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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3. 바다 속으로 태평양을 건너다

해저터널 건설하기


제주도에서 미국 로스엔젤레스(LA)를 잇는 해저 터널이 가능할까. 길이만 1만km를 훌쩍 넘는다. 평균 수심 4000m에 달하는 엄청난 부피의 바닷물은 어찌할 것인가. 엄두가 나지 않는다. 그러나 과학은 항상 상상을 현실로 만들었다.

태평양 해저터널은 어디에 쓸까. 비행기를 타지 않아도 미국에 갈 수 있다. 자동차나 열차는 비행기보다 훨씬 느리다고 낙담하진 말자. 우리에겐 시속 900km 이상으로 달릴 수 있는 자기부상열차가 있다. 비행기 속도와 비슷하다. 과연 태평양을 횡단하는 터널을 만들 수 있을까. 흥미진진한 과정을 함께 들여다보자.


태평양 바닥을 뚫는다?

“태평양이요? 태평양이라고 별 다를 것 있겠습니까? 현대 과학과 공학이 지구에서 못 뚫는 곳은 없습니다.”

김동규 건설기술연구원 Geo-인프라연구실 연구위원은 태평양을 횡단하는 해저터널을 뚫는 것이 가능할까라는 질문에 호기롭게 답했다. 일반적으로 바다에서 석유를 시추할 때 지반을 뚫고 내려가는 깊이가 최대 4~5km다. 바다 평균 수심 4000m를 포함하면 지구 표면(해수면)에서 약 8~9km 깊은 곳까지 뚫고 내려간다는 의미다.

태평양이든, 대서양이든, 육지가 됐든 지구를 구성하는 암석 물질들은 크게 다르지 않다. 퇴적토층, 풍화토층, 풍화암층, 연암층, 보통암층, 경암층, 극경암층 등 터널을 뚫는 곳의 지반 특성에 맞는 터널링 공법을 사용하면 된다. 지반을 분석하려면 얇고 긴 관을 지반에 깊숙이 찔러넣고 각 층별 암석 샘플을 수집해 분석한다. 그러나 수심 몇 백, 아니 몇 천m에 달하는 해저면의 지반을 이런 방식으로 조사하기란 쉽지 않다. 때문에 최근에는 비파괴 검사가 매우 다양하게 응용되고 있다. 방사선이나 초음파를 이용해 지반을 구성하는 물질 고유의 파형을 분석하거나 음파가 되돌아오는 시간을 계산해 지반이나 지질, 구성 암석 등을 확인한다.

비파괴 검사를 통해 지질도가 완성되면 다음 단계는 직접 땅 속을 파보는 것이다. 조금씩 파면서 지질을 확인한다. 특히 수심이 깊어질수록 비파괴 검사에 사용하는 초음파의 정확도가 떨어져 아직 정확도를 높이는 연구가 필요하다. 김동규 연구위원은 “수심이 깊을수록 해저 지반 탐사나 조사가 훨씬 어려워질 것”이라며 “마치 장님이 코끼리 코를 만지는 것과 비슷하다”고 말했다.
 


물과의 전쟁

지반 조사가 끝나면 제주도 어딘가에서부터 태평양 방향으로 바닥을 뚫기 시작한다. 터널을 위해 지반을 뚫는 데는 크게 두 가지 방법이 사용된다. 폭약을 사용하는 발파와 기계굴착방법이다. 발파는 해저에서 불가능하다. 한꺼번에 구멍이 크게 뚫리면 지반이 무너져 내리고, 엄청난 수압으로 바닷물이 들이칠 수 있기 때문이다. 기계굴착방법을 이용해야 한다. 최근에는 TBM(Tunnel Boring Machine)으로 불리는 굴착기계가 흔히 사용된다. 폭약을 이용한 발파 굴착은 하루 최대 7~8m 가량 뚫는 데 그치지만 TBM은 하루에 15m 가량 뚫을 수 있다.

터널 뚫기의 가장 큰 적은 물이다. 엄청난 양의 바닷물이 떠오르겠지만 태평양 터널의 적은 의외로 바닷물이 아니다. 바로 해저 지반의 암석 물질 사이에 스며들어 있는 물이다. 김동규 연구위원은 “한강의 경우 한강 수위만큼 강바닥 아래 지반에 물이 들어차 있다고 보면 된다”며 “수심이 수 백, 수 천m인 태평양 해저 지반에 들어 있는 물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엄청난 양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때문에 암석 사이에 물이 어떤 형태로 얼마나 많이 들어있는지 탐사해야 한다. 터널을 뚫고 나가는 앞부분 지반에 수로가 발견되면 수로를 막는 방수 작업 후 다시 뚫는 과정을 반복한다. 그래야만 뚫어 놓은 공간에 물이 들어차지 않는다. 실제로 일본 세이칸해저터널 굴착 중 수로를 막지 못해 작업하던 인부 여러 명이 목숨을 잃었다.

수로는 어떻게 막을 수 있을까. 그라우팅 공법이라는 토목공학 기법을 사용하면 된다. 그라우팅은 굴착으로 발생한 균열을 메우는 공법으로 얇은 관을 지반에 투입시켜 강력한 압력으로 시멘트나 콘크리트와 같은 지보재를 주입한다. 얇은 수로를 따라 관입된 지보재는 재빨리 굳어 균열을 메우거나 수로를 막는다.

그라우팅 소재로 보통 시멘트를 쓴다. 최근에는 ‘에폭시우레탄’이라는 화학물질도 사용된다. 시멘트를 사용하면 굳는 데 시간이 다소 걸리지만 강도는 높다. 우레탄은 빨리 굳지만 내구성이 약하다. 따라서 암석의 재질과 지반 상태에 따라 시멘트와 에폭시우레탄을 선택하면 된다.

방수는 아무리 잘해도 언젠가는 물이 샌다. 배수 시설을 고려해야 하는 이유다. 지반에서 새는 물을 받는 관을 만들어 일정한 거리마다 모아 배출해야 한다. 모이는 물을 바다로 내보내려면 고압 펌프를 사용한다. 배수 처리 공간은 터널 굴착 작업자들의 복합 휴게소 개념으로 디자인한다. 작업장 내부의 공기 순환 장치와 산소통 등도 필요하다.





바닷물 속 달리는 해중터널로 해구와 지진 피한다

이제 기본적으로 태평양 터널을 뚫기 위한 이론적·기술적 준비가 끝났다. 무리 없어 보이지만 변수는 있다. 첫 번째 변수는 공사 기간이다. TBM을 사용해서 태평양 터널 공사에 착수해 제주도에서 LA까지 약 1만km라고 가정한다면 시간이 얼마나 소요될까. 하루에 최대 15m를 뚫는다고 해도 대략 1800년이 넘게 걸린다. 두 번째 변수는 해구와 지진 조산대의 활동이다. 제주도에서 태평양 방향으로 터널을 뚫기 시작하면 지구상에서 가장 수심이 깊은 마리아나 해구까지는 아닐지라도 단층 지역과 지진이 빈번하게 일어나는 환태평양 조산대를 지나야 한다. 아무리 강력한 지보재를 써도 해저터널은 지진 앞에서 무용지물이다. 태평양 터널 프로젝트는 여기서 좌절하는 것인가.

태평양의 깊은 해구나 조산대를 피할 수 있는 방안은 해중터널(수중터널)이다. 더 이상 해저 지반을 뚫고 나아갈 수 없을 때, 해구나 조산대를 완벽하게 피할 수 있는 지점의 해저 지반에서 바닷물 쪽으로 뚫고 나와 해중터널로 연결하는 개념이다.

해중터널은 중력과 부력을 조절해 터널 구조물을 물 속에 놓는 방법이다. 해중 터널을 건설하는 방법은 크게 4가지(그림과 설명 참조)다. 텐션렉(tension leg), 폰툰(pontoons), 칼럼서포트(column support), 프리(free)로 나뉜다.

해중터널 유형은 바다 속 환경에 따라 달라진다. 수심이 깊으면 칼럼서포트 방식은 어렵다. 반대로 조류가 많이 지나는 곳은 텐션렉 방식이 적합하다. 태평양 가운데 해중터널이 설치되는 구간을 설정한 후 각 지점에 적합한 방식을 시공하면 될 것 같지만 그리 단순하지 않다. 바다 속에 설치되는 해중터널이 외부 힘에 부서지거나 뒤틀릴 수 있기 때문이다.


안전한 해중 터널, 슈퍼컴퓨터와 첨단 유체역학의 하모니

태평양 한복판에 구축되는 해중터널의 기본형은 텐션렉형이 될 것이다. 수심이 깊어 고정식 칼럼서포트는 어렵기 때문이다. 한상훈 한국해양연구원 책임연구원은 “텐션렉 방식 중에서도 해중터널 구조물을 양쪽에서 두 번 휘감아 한 지점의 텐션렉에서 총 4개의 앵커링(해저면에 고정하기 위한 장치)을 설치하는 형태가 될 것”이라며 “고정식 구조물에 비해 외부 운동 에너지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어 부서질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적다”고 설명했다(위 그림 참조).

태평양 해중터널의 외부 위협 요인은 무엇일까. 우선 부력과 중력, 텐션렉 등 고정장치의 장력, 조류압, 파력, 쓰나미 등 해양에서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요인과 선박 충돌, 잠수함 충돌, 난파된 선박의 침강, 제어 능력을 상실한 잠수함, 테러 등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위협 요인을 극복하는 안전한 해중 터널을 만들기 위해서는 고도의 계산능력을 지닌 슈퍼컴퓨터와 첨단 유체역학 지식을 총동원해야 한다. 특히 해중터널의 기준 지점마다 자동위치제어스러스터팩(ATPT)을 설치하면 안전성을 크게 높일 수 있다. ‘스러스터(Thruster)’는 위성의 자세나 궤도를 제어하기 위해 추진력을 발생시키는 장치다.

예를 들어 지진이 발생하면 가공할 위력의 쓰나미가 터널 구조물을 뒤틀리게 할 수 있다. 이 때 어느 정도 규모로 언제 쓰나미가 도착하고 어느 방향으로 오는지 재빨리 계산한다. 분석된 정보를 토대로 ATPT 장치가 해중터널의 각 지점에 있는 앵커링을 조절한다.

힘을 받는 방향과 시간을 계산해 정확히 반대 방향의 추진력을 발생시켜 안정된 위치를 유지한다. 또 텐션렉 중간이나 앵커링 부분에 외부 힘을 천천히 전달하는 진동 흡수 장치(댐퍼)를 설치한다. 이처럼 복잡다단한 외부 영향을 순간적으로 계산하기 위해서는 월등한 성능의 슈퍼컴퓨터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아쉽게도 해중터널은 아직 없다. 이탈리아, 노르웨이, 일본, 중국 등이 활발히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한중 해저터널 구축 방안으로 해중터널이 거론되고 있다. 한상훈 해양연 책임연구원은 “대양 횡단 방법으로 해중터널이 비용 효율적인 측면이 분명히 있다”며 “많은 사람들이 힘을 합치고 머리를 맞대면 충분히 가능한 얘기”라고 강조했다. 바다 속으로 태평양을 횡단하는 일, 생각보다 그리 멀지 않은 미래의 일이다.

 

해저 침매터널의 모식도. 부산과 거제를 잇는 거가대교는 일부 구간이 세계 최장 침매터널로 이뤄져 있다.


일본 세이칸터널 내부 모습. 건설 중 방수에 실패해 작업 인부 몇명이 목숨을 잃었다.

해저터널을 뚫는 방법에는 발파와 기계굴착방법이 있다. 사진은 기계굴착방식에 사용되는 TBM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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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5월 과학동아 정보

  • 김민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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