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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공간_공간의 융합이 시작된다

서로 대화하는 사물들

 

유비쿼터스는 물리적 공간과 전자적 공간이 융합하는 지점에서 시작된다. 결국 현실 공간과 사이버 공간의 이분법은 무력해진다.


소설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근작 ‘나무’가운데 한편 ‘내게 너무 편한 세상’에는 아침마다 서로 자신을 알아봐 달라고 말을 걸어오는 자명종과 텔레비전, 스스로 알아서 주인의 식사 시중을 드는 토스터와 냅킨이 등장한다. 일상의 모든 사물들이 마치 살아있는 생명처럼 행동하며 인간에게 안락한 생활 환경을 보장한다. 말하고 생각하는 사물들이 만드는 완벽한 세계에 가끔은 질식하기도 하지만….

작가 베르베르는 그렇게 어느 미래의 일상을 그리고 있다. 그의 소설은 ‘언제 어디서나’ 컴퓨터와 네트워크를 이용하고 사물들 스스로 사고하고 행동한다는 유비쿼터스 시대의 한 일상을 담고 있다. 어느새 첨단을 일컫는 유행어로 자리잡은 유비쿼터스. 이제 유비쿼터스는 단순히 보라빛 미래를 실현하는 첨단 기술을 뜻하는 것만 아니라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 코드로 자신의 영역을 확대해 나가고 있다.

1980년대 처음 유비쿼터스라는 말이 세상에 알려졌을 때만 해도 이 괴상한 단어에 주목한 사람은 별로 없었다. 정작 이 말을 처음 사용한 미 제록스연구소의 마크 와이저만 하더라도 근래에 벌어질 이와 같은 유비쿼터스 열풍에 대해 미처 예견하지 못했을 것이다.

원래 유비쿼터스는 ‘도처에 있는, 편재하는’ 이란 뜻의 라틴어다. 죽어있던 이 단어가 다시 세상으로 돌아온 것은 불과 10여년전. 199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제록스 팔로알토연구소에서 근무하던 와이저 박사는 ‘21세기의 컴퓨터’라는 자신의 논문에서 “미래의 컴퓨터는 지금처럼 독자적 형태의 컴퓨터가 아닌 사람이 그 존재를 의식하지 못하는 형태로 생활 속으로 들어간다”고 미래의 컴퓨터 환경을 예상했다. 모든 사물과 공간 안에 컴퓨터가 들어가 유무선으로 연결된다는 주장이었다. 즉 지금까지 1대의 컴퓨터가 모든 일을 처리했던 것과 달리 사물 안에 숨어있는 수많은 작은 컴퓨터들을 통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일본 유비쿼터스 진영을 이끌고 있는 사카무라 겐 일본 도쿄대 교수는 이보다 개념을 더욱 확대한다. 그는 자신의 저서 ‘유비쿼터스 컴퓨터 혁명’ 에서 “모든 사물들이 컴퓨터칩과 센서를 내장하고 유무선을 통해 서로 정보를 교환하고 타협하면서 사람에게 봉사한다”고 제시했다. 와이저 박사의 모델이 일상 생활 공간 속으로 들어간 수많은 컴퓨터들의 단일 시스템을 언급한 것이라면 겐 교수의 모델은 수많은 작은 컴퓨터들이 서로 협조하면서 목적을 달성하는 것을 뜻한다. 이처럼 나라나 학자마다 미묘한 해석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유비쿼터스가 지금과 전혀 다른 새로운 공간과 미래를 열어줄 것이라는 데는 모두가 공통적인 입장이다.

사람이 알지 못하는 사이에 벌어지는 사물과 사물간의 끊임없이 소통과 행동을 뜻하는 ‘조용한 기술’과 이들이 이뤄내는 현실 세계의 똑똑한 공간. 이것이 유비쿼터스를 그리는 일반적인 단상이다.

물리 공간과 사이버 공간의 통합
 

일본 히타치사가 개발한 유비쿼터스 식별칩인 뮤(MU)칩.


유비쿼터스란 말은 왜 세상에 나왔을까. 유비쿼터스의 탄생 배경에는 생활공간을 끊임없이 확장하려는 인간의 의지가 숨어있다. 청주과학대 최남희 교수는 “유비쿼터스 공간은 물질공간이 가진 시공간적 제약과 전자 공간의 허구성이 극복된 공간”이라고 말한다. 유비쿼터스는 시공간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시작된 정보혁명과 이를 통해 생겨난 가상 공간이 다시 한계에 부딪히자 둘을 통합하려는 시도에서 나왔다는 것.

유비쿼터스와 정보화의 차이도 바로 여기에서 시작된다. 유비쿼터스 기술은 정보기술을 활용하는 목적을 전자 공간이 아닌 물리공간에 초점을 두고 있다. 정보는 많이 저장하고 있지만 인간의 명령없이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는 가상 공간의 한계를 물리적 공간에 촘촘히 박혀있는 작은 컴퓨터와 센서로 극복하자는 것이다. 이처럼 유비쿼터스 시대는 정보화의 최종 단계에서 시작된다.

그렇다면 유비쿼터스 공간은 어떤 모습일까. 최 교수는 “컴퓨터 속에 물리 공간을 집어넣은 정보 혁명과 달리, 유비쿼터스 혁명은 모든 물리 공간에 컴퓨터를 집어넣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요약하면 물리 공간이 전자화되고 전자공간이 물질화된다는 말이다. 서울시정개발연구원 장영희 박사도 “물리 공간 자체가 디지털화되는 것”이라고 짤막히 요약한다. 주위 사물과 공간이 모두 컴퓨터로 바뀌고 지능화된다는 뜻이다.

결국 이 새로운 공간은 사람과 컴퓨터뿐만 아니라 사람과 사물, 사물과 사물이 모두 유무선으로 연결되는 형태를 띤다. 집에 있는 컵, 구두, 옷처럼 하찮은 생필품부터 도로, 다리, 건물, 심지어 채소와 과일에 이르기까지 모든 공간과 사물에는 작은 칩들이 심어진다. 그리고 모든 사물들은 유무선을 통해 서로 대화하고 알아서 스스로 결정하며 행동한다.

유비쿼터스 공간은 종종 인체에 비유된다. 뇌를 중심으로 거미줄처럼 펼쳐진 신경망 혹은 뉴런과 작동 원리가 유사하다는 뜻이다. 유비쿼터스 네트워크는 우리 몸의 연합 뉴런에, 곳곳에 설치된 칩과 센서들은 감각뉴런에, 동작하는 부분인 마이크로머신들은 운동 뉴런에 비유된다.

이처럼 인체와 유사한 메커니즘을 갖는 유비쿼터스 공간은 몇가지 핵심 요소들로 구성된다. 여기에는 초고속망, 모바일, 극소형 칩같은 첨단 정보통신기술(IT)부터 나노기술(NT)과 바이오기술(BT)까지 다방면의 기술들이 총망라된다. 이 가운데 핵심은 모든 사물들을 연결하는 네트워크 기술, 모든 사물에 심어지는 극소형 컴퓨터, 그리고 단말기 기술이다.

수많은 정보를 빠르게 전송하는 광대역망(브로드밴드), 어디서나 쉽게 접속하는데 필수적인 모바일 기술은 차세대 네트워크의 기본골격을 이룬다. 고속통신을 위해 현재 1Gbps(기가비피에스, 1Gbps=109bps)이상의 초고속망과 1백Mbps(메가비피에스, 1Mbps=106bps) 급 무선통신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이와 함께 강조되고 있는 기술이 IPv6. 기존의 32비트 주소체계인 IPv4를 대체할 새로운 인터넷 주소 체계로 보면 된다. 모두 1036개의 주소를 표현할 수 있는 IPv6는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들에 대해 인터넷 주소를 부여하기 위해 개발됐다.

네트워크 기술과 IPv6가 기본 골격을 이룬다면 모든 사물에 들어가는 극소형 칩과 센서, 컴퓨터 칩 위에 작은 공장을 세우는 기술인 마이크로전자기계시스템(MEMS)과 시스템온칩(SoC)은 감각기관과 근육에 해당한다. 대표적인 인식칩 기술 가운데 하나인 비접촉식무선인식기술(RFID)은 안테나와 발신기를 내장한 극소형 칩을 물체에 심어, 그 종류와 상태를 파악하는 기술. 향후 유비쿼터스 네트워크가 상용화되면, 배추나 무 같은 채소에도 이러한 태그가 탑재돼 원산지가 어딘지, 어떤 비료를 사용해서 재배된 것인지 등 주요 정보가 기록돼, 소비자들이 안심하고 식료품을 소비할 수 있게 된다. 특히 MEMS와 SoC은 인간의 눈과 귀, 팔을 대신해 극한 상황에서 발생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기술이다.

유비쿼터스 시대는 또 입거나 신는 컴퓨터의 시대다. 필립스와 히타치 등 해외 IT전문업체들과 연구소들은 이미 지난 1990년대 후반부터 입는 컴퓨터를 속속 내놨다. 몸이 곧 단말기가 되는 셈이다. 유비쿼터스 시대의 인터페이스는 음성뿐만 아니라 섬세한 몸짓까지도 포착한다. 허공에 비쳐지는 가상 키보드는 이제 미래가 아닌 현실이다. 입력장치뿐 아니라 출력장치도 화면과 프린터를 넘어 홀로그램과 입체 프린터로 확대된다. 입력과 출력은 지금처럼 몇몇 기기로 한정되지 않고 수십-수백개로 늘어나게 되는 것이다. ‘다입력’과 ‘다출력’ 은 유비쿼터스 공간에서의 입출력 형태를 단적으로 설명하는 말이다.
 

유비쿼터스 컴퓨팅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서는 모든 사물에 들어가는 소형 컴퓨터 제작 기술과 인식 기술이 관건이다. 사진은 일본에서 개발된 유비쿼터스 단말기와 RFID칩이 내장된 식료품들


기술 장벽을 넘는 것이 관건

해외 첨단 연구소와 기업들은 현재 유비쿼터스를 주요 화두로 놓고 다양한 연구 과제들을 진행하고 있다. 세계 최대 네트워크 장비 회사인 선마이크로시스템스를 비롯해 마이크로소프트, IBM, 인텔, 소니, NTT 등은 이미 오래전 이 대열에 참여했다. 미 매사추세츠공대(MIT)를 비롯해 스탠포드대 등 미국 주요 대학과 일본 노무라 종합연구소 등 대학과 민간 연구소들도 앞다퉈 유비쿼터스 연구에 뛰어들고 있다.

현실같은 월드와이드웹을 구현한 휴렛패커드의 쿨타운 프로젝트에서부터 마이크로소프트가 추진 중인 이지리빙, 티끌형 네트워크를 구성하기 위해 UC버클리대가 개발한 스마트먼지, 매사추세츠공대의 미래형 유통 시스템 오토ID까지 연구는 상당 부분 진척돼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지난해 유비쿼터스 포럼과 학회가 차례로 결성돼 분위기 확산을 주도하고 있다.

한편 완전한 유비쿼터스 환경을 구현하려면 누구나 제약없이 다른 사람이나 사물들과 대화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돼야 한다. ‘언제 어디서나’ 라는 이상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기술과 기술, 제품과 제품 간에 서로 소통이 가능해야 하기 때문이다. 기술의 표준화와 국제적 협력이 필요한 것도 바로 이 같은 까닭에서다.

지난해 12월 일본 도쿄에서 열린 트론 전시회에 윈도 진영을 대표하는 마이크로소프트와 리눅스 진영이 참가한 것도 독점과 지역성을 벗어 던지지 못하면 결국 유비쿼터스 연구에서 뒤쳐질 수밖에 없다는 계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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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02월 과학동아 정보

  • 박근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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