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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의 의학이 생겨날 것인가 동양의학과 서양의학의 결합

요즘 한의원을 가보면 맥진계(pulse wave diagnostic graph)를 이용해 맥박을 재는 모습을 쉽게 목격할 수 있다. 이외에도 전기요법 등 한방치료에 여러가지의 의료기기들이 이용되고 있다. 침과 한약재로 상징되던 동양의학에 서양의 의료기술이 도입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서양의학이 지닌 한계가 드러남에 따라 세계적으로 동양의학 혹은 전통의학에 대한 인식이 새롭게 싹트고 있다.
 

이처럼 현대의 의학은 서양과 동양의 의학이 지닌 특징과 장점에 주목하여 인류보건의 향상에 기여하는 쪽으로 흐르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는 서양의학과 한의학이 2원적으로 존재해 있는 까닭에 '동·서 의학의 결합'을 통해 의학을 발전시킬 수 있는 좋은 여건을 갖고 있다. 동양의학과 서양의학이 지닌 특징은 무엇이며, 양자의 결합으로 나타날 미래의 의학은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인지 살펴보자.

 

동양의학과 서양의학의 주요특징
 

동양의학과 서양의학을 비교, 연구한 여러 학자들의 연구결과를 종합해보면 대체적으로 다음과 같다.
 

첫째, 종합과 분석의 차이를 들 수 있다. 서양의학이 과학을 바탕으로 분석적으로 발달한 특징이 있는데 비하여 동양의학은 동양철학을 바탕으로 인체의 기능을 종합적으로 관찰함에 중요한 특징이 있다.
 

동양의학에서는 장기(臓器)를 중심으로 인체의 각 부위와 정신활동까지를 유기적 상관관계에서 관찰하여 다양한 증상을 종합된 병증(病症)으로 귀납시키고 질병의 본체를 전신의 음양의 불균형으로 파악한다. 따라서 동양의학은 치료법에 있어서도 전신의 음양조화를 주안점으로 인체의 생리적인 자연치유능력을 조장하는데 주요한 목표를 두고 있다.
 

반면 분석적인 서양의학은 병원균의 규명과 이에 대한 화학요법제의 적용, 면역요법, 외과수술 등에서 경이적인 성과를 달성하고 있다.
 

둘째, 내인(內因)과 외인(外因)의 측면이다. 서양의학은 세균감염에 의한 질환이나 외상 등 외인성 질환의 치료를 중심으로 발달하였으므로 내인보다 외인을 중요시하는데 비해 동양의학은 질병의 원인을 규명함에 있어서 장기의 기능변조(機能変調) 즉, 내인을 중요시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세째, 자연과의 조화문제이다. 동양의학은 인체를 천지(天地)와 상응하는 것으로 인신소천지(人身小天地)라는 관점에서 자연과의 조화를 중요시하고 있다.
 

즉, 인체는 자연계의 작용에 의존함으로써 생명이 유지되고 다른 생물과 같이 자연법칙에 순응하면서 생명활동을 유지하며 질병의 치료에 있어서도 자연물인 생약(生樂)을 위주로 하고 있다.
 

서양의학은 약물의 소재(素材)에서 인공적으로 유효성분을 추출하여 이를 약용에 사용함으로써 치료약으로 속효를 발휘하는 이점이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약의 과용이나 오용 등으로 심한 부작용이나 의원성질환(医原性疾患)을 유발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네째, 기질(器質)과 기능에 각기 주안점을 둔다는 점이다. 해부조직학을 주요한 기반으로 삼는 서양의학에 있어서는 병리적 관찰에서 기질적인 병변을 주된 대상으로 삼는 까닭에 이에 대한 치료법이 발달해왔다. 수술요법이 그 대표적인 예다.
 

그러나 동양의학의 병리관은 인체의 기능적 변화에 주안점을 두고 치료법에 있어서도 장기 및 지체의 유기적인 기능을 정상적으로 회복시키는 것을 기본으로 삼고 있다.
 

다섯째, 실험과 경험이라는 측면이다. 서양의학이 해부생리학적 관찰과 분석 그리고 시험관이나 동물을 이용한 실험에 근거하여 발달한 것이라면 동양의학은 임상적 경험에서 출발하여 인체의 경험적 실제와 결부된 실증적 내용을 위주로 하고 있다.
 

이상에서 열거한 특징들에 비추어볼때 동양의학과 서양의학이 진료에 임하는 각도와 방법에 있어 매우 대조적인 차이와 특징이 있음을 알 수 있다.

 

동서의학협력을 위한 접근방법
 

동양의학과 서양의학은 분명히 별도의 발상과 상이한 체계속에서 각각 발전해 왔으나 대국적으로는 공통부분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여야 한다.
 

의학은 동·서양을 불문하고 살아 있는 인간을 위하여 존재하는 것이기에 살아있는 인간의 질병치료나 건강증진을 위하는 것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근래에 서양의학이 현미경하의 의학에서 심신의학(心身医學)에로의 발전이나, 면역학의 개발 등으로 정적인 의학에서 동적인 의학의 체계로 전환이 이루어져 가고 있는 것은 동서의학의 접점을 향하여 가고 있는 좋은 징후라고 생각한다.
 

즉, 동양의학은 고대로부터 인간을 전체로 보는 전체관의 시각에서 보아왔고 동시에 정적인 시각이 아니라 동적인 시각에서 전신과 개개 장기와의 관계를 상호연관되는 기능적인 관계로 보아 왔다.
 

동서의학의 협력이나 결합의 전제조건은 먼저 이질적인 동양의학과 서양의학이 서로 대화가 가능한 공동의 장(場)과 공동의 언어 그리고 나아가서는 공동의 가치를 설정하여야 한다.
 

즉, 이 말은 고전적인 동양의학을 현대의 학문적 기반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며,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그 의학적 효과가 서양의학에 있어서 사용하는 자(尺), 쉽게 말해 공통의 자로 잴 수 있어야 함을 의미한다. 추상적이 아니라 객관적인 방법에 의하여야 하고 보편타당성과 계량의 가능성 그리고 재현성(再現性)이 있어야 한다. 재현성이란 필요한 수단을 사용하면 다시 그것을 출현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말한다. 이렇게 하여야만 동양의학에서 사용하는 한약이나 침치료의 효과판정이 정확하게 행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전술한 동양의학과 서양의학의 비교에서 본 것과 같이 동양의학은 여러가지 장점과 특징을 가지고 있으나 서양의학자들이 일반적으로 가지고 있는 동양의학에 관한 의문이나 비판에 대하여 충분히 납득할만한 해명이나 근거를 가졌다고는 볼 수 없다.
 

물론 이같은 서양의학자들의 비판중에는 동양의학에 대한 그릇된 선입감이나 이해부족에 기인하는 점도 없지 않다. 그러나 근본적으로는 동양의학의 체질, 그 자체에 더 많은 문제가 있다는 것을 솔직히 시인하지 않을 수 없다. 서양의학에도 현재 다량으로 사용하는 항생물질이나 화학합성약품의 한계와 위험도 등 많은 결점과 약점을 내포하고 있다.
 

그러나 동양의학의 경우 서양의학자에 의하여 지적되고 비판되는 결점이나 약점을 제대로 인식하지 않는 것은 동양의학에 있어서 치명적인 결점이라고 아니 할 수 없다.
 

그 한 예로서 동양의학자들이 흔히 갖고 있는 '동양의학을 과학화하면 그 장점이 소실된다'는 식의 그릇된 인식이 동양의학의 발전을 저해하고 있는 것이다.

 

동양의학 과학화의 과제
 

동양의학은 한마디로 오랜 임상경험을 체계화하고 조직화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즉, 개인의 관찰과 경험에 의하여 이루어진 경험의학으로서 작용기전 등은 우선 고려하지 않고 실제로 사용하여 유효한 것을 중요시하여 왔다. 동양의학이 지금까지 경험의학의 영역을 벗어나지 못해 과학적이 되지 못한 가장 큰 원인은 사물을 분석해보는 발상이 서양의학에 비하여 발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개인의 관찰과 경험에 의하여 이루어진 동양의학은 하나의 현상론(現象論)의 의학으로서 경험사실속에 일정한 법칙성이나 경험법칙을 파악한 후 응용하고 체계화한 것이라고 결론지을 수 있다.
 

동양의학에서는 사실의 배후에 무엇이 어떻게 되어 있으며 왜 그렇게 되어 있는가 하는 실체론(実体論)이나 본질론(本質論)의 파악에는 매우 미흡하다. 이것은 아마도 서양의학과 동양의학의 두드러진 차이점인 동시에 동양의학의 가장 큰 결점이며 약점이라고 할 수 있다.
 

서양의학도 원래는 경험론의 집적같은 형태였다. 그러나 의학을 실천하는 과정에서 주관이나 경험에서 얻어지는 개인적 척도에다 객관적인 수치나 시각 즉, 공통의 척도를 부가함으로써 하나의 술(術)적 차원에서 학(學)적 차원으로 그 수준을 높여 오늘날과 같은 현대적 학문으로서의 발전을 가능케 하였다.
 

동양의학이나 서양의학이나 의사는 진찰이란 수단을 통해서 환자로부터 정보를 수집한다. 동양의학에 있어서 이 정보는 사진(四診)에 의하여 얻어진다.
 

사진은 망진(望診)과 청진(聴診) 문진(問診) 절진(切診)을 말한다. 망진은 환자의 표정이나 동작을 보고 진단하는 것이며, 청진은 환자의 목소리나 냄새 등에 의해서 진단하는 것이고, 문진은 환자의 호소나 증상에 의하여 진단하며, 절진은 맥을 보거나 환자의 신체부위를 직접 접촉함으로써 진단하는 것이다.
 

사진은 환자의 병태에 관한 정보를 얻는 것이 목적인데 문진이라는 형식으로는 환자의 자각증상을 얻고 망진 청진 절진은 의사의 감각에 의해서 환자의 타각적 소견(他覺的 所見)을 얻는다.
 

그러나 좀더 자세히 살펴보면 이 타각적 소견은 술자(術者)의 감각이란 개인적 척도에 의해서 측정된 것이기 때문에 엄격히 말해서 이것 또한 타각적이라기 보다는 주관적이라고 보아야 옳을 것이다.
 

이런 시각이나 기준에서 볼 때 동양의학은 학(學)보다는 술(術)에 더 가까운 측면을 가지고 있으며, 술(術)의 결점은 개인 속에서는 발전하나 학문 전체로서는 발전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동양의학이 수천년의 역사속에서 거의 발전한 자취를 찾아보기 힘든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실제 임상활동에 있어 동양의학과 서양의학을 질병진단에 국한하여 비교해 보아도 동양의학이 환자로부터 얻는 정보의 양이나 질에 있어 서양의학보다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 더욱이 진단방법 자체에도 상당한 한계가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즉 서양의학은 개인의 관찰과 경험과 같은 제한된 주관적인 정보외에 측정에 의하여 수집되는 방대한 객관적인 검사소견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검사소견은 대체적으로 두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체온 혈압 혈당치와 같은 수치로 나타낼 수 있는 소위 수량인식(數量認識)과 심전도 뇌파 방사선사진 등과 같이 도형으로 나타내는 도형인식이 그것이다.
 

이같은 검사소견의 특징은 첫째 객관성이 있고, 둘째로 도형이나 수치로 나타낼 수 있으며 세째 오차가 매우 작다는 점이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사실로서 바로 이점이 서양의학이 주관적인 관찰이나 경험이라는 술(術)수준의 개인적 척도에서 벗어나 보편타당성과 객관성 있는 공통의 학(學) 수준의 학문발전을 가능케한 것이다.

 

동서의학 결합의 길
 

동양과 서양의학의 결합


지금까지 동양의학과 서양의학의 차이점과 특징에 대하여 살펴본대로 두 의학 공히 많은 장점과 단점을 내포하고 있으며, 이는 다시 말해 양쪽 모두 반의 진리밖에 가지고 있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이같은 사실에서 의학은 하나이어야 하며 의학에 동과 서가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절감하게 된다. 화학이나 물리학에 동과 서가 따로 있을 수 없듯이 의학이란 학문에도 동과 서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의학의 목적은 건강을 증진하고 질병을 예방하고 환자를 치료하는 데 있다. 그러므로 이같은 의학의 공통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과정에 있어 서양의학적 접근방법과 동양의학적 접근방법에 서로 중첩되는 공통부분이 있다는 것을 차츰 인식하게 된다. 바로 이 부분이 동서의학 결합의 가능성을 시사하는 것이고 나아가서는 새로운 21세기 미래의학의 탄생을 예고하는 것이다. 중첩되는 공통부분이 확대되어 나가는 만큼 새로운 의학 즉, 제3의학에 대한 기대와 희망도 계속적으로 확대될 수 있을 것이다.
 

동서의학의 결합으로 새로운 의학을 창조해보고자 하는 시도는 분명히 의료의 일대혁명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의료분야의 개혁은 정부나 의료기관 또는 의료교육기관만이 아니라 온 국민의 관심사가 아닐 수 없다. 지금까지 어느 나라에 있어서나 의료제도는 정부나 의료기관의 의료만으로는 그 개혁이 불가능하였을 뿐만 아니라 또 설사 개혁이 이루어 졌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제도로서 뿌리를 내려 정착하기는 매우 어려웠다. 의료는 의료를 받는 국민의 요구에 의해 제도가 만들어지고 움직여져 나가는 것이 바람직하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우리나라 동서의학의 결합은 첫째 의료가 적어도 한국의 문화와 사회 경제 속에서 종합적으로 파악되는 가운데 체계화되어야 한다. 둘째로 국민적 시야와 장기적 전망에서 한국의학이 21세기를 바라보면서 지금까지의 수입의학이나 모방의학에서 탈피하여 이제 그 주체성을 확립하고 우리 고유의 특성을 살려야 할 때가 되었다고 본다.
 

동서의학결합의 최종목표는 새로운 의학 즉, 제3의학의 창조적 의학에 있어서도 자기나라 자기문화의 좁은 테두리를 벗어나 온 인류에게 봉사할 수 있는 범세계적인 높은 차원의 의학, 에큐메니칼한 진정한 의미의 하나의 세계의학을 이 땅위에 세워보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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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02월 과학동아 정보

  • 김종열 동서의학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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