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라이브러리









오래된 문서를 보면 당시 사람들이 무엇에 관심이 있었고, 또 어떤 것을 연구했는지 알 수 있다. 언어학자들은 오래된 문서에서 색깔을 나타내는 단어에 주목했다. 역사적으로 가장 먼저 나타난 색깔은 검정과 하양이다. 각각 다른 색깔을 인지하고 이름을 붙이기에 앞서 깜깜한 밤과 환한 낮을 구별했다는 뜻이다. 그 다음으로 나타나는 단어는 피의 색깔인 빨강과 자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노랑과 초록이었다.
 

고대 문헌에는 파랑이 없다

놀랍게도 고대 문헌에는 파랑이라는 단어가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영국 철학자인 윌리엄 글래드스톤은 호머의 ‘오디세이’, 고대 인도의 ‘베다’, ‘성서’, ‘코란’ 등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초록이나 이와 비슷한 푸름을 나타나는 단어는 있지만, 새파란 색을 나타내는 단어는 없다는 점을 발견했다. 예를 들면 바다를 현대와 달리 짙은 녹색이나 검은색으로 표현했다.

실제로 구석기시대에 그린 동굴벽화를 보면 대부분이 빨강과 검정, 갈색이다. 또 79년 베수비오 화산 폭발로 화산재에 묻힌 폼페이에서는 화려한 벽화가 많이 발굴되지만, 파란색은 거의 없다.

글래드스톤은 시시때때 색깔이 변하는 하늘과 바다는 파랗다고 볼 수 없고, 또 동물이나 식물 중에 파란색을 띠는 것이 흔하지 않아 파랑에 대한 개념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현대 사람들이 하늘과 바다를 파란색으로 느끼는 것은 어려서부터 교육을 그렇게 받았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런데 고대 이집트에서는 유일하게 기원전 2000년부터 파랑을 사용했다. 당시 그려진 벽화나 피라미드 속 유물에서 파란색이 발견됐다. 전문가들은 고대 이집트에서 염색 문화가 유행하면서 안료가 발달했기 때문으로 생각하고 있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당시 아주 희귀했던 청금석이나 남동석, 터키옥에서 파랑을 얻었다. 그들은 자연에서 흔히 보이지 않는 이 오묘한 색깔이 마귀를 쫓는다고 믿었다. 그래서 대개 피라미드 속 장례물품에 파란색이 많다.

Xnote 파랑새, 파란 말… 파란 동물이 거의 없는 이유는?

파란색을 띠는 동식물이 거의 없는 이유는 색깔이 혼자만 튀어서는 살아남기 힘들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동물, 특히 척추동물에게는 갈색을 띠는 멜라닌 색소만 있다. 멜라닌 농도에 따라 흰색, 옅은 살색, 노란색, 갈색, 또는 검정색을 띤다. 풀과 나무가 가득한 숲에서는 녹색 계열과 노란색 계열이 흔하다. 또 빨간색 계열은 동물의 피나 살갗, 깃털은 물론 식물의 꽃이나 열매에서도 흔하다. 결국 파란색을 지닌 동식물은 다른 것에 비해 눈에 잘 띄어 포식자에게 잡아먹히기 쉽다.

그런데 일부 물고기나 새는 파란색을 자랑한다. 오히려 화려하고 흔하지 않은 빛깔을 내세워 이성을 유혹하거나 천적을 위협하기 위해서다. 이런 동물도 대개 평소에는 다른 색깔을 띠고 있다가 짝짓기나 위험한 상황에서만 파란 색깔이 나타난다.



악마의 색이었던 파란색

기원후에는 파란색소가 든 식물이 자라거나, 파란색을 띠는 광물이 묻혀 있는 일부 지역에서 파란색을 사용했다. 인도와 일부 아프리카에서는 인디고 식물에서 ‘인디고’ 파란색을 얻었다. 이 식물은 우리나라에서도 예전에 파란색을 물들이기 위해 이용했던 ‘쪽’과 비슷하다. 인디고는 가장 윗부분에서 노랗게 나는 잎을 따서 즙을 내면 천을 담갔다 빼는 것만으로도 파랗게 물들일 수 있다.

또한 남동석(아주라이트)로부터 ‘아주라이트’ 파란색을 얻을 수 있었다. 아주라이트는 파랑보다는 검정에 가까운, 군청색이다. 그래서 색채를 아무리 조절해도 밝게 표현하기가 어려웠다.

중세시대 전까지 유럽, 특히 로마에서는 파랑을 극도로 싫어했다. 그 이유는 야만족으로 여겼던 켈트족과 게르만족이 얼굴에 파란색을 칠하고 쳐들어왔기 때문이다. 켈트족과 게르만족은 전쟁을 치르는 방법이 매우 잔인했다. 그래서 당시 로마에서는 파랑이 죽음이나 지옥을 의미하는 ‘악마의 색’이었다.

당시 유럽에서는 대청★으로부터 군청색을 얻고 있었다. 그런데 이 색은 인디고에 비해 어둡고 칙칙하며 착색력도 떨어졌다. 그래서 북아프리카에서 인디고가 스믈스믈 들어오고 있었다. 유럽의 대청 재배업자와 대청염료 상인들은 인디고가 수입되는 일을 막으려 했다. 인디고가 유럽에 들어온다면 대청 농사가 망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그들은 왕에게 상소를 올리거나 거리에 헛소문을 퍼뜨렸다. 인디고에 독이 들어 있어, 염색 재료로 사용하면 치명적이라는 내용이었다.

대청★십자화과에 속하는 식물로 검푸른 색소를 낸다.

최고의 천연 파랑, 울트라마린

한편 12세기 즈음, 물감과 유화가 발달하면서 색채 개념이 더욱 세밀해졌다. 당시 아프가니스탄에서 유럽으로 청금석(라피스라줄리)이 전해졌다. 청금석에서는 가장 희귀하고도 특별하게 아름다운 파란색인 ‘울트라마린’을 얻을 수 있다. 이 광물은 이란과 아프가니스탄 등지에 있는 특정 지층에만 묻혀 있다.

울트라마린은 아주라이트 같은 다른 파란색보다 훨씬 밝고 깨끗하다. 특히 화려하고 아름다운 성화가 유행했던 르네상스 시대에는 울트라마린에 매료된 사람들이 많았다. 이에 따라 파랑의 지위도 높아졌다. 사람들은 이제 더 이상 파랑을 무섭게 느끼지 않았다. 오히려 왕이나 귀족들은 파란색으로 염색한 옷을 입으려고 안달이었다.

하지만 청금석이 매우 단단한데다 흰 점이나 금색 점으로 박혀 있는 불순물이 많아 파란색만 뽑아내려면 고도의 기술이 필요했다. 그래서 울트라마린으로 염색한 옷감이나 청금석으로 만든 보석은 왕족이나 귀족만 사용할 수 있었다. 또 레오나르도 다 빈치 같은 유명화가들만이 부자들에게 후원을 받아 울트라마린 물감을 쓸 수 있었다. 다 빈치가 그린 ‘최후의 만찬’에서는 예수와 유다가 모두 파란 옷을 입고 있다. 예수의 옷은 울트라마린으로, 배신자 유다의 옷은 아주라이트로 칠했다는 얘기가 전해진다.

자유의 색이 되다

종교개혁이 일어난 뒤에는 화가들이 성화에도 파란색을 두드러지게 사용하기 시작했다. 특히 성모마리아를 나타내는 옷 색깔이 파랑이었다. 흔하지 않은 색깔인데다 오묘하고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내기 때문이었다. 결국 청금석으로 인해 파랑에 대한 갈망이 높아지자, 16세기에는 북아프리카에서 인디고를 대대적으로 들여오기 시작한다.

이후 낭만주의와 프랑스 혁명의 영향으로 파랑은 자유와 평등, 진보를 대표하는 색깔이 되었다. 그래서 UN을 비롯해 유럽연합, 영국, 프랑스, 스웨덴, 핀란드, 네덜란드 등 여러 나라 국기에는 긍정적인 의미로 파란색이 등장한다. 또한 뉴턴의 과학혁명 이후로 파랑은 예쁘고 신비로운 색깔의 수준을 넘어 스펙트럼의 이용이나 원색과 보색 이론 등 과학적으로도 연구 대상이 됐다.



Xnote 지금도 파랑이 없는 언어가 있다!



영국 런던대 신경심리학과 쥴 데이비도프 교수팀은 나미비아의 힘바족 언어에 파랑이 없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래서 연구팀은 힘바족 사람들에게 녹색~남색 사이의 수많은 색깔을 보여주고 이름을 말하게 했다. 그 결과 힘바족은 파랑을 녹색 계열 중 하나로 인지했다.

재미있는 사실은 이 부족이 초록을 인지하는 범위가 다른 언어에 비해 넓고 색깔의 수도 다양하다는 점이다. 녹색 계열에 속하지만 미묘하게 다른 색상인 색들을 놓았을 때, 보통 사람들은 이 색들을 모두 녹색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힘바족 사람들은 이 색들을 각각 다른 이름으로 불렀다.

미국 버클리대 컴퓨터공학과 폴 케이 교수팀은 파푸아뉴기니의 세픽람족의 언어에도 파랑이 없음을 알아냈다. 그래서 런던대 연구팀과 비슷한 실험을 했더니 세픽람족과 힘바족이 인지하는 색깔의 범위가 거의 비슷했다. 연구팀은 이런 부족들은 초록색이 가득한 자연 속에서 살아가기 때문에, 우리와 달리 녹색 계열을 인지하는 능력이 특화됐을 거라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이들에게 하늘은 무슨 색일까? 그들은 하늘에는 색깔이 없다고 답했다. 날씨나 시간에 따라 노랑에서 주황, 주홍, 빨강, 회색, 하양으로 변한다는 것이다. 어쩌면 어려서부터 물감을 보고 색을 배운 우리보다 자연에서 색을 배운 그들이 알고 있는 색의 개수는 훨씬 적을지라도, 사물이 가지고 있는 정확한 색을 인지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 기사의 내용이 궁금하신가요?

기사 전문을 보시려면500(500원)이 필요합니다.

2016년 08월 수학동아 정보

  • 이정아 기자
  • 도움

    전창림 홍익대 바이오화학공학과 교수
  • 기타

    [도서] 미셸 파스투로의 <블루, 색의 역사>, 도서 Joann Eckstut와 Arielle Eckstut의 The Secret Language of Color 외

🎓️ 진로 추천

  • 언어학
  • 역사·고고학
  • 미술사학
이 기사를 읽은 분이 본
다른 인기기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