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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SF속 당신의 순간이동을 골라보세요

아침에 눈을 뜬 당신, 기분이 묘하게 상쾌하다. 창밖에선 새 소리가 들리고 왠지 방이 밝다. 앗차, 늦잠을 잤나 보다. “순간이동이라도 하고 싶다”라고 혼잣말하며 눈을 질끈 감는다. 이 순간 누군가 당신에게 정말로순간이동을할수있는 티켓을 건넨다면 어떨까. 눈 앞에 펼쳐진 티켓 세 장 중 하나를 고른 다음 페이지를 넘겨보자.

 

2023년 1월호 특집인 ‘양자역학적 순간이동’은 독자의, 독자에 의해, 독자를 위해 마련됐다. 지난해 8월 과학동아 전지적 독자위원회 1기 독자위원들이 직접 신년호 표지 후보를 제시했다. 11개로 좁혀진 주제들을 토대로 과학동아 편집부에서 기획안을 만들었다. 그리고 독자위원들이 기획안을 검토해 최종적으로 꼽은 주제가 바로 양자역학적 순간이동이다.

 

주제를 제안한 유채현 독자위원은 “지구를 떠나 다른 행성으로 간다면 로켓보다 순간이동이 더 편리하겠다는 생각에 순간이동이란 기술을 떠올리게 됐다”며 “도쿄대에서 양자역학적 원리를 이용해 순간이동 실험에 성공했다는데, 그 뒤로 세계적으로 연구가 어떻게 되고 있는지 궁금했다”고 했다.

 

순간이동이란 소재는 어느 면으로 보나 매력적이다. 유 독자위원이 그랬던 것처럼 순간이동을 만드는 기술도, 순간이동이 현실이 된 세상의 모습도, 상상할 거리가 넘친다. 이런 이유로 순간이동을 다루는 소설이나 영화는 그간 수없이 많았다. 순간이동의 방법도 가지각색이다.

 

슈퍼 히어로 ‘플래시’처럼 아주 빨리 움직이는 순간이동부터 게임 ‘포탈’에서처럼 시공을 가로지르는 문을 통과하는 순간이동. 드라마 ‘시지프스: the myth’에서처럼 정보를 전송하는 순간이동까지. 독자들은 어떤 순간이동을 가장 매력적이라고 생각할까. 묻지 않을 수 없었다. 2022년 12월 3일, 과학동아가 독자위원들을 모아 화상회의를 개최했다.

 

 

가장 쟁점이 된 의제는 ‘무엇을 순간이동으로 봐야 하는가’였다. 그런 면에서 아주 빨리 움직이는 방식의 순간이동은 입지가 애매하다. 빛의 속도(광속)에 가깝게 가속한다고 해도 초속 약 29만 9792km라는 한계가 명확하다. 광속은 상대성 이론에 의해 질량이 0 이상인 물질과 에너지가 도달할 수 있는 속도의 한계다. 이보다 빨리 움직이기란 불가능하다.

 

이건희 독자위원은 “이동하는 데 드는 시간이 거리에 비례하지 않아야 순간이동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지구상에서야 광속으로 움직이면 약 0.067초 안에 지구 반대편까지 도달할 수 있으니 이 한계는 크게 느껴지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은하로부터 가장 가까운 큰 은하, 안드로메다 은하에 방문할 경우 이야기가 달라진다. 광속으로 달려도 250만 년 동안 뛰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질량을 가진 물체는 광속에 가까워짐에 따라 그 질량이 무한대로 증가한다. 따라서 물체를 움직이는 데 필요한 에너지인 운동에너지는 질량에 비례한다. 물체가 광속에 가까워지면 그 물체를 움직이는 데 필요한 에너지는 무한대로 커진다.

 

‘세상에서 가장 빠른 사나이’란 별명을 가진 DC코믹스의 슈퍼 히어로, 플래시는 어떨까. 플래시는 광속보다도 빨리 달릴 수 있다. 그 덕에 인구수 약 50만 명인 도시에 핵이 떨어지자, 사람들을 한 명씩 핵폭탄의 영향 범위 밖으로 옮겨놓는 에피소드가 있을 정도다. 물론 현실에선 불가능한 이야기다. 이 때문에 빛의 속도로 움직인다는 설정이 있는 슈퍼히어로의 경우, 힘의 근원에 대한 추가적인 설정이 필수다. 플래시가 ‘스피드 포스’라는 특별한 능력을 이용하는 것처럼.

 

 

독자위원들의 인지도가 가장 높은 건 단연 ‘워프’ 방식의 순간이동이었다. 시공간을 왜곡해 목적지까지의 거리를 줄이는 방식으로, 문(포털)을 통과하기만 하면 멀리 떨어진 곳으로 이동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으로 여긴 독자위원이 많았다. 박지빈 독자위원은 “스타트렉이나 어벤저스 등을 통해 워프 포털을 이용한 순간이동을 자주 접했다”며 “순간이동이 어떻게 이뤄지는지 궁금증이 생겼다”고 말했다.

 

 

SF 속 워프 포털을 현실에 열 방법을 궁리한 건 박 독자위원 뿐 아니었다. 멕시코의 이론물리학자 미겔 알큐비에레는 스타트렉 속 워프 항법을 보고 ‘알큐비에레 드라이브’라는 이름의 이론을 떠올렸다. 알큐비에레 드라이브의 핵심 원리는 물체 뒤의 공간을 급속히 팽창시킴과 동시에 앞쪽 공간을 수축시켜 거리를 좁히는 것이다. 스타트렉의 워프엔진과 같은 전략이다. 이 과정을 물리학적으로 구현하기 위해서는 질량이 음수라 서로를 밀어내는 특성을 가진 ‘별난 물질’이 필수다. 스타트렉에선 물질-반물질의 반응이나 초소형 블랙홀을 이용해 공간을 수축할 에너지를 얻는다는 설정이다.

 

한편 게임 ‘포털’의 워프는 ‘양자 터널’을 만든다는 설정이다. 포털건으로 사람이 통과할 수 있는 크기의 즉석 양자터널을 만드는 식이다. 양자터널을 통과하면 원하는 공간으로 이동할 수 있다는 거다. 그런데 여기엔 오해가 있다. 사실 양자 터널은 양자가 터널을 뚫어준다는 의미의 용어가 아니다. 양자역학에서 전자처럼 아주 작은 입자는 입자의 특성과 파동의 특성을 동시에 띤다. 이 덕분에 원래 자신의 운동에너지로는 통과할 수 없었던 높은 에너지 장벽을 빠져나갈 수 있다. 이 상황이 에너지의 장벽에 터널을 뚫고 지나가는 것처럼 보여 ‘양자 터널링 효과’란 이름이 붙은 것이다.

 

 

2021년 방영한 드라마 ‘시지프스: the myth’의 주인공 한태술은 기업 ‘퀀텀 앤 타임’을 설립한 사업가이자 천재공학자다. 드라마 3화에선 한태술이 퀀텀 앤 타임의 신제품, 양자전송기 기술 시연회를 하는 장면이 나온다. 설탕을 양자전송기에 넣었더니 설탕이 커피잔으로 순간이동한다. 한태술은 “세계 최초로 양자전송을 통해 고분자화합물을 위상이동하는 데 성공했다”고 설명한다.

 

독자들은 입을 모아 “양자전송을 이용한 순간이동이 가장 실현가능할 것 같다”고 내다봤다. 그도 그럴 게, 앞서 유 독자위원이 말한 일본 도쿄대의 순간이동 실험 역시 양자전송을 한 사례다. 2006년 일본 도쿄대와 영국 요크대 등 국제공동연구팀은 양자전송을 통해 레이저빔을 2km 떨어진 곳으로 양자전송하는 데 성공했다.

 

 

양자 얽힘 현상을 검증하고 양자컴퓨터 등 양자기술 시대를 여는 데 공헌한 공로로 2022년 노벨 물리학상을 공동수상한 안톤 차일링거 오스트리아 빈대 교수도 양자전송을 연구했다. 1997년 세계 최초로 광자를 양자전송하는 데 성공한 일은 그의 최대 업적 중 하나다. 그런데 차일링거 교수는 “이것은 스타트렉에 나오는 것과 전혀 다르다. 사람을 이동시키는 것이 아니다”라며 “양자전송은 얽힘을 이용해 정보를 다른 곳으로 옮기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양자역학적 순간이동 특집을 준비하며 기자가 만난 과학자들도 입을 모아 “양자전송은 원칙적으로 순간이동과 다르다”고 단언했다.

 

안건우 독자위원은 “양자역학은 독자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분야가 아니니, 이번 기회에 과학동아에서 잘 알려주면 좋겠다”고 했다. 양자전송의 원리는 뭔지, 그럼에도 순간이동이 어려운 이유가 뭔지 궁금한 독자들을 위해 다음 기사 ‘양자전송이 낯선 당신을 위한 안내서’를 준비했다.

 

순간이동을 현실에 구현할 미래는 아직 먼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상상에는 제약이 없다. 이번 특집 기사를 읽으며 순간이동이 가능해진 세상을 머릿속에 그려보게 된 독자라면 43p에 소개된 ‘당신의 순간이동을 SF에 담아주세요’ 이벤트에 참여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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