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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 짝짓기 시장의 치열한 생존전략

사랑이란 감정은 어떻게 진화했을까

 

영화 ‘러브 액츄얼리’ 에서 안타깝게도 친구의 신부를 짝사랑한 마크는 크리스마스 밤에 조용히 그녀를 불러내 “내게 당신은 완벽한 사람입니다” 라고 쓴 보드판을 보여주며 자신의 마음을 전한다.
 

친구의 신부를 사랑한 마크. 그는 짝사랑을 가슴에 고이 묻어두기는커녕 크리스마스날 밤 그녀에게 찾아가 사랑을 고백한다. 얼마전 개봉됐던 로맨틱 코미디 영화 ‘러브 액츄얼리’ 의 한 장면이다. 이 영화의 원제처럼 ‘사랑은 어디에나 존재’ (Love actually is all around)하며 수많은 영화, 음악, 문학, 드라마에서 되풀이된다.

연인들은 서로에게 줄 선물을 정성껏 준비하면서 행복을 느끼고 애인에게 자신이 얼마나 깊이 빠져있는지를 보여주기 위해 갖은 궁리를 다한다. 사랑에 빠진 이들은 왜 이렇게 느끼고 행동하는 걸까. 사랑 역시 유기체의 생물학적 특성인 감정의 하나임을 감안하고, 인류의 짝짓기 시장에서 사랑이 어떤 역할을 해왔는지 진화심리학의 관점에서 들여다보자.

배우자 선택에 여성이 더 신중한 이유

벌을 유혹하는 아름다운 꽃, 놀라운 사회성을 보여주는 개미군락, 인간 숙주를 철저히 이용하는 에이즈바이러스(HIV) 등 자연은 의도적으로 설계한 것처럼 보이는 복잡하고 효율적인 생물학적 특성들로 가득 차 있다. 이에 대해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라는 다윈의 이론은 세대를 거쳐 전해지는 유전자 중 자신의 복제본을 더 잘 전파시키는 유전자가 누적적으로 선택된 결과라고 설명한다. 예컨대 봄에 맞춰 꽃을 피게 하는 유전자가, 겨울이 채 끝나기도 전에 꽃을 피우는 성미 급한 유전자를 제치고 선택됐을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보는 자연의 특성들은 개화시기를 맞추는 일같이 갖가지 문제들을 풀기 위해 진화한 해결책이다.

얼굴을 기억하고, 언어를 습득하고, 어려운 판단을 내리는 사람의 마음도 대단히 복잡하고 효율적으로 보인다. 따라서 진화심리학자들은 다윈의 이론에 기초해 마음을 이해하려고 시도한다. 높은 곳에서 공포를 느낀 사람이 아무 생각 없던 사람보다 많은 자손을 남겼고, 상한 음식을 혐오해서 먹지 않은 사람이 먹은 사람을 제치고 우리 조상이 됐다. 뇌의 활성이나 호르몬의 분비, 성기관의 변화가 “어떻게 사랑하게 되는가?”에 대한 해답을 제공하는 반면, 진화적 설명은 “왜 사랑하는가?”에 대한 실마리를 제공한다.

짝짓기(mating)라는 말에는 두 개체가 상호 합의하에 서로를 동시에 선택하는 느낌이 묻어난다. 그러나 사실 자연계의 대다수 동물종에서는 주로 암컷이 신중하게 선택하는 입장인 반면 수컷들끼리 암컷의 선택을 받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인다.

배우자를 얻기 위한 경쟁이 왜 한쪽 성에서만 치열하게 벌어지는가에 대한 해답은 1972년 미 하버드대 대학원생이던 로버트 트리버스가 다윈의 명저 ‘인간의 유래와 성에 관련된 선택’ 의 출간 1세기를 기념하는 책에 게재한 논문에서 나왔다. 트리버스는 자식을 기르는데는 별로 투자하지 않는 성에서 배우자를 얻기 위한 경쟁이 더 치열하게 벌어진다고 주장했다. 자식을 더 잘 돌보는 성은 자식을 돌보지 않는 성의 입장에서 보면 일종의 귀한 ‘자원’ 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경우 일방적인 선택보다 남녀간 상호선택이 일어난다. 이는 결혼상대 같은 장기적인 배우자를 선택하는 상황에서 특히 뚜렷하다. 남성은 짝짓기 시장에서 여성 배우자를 ‘구매’할 때 여성의 배우자 가치 가운데 나이나 신체적 매력에 유난히 신경을 쓴다. 그 이유는 이같은 요인들이 어떤 여성이 얼마나 자식을 잘 낳을 수 있는지를 직접적으로 알려주기 때문이다. 짝짓기 시장에서 여성은 남성보다 훨씬 더 까다롭게 이모저모 살펴가며 배우자를 ‘구매’ 한다. 여성은 주로 남성의 경제적 능력이나 지위, 그리고 앞으로도 신뢰할 수 있는지 여부 등을 따진다. 남녀가 함께 자식을 양육하도록 진화된 우리 종에서는 충실하게 가족을 돌보는 남편이 여성에게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배우자 가치가 허용하는 최대 한도에서 가장 높은 배우자 가치를 지닌 이성을 구매하는 것이 이 냉혹한 짝짓기 시장에서 승리를 거두는 길이다. 그런데 차가운 합리적 이성을 총동원해도 부족할 판국에 사랑이라는 뜨거운 감정이 어떻게 이 무대의 주연을 맡았을까. 이를 이해하기 위해 일단 감정 자체가 왜 존재하는지를 짚어볼 필요가 있다.

“그 친구 좀 감정적이더군.” “흥분하지 말고 이성적으로 해결합시다.” 일상생활에서 흔히 듣는 말이다. 감정적으로 처신했다는 말은 합리적으로 스스로를 다스리지 못하고 맘대로 행동하는 바람에 자신뿐만 아니라 타인에게도 결국 큰 손해를 입혔다는 뜻으로 쓰인다. 만약 감정이 손해만 끼쳤다면 자연선택에 의해 진작 제거됐을 것이다. 미국의 진화심리학자 존 투비와 리다 코스미디즈 부부는 감정이 사고나 지능에 질질 끌려다니는 하수인이 아니라, 오히려 각종 심리적 요소들을 잘 이끌어 당면한 목표를 완수하는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와 같다고 제안했다. 즉 감정 역시 자연선택에 의해 정교하게 다듬어진 산물이라는 것이다.

대인관계에서는 오직 냉철한 이성만이 중요할 것 같지만, 실은 감정이 매우 큰 역할을 한다. 당신이 인기스타의 명품 핸드백을 훔치려 한다고 하자. 도난 사실이 알려지면 자신의 이미지가 망가질 것을 우려해 스타는 경찰에 차마 신고하지 못할 것이다. 따라서 스타의 명품은 전부 당신 것인 셈? 그러나 실제로 이렇게 믿는 사람은 없다. 아무리 스타라 한들 자기 물건을 멋대로 훔쳐간 당신을 혼내주기 위해 분노에 차서 도난 신고를 할 것이기 때문이다.

도덕적 분노 같은 열렬한 감정은 “내 핸드백을 훔쳐가면 이미지가 추락하든 말든 당장 경찰에 신고하겠어”라는 말이 공연히 질러보는 허세가 아니라 명백한 진심임을 상대방에게 확실히 보증하기 위해 진화한 산물이다. 누군가가 나에게 해를 끼치면, 나는 그를 응징하기 위해 또다른 손해를 감수하는 일쯤이야 신경쓰지 않겠다는 각오를 남들에게 확실히 인식시켜야 애초부터 나를 건드리지 않을 것이다. 이제 사랑이라는 열렬한 감정이 진화한 까닭에 좀더 접근해보자.

당신에 대한 헌신을 보증하는 장치

“맘에 안드는 그녀에겐 계속 전화가 오고 내가 전화하는 그녀는 나를 피하려 하고, 거리엔 괜찮은 사람 많은데 소개를 받으러 나간 자리엔 어디서 이런 여자들만 나오는 거야….” ‘신인류의 사랑’ 이라는 예전 유행가의 가사다. 세상 어딘가에는 당신이 찾는 완벽한 그 또는 그녀가 틀림없이 있다. 그러나 이상형이 나타나기만을 기다리면서 무작정 솔로로 늙어갈 수는 없는 노릇.

게다가 이상형을 만난다 한들, 이 냉혹한 짝짓기 시장에서 당신에게 매겨진 등급이 만점이 아닌 다음에야, 그 이상형이 당신을 택한다는 보장도 없다. 결국 합리적으로 따진다면 그동안 만나본 표본집단 이성들 중 가장 나은 이성을 택해 결혼해 살다가, 조금이라도 나은 등급의 이성과 새로 잘 될 기미가 보이면 바로 그리로 옮겨가는 길이 최선이다. 하지만 상대방도 당신과 똑같이 생각할 것이므로 결국 남녀 모두 파국을 맞게 될 것이다.

미 코넬대 진화경제학자 로버트 프랭크는 저서 ‘이성 안의 열정’ 에서 짝짓기 시장을 집세 시장에 비유했다. 집주인은 집을 깨끗이 사용하고 집세도 꼬박꼬박 낼 최고의 세입자를 구하고 싶어하지만 결국은 만나본 세입자 몇몇 가운데 가장 나은 사람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세입자 역시 둘러본 집 몇몇 가운데 가장 나은 집의 주인을 택할 수밖에 없다.

일단 세입자가 들어와 살게 된 다음에는 두사람 모두 상대방이 갑자기 계약을 파기하면 큰 손해를 본다. 집주인이 “더 좋은 세입자를 구했거든요. 당장 집을 비워줘야겠어요” 라고 말하거나 세입자가 “더 싸고 좋은 집을 찾아서 이사가려구요. 다른 세입자를 구해보세요”라고 말한다면 말이다. 따라서 둘 다 이득을 얻으려면 각자 새로운 대안을 찾을 선택의 여지를 자발적으로 포기하는 방법밖에 없다. 일방적으로 계약을 파기한 사람이 큰 금전적 손해를 입도록 법적으로 규정한 임대계약서가 바로 그것이다.

짝짓기 시장이 집세 시장과 다른 점이 있다면, 애인을 갑자기 차버리지 못하도록 강제하는 법률 따위는 없다는 점이다. 어느날 김희선이 당신의 남자친구를 스토킹하거나, 장동건이 당신의 여자친구에게 사랑을 고백하면 어떡할 것인가. 유일한 해결책은 처음부터 합리적으로 선택하지 않은 사람과 사귀는 것, 즉 당신의 있는 그대로를 좋아하기 때문에 당신의 등급과 관계없이 어떤 일이 생겨도 당신 곁에 있을 비합리적인 사람과 사귀는 것이다.

사랑이란 진화적인 시각에서 보면 연인 사이에서 당장 눈앞의 유혹을 물리치고 장기적으로 더 큰 이득을 보기 위해 서로에게 헌신하게 만드는, 자연선택에 의해 만들어진 복잡한 정신현상이다. 장기적 이득은 배우자와 자신의 유전자를 후세에 전할 수단인 자식을 낳아 키우는 것을 뜻한다. “네 IQ는 만족스럽고, 네 외모는 간신히 내 기준을 통과하고, 너희 집안도 맘에 들어. 경쟁자들 가운데 가장 낫기 때문에 널 골랐어”라고 통보하는 사람은 더 나은 상대가 나타나면 당신을 떠날 사람이다. 얼굴을 붉히며 “정말 사랑에 빠졌나봐. 내 마음 나도 모르겠어”라고 고백하는 사람을 택하라. 사랑이 “오직 당신에게만 몰두하겠다”는 그의 말이 그저 질러보는 허세가 아니라 명백한 진심임을 믿음직하게 보증해주고 있으니.

여친 오래 사귀면 남성호르몬 감소

진화심리학에 대한 반론 중 하나가 이미 일어난 사실에 그럴듯한 이야기를 꾸며내기에 급급하다는 주장이다. 이는 다른 과학처럼 진화심리학 역시 가설 설정에서 시작되며, 가설에서 얻어지는 예측들을 검증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점을 모르기 때문에 하는 오해다. 사랑이 상대에게 헌신하고 있음을 보증해주는 장치라는 가설이 어떻게 검증되는지를 살펴보자.

문학과 진화이론을 접목한 최근의 한 연구에서는 미국에서 가장 잘 팔린 로맨스 소설 45편을 대상으로 남자주인공의 어떤 특질에 여자주인공이 끌리는지를 조사했다. 남자의 재산이 중시될 것이라는 통념과 달리, 겨우 19편에서만 남자주인공이 부자였을 뿐 10편에서는 아예 가난하기까지 했다. 남자주인공이 근면하거나 야심차게 묘사된 작품도 각각 12편과 6편으로 그리 많지 않았으며 3개 작품에서는 아예 실업자로 묘사됐다. 그러나 여주인공에 대한 지극한 헌신은 45개 전 작품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났다. 남자주인공은 언제나 여주인공에 깊이 빠져있으며 오직 한사람과의 지속적인 사랑을 쟁취하기 위해 분투하는 인물로 그려졌다.

좀더 직접적인 결과는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 연구에서 찾을 수 있다. 테스토스테론은 성욕을 증대시켜 여성을 더 열심히 찾아나서도록 하는데 관여한다. 때문에 기혼 남성의 테스토스테론 수치는 미혼 남성보다 더 낮다고 알려져 있다. 만약 사랑이 다른 이성을 자발적으로 멀리하고 애인에게만 헌신하게 만드는 장치라면, 기혼 남성뿐만 아니라 오랫동안 한 여성과 연애한 미혼 남성의 테스토스테론 수치도 낮을 것이다. 1백22명의 하버드 경영대학원 남학생을 조사한 최근 연구에 따르면, 오래된 여자친구를 둔 미혼 남성들의 호르몬 수치는 여자친구가 없는 미혼 남성들의 수치보다 과연 21%나 낮았다. 흥미롭게도 이 수치는 기혼 남성들과 별 차이가 없었다.

지금껏 사랑이 변덕스럽고, 억제하기 힘든, 어떤 설명도 불가능한 원초적인 감정이라 생각해왔는가. 그러나 현대 진화심리학의 논리로 보면 사랑은 원시적인 충동이기는커녕 뚜렷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자연선택에 의해 오랫동안 정교하게 다듬어진 정신현상의 하나다. 즉 사랑은 장기적인 결합을 맺기 위해 서로에 대한 헌신을 보장하는 기능을 하는 것이다.

영화 ‘러브 액츄얼리’ 의 마크도 자신이 얼마나 ‘비합리적으로’ 그녀에게만 매달리는지를 분명히 알릴 필요가 있었다. 다른 대안들을 자발적으로 포기하고 자신의 손발을 꽁꽁 묶을수록 그녀의 마음이 흔들릴 가능성도 커질테니까 말이다. 결국 가벼운 키스나마 받지 않았는가.

남성은 성격짱, 여성은 직업짱 선호
 

최근 결혼정보회사 듀오의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배우자를 고를 때 외모를 중시하는 경향은 남성이, 경제력을 중시하는 경향은 여성이 더 강한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은 듀오 회원들의 캐주얼미팅 모습.


최근 미혼남녀가 배우자를 선택할 때 남성은 성격 외모 직업(경제력) 순서로, 여성은 직업(경제력) 성격 가정환경 순서로 상대를 고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 초 결혼정보회사 듀오가 우리나라 성인 2천5백78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다. 배우자의 이상적인 직업으로 남성은 교사, 공무원, 일반 사무직을 꼽았고, 여성은 공무원, 의사·약사, 회계사·변리사·세무사를 꼽았다. 장기적 짝을 구할 때 남성이 여성의 신체적 매력에 더 민감하고, 여성이 남성의 능력이나 지위에 더 신경쓴다는 진화심리학적 분석이 실제로 맞아떨어진 셈이다.

듀오 커플매니저 노상미씨는 “개인의 성향뿐만 아니라 직업이나 전공에 따라 이상형도 다르게 나타난다”고 분석했다. 인문계열 남성은 단정하고 청순한 이미지를, 이공계열 남성은 화려한 글래머 스타일을 선호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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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06월 과학동아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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