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images.dongascience.com/uploads/old/articleEditor/2013/11/10938956785293077cd422e.jpg)
‘오케스트라의 웅장한 화음, ‘또르르’ 굴러가는 소프라노의 아리아, 가슴 속까지 파고드는 드럼의 비트….’
콘서트홀에서 감미로운 노래와 웅장한 오케스트라에 휩싸이는 경험은 정말 매력적입니다. 심장이 저릿저릿한 느낌이 그리워 다시 공연장을 찾게 되지요. 하지만 모든 공연장이 늘 최고의 소리를 들려주는 것은 아닙니다. 국립극장이나 세종문화회관, 각 시도의 대표 공연장은 대부분 1970~1980년대에 만들어진 ‘다목적 홀’입니다. 일본에서 넘어온 건축 형태로, 말 그대로 다양한 목적으로 쓰기 위해 만든 공간이지요. 당연히 음악을 듣기에는 몇 % 모자랍니다.
그렇다면 어느 공연장에서 들어야 표 값이 아깝지 않은, 최상의 음악을 감상할 수 있을까요? 지금부터 최고의 공연장을 만드는 5가지 비밀을 찾아봅시다.
1. 저음이 오래 울리면, 오케스트라가 나를 감싼다
공연의 질을 좌우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음이 지속되는 ‘잔향시간’입니다. 배우의 성대나 악기에서 소리가 끝난 뒤, 중간 음(500Hz)의 소리에너지가 100만 분의 1로 줄어들 때까지 걸리는 시간을 뜻하지요. 잔향시간은 공연장이 클수록, 그리고 무대와 천장, 벽면, 바닥이 음을 잘 반사할수록 길어집니다.
![](https://images.dongascience.com/uploads/old/articleEditor/2013/11/6472841855293e795c2ab3.jpg)
공연장 종류마다 알맞은 잔향시간이 다릅니다. 오케스트라 공연장은 잔향시간을 1.6~2.2초로 길게 설계합니다. 청중은 떠다니는 음악에 둘러싸여 풍성하고 웅장한 감동을 느낍니다. 성악가가 돋보여야하는 오페라하우스는 이보다는 덜 울려야 대사를 들을 수 있기 때문에 잔향시간을 1.3~1.8초로 짧게 만듭니다. 국내에서 가장 공연하기 좋은 곳으로 꼽히는 예술의전당 클래식전용 콘서트홀은 잔향시간이 2.1초에 달하지요. 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는 2009년 리모델링으로 잔향시간을 1.3초에서 1.5초로 높여, 명료함과 풍부함을 잘 조화시켰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반면, 다목적홀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은 잔향시간이 1.3초에 불과해 오케스트라 음악을 감상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지요.
잔향시간은 벽 재료에 따라 달라집니다. 불 꺼진 극장 벽을 더듬거리며 들어가 본 적이 있나요? 살짝 푹신한 극장 벽은 소리를 잘 흡수하는 ‘흡음재’입니다. 밀도가 낮고 통기성이 좋은 재료들은 소리에너지를 쉽게 흡수합니다. 반면 딱딱한 돌은 소리를 거의 흡수하지 않습니다. 이런 재료는 소리에너지를 튕겨내기 때문에 ‘반사재’로 쓰입니다. 무대 바닥이나 벽은 단단하고 두꺼운 합판 반사재를 붙이고 청중 뒷벽은 메아리를 만들지 않도록 구멍이 송송 뚫린 합성섬유 흡음재를 붙입니다. 흡음재와 반사재를 적절히 조합하면 원하는 잔향시간을 만들 수 있습니다.
중간 음의 잔향시간은 같지만 저음(125Hz)의 잔향시간을 더 길게 설계하기도 합니다. 저음이 오래 울릴수록 청중은 음악을 ‘따뜻’하게 느끼기 때문입니다. 바리톤 김동규 교수를 생각해보면 알 수 있습니다. 소리를 크게 내지 않는데도 주변 공기를 밀어내는 듯, 중후하고 따스한 느낌이 들지요. 그래서 보통 공연장은 중간 음(500Hz)보다 저음(125Hz)이 0.5초 더 길게 울리도록 설계합니다.
![](https://images.dongascience.com/uploads/old/articleEditor/2013/11/4530426365293e78215301.jpg)
2. ‘3500석 규모의 세계 최고 공연장’은 거짓말
공연장이 클수록 음이 오래 지속되지만, 꼭 대형 공연장이 좋은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음악을 방해하는 요소가 더 다양합니다. 좌석 수가 그 중 하나입니다.
사람의 몸은 음을 잘 흡수합니다. 그래서 좁은 공간에 청중이 너무 많으면 소리의 울림이 사라져 메마른 느낌이 들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청중 1인당 차지하는 부피가 8~10m3 정도면 좌석 수가 적절하다고 봅니다. 무대를 뺀 나머지 공간의 부피를 좌석 수로 나눴을 때 위의 범위 안에 들면 일단 합격입니다. 국내에서 손꼽히는 대형 공연장인 세종문화회관 극장은 전체 공간에 비해 좌석 수가 너무 많은, 나쁜 공연장의 대표입니다. 현재는 좌석이 3000석 정도로 많이 줄었지만, 여전히 1인당 부피가 6~7m3입니다.
![](https://images.dongascience.com/uploads/old/articleEditor/2013/11/15567684815293e7a2ec83a.jpg)
청중은 가장 예측할 수 없는 변수입니다. 만석일 때와 비었을 때 음을 흡수하는 정도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청중 수가 달라져도 음악의 질을 최대한 유지하기 위해 좌석은 밀도가 낮은 재료로 만듭니다. 사람이 앉지 않아도 최대한 음을 흡수할 수 있으니까요. 푹신한 소파 같은 공연장 의자는 잠 자라고 그렇게 만든 게 아니에요.
![](https://images.dongascience.com/uploads/old/articleEditor/2013/11/11848324325293e7b0bfdef.jpg)
![](https://images.dongascience.com/uploads/old/articleEditor/2013/11/21334420435293eb7eee3eb.jpg)
3. 부채꼴보다는 ‘슈 박스’ 공연장
잔향시간이 같더라도 초기 음은 대부분 반사돼야 유리합니다. 여러 번 반사돼 에너지가 줄어든 음보다는 한 번만 반사돼 에너지가 큰 음이 청중에게 더 풍성한 느낌을 주기 때문입니다. 초기 반사음은 공연장 모양에 따라 달라집니다.
초기 음을 많이 반사시키는 공연장은 직사각형 모양의 ‘슈 박스’입니다. 처음에 방사형으로 퍼져 나간 음은 청중에게 바로 향하는 ‘직접음’과 벽에 반사되는 ‘반사음’으로 나뉘는데, 슈 박스 공연장에서는 옆 벽면에 한 번 반사된 음이 직접음에 바로 더해집니다. 반면 부채꼴 모양의 공연장은 객석을 많이 넣을 수 있지만, 옆 벽면에서 반사되는 음이 적어 오케스트라 공연에 적합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슈 박스라도 완벽한 직사각형으로 만들지는 않습니다. 매끈한 두 벽면이 평행을 이루면 각 벽에 도달한 소리가 똑같이 반사된 뒤 중간 위치에서 다시 만나 자칫 공진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공진이란 진동수가 같은 파동이 만나 진폭이 크게 증가하는 현상으로, 아주 시끄러운 소리가 날 뿐만 아니라 귀에 이상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음이 양 벽면을 계속 왕복하면 노래방 마이크 같은 메아리가 생기기도 합니다.
이를 막기 위해 공연장 옆 벽면에는 직육면체 구조물을 불규칙적으로 배치하거나 처음부터 벽면을 곡선 형태로 만듭니다. 벽에 부딪힌 음이 여러 방향으로 흩어지게 만드는 것이지요. 벽을 계단형으로 만들기도 하지만, 오히려 무대 쪽으로 메아리를 만들 수 있기 때문에 각도에 유의해야 합니다.
![](https://images.dongascience.com/uploads/old/articleEditor/2013/11/11619600005293eb930a130.jpg)
![](https://images.dongascience.com/uploads/old/articleEditor/2013/11/1668593345293ef63b7920.jpg)
4. 오페라하우스 화려한 조각 장식의 비밀
대부분의 뮤지컬 전용관이나 오페라하우스에는 발코니가 있습니다. 보통 2층 발코니와 발코니 바로 아래에 있는 1층 좌석은 표 값이 같지요. 그러나 과연 같은 값을 할까요?
2층 발코니는 음원(가수나 오케스트라)에서 소리가 바로 오기도 하고 천장과 옆 벽면에서 반사된 소리도 문제없이 도달합니다. 하지만 1층 좌석은 다릅니다. 발코니 안으로 너무 깊이 들어가 있으면 천장에서 반사된 음이 발코니에 막혀 들어오지 못합니다. 반사음이 못 오면 음악이 풍성하게 들리지 않겠지요. 일반적으로 천장 중앙과 발코니, 1층 가장 뒷좌석을 잇는 선이 바닥과 25도 이상을 이루도록 만듭니다.
그런데 발코니를 보면 독특한 모양의 조각이 많이 붙어 있습니다. 이것은 그저 멋있으라고 붙인 조각이 아닙니다. 발코니의 벽면이 평평하면 도달한 음이 골고루 확산되지 않고 한 곳으로 집중돼 반사됩니다. 그 자리에 앉은 사람은 마치 운동장에서 교장 선생님이 연설하는 것 같은 메아리 음악을 듣게 되지요. 만약 소리가 무대로 반사되면 노래하는 사람은 시차를 두고 자기 목소리를 듣게 됩니다. 이런 현상을 막으려면 발코니 벽면이 둥글고 울퉁불퉁해서 소리를 여러 방향으로 ‘확산’시켜야 합니다. 유명한 오페라하우스의 화려한 조각 장식은 사실 좋은 음악을 위한 장치이기도 합니다.
![](https://images.dongascience.com/uploads/old/articleEditor/2013/11/8303483055293efa55c90b.jpg)
![](https://images.dongascience.com/uploads/old/articleEditor/2013/11/20913738215293efad64bf0.jpg)
![](https://images.dongascience.com/uploads/old/articleEditor/2013/11/20981416685293efe6ca7cb.jpg)
5. 전기 음향이 다목적 공연장 되살린다
세종문화회관에서는 한국을 대표하는 공연장답게 오케스트라 발레 뮤지컬 같은 문화 행사뿐만 아니라 국경일에 중요한 국가 행사가 열리기도 합니다. 이렇게 다양한 목적으로 쓰는 공연장은 건축기법만으로 소리를 조절하기에 한계가 있습니다.
가장 손쉬운 방법은 공연이 열릴 때 반사판을 더하는 것입니다. 피아노 독주처럼 작은 소리를 울리게 해야 할 때 피아노 뒤편 무대에 음향반사판을 병풍처럼 세웁니다. 서울 강남에 있는 LG아트홀에는 벽 뒤에 1m 가량의 공간이 있는데, 공연이 열릴 때 안에 있는 커튼을 열어 음이 덜 흡수되게 하고 공간의 크기를 키워 음이 오래 울리도록 합니다. 하지만 이런 방법으로는 잔향시간을 0.1초밖에 늘리지 못합니다.
대신 최첨단 전기 음향 시스템이 건축적으로 실패한 공연장에 심폐소생술을 해주고 있습니다. 세종문화회관 대강당에는 곳곳에 숨겨진 마이크와 스피커가 수백 개에 달합니다. 마이크가 음을 받아 목적에 맞는 잔향시간만큼 늘린 뒤 다시 스피커로 들려주는 것이지요. 이런 전기 음향은 특히 교회에서 많이 사용합니다. 2시간 예배드리는 동안 오르골을 연주하고 성가대가 노래도 하고 목사가 설교도 하는, 가장 바쁜 공간이기 때문입니다. 최근 개발된 음향시스템은 태블릿PC로 연주 모드, 성가대 모드, 목사설교 모드를 선택하면 소리를 풍성하게, 또 명료하게 바로바로 바꿔 들을 수 있습니다. 목사 설교 빨리 들어야 하는데 언제 음향반사판 치우고 있겠어요.
앞으로는 공연장에 가지 않아도 공연장과 같은 효과를 누릴 수 있는 3D 음향 시스템이 상용화될 예정입니다. 이미 일부 영화관에 3D 음향이 도입되기도 했지요. 하지만 전기 음향보다는 역시 훌륭한 공연장에서 듣는 라이브 공연이 더 감동을 주는 것 같습니다. 아름다운 음악에 더해 배우와 함께 호흡하며 극 중 감정에 몰입할 수 있으니까요. 추운 겨울, 위의 조건들을 모두 갖춘 훌륭한 공연장을 찾아 사랑하는 사람과 뮤지컬 한 편 감상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
![](https://images.dongascience.com/uploads/old/articleEditor/2013/11/7677120005293f04331c4d.jpg)
![](https://images.dongascience.com/uploads/old/articleEditor/2013/11/1209366415293f04b29520.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