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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메이션 최초 쌍 천만 시리즈 영화, ‘겨울왕국’ 역시 CG로 겨울왕국을 매우 사실적으로 구현해내며 전문가들에게 극찬을 받았다. ‘겨울왕국1’이 개봉하기 전까지 눈은 CG 구현이 불가능한 것처럼 여겨졌다. 눈은 형태도 없는데다 쉽게 부서지고, 물처럼 모양을 바꾸기 쉽다는 특징이 있어 자칫 잘못 표현했다간 돌덩이처럼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겨울왕국’ 제작진은 애니메이션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미국 수학자 조셉 테란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눈을 묘사하기 위한 알고리듬을 만들어 달라고 한 것이다. 이에 테란이 이끄는 팀은 연속적으로 변하는 대상을 시뮬레이션할 때 많이 쓰는 ‘MPM(Material point method)’ 방법을 새롭게 적용했다. 우리말로 ‘물질 점 방법’이라고 하는데, 당시 이 방법으로 눈을 표현한 게 처음이라 컴퓨터 그래픽스 분야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애니메이션 ‘겨울왕국’의 한 장면. 실제 사람이 눈 위에 앉아 있는 것처럼 눈의 뭉침과 흩어짐을 구현해냈다.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눈 만드는 알고리듬

연구팀은 컴퓨터를 이용해 일정한 간격으로 나뉜 격자에 움직임을 나타내고 싶은 수많은 눈 입자를 그렸다. 여기서 눈 입자를 ‘물질 점’이라고 한다. 이 물질 점들은 가까운 격자점과 묶어서 하나로 생각한다. 눈을 원하는 모양으로 바꾸고 싶다면 물질 점과 가까운 격자점에서 속도와 부피, 무게 등의 변화량을 계산하고 이를 다시 물질 점에 반영하는 과정을 통해 눈의 모습을 만들어낸다. 이때 처음의 물질 점들이 격자점에 얼마나 가까운지에 따라 바뀐 정보를 반영하는 정도가 달라진다.

 

연구팀은 MPM 방법으로 눈을 구현하는 시뮬레이션을 이용해 상황에 따라 알맞은 장면을 구현했다. 만지면 부서지는 눈, 딱딱하게 뭉쳐지는 눈, 눈보라가 치며 성벽에 쌓이는 눈, 눈이 잔뜩 쌓인 길을 걸을 때 생기는 발자국, 나무에 쌓여있다가 주인공 안나에게 쏟아질 때 달라지는 눈의 질감 등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이 같은 내용을 담은 논문을 세계 최대의 컴퓨터 그래픽스 국제회의인 ‘시그래프(SIGGRAPH)’에서 발표했다. 월트 디즈니에서는 연구팀의 발표 영상을 ‘겨울왕국’ 개봉에 맞춰 공식 유튜브 채널에 공개하기도 했다. 

ⓒJoseph Teran
조셉 테란 연구팀은 2007년부터 월트 디즈니에서 애니메이션 컨설턴트로 활동하며 애니메이션 제작에 참여했다.

 

물, 불, 바람, 땅도 수학으로!

 

‘겨울왕국2’에서 가장 화제가 됐던 장면은 엘사가 마법을 이용해 파도치는 바다를 얼리며 바다 위를 달려가는 모습이다. 이 장면은 예고편에도 쓰였는데, 이 영상은 24시간 동안 1억 1,640만 회 재생되면서 2019년 당시 애니메이션 예고편 중 역대 가장 높은 조회 수를 기록했다.

 

이 장면은 어떻게 만들었을까? 물과 같은 액체는 형태를 쉽게 바꿀 수 있다. 이렇게 흐르는 성질을 가진 액체나 기체를 ‘유체’라고 하는데, 유체의 운동은 나비에-스토크스 방정식을 이용해 나타낼 수 있다. 이는 뉴턴의 운동 제2법칙(F=ma)을 유체의 움직임을 나타낼 수 있도록 쪼개서 나타낸 미분 방정식으로, 유일한 해가 있는지조차 아직 모른다. 방정식의 성질도 미지수로 남아 있다. 그래서 해가 존재하는지, 존재하지 않는지만 밝혀도 100만 달러(한화로 약 13억 원) 상금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2000년 미국 클레이수학연구소가 21세기에 이바지할 수 있는 수학 문제를 선정하고, 해당 문제를 푼 사람에게 상금을 주기로 했는데, 이 문제도 여기에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현재 학자들은 이 미분 방정식의 해를 근사적으로 찾는 방법을 사용한다. 근삿값으로도 물을 표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월트 디즈니에는 2016년 개봉한 애니메이션 ‘모아나’를 제작할 때 테란 연구팀이 개발한 ‘APIC 알고리듬’이 있다. 이 역시 나비에-스토크스 방정식의 근삿값을 찾아 물을 표현하는데, 다른 점이 있다면 ‘아핀변환’을 적용한 점이다. 눈과 같이 물 입자를 격자로 표현한 뒤 아핀변환을 이용해서 물의 움직임이 오래 지속되도록 만들었다. 여기서 아핀 변환이란 도형의 모양을 바꾸는 방법 중 하나로, 이를 쓰면 어떤 삼각형도 정삼각형으로 만들 수 있다.

 

그 전에도 물을 표현하는 알고리듬이 있었지만, 물 움직임의 지속성이 떨어져 에너지가 부족했고, 에너지를 올리면 물 표면에 잡티가 많아지는 단점이 있었다. APIC 알고리듬은 이런 한계점을 모두 개선했다. 테란 연구팀은 2016년 관련 내용을 담은 논문을 학술지 ‘전산 물리학 (Journal of Computational Physics)’에 공개했다.

 

 
▲ 애니메이션 ‘모아나’ 속 거대하고 생생한 파도는 테란 연구팀이 만든 APIC 알고리듬 덕분에 가능했다.

 

 

불과 바람의 표현은 ‘등위 집합’으로

 

강한 눈보라부터 낙엽이 흩날리는 산뜻한 바람 그리고 모든 걸 태울 듯한 불을 CG로 효율적으로 나타내기 위해서는 ‘등위 집합’을 알아야 한다. 등위 집합은 유체의 움직임을 수학적으로 기술하는 방법이다. 

 

바람이나 불을 컴퓨터에서 나타내면 곡면인데, 이런 곡면이 시시각각으로 움직여야 하기에 CG 위의 수많은 점들 또한 일일이 추적해 움직여줘야 한다. 당연히 시간이 매우 오래 걸린다. 시간 단축을 위해 나타내고 싶은 곡면의 점들을 묶어서 함수로 표현하는데 이것이 CG에서의 등위 집합이다. 

 

즉 등위 집합을 이용하면 곡면을 시간에 따라 변하는 함수로 나타낸 뒤 그 함수를 추적하기 때문에 점들을 모두 찍을 필요 없이 함수만 정의하면 된다. 따라서 코드로 표현하기도 쉽고, 빠르게 계산 결과를 얻어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그리고 함수를 조금씩 변형하면 곡면이 두 개로 갈라지거나 합쳐지는 등 모양이 바뀌는 것도 쉽게 구현할 수 있다.

 

등위 집합은 월트 디즈니뿐만 아니라 애니메이션을 제작하는 드림웍스 픽처스에서도 사용했다. 이 아이디어를 처음 제시한 미국 수학자 스탠리 오셔는 그 공로를 인정받아 2014 서울 세계수학자대회에서 응용수학 분야 공로상인 가우스상을 받았다. 

 

오셔는 1999년 자신의 박사 지도 학생이었던 론 페드키우와 함께 나비에-스토크스 방정식을 이용해 유체의 움직임을 연구했다. 이후 페드키우는 영화 스튜디오에서 일하면서 오셔의 연구를 CG에 접목해 기존에는 구현하지 못했던 영상을 만들어냈다. 

 

그 결과 2007년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영화 ‘캐리비안의 해적, 망자의 함’으로 시각효과상을 받았다. 2008년과 2015년에도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시즌 동안 진행되는 아카데미 과학 기술 시상식에서 기술 공로상을 받았다. 페드키우의 성공 사례 덕분인지 이후 수학 방정식을 이용해 CG를 시뮬레이션하는 일이 늘어났다. 또 CG 전문가가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를 수학자에게 의뢰하는 등 CG와 수학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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