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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CU에서 가장 수다스러운 캐릭터는 단연 스파이더맨이다. 쉴새 없이 떠들어대는 모습이 귀여울 때가 많은데, 위기에 처한 사람을 발견하면 본인의 발명품인 웹 슈터로 거미줄을 발사해 멋지게 구해낸다. 그에게 거미줄은 강력한 무기이자 도구다. 

 

사실 스파이더맨은 거미줄에 매달려 공중에서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것은 물론이고, 지하철을 거미줄로 지탱하기도 한다. 정말 거미줄이 이토록 강한 힘을 버틸 수 있을까? 

 

거미줄의 인장 강도는 놀랍게도 강철보다 최대 5배나 세다. 여기서 인장 강도란 어떤 재료를 양 끝으로 잡아당겨 끊어지기 전까지 버티는 최대 힘의 세기를 말한다. 인장 강도는 재료의 최대 인장력(물체를 잡아당기거나 늘이는 힘)을 단면적으로 나눠 계산하는데, 이때 단위는 주로 ‘GPa(기가 파스칼)’을 쓴다.

 

거미줄의 인장 강도는 약 1GPa 정도다. 강철의 인장 강도는 보통 0.2GPa에서 2GPa 정도이므로, 거미줄의 인장 강도는 강철보다 최대 5배나 센 셈이다. 즉 실제 사람 크기 정도의 거미가 만드는 거미줄이라면, 스파이더맨이 쏘는 거미줄과 같은 괴력을 발휘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이뿐만이 아니다. 거미줄은 매우 가볍고 튼튼하면서도 안정된 구조를 이루고 있다. 거미줄에 어떤 비결이 있을까? 

 

 

거미줄이 강하고 튼튼한 이유는 힘의 평형 

 

1990년대 말 여러 글과 강연에서 로버트 코넬리 미국 코넬대학교 수학과 교수는 거미줄 모양을 가볍고도 튼튼한 구조로 잘 알려진 ‘텐세그리티’와 비교해 설명했다. 텐세그리티란 건축에서 쓰이는 구조로, 미는 역할을 하는 ‘인장재’와 당기는 역할을 하는 ‘압축재’로 이뤄져 있다. 이 두 가지가 서로 밀고 당기는 힘이 완벽하게 평형을 이룬 구조가 바로 텐세그리티다. 

 

코넬리 교수는 거미줄이 가볍고 안정된 구조라는 점에서 텐세그리티와 같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다른 점을 갖고 있다고 말한다. 우선 거미줄 구조는 압축재는 없이 인장재로만 이뤄져 있고, 텐세그리티에는 없는 고정점이 있다. 이 고정점은 거미줄 구조의 가장자리에 있어 지지대 역할을 한다(그림❶).

 

 

그렇다면 거미줄 모양의 구조가 인장재로만 이뤄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안정된 형태를 이룰 수 있는 이유는 뭘까? 코넬리 교수는 그 이유를 ‘인장재의 힘이 하나의 점으로 모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그림❶과 같은 거미줄에서 3개의 고정점에 각각 연결된 모든 인장재(거미줄)는 관절과 같은 역할을 하는 ‘●’ 모양의 ‘힌지(hinge)’를 따라 서로 이어져 있다. 이때 고정점과 거미줄 사이에는 서로 잡아당기는 힘이 생기고, 이 힘은 가운데 한 점으로 모여 평형을 이루게 된다. 그 결과 안정 상태보다 더 뛰어난 ‘초 안정(Super-stable) 상태’를 이룬다.

 

이러한 거미줄의 구조는 포물선의 성질(그림❷)로도 이해할 수 있다. 포물선은 한 정점(F)과 한 직선(l)에 이르는 거리가 같은 점을 이은 곡선을 뜻한다. 여기서 정점을 ‘초점(F)’이라고 하는데, 이 초점은 거미줄 모양의 구조에서 인장재의 모든 힘을 받는 한 점과 원리가 같다.

 

 

거미줄에 매달려 날 수 있을까?

 

스파이더맨은 건물 숲 사이를 거미줄에 매달려 빠른 속도로 날아다닌다. 가끔은 위기에서 구한 여자 친구 MJ를 매달고도 다닌다. 영화 속 이 장면이 실제로도 가능할까?

 

2021년 레트 알랭 미국 사우스이스턴 루이지애나 대학교 물리학과 교수는 스파이더맨의 거미줄에 작용하는 힘을 계산해 인터넷에 공개했다.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 예고편을 보고 스파이더맨과 MJ가 거미줄을 이용해 날아다니는 장면에서 호기심이 생겨 알아본 것이다.

 

먼저 MJ가 스파이더맨의 고정된 거미줄에 매달린 상태라고 가정하자. 그러면 몸의 중심(오른쪽 그림의 빨간 점)을 기준으로 두 가지 힘이 작용한다. 하나는 지구가 끌어당기는 힘인 중력이고, 다른 하나는 거미줄에 작용하는 장력이다. 이때 MJ의 가속도는 0이다.

 

뉴턴의 운동 제2법칙 F(힘)=ma(질량가속도)에서 가속도가 0이면 힘도 0이다. 즉 MJ는 정지한 상태로 매달려 있는 게 된다. 따라서 위쪽으로 당기는 거미줄 장력과 아래쪽으로 당기는 중력의 크기가 같다. MJ는 자신의 무게와 같은 힘으로 거미줄을 잡고 있으면 매달려 있을 수 있다. 사람마다 매달리는 힘의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 자신의 무게 정도는 지탱할 만한 힘이 있으니 MJ도 고정된 거미줄이라면 충분히 매달릴 수 있다.

 

 

이번에는 MJ가 영화 속 장면처럼 거미줄을 이용해 건물 숲을 날아다닌다고 가정하자. ‘운동’을 하고 있으니 가속도를 계산해야 한다. 이때 거미줄은 원 위를 운동한다. 거미줄의 한쪽 끝이 건물 벽에 붙어 있고, 다른 한쪽 끝에 MJ가 매달려 있기 때문이다. 

알랭 교수는 원 운동하는 물체의 가속도를 구하는 구심 가속도 공식 a(가속도)=v2(속도2)r(반지름)을 이용했다. 이 공식에 따르면 원의 반지름이 클수록 가속도가 작아지고, 운동 속도가 빠를수록 가속도가 커진다. MJ의 가속도는 원의 중심을 향하므로 장력에 영향을 준다. 여기서도 F=ma를 따르므로, 위쪽으로 당기는 장력이 아래쪽으로 당기는 중력보다 커야 한다. 이 상황을 방정식으로 나타내면 다음과 같다.

 

거미줄의 길이와 MJ의 속도(v), MJ의 무게(m)를 알면 계산을 정확하게 할 수 있다. 그래서 알랭 교수는 예고편을 수십 번 돌려 보며 이 값의 추정값을 넣어 직접 계산했다. 거미줄 길이는 약 8층 높이(=32m)로 가정하고, MJ의 속도는 ‘거리시간’ 공식으로 구했다. 여기서 시간은 예고편 속 해당 장면의 등장 시간인 0.417초를 이용했다. 이렇게 계산한 MJ의 속도는 40m/s이고, MJ 무게는 MJ역의 젠데이아 콜먼의 프로필 속 무게인 59kg라고 가정했다. 

 

그 결과 MJ는 약 58.8m/s2 정도를 버텨낼 힘이 필요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이것은 롤러코스터가 가장 높은 곳에서 바닥으로 떨어질 때의 최대가속도와 같은 크기다. 롤러코스터에서도 겨우 좌석 안전바에 꽁꽁 묶여야 버틸 수 있으므로, MJ의 맨손으로는 쉽지 않은 값이다. 

 

발 크기 132cm면 건물 벽 오른다!

 

만약 우리가 영화 속 스파이더맨처럼 벽을 마음대로 오르고 내릴 수 있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불이 난 건물의 벽을 타고 올라가 갇힌 사람도 구할 수도 있고, 영화 주인공처럼 악당을 멋지게 무찌를 수도 있을 것이다. 그 꿈이 가능한지 알아본 연구가 있다. 

 

2016년 동물학자 데이비드 라본테가 이끄는 연구팀은 225종의 동물들을 관찰해 벽을 타고 오르기 위해서는 어떤 조건이 필요한지 알아봤다. 

 

 

연구팀은 첫 번째 조건에 관해 연구하기 위해 몸 크기와 몸무게, 발바닥 크기의 상관관계를 분석했다. 그 결과 사람이 거미처럼 벽을 타려면 발바닥의 크기가 몸 전체 표면적의 약 40%, 손바닥은 80%나 돼야 했다. 예를 들어 키가 180cm인 사람이 벽을 타려면 적어도 발 크기가 132cm나 돼야 한다.

 

게코도마뱀 패드 신으면 스파이더맨!

 

이렇게 발이 큰 사람은 없지만 실망할 필요는 없다. 게코도마뱀의 발을 모방해 만든 패드를 끼고 벽을 기어오르는 데 성공한 과학자가 있기 때문이다. 

 

2015년 미국 과학자 엘리엇 호크스가 이끄는 연구팀은 몸집이 작고 가벼운 곤충과 달리, 몸이 무거운데도 벽을 잘 기어오르는 게코도마뱀을 살펴봤다. 게코도마뱀은 파리와 같은 곤충처럼 발바닥에 털이 나 있는 것도 아니었고, 개구리처럼 끈끈한 액을 내뿜지도 않았다. 그러나 까끌까끌한 벽은 물론, 유리창처럼 매끄러운 면에도 잘 들러붙었다. 

 

게코도마뱀의 발바닥에는 발가락마다 자글자글하게 주름이 잡혀 있었는데, 현미경으로 관찰하자 주름마다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아주 작은 나노 단위(10억 분의 1m 단위)로 미세한 털이 빽빽하게 나 있었다. 연구팀은 게코도마뱀이 발을 디딜 때마다 수십억 개의 털과 벽면 사이에 *반데르발스 힘이 생겨나 중력과 수직 또는 반대 방향으로 쉽게 붙어 있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연구팀은 게코도마뱀이 바닥에 발을 얼마나 대느냐에 따라 벽에 달라붙을 수 있는 정도를 연구했다. 발 전체, 발가락 하나, 발가락 주름 하나, 또는 주름 일부분이 벽에 닿을 때 미끄러지는 힘의 크기가 어떻게 달라지는지 알아본 것이다. 그 결과 발 전체가 닿았을 때 점착력이 강했다. 그리고 놀랍게도 게코도마뱀 발바닥의 표면적(A)과 미끄러지는 힘(σ)의 관계를 로그함수로 나타낼 수 있었다.

 

 

연구팀은 패드에 게코도마뱀 발바닥 하나에 해당하는 발판을 여러 개 붙였다. 발판의 일부분만 닿아도 게코도마뱀 발 전체가 들러붙는 효과를 내기 위해서였다. 실제로 미끄러지는 힘을 분석한 결과 패드 전체가 닿을 때와 일부분이 닿을 때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연구팀은 키 185cm, 몸무게 70kg인 사람이 게코도마뱀 패드를 끼고 건물 벽을 오르는 실험을 했다. 그리고 당당히 실험에 성공했다. 놀랍도록 우수한 동물을 흉내내 인간의 한계를 극복하고 ‘스파이더맨’을 탄생시킨 것이다.

 

 

 

용어 설명

*반데르발스 힘 : 전자구름의 불균형으로 인해 분자 사이에 일어나는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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