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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최초의 우주비행사 존 글렌은 두려운 첫 우주 비행을 결심하며 조건을 내걸었다. “그 여자가 숫자를 확인하면, 우주로 출발하겠습니다.” 

 

미국항공우주국(NASA)에 랭글리연구소에는 대부분 여성으로 구성된 ‘휴먼 컴퓨터’들이 우주비행사가 지구를 떠났다가 무사히 돌아오게 할 방법을 찾는 업무를 하고 있었다. 당시 NASA에서는 계산을 담당하는 직책을 컴퓨터라고 불렀다. 영화 ‘히든 피겨스’의 중심 인물은 20세기 중반 컴퓨터로 일했던 캐서린 존슨과 메리 잭슨, 도로시 본이다. 

 

여성과 흑인에게 냉랭하던 당시 미국은 전쟁이 일어나고 나서야 인재를 낭비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전쟁에서 이기려면 항공 무기를 개발해야 하는데, 원래 연구 분야에서 일하던 백인 남성이 대부분 전쟁터에 나갔기 때문이다. 수백 명의 인력을 구하려면 여성과 흑인에게도 문을 열어야 했다. 

 

때마침 흑인 민권운동과 여성운동이 있었다.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은 1941년 시민들의 요구로 공공 업무와 전쟁 관련 일자리에서 인종 차별을 금지하는 행정 명령 8802호를 내렸다. 시민들의 열망과 시대적 상황이 흑인 여성에게 닫혀 있던 문을 좁게나마 열게 만든 것이다. 이런 정세 속에 1943년 랭글리연구소는 지역 신문 ‘데일리 프레스’에 이런 광고를 실었다. 

 

‘집안일을 줄이자! 당당하게 소매를 걷고 이전까지 남자가 하던 일에 도전할 여성은 랭글리연구소로 연락을 바랍니다!’ 

 

세 주인공도 이때 랭글리연구소에 들어갔다. 수학과를 졸업하면 수학 교사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던 여성에게 연구와 가까워질 기회가 열린 것이다.

 

용기와 능력으로 기회를 잡은 캐서린 존슨

 

6.25 전쟁 이후 미국과 소련의 관계는 급격히 나빠졌다. 소련이 먼저 인공위성을 쏘아 올리고 최초로 인간을 우주로 보내자 미국은 우주 개발 연구에 모든 자원을 쏟았다. 이제 여성 컴퓨터는 우주선이 포물선을 이루며 올라갔다가 대서양으로 안전하게 내려오는 궤도를 계산해야 했다. 그들 중 가장 돋보인 건 존슨이었다.

 

존슨은 여러 가지 도형과 그들의 관계를 방정식으로 나타내 연구하는 수학 분야인 해석기하학에 뛰어났다. 대학 시절 그의 능력을 높이 산 교수에게 일대일 수업으로 해석기하학을 배웠기 때문이다. 우주선의 궤도를 계산하려면 지구의 중력은 물론 지구가 약간 납작한 타원형 구체라는 사실과 지구의 자전 속도를 고려해 기하학 문제를 풀어야 한다. 존슨은 22개의 주요 방정식과 9개의 오차식을 만들었다.

 

존슨은 우주 여행 중에 컴퓨터가 꺼지면 어떻게 해야 할지 늘 고민했다. 그 결과 1967년 앨 헤이머와 함께 컴퓨터 없이 하늘의 별을 보고 항해해서 우주선을 귀환시키는 방법을 담은 첫 논문을 썼다. 그리고 4년 뒤, 아폴로 13호의 전기 시스템이 폭발로 망가지자 비행사들은 존슨의 방법을 사용해 살아남는다.

 

그들이 숨겨진 이유

 

‘히든 피겨스’의 의도는 필립 카우프만의 고전 영화 ‘필사의 도전’과 비교하면 잘 드러난다. 같은 시대적 상황을 배경으로 하는 ‘필사의 도전’은 우주비행사의 용기와 공포를 사실적으로 그렸다. 다만 우주비행사부터 연구원까지 모두 백인 남성이다. ‘히든 피겨스’는 ‘필사의 도전’에서 백인 남성들이 복도를 걷는 장면을 본떠서 여성 컴퓨터가 복도를 줄지어 걷는 장면(아래)을 연출했다. NASA에 있던 흑인과 여성을 숨기지 말아 달라는 감독의 뜻이 보인다.

 

한편 당시 여성 컴퓨터는 가려질 수밖에 없는 처지이기도 했다. 존슨이 아무리 뛰어나도 여전히 엔지니어 아래에서 일해야 했다. 미국 공과대학교는 여성을 받아주지 않았고, NASA 또한 여성을 엔지니어로 고용할 생각이 없었다. 세 주인공 중 오직 잭슨만이 상사의 추천을 받고 학교에 다닐 수 있도록 허가를 받은 뒤에야 겨우 엔지니어가 될 수 있었다.

 

그런 잭슨도 결국에는 자신이 좋아하던 엔지니어직을 버리고 여성과 소수자를 양성하는 직책으로 자리를 옮긴다. 고위 기술직으로 승진하는 데 장벽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예컨대 연구진이 인맥을 쌓기 위해 사용하던 골프장은 1967년까지 평일에 여성의 출입을 금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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