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세기 최대 규모의 엘니뇨가 다가온다는 예측이 나왔다. 한반도에서도 태풍 횟수가 줄고 가을의 강수량이 줄어들며 겨울 기온이 높아질 가능성이 높다. 엘니뇨의 정체는 무엇일까. 현재 벌어지는 바다의 재양은 언제까지 계속될까.
지금 전세계 기상학자들은 적도 부근 동태평양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 지역의 바닷물 온도가 올라가는 엘니뇨 현상이 세계 곳곳에서 다양한 기상 이변을 속출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경우 지난 82-83년 발생해 막대한 자연재해를 일으킨 ‘세기의 엘니뇨’보다 영향력이 더 클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한국은 다른 지역에 비해 뚜렷하게 드러나지는 않지만 엘니뇨의 영향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여름에 엘니뇨가 생기면 예년보다 서늘해지고 비가 많이 오며 태풍의 발생수가 줄어든다. 가을에는 비가 적게 오고, 겨울에는 기온이 높아진다.
엘니뇨는 왜 발생할까. 엘니뇨가 다른 지역의 기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 것일까.
크리스마스의 아기예수
엘니뇨는 원래 매년 크리스마스 즈음 남미 페루 연안의 바닷물 온도가 올라가는 계절적 현상을 일컫는 말이다. 바닷물의 온도가 올라가면, 연안 바다에서 물고기떼가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고 비가 많이 내린다. 그래서 어부들은 고기를 잡으러 가지 않고 가족들과 크리스마스를 즐길 수 있다. ‘남자아이’라는 뜻의 스페인어 엘니뇨(El Nio)가 ‘아기예수’라고 불리는 이유다. 이 현상은 보통 한달 가량 지속된다.
그러나 최근에는 개념이 바뀌었다. 즉 겨울마다 나타나는 계절적인 현상이 아니라 언제라도 바닷물의 온도가 수개월 이상 평년보다 높아지는 이상 현상을 엘니뇨라고 부른다.
기상학자들은 열대 태평양 지역의 해수면온도가 5개월 이상 평년 수온보다 0.5℃ 이상 높은 경우 엘니뇨라고 정의한다. 이와 반대로 0.5℃ 이상 낮은 경우는 라니냐(La Nia)라고 부른다. 라니냐는 ‘여자아이’란 뜻의 스페인어다.
엘니뇨 현상이 나타나는 지역의 범위도 달라졌다. 최근 관측에 따르면 엘니뇨 현상은 페루 연안에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페루 연안에서 날짜 변경선까지 약 1만km에 걸쳐 발생하는 매우 큰 규모의 현상임이 밝혀졌다.
엘니뇨와 라니냐는 왜 발생할까. 비밀의 열쇠는 바람이 쥐고 있다.
평소 열대 태평양에서는 바람(무역풍)이 동쪽에서 서쪽으로 분다. 그 결과 서태평양에는 따뜻한 바닷물이 쌓이게 된다. 서태평양의 인도네시아 연안은 동태평양 지역 남미의 에콰도르 연안보다 바닷물의 높이가 1/2m 정도, 온도가 8℃ 정도 높아진다. 그래서 서태평양은 전세계적으로 바다물의 온도가 가장 높은 지역이다. 남미 연안에서는 서쪽으로 쓸려간 바닷물을 보충하기 위해 바다 밑의 찬물이 솟아 올라(용승) 온도는 더욱 내려간다. 이것이 라니냐 현상이다.
바람이 약해지면 반대 현상이 벌어진다. 서태평양으로 이동하는 바닷물의 흐름은 약해지고, 이에 따라 동태평양 바닷물의 용승이 약해진다. 그 결과 적도 부근에서 가열된 따뜻한 바닷물이 정체하고 물의 온도가 올라간다. 이것이 엘니뇨가 일어나는 원리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엘니뇨에 대한 설명은 좀더 복잡해졌다. 또다른 특이한 기후 현상과 밀접하게 관련돼 나타났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보자. 20세기 초 기상학자들은 바닷물의 온도 변화와는 별도로 남반구에서 나타나는 기압계의 변화에 주목하고 있었다. 남태평양의 타히티섬과 오스트레일리아 북부 다윈 지역의 기압 변화가 매우 특이한 것이 관찰됐다. 즉 타히티섬의 기압이 올라가면 다윈의 기압은 낮아지고, 반대로 타히티의 기압이 낮아지면 다윈의 기압이 올라가는 시소 현상을 보인 것이다.
기상학자들은 이 현상을 남방진동(southern oscillation)이라 불렀는데, 1970년대 이후 엘니뇨와 남방진동이 함께 일어나는 현상이라는 점을 알게 됐다. 그래서 이 두 종류의 현상을 합해서 엘니뇨-남방진동(ENSO)이라고 부른다.
고기떼도 피난
엘니뇨는 얼마나 자주 일어날까. 일정치 않다. 한 기상학자는 콜럼버스 이후의 항해일지를 조사해 16세기 이후부터 지금까지의 엘니뇨 발생횟수를 조사했다. 이에 따르면 엘니뇨는 2년에서 8년까지 매우 불규칙한 주기를 보이며 발생한다.
원래 엘니뇨는 16세기보다 훨씬 오래 전부터 발생한 것으로 추측된다. 엘니뇨가 발생하면 흔히 페루에 홍수가 발생하는데, 페루의 옛 도시 유적에서 산사태에 의해 매몰된 폐허가 발견됐기 때문이다.
정확한 관측에 따르면 1950년 이후 엘니뇨는 14회 발생했다. (그림)에서 보듯 엘니뇨와 라니냐는 불규칙한 주기로 발생한다. 지속되는 기간 역시 불규칙하다. 특히 90년대에는 95년과 96년에 걸쳐 발생한 라니냐를 제외하고는 계속 엘니뇨만 발생하는 이상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엘니뇨는 사람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아기예수’라는 이름과 걸맞지 않게 엘니뇨는 만만치 않은 자연의 재앙으로 다가온다.
열대 태평양의 기후를 보면, 해수면 온도가 높은 서태평양 지역은 대기가 고온다습하고 불안정해 연 5천mm 이상의 비가 내린다. 반면 해수면 온도가 낮은 동태평양 지역은 대기가 매우 안정해 연강수량 2백50mm 이하의 건조한 기후를 나타낸다.
그러나 엘니뇨가 발생하면, 비가 많이 내리는 지역이 동쪽으로 이동하기 때문에 서태평양 지역(특히 인도네시아 부근)에는 극심한 가뭄이 든다. 반대로 남미 연안에는 호우가 발생한다.
엘니뇨의 영향권은 비단 이 지역에 그치지 않는다. 지구 전체의 대기 순환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전세계적으로 기상 이변이 속출하는 것이다.
엘니뇨에 의해 기상재해가 특히 심각하게 나타나는 지역은 주로 아프리카, 남아메리카, 인도, 오스트레일리아, 인도네시아 등의 열대 또는 아열대 지방이다. 기상재해의 특징은 두가지, 즉 가뭄 또는 홍수로 표현할 수 있다. 불행하게도 기상재해가 후진국에서 극심하게 발생함으로써, 그렇지 않아도 어려운 살림을 더욱 어렵게 만들어 최소한의 인간적 생활마저 위협하고 있다.
페루 연안도 예외가 아니다. 이 연안은 차고 영양분이 풍부한 바닷물이 솟아올라 세계적으로 매우 좋은 어장으로 손꼽히고 있다.
그러나 엘니뇨가 발생하면 바닷물의 온도가 올라가서 고기떼가 다른 지역으로 이동해 숫자가 감소한다. 예를 들어 72년과 73년에 발생한 엘니뇨 때문에 페루 연안에서 잡히는 멸치의 일종인 안쵸비의 어획량이 급격히 감소했다. 안쵸비는 페루의 중요한 가축 사료다.
특히 72년은 안쵸비 어획량의 급감과 더불어 전세계적으로 발생한 기상이변으로 곡물의 흉작이 일어난 해였다. 이것이 엘니뇨 현상이 세계적으로 주목받게 된 계기였다.
82년과 83년에 걸쳐 발생한 엘니뇨는 바닷물의 온도가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해 ‘세기의 엘니뇨’라 불렸다. 이때 아프리카, 오스트레일리아, 인도네시아, 인도, 필리핀 등지에서 극심한 가뭄에 의한 피해가 속출했고, 볼리비아, 에콰도르, 페루, 미국 등지에서 큰 홍수가 일어났다. 당시 집계된 전세계의 피해액은 1백30억달러에 이르렀다.
대략 1년 전 예측 가능
이런 지경에 이르자 엘니뇨에 대한 세계적인 감시 작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대표적으로 ‘세계기후연구프로그램’의 주관으로 85-94년에 수행된 ‘열대해양과 지구대기’(TOGA) 사업을 들 수 있다.
TOGA 사업의 핵심은 열대 태평양에 70여대의 부표(buoy)를 설치하고, 이로부터 해양의 기온, 기압, 습도, 바람, 강수량과 함께 염분도와 해류의 움직임을 측정하는 일이다. 관측 가능한 깊이는 5백m. 이 자료는 인공위성을 통해 지상으로 전송된다.
불과 10여년 전만 해도 기상학자는 바다의 표면상태, 해양학자는 대기의 바닥상태에만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기후의 변동을 규명하기 위해 대기와 해양, 그리고 지표면의 변화를 서로 밀접하게 연결돼 있는 전체적인 하나의 기후 시스템으로 이해하고 있다.
엘니뇨에 대한 연구 역시 마찬가지다. 즉 대기와 해양이 결합된 기후 시스템에 대한 이해를 통해 엘니뇨 현상의 본질을 규명하고, 이를 예측하려는 많은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아직 정확도가 높은 편은 아니지만 엘니뇨는 대략 1년 전에 예측이 가능하다고 한다. 그렇다면 엘니뇨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국가들에서는 농작물의 품종 또는 파종시기를 조절함으로써 효율적인 곡물생산을 계획할 수 있다. 또한 전세계적으로 이에 대한 파급효과를 미리 예측함으로써 안정적인 발전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은 92년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사업계획과 기구 설립을 제안했다. 그 일환으로 96년 국제기후예측연구소를 설립해 엘니뇨로부터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아메리카, 아프리카, 그리고 동남아시아 국가들과 사업을 진행중이다.
올해 들어 발생하고 있는 엘니뇨는 그 규모가 만만치 않아 과학자들뿐 아니라 전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미국 해양기상청 산하 기후예측센터에서 발표한 바에 따르면 이번에 발생하고 있는 엘니뇨는 82-83년 엘니뇨보다 강하게 발달할 가능성을 갖고 있다.
95-96년에 라니냐 현상이 약하게 발달하다가 97년 초까지 열대 태평양은 비교적 평년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97년 4월 이후 현재까지 4개월간 열대 동태평양의 해수면 온도가 상승해 지역에 따라 평년보다 최고 4℃이상 높은 온도를 보이고 있다. 대기의 상태도 전형적인 엘니뇨 상태를 보인다. 아울러 주요 강우 지역도 서태평양에서 태평양 중앙으로 이동되고 있다. 최근 개발된 기후예측모델에 따르면 이 엘니뇨 현상은 금년 겨울 또는 내년 봄까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이번 엘니뇨의 영향은 평소와 다름 없이 지역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다. 인도네시아와 인도, 오스트레일리아, 아프리카 남서부 지역은 가뭄이, 열대 중태평양은 강수량이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페루와 칠레는 이상고온 현상이 지속되고 있는데, 지역에 따라서는 4개월 간 계속 고온이 나타나고 있다. 북미의 경우 겨울철에 알래스카와 캐나다의 동·서부에 고온 현상이, 미국 남동부에 저온 현상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 북대서양의 허리케인(태풍의 일종)은 엘니뇨가 발생하면 수가 감소한다.
북한 가뭄의 원인인 듯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지역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까. 한국에서는 8-9월 엘니뇨가 발생하면 기온은 낮고, 강수량이 많아지는 경향을 보인다. 가을철에는 강수량이 평년보다 적으며, 겨울철 기온은 높아진다. 특히 12월은 강수량이 많아지는 경향이 나타난다. 또한 봄철과 여름철에 걸쳐 엘니뇨가 발생하면, 태풍의 발생수가 적어지고, 발생하는 위도가 낮아지는 경향이 있다.
일본도 한국과 유사하다. 여름철 기온이 낮아지고 겨울철 기온은 높아지는 경향을 보인다. 중국의 북부 지방은 엘니뇨가 발생할 때 강수량이 적어지는 경향을 보인다는 점이 보고됐는데, 북한의 가뭄은 이 현상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사실 중위도에 위치한 동아시아 지역에서 날씨와 기후의 변동은 매우 크다. 따라서 엘니뇨에 의한 영향을 뚜렷하게 구분하기 어렵다.
그러나 엘니뇨는 전지구 규모의 대기 운동과 깊은 관계가 있다. 동아시아 지역도 예외일 수 없다. 그래서 현재 한국도 엘니뇨가 기후에 미치는 영향을 파악하고 이를 정확히 예측하기 위한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한가위 태풍 '올리와' 엘니뇨 탓에 희귀한 진행
지난 한가위 연휴 동안 뱃길을 이용한 귀성객의 발을 묶었던 제19호 태풍 올리와(Oliwa)는 엘니뇨의 영향을 받은 '허리케인'이 평소와 다른 진로를 통해 우리나라 근해까지 도달한 것으로 밝혀졌다.
태풍은 북태평양 남서해상(북위8-15도)에서 발생하는 열대성 저기압이다. 같은 열대성 저기압이라도 발생하는 장소에 따라 이름이 다르다. 즉 인도양과 오스트레이리아 부근 남태평양에서 발생하는 경우를 사이클론, 그리고 동태평양과 대서양에서 발생하는 경우를 허리케인이라 부른다.
'허리케인'올리와는 9월2일 하와이 서쪽 2천km 부근에서 발생했다. 평소대로라면 미국 중동부지역이나 멕시코를 거쳐 동태평양으로 진로를 잡는다. 그런데 뜻밖에도 서태평양으로 방향을 틀어 16일 일본 규슈에 상륙한 것이다. 기상청은 이런 현상의 원인이 해수면 온도가 평년보다 높은 엘니뇨와 관련이 있다고 추측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