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모와 종사관, 유진과 준상, 난주와 기남. 최근 인기리에 방영된 드라마 속 연인들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서로의 신분, 과거의 오해, 부모의 반대같은 갖가지 이유로 인해 이들의 사랑은 그리 녹록하지만은 않다. 드라마와 영화에서 봤던 등장인물들의 러브스토리를 떠올리며 그들의 사랑을 과학으로 풀어보자.
그대의 아픔은 내 아픔
“아프냐? 나도 아프다.”
상처 입은 포도청 여형사 채옥을 치료해 주면서 종사관 황보윤은 나직이 이렇게 말한다. 지난해 ‘다모폐인’ 이라는 신조어까지 탄생시켰던 드라마 ‘다모’ 의 인기 비결은 누가 뭐래도 채옥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처럼 여기는 종사관의 사랑이다.
연인들의 이같은 감정이입이 과학적으로도 증명된 바 있다. 영국 런던대 신경과학자 타니아 싱어 박사 연구팀은 연인 16쌍을 모집해 각 여성의 손등에 짧은 순간 전기충격을 줬다. 이때 기능적 자기공명영상(fMRI) 장치로 여성의 뇌를 관찰한 결과 물리적 또는 감정적 고통에 반응하는 뇌 부위들이 활성화됐다.
이번에는 연인 남성의 손등에 전기충격을 가하는 것을 여성이 보게 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여성들은 자신이 전기충격을 받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뇌에서 감정적 고통에 반응하는 부위가 활성화됐다. 연인의 고통을 보기만 해도 마치 자신이 고통을 느끼는 것처럼 뇌가 반응한 것이다.
싱어 박사는 이에 대해 “마치 소설 속 주인공의 슬픔에 눈물을 흘리는 것과 같다”고 설명했다. 채옥의 어깨에 상처가 난 순간 종사관의 뇌에서도 고통을 느끼는 부위가 활성화되지 않았을까.
첫사랑, 부모와 닮은 사람
함께 일할 파트너를 만나기 위해 사무실에 들어선 순간, 유진은 숨이 멎을 뻔했다. 파트너 이민영씨가 사별한 첫사랑 강준상과 착각할만큼 닮았기 때문이다. 드라마 ‘겨울연가’에서는 결국 이민영과 강준상이 동일인물임이 밝혀진다.
하지만 동일인물이 아니라 하더라도 첫사랑과 닮거나 비슷한 타입의 이성을 만나면 가슴이 뛴다. 캐나다 콘코르디아대 심리학자 짐 파우스 박사는 “옥시토신이 상대방이 가진 특정한 면에 특히 매력을 느껴 끌리도록 만든다”고 설명한다. 즉 같은 타입의 이성을 계속해서 만나고 싶어하는 이유가 바로 자신이 좋아했던 사람과 비슷한 사람을 만나면 옥시토신이 활성화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대체로 어떤 이성에게 매력을 느낄까.
영국 세인트앤드류대 인지심리학자인 데이비드 페렛 박사 연구팀은 실험 참가자들의 얼굴을 반대 성(性)으로 합성한 이미지를 만들었다. 참가자들은 이 사실을 모른채 그 중 가장 선호하는 얼굴을 골랐다. 그 결과 흥미롭게도 많은 참가자들이 자신과 닮은 반대 성의 얼굴을 선택했다. 페렛 박사는 “남성은 어머니를, 여성은 아버지를 닮은 배우자를 선호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최근 실제 가족사진에서 여성의 남편과 아버지가 닮은 경우가 많다는 사실을 발견한 헝가리 펙스대 타마스 베렉츠케이 박사는 “부모를 이성의 모델로 삼는 성적 각인이 작용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드라마 ‘다모’ 에서 성백이 채옥에게, 드라마 ‘진주목걸이’ 에서 기남이 난주에게 사랑을 느꼈던 것도 자신과 부모를 닮았다는 사실이 무의식적으로라도 작용했기 때문이 아닐까. 결국 그들이 남매임이 밝혀지듯이 말이다.
첫사랑이나 부모를 닮았을 뿐만 아니라 균형잡힌 외모를 갖추면 더욱 금상첨화. 미 뉴멕시코대 심리학자 스티븐 갠지스테드와 생물학자 랜디 쏜힐은 여러 사람의 손, 발, 귀 등의 폭과 길이를 측정해 전체적인 신체 대칭성 지수를 구했다. 그리고 실험 참가자들에게 이들의 사진을 보여주며 누구에게 더 매력을 느끼는지를 조사했다. 그 결과 외모가 대칭인 사람일수록 매력적이라고 느끼는 경우가 많았다. 외모는 그 사람의 유전자에 대한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고 알려져 있다. 얼굴이나 몸이 대칭일수록 양질의 유전자를 갖고 있다고 판단한다는 것이다.
내겐 너무 예쁜 그녀
로즈마리가 살짝 걸터앉기만 해도 의자는 박살나고, 그녀의 속옷 사이즈는 거의 낙하산 수준이다. 그래도 할에게 그녀는 늘씬한 몸매에 환상적인 금발로 완벽 그 자체다. 영화 ‘내겐 너무 가벼운 그녀’ 는 심리상담사의 최면요법에 걸려들어 거대한 체구의 여성을 쭉쭉빵빵 몸매로 착각하는 할을 등장시켜 남성의 외모 지상주의를 꼬집는다.
실제로 남성이 여성의 특정한 체형을 선호한다는 연구결과는 많다. 미 텍사스대 심리학자 데벤드라 싱 교수 연구팀은 남성이 선호하는 여성의 이상적인 ‘허리 대 엉덩이 비율’ 이 0.7 정도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또 최근 폴란드 야기엘로니안대 그라지나 야시엔스카 박사 연구팀은 풍만한 가슴, 잘록한 허리를 가진 여성이 생식능력도 높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24-37세 폴란드 여성 1백19명의 타액 샘플을 채취해 분석한 결과, 허리 대 엉덩이 둘레의 비율이 낮고 가슴이 큰 여성이 그렇지 않은 여성보다 여성호르몬인 에스트로겐 수치가 평균 26% 높았다.
이 수치가 높을수록 임신하려고 할 때 성공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사실은 이미 밝혀진 바 있다. 야시엔스카 박사는 이에 대해 “바비인형이 서구 여성의 아름다움의 상징이 된 생물학적 근거를 제시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여성이 생리주기 중 가임능력이 최고에 달할 때 얼굴이 가장 예뻐보인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영국 뉴캐슬대 크레이그 로버트 박사 연구팀은 영국과 체코에 사는 19-33세 여성 50명을 대상으로 생리 후 8-14일의 가임기간인 배란기와 그 이후에 한번씩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무작위로 뽑은 남녀 각각 1백25명에게 같은 여성의 두 사진 중 어느 쪽이 더 매력적인가를 물어봤다. 그 결과 51-59%의 남녀가 배란기 때 찍은 사진을 선택했다. 그렇다면 배란기의 여성은 잠재적 경쟁자인 다른 여성들을 어떻게 평가할까.
캐나다 요크대 심리학자인 마리안느 피셔 박사 연구팀은 57명의 여학생에게 다른 여성의 얼굴 사진을 보여주고 매력도를 평가하라고 지시했다. 그 결과 가임능력이 가장 높은 기간, 즉 에스트로겐 수치가 높은 시기의 여학생일수록 사진 속 여성의 매력도를 더 낮게 평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이 결과가 “여성을 차지하기 위해 남성들이 서로 경쟁을 벌인다는 다윈의 성선택론과는 달리, 여성들도 더 나은 남성을 만나기 위해 경쟁한다는 근거가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영화 ‘고양이와 개에 관한 진실’ 에서 볼품없는 외모지만 매력적인 목소리의 재치있는 에비와, 깡통 소리가 나긴 하지만 늘씬한 금발미인인 노엘 중 누구에게 사랑을 느낄지에 대해 오로지 과학적 잣대만을 들이대기에는 무리가 있다. 하지만 사랑이 뜻대로 되지 않을 때 언젠가는 과학이 그 실마리를 풀어줄 것이라고 기대해볼만 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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