳보다 천장이나 지붕이 있는 장소를 좋아하는 셈이다. 인공어초를 설계할 때는 이런 습성을 고려해야 한다. 기존에 사용하던 인공어초 내부 너비는 약 2m로우럭이나 볼락에겐 너무 넓어 집처럼 보이지 않는다.

통영 바다목장 연구팀은 너비를 60-70cm로 좁힌 신형 인공어초를 만들었다. 그랬더니 우럭과 볼락이 빼곡히 들어찼다. 바다목장에는 울타리가 없다. 따라서 물고기들이 도망가지 않고 자발적으로 모여있게 하기 위해서는 그들이 좋아하는 환경을 조성해주는 것이 핵심이다. 사람들이 살기 좋은 곳에 너도나도 모여드는 것처럼 말이다.

물고기들이 도망가는 것을 막기 위한 훈련도 있다. 방류하기 전 새끼고기는 중간육성장에서 일정 기간 동안 키우는데, 이때 수면 위에 떠있는 음향급이기에서 2백-3백Hz의 음향을 내보내면서 먹이를 주는 것을 반복한다. 방류한 후에도 수개월 정도는 하루에 한두번씩 음향을 내보내면서 먹이를 준다. 멀리 나가려던 물고기도 소리를 듣고 돌아오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이렇게 적응한 물고기들은 바다목장 안에 머물게 된다. 바다에는 플랑크톤이나 새끼멸치 같은 자연산 먹이가 풍부하므로 인공먹이 없이도 살아갈 수 있다.

해조류를 키우는 인공해조장, 인공어초는 대부분 수면에서 10-30m 아래에 설치된다. 수면 위에는 실시간으로 바다 환경을 관측하는 환경관측부이도 떠있다. 통영 바다목장의 전체 면적은 20km2. 이 중 4분의 1 정도 면적은 보호수역으로 지정했다. 보호수역 안에 들어와 물고기를 잡으면 5백만원 이하의 벌금을 물어야 하지만, 보호수역 밖에서는 현재 어민들이 자유롭게 어업을 해 수입을 올리고 있다.

해양과학의 집합체

통영 바다목장에는 현재 1백40여명의 전문가가 포진해 있다. 물고기들이 계절별로 얼마나 성장하는지, 인공어초를 어떻게 활용하는지, 어디로 이동하는지 등을 계속 모니터링해야 하기 때문에 이들은 모두 수영이나 다이빙 실력이 수준급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선 처음 시도하는 사업인만큼 어려움도 많다. 하루 평균 3번씩 잠수하고, 한번 들어갈 때마다 30분-1시간씩 걸리기 때문에 무리하면 자칫 관절통이나 두통에 시달리기도 한다. 방류한 물고기들이 인공어초에 들어오지 않고 도망갈까 노심초사하는 건 예사다.

통영 바다목장은 해양자원을 이용하기 위한 기반기술 개발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어종별 습성에 따라 맞춤형 인공어초를 만들어 단위공간에 더 많은 물고기가 모이게 해 여러 건의 특허를 획득했다. 기존 인공어초의 경우 1백개를 설치하려면 1억원 정도가 소요된다. 그런데 연구팀이 개발한 인공어초면 2천만-3천만원으로도 같은 양의 물고기를 얻을 수 있다고 한다.

음향급이기나 환경관측부이도 순수 국내 기술로 만들어졌다. 현재 통영에서는 경상남도의 지원을 받아 볼락과 참돔 중 성장이 빠르고 건강한 종을 선발하는 연구도 바다목장 사업과 병행하고 있다.

지난 2001년부터 전남 여수시 연안에서도 통영과 마찬가지로 어업형 바다목장을 개발하기 위한 조사가 시작됐다. 그리고 올해부터 대상 어종인 넙치와 감성돔의 인공어초를 개발하는 등 실제 조성에 착수했다. 지난해 말에는 남해안 이외의 시범해역도 선정됐다. 서해안의 태안 바다목장은 우럭, 백합, 갑각류를 대상으로 하는 갯벌형으로 조성할 계획이다. 동해안의 울진 바다목장은 가자미, 전복, 가리비를 양성하되, 한류와 난류가 교차하므로 계절별로 여러 어종을 볼 수 있는 특성을 고려해 관광형으로 만들 예정이다.

제주도 북제주 바다목장에서 키울 어종은 돌돔, 전복, 다금바리. 이곳은 수산자원 복원뿐만 아니라 국민들이 실제로 바다목장에서 낚시를 하고 해저관광이나 레포츠도 즐길 수 있는 수중체험형 공간으로 개발될 것이다. 때문에 울진과 북제주 바다목장을 조성하기 위해서는 첨단 수산공학 기술이 필수다.

2010년까지 5개 시범해역의 바다목장 개발을 완료하는데는 총 1천5백65억원의 사업비가 소요될 것으로 집계됐다. 미국이나 노르웨이 등 바다를 끼고 있는 다른 나라에서도 자국 실정에 맞게 조금씩 다른 방식으로 바다목장 사업을 추진 중이다. 이웃 일본에도 20여개의 바다목장이 있다.

바다목장 사업의 자원조성파트를 이끌고 있는 한국해양연구원 해양자원연구부 책임연구원 명정구 박사는 “바다는 이제 단순히 생선을 생산하는 ‘공장’ 이 아니다”라며 “연안자원을 늘리기 위한 모델로서 뿐만 아니라 차 한잔 마시면서 수중경관을 즐길 수 있는 신개념 여가공간으로서 한몫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수산자원 확보와 해저 레저공간 기능

2006년 이후에는 통영 바다목장을 지방자치단체나 어민들이 스스로 관리할 수 있게 할 예정이다. 이를 위해 통영의 12개 어촌에 바다목장을 이용할 수 있는 권리를 주되, 그 수익의 일부를 바다목장 시설 관리나 종묘 구입에 재투자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하지만 통영 앞바다라고 해서 통영 지역 어민들만 이용하는 것은 아니다. 근처인 사천, 고성, 거제 등지에 사는 어민들도 바다목장 해역 안에서 어업을 할 수 있게 할 예정이다. 단 다른 지역 어민들에게서는 사용료를 받고, 이를 바다목장 관리에 드는 비용으로 사용하는 방법도 역시 검토 중이다.

그러나 바다를 이렇게 ‘관리’ 하게 될 때 어민들이 과연 적극적으로 협조할지는 아직 미지수다. 게다가 바다목장 안에서 기르는 어종이 아닌 다른 물고기들을 잡는 경우에 대해서는 아직 뾰족한 해결책이 나오지 못한 상태다.

예를 들어 통영 바다목장의 양성 대상 어종인 우럭이나 볼락 이외에 참돔, 돌돔, 고등어, 정강이 같은 어종이 들어와 살 수도 있다. 만약 다른 지역 어민들이 통영 바다목장에 들어와 고등어만 잡아가겠다고 하면 사용료를 받아야 할지 애매한 상황이 되는 것이다.

이에 대해 바다목장 사업을 총괄하고 있는 한국해양연구원 해양자원연구부 책임연구원 김종만 박사는 “여러 지역 어촌에 골고루 혜택이 돌아갈 수 있는 방안을 신중히 검토해 결정하고, 바다목장의 중요성을 적극 홍보하면 어민들의 협조를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한다. 실제로 경남 사천을 비롯한 몇몇 지역에서는 바다목장의 장점을 자각하고 자발적으로 소규모 바다목장을 조성해 실제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또한 바다목장에서 얻은 수산물의 브랜드를 만들어 체계적인 판매망을 구축할 계획도 세웠다. 김 박사는 “일본에서는 바다목장산 고등어를 브랜드화시켜서 자연산보다 10배 정도 비싸게 판매하고 있다”며 “우리나라 바다목장산 수산물도 값은 양식산보다 비싸지만 맛이나 신선도 면에서 자연산과 다름없다면 시장에서 충분히 경쟁력을 갖출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한다.



▼관련기사를 계속 보시려면?

바다, 끝없는 프론티어
01. 기묘한 생물 천국, 해저 5천m의 세계
02. 심해를 누비는 드림팀, 수중로봇 시스템
03. 물고기 호텔, 바다목장이 양식 확 바꾼다
마린 테크놀로지로 '마린토피아' 를 꿈꾼다
04. 남획 막아야 해양선진국 된다

이 기사의 내용이 궁금하신가요?

기사 전문을 보시려면500(500원)이 필요합니다.

2004년 08월 과학동아 정보

  • 임소형 기자

🎓️ 진로 추천

  • 해양학
  • 수산학
  • 환경학·환경공학
이 기사를 읽은 분이 본
다른 인기기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