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리를 모아 듣기 위해 튀어나온 사람의 귀, 물속에서 숨을 쉬기 위한 물고기의 아가미. 외형과 기능이 전혀 달라 보이는 두 기관이 같은 유전 인자를 공유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게이지 크럼프 미국 남캘리포니아대 켁 의대 교수팀은 귀 바깥쪽 구조인 외이와 제브라피쉬(Danio rerio)의 아가미 형성에 관여하는 유전자를 비교했다. 그 결과, 두 유전자의 발현 촉진 인자가 상당 부분 유사하다는 결론을 도출해 1월 9일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발표했다. doi: 10.1038/s41586-024-08577-5
연구팀은 외이와 아가미의 연관성을 밝힐 단서로 유전자 발현을 조절하는 염기 서열인 ‘인핸서(enhancer)’에 주목했다. 인핸서는 유전자 스위치 역할을 하며, 특정 단백질이 인핸서에 결합하면 유전자 전사가 촉진된다. 연구팀은 외이 유전자와 제브라피쉬 유전자의 유사도를 확인하기 위해 외이 유전자 인핸서를 제브라피쉬의 아가미 연골 세포에서 채취한 게놈에 삽입했다.
실험 결과, 외이 유전자의 인핸서는 제브라피쉬의 아가미 연골 세포 게놈에서도 유사하게 작동했다. 인간 외이를 만드는 DNA 요소들이 제브라피쉬의 아가미에서도 비슷하게 작용한 것이다. 또한 역으로 제브라피쉬의 아가미 유전자 인핸서를 쥐의 귀에 주입한 결과, 쥐의 귀에서도 유사한 작용이 일어났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연구팀은 이를 아가미 구조가 외이로 변형된 것이 아니라, 아가미를 만드는 유전자가 외이를 만들었다고 해석했다. 최초의 척추동물이 육지로 진출한 뒤 아가미가 쓸모 없어지자 아가미 연골을 만드는 유전자가 새로운 구조인 외이를 만들어냈다는 뜻이다. 연구팀은 이를 일종의 ‘유전자 재활용’ 현상이라고 판단했다.
이번 연구는 비밀에 싸여있던 외이의 진화를 밝히는 데 도움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연골 조직은 뼈와 달리 화석으로 보존되기 어려워, 그동안 포유류의 외이 진화 과정은 규명하기가 어려웠다. 크럼프 교수는 논문에서 “아가미에서 찾은 진화적 연결고리는 포유류 귀의 진화에 새로운 장을 제공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