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일과를 마친 P씨. 양방향 발광다이오드로 만든 열쇠로 문을 열자 그새 도착한 메일과 뉴스들이 열쇠 안으로 쏟아져 들어온다. 겉옷과 속옷에 심어진 마이크로칩이 P씨의 컨디션을 집안 곳곳에 알려주자 어느새 은은한 조명이 켜지고 끈적한 재즈 선율이 흘러나온다. 손가락이 TV쪽으로 향하자 녹화됐던 프로그램이 켜진다. 몸의 움직임에 따라 화면이 계속 따라다니기 때문에 집안 어디에 있건 상관이 없다.
열쇠에 내려받은 정보를 거실벽에 투사시켜 보면서 손가락과 몸 움직임만으로 읽고 쓴다. 오랫동안 먹지 않은 과일이 신호를 보내자 냉장고 문이 자동으로 열리며 빨리 버리라는 말을 건넨다. 모든 일과가 끝나자 침대로 돌아간 P씨. 간단한 손동작 하나로 하루를 마친다.
집안 곳곳에 설치된 수만개의 컴퓨터칩과 센서들이 일상을 윤택하게 해주는 똑똑한 가정이 눈앞에 성큼 다가섰다. 똑똑한 가정이란 전자제품에서 접시나 가구, 심지어 음식물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물이 지능화되고 하나의 네트워크로 연결된다는 뜻이다. 지능화된 생활공간은 가장 이상적인 미래 가정(유비쿼터스 가정, U가정)이다.
미래의 가정에서는 집안에 있는 모든 사물들마다 고유의 컴퓨터칩과 센서가 탑재된다. 이들은 사람에게 쾌적한 생활 환경을 제공하기 위해 서로 정보를 주고받거나 알아서 문제를 해결한다. 특히 몸에 착용하도록 설계된 입는 컴퓨터, 일명 웨어러블 컴퓨터는 이 같은 환경에 가장 적합한 형태의 단말기다. 특수 섬유로 짜여진 이 옷은 컴퓨터와 몸을 일체화시킴으로써 유비쿼터스 공간 속에서의 삶을 더욱 윤택하게 한다.
이처럼 미래의 가정은 연령, 성별에 상관없이 모든 가족 구성원들에게 편리한 주거 환경을 제시한다. 어떤 문제가 발생해도 직접 사람이 나설 필요가 없게 된다는 뜻이다. U가정에서는 문제가 발생하면 사물들이 알아서 서로 정보를 교환하고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보 습득이 상대적으로 느린 노약자들도 손쉽고 편안하게 가정 생활을 누릴 수 있게 된다. 사람이 일일이 명령을 내려야만 동작하는 홈오토매이션과의 차이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
또한 U가정은 유용성이 극대화된 공간이다. 단말기를 항상 몸에 착용하고 모든 사물에 센서와 컴퓨터칩이 달려있기 때문에 집안에서 물건이 사라지거나 냉장고가 텅텅 비는 일은 없어진다. 외출 중에도 집안 곳곳을 돌볼 수 있는 것은 물론이다. 또한 모든 유비쿼터스 기술과 장비들은 일상용품처럼 폐기가 용이한 재료로 구성된다.
편안한 삶을 추구하는 U가정
유비쿼터스 가정에 관한 대표적인 연구 사례로 미국의 이지리빙과 스마트 하우스, 일본의 트론하우스가 있다. 이 가운데 마이크로소프트(MS)가 추진 중인 이지리빙 프로젝트는 선진 기업들의 21세기 경영 전략을 엿볼 수 있는 좋은 사례로 평가된다. 이지리빙의 목적은 여러곳에 흩어진 장치들을 집결해서 사용자가 체험할 수 있게 하는 구조를 개발하는데 있다. 물리적 공간과 이동 통신, 분산 컴퓨팅 시스템을 결합해 인간에게 가장 편리한 생활 공간을 만들겠다는 실험이다. 가정이 기본 모델이 되고 있다.
이지리빙 시스템은 상황인식과 위치감지 컴퓨팅, 분산 컴퓨팅, 무선통신기술로 구성된다. MS는 사람 동작에 따라 영화를 켜고 끄는 기술, 실내에서 목표지점을 찾는 ‘핫터 앤드 콜더’ 라는 게임, 무선 마우스로 가장 가까이 있는 컴퓨터를 조작하는 기술 등을 시연 프로그램으로 채택했다.
사카무라 겐 도쿄대 교수가 지난 1990년 기업들의 후원을 받아 시범 조성한 트론하우스도 이와 유사한 형태를 띤다. 기기에 손을 대지 않고 사용하는 터치리스 화장실, 센서를 통해 자동으로 열리고 닫히는 전동창, 전자칩을 붙여 필요한 물건을 쉽게 찾을 수 있는 수납공간이 여기에 속한다. 최근 이를 위해 몇가지 흥미로운 기술들이 현재 개발되고 있다.
MS가 개발 중인 개인 단말기 라이트스팟(RightSPOT)은 위치를 파악하는 기능이 들어있는 손목시계다. 위치 정보를 바탕으로 날씨 정보, 교통 상황 정보, 영화 상영 시간표, 인근 식당 정보 등을 상황에 맞게 제공한다. 친숙한 손목시계를 활용한 유비쿼터스 단말기로, 그야말로 사용자 상황에 맞는 맞춤형 정보를 제공하는 장치다. 가정에서는 정보 단말기로 활용될 수 있다.
빛을 발산하기도 하고 인식하기도 하는 양방향성 발광다이오드를 이용한 통신장치도 선보일 전망이다. 인텔이 개발 중인 아이드로퍼(iDropper)라는 이 기술은 네트워크에 접속해 필요한 자료를 저장하거나 송수신하기 위한 수단으로 고안됐다. RFID나 블루투스와 같은 무선 방식을 대체해 개인 신분증이나 개인용 통신 장치, 저장 장치로 활용하기에 가장 경제적인 기술로 평가되고 있다. 데스크탑 컴퓨터가 사라질 유비쿼터스 시대에 필요한 개인 저장 장치인 셈이다.
MIT 미디어랩의 경우 미래형 인터페이스를 연구중이다. 집안 곳곳에 설치된 카메라로 사람들의 위치를 추적하고 시선을 인식해 적당한 위치에 정보를 투영하는 기술이다. 앞으로 집안의 모든 벽면들은 빔프로젝터를 위한 화면으로 바뀌게 된다. 또한 이를 응용할 경우 허공에 리모콘 모습을 비춰놓고 손가락 움직임만으로 정보를 입력하는 가상 인터페이스를 제작할 수도 있다.
사생활 보호가 관건
한편 개인과 개인공간의 보안에 관한 연구들도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유비쿼터스 생활 환경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사생활 보호 기술에 대한 관심이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뉴욕타임즈’도 지난해말 ‘향후 1백년’ 이라는 기획을 통해 정보혁명이 앞으로 개인의 자유를 크게 제약할 것이라는 우려를 표시했다. 일상 생활 전부가 컴퓨터 네트워크로 처리되기 때문에 그만큼 사생활 노출의 위험은 높아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앞으로 개인 정보와 사생활 보호를 위한 보안 문제는 유비쿼터스의 주요 이슈로 부각될 전망이다.
최근 진행 중인 다양한 연구 가운데 특히 눈에 띄는 것이 소리를 이용한 보안 기술이다. 영국 케임브리지대 연구팀은 보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귀에는 들리지 않는 소리를 이용한 통신 기술을 개발했다. 보안에 허술한 무선 주파수 대신 일정한 범위로 전달 범위를 제한할 수 있는 소리에 주목한 것이다. 소리는 집 벽에 의해 쉽게 차단되기 때문에 밖에서 감시가 불가능하다는 점에 착안했다.
미래를 예측하는 일은 매우 어렵고 위험하지만 앞서 언급한 기술들은 머지 않은 장래에 실제로 나타날 것들이다. “불확실한 미래를 예측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것을 발명하는 것”이라는 전산 과학자 앨런 케이의 말은 매우 적절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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