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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양자전송으로 순간이동을 할순없더라도

▲양자전송으로 순간이동을 할 수 없다면, 과학자들은 왜 양자전송에 관심이 많을까? 양자전송의 첫 단계인 양자얽힘을 그래픽으로 표현했다.

 

양자전송은 아마도 ‘우리가 실험으로 구현할 수 있는 순간이동과 가장 비슷한 기술’일 것이다. 현재 실험실에서 이뤄지는 양자전송은 한 입자가 가진 2차원 양자상태를 전송하는 수준으로, 대규모 양자전송은 여전히 SF 영화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양자전송, 나아가 양자통신에 관심이 많다. 과학자들이 양자통신에 걸고 있는 기대를 살펴보자.

 

양자전송을 통해서 전달하는 것은 입자 자체가 아니다. 입자의 양자상태를 전달할 뿐이다. 예를 들자면, 양자전송을 이용해 송신자가 가지고 있던 입자 A의 양자상태를 수신자가 가지고 있던 입자 B에 전달하는 식이다. 이렇게 하면 송신자가 입자 A를 직접 전달하지 않고도, 멀리 떨어진 수신자에게 입자 A에 대한 정보를 전달할 수 있다.

 

한 입자의 양자상태는 양자통신이나 양자컴퓨터 등 양자정보를 다루는 분야에서 정보의 기본단위로 활용된다. 디지털 컴퓨터가 정보를 처리하고 저장하는 기본단위 ‘비트(bit)’를 들어본 적 있을 것이다. 비트는 0 또는 1의 논리값을 가진다. 한편 양자정보 분야에서는 입자의 양자상태를 활용해 0과 1은 물론 이들의 양자중첩상태까지도 논리값으로 가진다. 이 기본단위를 ‘큐비트(qubit)’라고 한다. 큐비트 소자의 양자 상태를 이용해 정보를 저장하는 것이다. 저장된 정보는 양자전송으로 전달할 수 있다. 이 관점에서 양자상태를 전달하는 양자전송을 흔히 양자정보를 전달할 방법이라 말한다.

 

양자전송을 처음 제안한 건 1993년 미국의 IT 기업 IBM의 과학자들이었다. 찰스 베넷 박사 연구팀이 내놓은 아이디어는 이후 1997년에 안톤 차일링거 오스트리아 빈대 교수팀에 의해 실험으로 구현됐다. 차일링거 교수는 이 양자전송 실험을 포함해 양자정보과학을 발전시킨 공로를 인정받아 2022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다. 함께 수상한 알랭 아스페 프랑스 파리사클레대 교수와 존 클라우저 미국 존클라우저협회 창립자 모두 양자정보 시대를 여는 데 공헌했다.

 

이후 양자전송은 빠르게 발전했다. 2017년에는 차일링거 교수의 제자인 중국과기대 판 지안웨이 중국과기대 교수팀이 인공위성을 이용해 송신자와 수신자가 1400km 떨어진 조건에서 광자의 양자전송 실험에 성공했다. doi: 10.1038/nature23675 그해 국제학술지 ‘네이처’는 2017년의 과학사건에 중국의 양자통신 성공을 선정했다. 이어 2020년에는 미국항공우주국(NASA) 제트추진연구소와 캘리포니아공대, 페르미연구소 등 공동연구팀이 광자의 양자 상태를 약 44km 떨어진 곳까지 90% 이상의 신뢰도로 전송하는 데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doi: 10.1103/PRXQuantum.1.020317

 

양자컴퓨터를 현실에 데려올 양자전송

 

양자컴퓨터가 떠오를 거라는 소식은 이제 새롭지 않다. 먼 미래 이야기도 아니다. 2019년엔 IBM, 2020년엔 중국과기대가 양자컴퓨터를 이용해 세계에서 가장 빠른 슈퍼컴퓨터로도 계산할 수 없는 결과를 내놓았다.doi: 10.1038/s41586-019-1666-5, doi: 10.1126/science.abe8770 ‘양자우위’라고 불리는 이 실험결과는 미래 기술로 여겨지던 양자컴퓨터가 차츰 현실이 되고 있음을 방증한다. 그리고 그 미래의 열쇠를 양자전송이 쥐고 있다. 양자전송을 이용하면 양자정보를 한 노드(지점)에서 다른 노드로 전달할 수 있는데, 이 기술이 대규모 양자컴퓨터를 구현하는 데 필요한 핵심 기술이기 때문이다.

 

양자컴퓨터는 양자중첩과 양자얽힘을 가질 수 있는 큐비트 소자 여러 개를 이용한다. 한 개의 큐비트가 0, 1 그리고 0과 1이 중첩된 상태 모두 띨 수 있다. 따라서 두 가지 정보값만 가질 수 있는 비트보다 더 많은 정보를 표현할 수 있다. 양자컴퓨터가 기존 디지털 컴퓨터로는 풀기 어려운 문제를 해결할 컴퓨터로 꼽히는 이유다.

 

양자컴퓨터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많은 수의 큐비트 소자들 사이에 다양한 형태의 상호작용이 이뤄져야 한다. 하지만 현재 가장 각광받는 큐비트 소자인 초전도 회로의 경우, 근접한 큐비트 소자끼리만 상호작용을 한다. 이렇게 되면 양자컴퓨터를 구성하는 큐비트 소자의 개수가 증가함에 따라 양자컴퓨터 성능이 급격히 떨어지는 문제가 생긴다. 이러한 문제는 양자전송을 이용해 멀리 떨어져 있는 큐비트 소자가 상호작용할 수 있도록 매개함으로써 해결할 수 있다.

 

양자전송은 양자컴퓨터 네트워크를 구성하기 위해서도 필수다. 현재 연구자들의 목표 중 하나는 기존 디지털 컴퓨터와 마찬가지로 양자컴퓨터 역시 네트워크를 구성해 성능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이때 양자컴퓨터 네트워크는 필연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양자노드간 양자정보 전달을 필요로 한다. 이는 양자전송을 통해 구현할 수 있다. 또한, 사용자가 멀리 떨어진 양자컴퓨터에 접속하여 연산을 수행하면서도 연산결과에 대한 보안을 유지하는 블라인드 양자컴퓨터 기술 역시 양자전송을 이용해 구현할 수 있다.

 

양자채널부터 한 걸음씩

 

양자전송은 멀리 떨어진 송신자와 수신자가 양자얽힘 상태에 있는 입자를 나눠 가지는 데에서 시작한다. 양자정보과학에서는 이렇게 양자얽힘 입자들을 나눠 가진 상태를 양자채널이라고 한다. 양자채널을 형성하는 건 양자통신과 양자네트워크의 시작점이기도 하다.

 

양자채널을 이용하는 기술 중 가장 상용화에 가깝다고 평가받는 기술이 바로 양자암호통신이다. 양자암호통신은 송신자와 수신자의 특정한 상관관계를 가지는 임의의 정보를 나누어 가지는 기술이다. 이렇게 나누어 가진 임의의 정보는 암호통신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겨지는 비밀키로 사용할 수 있다. 금고를 열 수 있는 열쇠를 나눠 갖는 셈이다. 그런데 나눠 가진 열쇠 두 개가 양자얽힘 상태다. 열쇠 하나의 모습이 정해지면 다른 하나의 모습도 결정된다. 단순히 열쇠를 관측하기만 해도 열쇠의 모습이 결정된다. 이 말은 만일 양자암호통신에서의 비밀키가 제3자에 의해 도청되거나 해킹된다면 곧장 알 수 있다는 뜻이다. 이는 양자역학적 원리를 통해 안전성을 보장하는 양자암호통신의 핵심 요소다. 그 덕에 양자암호통신은 양자역학이 옳다면 반드시 만족하는 ‘절대적인 보안성’을 제공한다. 기술 난이도가 양자전송을 포함한 일반적인 양자통신보다 낮은 데 비해, 보안통신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큰 주목을 받고 있다.

 

특히 중국에서 양자암호통신 연구를 활발히 수행하고 있다. 이들은 베이징에서 상하이에 이르는 2000km 양자암호통신 백본망을 구축하는 한편, 2021년엔 하늘과 땅 4600km에 거친 양자암호통신에 성공하기도 했다. 한국에서는 SKT와 KT 등 통신사와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등 정부출연연구소를 중심으로 양자암호통신 연구개발을 수행하고 있다. 필자를 비롯한 한국 연구진은 현재 실제 인터넷망에 양자암호통신을 적용해 통신 보안성을 한층 높이는 데 활용하는 한편, 국제 표준기술 확립에도 앞장서고 있다.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 : 더 멀리, 더 크게

 

지난 30여 년간 양자전송을 비롯한 양자통신 기술은 엄청난 발전을 거둬왔다. 하지만 진정한 의미의 양자네트워크를 위해서는 아직 가야 할 길이 먼 것도 사실이다.

 

현재 양자채널은 대부분 양자얽힘 상태인 광자쌍을 만들고 이들 광자를 각각 송신자와 수신자에게 보내는 식으로 만들어진다. 광자는 빛의 속도로 매우 빠르게 전달할 수 있고, 광섬유를 이용하면 매우 적은 손실로 원거리를 이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광섬유를 통해 보낸 광자가 광손실 탓에 사라지는 문제점이 있다. 약 100km의 광섬유를 통과하면 광자 100개 중 99개는 광손실로 사라지는 수준이다.

 

고전 광통신에서는 광섬유 중간에 신호를 증폭하는 중계기를 설치하여 광손실을 해결하고 있는데, 양자통신에서는 기존 중계기를 이용할 수 없다. 따라서 현재 기술로 수백 km 이상 원거리에서 양자채널을 구성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이러한 양자채널 구성의 거리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양자얽힘 교환 기술을 이용한 ‘양자중계기’ 기술을 활발히 연구하고 있다. 양자얽힘 교환 기술은 양자전송 기술의 일종으로 양자상태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양자얽힘을 전달하는 기술이다.

 

또 다른 중요한 연구 방향은 다자간 양자채널을 구성하는 것이다. 오늘날 많은 연구는 송신자와 수신자, 즉 두 노드에서 양자얽힘 입자를 나눠 가지는 데에 머물러 있다. 하지만 셋 또는 그 이상의 입자들 사이의 다중입자 양자얽힘 상태를 만들고 이들을 다수의 참여자가 나눠 가지는 다자간 양자채널을 구성할 수도 있다. 다중입자 양자얽힘은 두 입자 간 양자얽힘에 비해 생성하기가 어렵고 광손실에 더 취약하다. 따라서 다자간 양자채널은 기존 두 노드간 양자채널보다 구현하기 어렵다. 하지만 최근 다자간 양자암호통신이나 양자컴퓨터 네트워크에서의 중요성이 부각되며 크게 주목받고 있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이 있다. 양자컴퓨터에서도, 양자통신에서도 ‘연결’이 관건인 상황이다. 연구자들의 노력 끝에 큐비트 소자가, 양자컴퓨터가, 더 많은 양자가 연결되길 바란다. 그 결과 양자정보과학 분야가 날개를 다는 날을 기대해 본다.

 

2023년 01월 과학동아 정보

  • 김용수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양자정보연구단 책임연구원
  • 에디터

    김소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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