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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명탐정 코난 위작 가리는 웨이블릿 변환

뉴욕 최대 미술품 경매장에서 빈센트 반 고흐의 명화 ‘해바라기’가 사상 최고액 3억 달러에 낙찰된다. 그림을 소유하게 된 정지로 회장은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해바라기 작품 7점을 모아 세계 최초로 전시하겠다고 기자회견을 하는데, 갑자기 괴도 키드가 나타나 해바라기를 접수하겠다는 예고장을 날리고 바람처럼 사라진다. 애니메이션 ‘명탐정 코난 : 화염의 해바라기’ 속 이야기다. 

 

명화 ‘해바라기’는 네덜란드 화가 빈센트 반 고흐가 그린 7점의 연작을 말한다. 초기에는 해바라기가 2~6송이 꽂혀 있는 모습을 그렸지만, 그가 나중에 그린 그림에서는 꽃이 12송이 또는 15송이나 된다. 이뿐만 아니라 색채와 형태도 더욱 과감해진다. 고흐의 해바라기는 마치 샛노란 태양이 이글거리는 듯이 보인다. 전문가들은 고흐가 해바라기를 그리며 그림에 자기 영혼을 담는 방법을 완벽히 터득했다고 분석한다. 

 

애니메이션에서는 정 회장이 가지고 있는 해바라기가 진품인지 아닌지 알아보는 장면이 나온다. 키드가 이미 작품을 훔쳐 가짜로 바꿔놓았는지 알아보기 위해서다. 실제로 그림 전문가들은 그림에 적외선이나 X선을 쏘아 그림을 분석해 감정하는데, 수학자들은 이런 처리 없이 감정하는 방법을 알아냈다.

 

 

그림 감정하는 웨이블릿 변환

 

잉그리드 도비치스 미국 듀크대학교 교수가 이끄는 팀은 수학적으로 그림을 감정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그림을 스캔해 디지털 이미지로 바꾼 다음, 한 부분을 확대해서 세밀하게 분석하는 원리다. 

 

만약 디지털 이미지가 8bit짜리 흑백 그림이라면 그 그림은 2의 8제곱인 256개의 작은 사각형(픽셀)으로 쪼갤 수 있다. 이 사각형은 가로세로 길이가 약 0.14mm로 아주 작다. 사각형 하나는 흰색부터 검은색, 그 사이에 있는 수많은 회색으로 이뤄져 있는데, 각각 색조나 명암이 미세하게 다르다. 만약 컬러 그림이라면 사각형은 빨강이나 초록, 파랑 또는 이 색깔들이 각각 다른 비율로 섞인 색깔을 띠고 있다. 

 

컴퓨터는 이런 픽셀을 숫자로 인식한다. 각 색에는 고유의 숫자가 있어서 0부터 255의 숫자로 표기하는 것이다. 따라서 컴퓨터는 그림을 사각형 모양의 수 배열로 인식해서 나타내게 되는데, 이를 ‘행렬’이라고 한다.

 

연구팀은 ‘웨이블릿 변환’으로 그림을 분석했다. 그림 일부분을 확대해 물감이 칠해진 층별로 나눠 붓칠을 세밀하게 관찰하는 원리다. 아무리 똑같이 그림을 베껴 그린다 하더라도 물감층마다 붓칠을 똑같이 재현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연구팀은 고흐가 그린 자화상 중 옷깃 부분을 분석했다. 먼저 그림을 스캔한 뒤 가로세로가 대략 7.4cm 정도가 되게끔 잘랐다. 이 안에는 작은 사각형 26만 2,144개가 들어 있었고, 웨이블릿 변환을 이용해 첫 번째 물감층과 두 번째 물감층에 들어 있는 붓칠을 분석했다. 그랬더니 각 층에는 거칠고 가느다란 붓칠이 여섯 방향으로 뻗어 있었다. 연구팀은 이외에도 고흐가 그린 작품 101개를 같은 방식으로 분석했다. 역시나 물감층마다 붓칠이 여섯 방향으로 뻗어 있었다. 즉, 고흐의 그림 스타일을 발견한 것이다. 

 

 

이렇게 그림에서 작가의 습관이 나타나 있는지 관찰하면 어떤 그림이라도 고흐가 그린 것인지 아닌지 알 수 있다. 아무리 남의 그림을 잘 흉내내는 사람이라도 미세한 붓칠까지 따라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연구팀은 이 웨이블릿 변환을 이용해 6개의 그림 중에서 고흐의 작품 5개와 위작 1개를 정확히 구분했다.

 

수학으로 되살아난 명화

 

사실 도비치스 교수의 연구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미술품의 특징을 수학적으로 분석해 위작을 가리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수학적 원리를 적용해 훼손된 미술품을 복원하는 것이다. 그는 2006년 미국 프린스턴대학교에서 열린 강연에 참석했다가 미술품을 수학적으로 분석하는 연구를 제안받았다. 그때부터 최근까지 미술품 분석과 복원에 수학을 도입해 객관적으로 작품을 해석하고 복원하는 연구를 꾸준히 해오고 있다. 

 

미술품을 복원한 대표적인 사례는 2016년에 완성된 ‘성 요한 제단화’다. 이탈리아 화가 프란체스쿠초 기시가 14세기에 그린 이 작품은 100여 년 전 톱으로 9등분 돼서 흩어졌다. 9개의 조각 중 8개는 복잡한 과정을 거쳐 미국의 몇몇 미술관에서 나눠 소장하게 됐지만, 나머지 하나는 아예 자취를 감춰서 완전체를 볼 길이 없었다.

 

미술품 복원 전문가들은 도비치스 교수팀과 힘을 합쳐 나머지 한 작품을 복원했다. 우선 역사적인 기록을 토대로 전문가가 14세기 당시와 같은 제작 방식으로 나머지 한 조각에 들어갈 그림을 완성했지만 문제가 있었다. 다른 8개의 그림에는 세월의 흔적이 남아 색이 변하거나 마치 피부에 생긴 주름처럼 자글자글하게 갈라진 틈이 있는 반면에 새로 그린 그림은 너무 선명하고 깨끗해 이질적으로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연구팀은 이 그림을 세월의 흔적이 보이도록 변환하는 작업을 맡았다. 기존그림에서 갈라진 틈을 파악하고, 그 틈의 패턴을 이용해 새로 그린 그림이 기존 그림과 자연스럽게 어울리도록 갈라진 틈을 만들어 넣는 데 수학을 활용한 것이다.

 

우선 그림에서 갈라진 틈을 찾아내기 위해 X선으로 촬영한 사진을 컴퓨터로 분석했다. 갈라진 틈은 X선 사진에서 더 진하거나 밝게 나타나는데, 그 점을 이용한 것이다. 물감에 생긴 갈라진 틈은 행렬로 나타냈을 때 주변 숫자와 확연하게 차이가 났다. 연구팀은 물감의 틈을 찾아낸 뒤 그 패턴을 이용해서 새로 그린 그림에 세월의 흔적을 더해 성 요한 제단화를 복원했다.

 

▲ 프란체스쿠초 기시의 성 요한 제단화에서 행방불명인 9번째 조각을 복원한 그림. 화가가 다시 그린 그림에 세월이 흐른 흔적을 주기 위해 수학적 알고리듬을 도입했다.

 

화가와 제자의 합작 밝히는 수학 모형

 

예전에는 그림을 화가 혼자 완성하는 게 아니라 제자들과 분업하는 경우도 많았다. 혹시 ‘해바라기’에서도 한 송이쯤은 고흐가 아닌 다른 사람이 그렸던 것은 아닐까? 

 

화가가 혼자 그림을 완성했는지, 아니면 다른 사람과 함께 그렸는지 또는 아예 다른 사람이 통째로 베낀 그림인지 한 번에 알아내는 방법이 있다. 2004년 해니 파리드 미국 다트머스대학교 응용수학 및 컴퓨터공학과 교수팀은 그림 속 사물과 사물, 붓칠과 붓칠 간의 거리 등 여러 값을 이용해 수학 모형을 만들었다. 

 

연구팀은 네덜란드 화가 피터르 브뤼헐 더 아우더가 그린 그림에 이 수학 모형을 적용했다. 그 결과는 구 안의 점으로 나타났다. 그림 속 사람과 사물을 한 사람이 모두 그렸을 경우 점들은 서로 가깝게 모여 있다. 그래서 전체를 분석하면 점들이 마치 구처럼 똘똘 뭉쳐 있는 듯이 보인다. 하지만 다른 사람이 따라 그린 가짜 그림의 경우에는 점들이 구 바깥에서 나타난다. 

 

 

연구팀은 이탈리아 르네상스 화가 피에트로 페루지노가 그린 ‘성모자와 성인들’에도 이 수학 모형을 적용했다. 이 그림에는 여섯 사람이 나오는데, 연구팀은 ➊~➏번 순서로 각각 분석했다. 

 

그 결과 ➊~➌번은 페루지노의 그림 스타일을 나타내는 구 안에 포함됐지만, ➍~➏번은 구 바깥에 있었다. 심지어 세 점이 서로 멀리 떨어져 있었다. 연구팀은 ➊~➌번 얼굴은 화가 본인이 그렸지만, ➍~➏번은 다른 사람이 그렸을 거라고 결론을 내렸다. 또 세 점이 멀찍이 떨어져 있던 것으로 보아 각각 다른 사람이 그렸을 수도 있다고 추정했다. 연구팀이 개발한 수학 모형을 ‘해바라기’에 적용해봤더니 꽃송이는 모두 고흐가 그린 것으로 밝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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