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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과 정원이 좋아 식물의 모든 것을 공부한 가드너, 식물이 걸린 병을 진단하는 식물 연구자. 
본래 음악가이지만 식물에 빠져 홈 가드너가 된 식물 에세이 작가, 식물 소설을 쓰다가 식물을 사랑하게 된 SF 작가까지 식물에 뿌리내린 다양한 사람들로부터 식물과 함께하는 삶에 대해 들어봤다.

 

꽃에 매료된 가드너 │ 한국 정원 미학 확산을 꿈꾸다

박원순 국립세종수목원 전시기획운영실장

 

“제주 서귀포 여미지식물원에서 처음 일했을 때 가드너가 되려면 ‘백공(百工·온갖 종류의 장인)’이 돼야 한다는 말을 들었죠. 처음에는 이해 못 했는데 일하면서 알게 됐어요. 가드너는 식물에 관한 일이라면 정말 뭐든 잘해야 한다는 걸.”


3월 4일 충남 세종 국립세종수목원에서 만난 가드너 박원순 국립세종수목원 전시기획운영실장은 백공의 경지에 이른 국내 대표적 가드너다. 그는 “가드너는 식물 수집부터 증식, 육종, 번식, 관리, 전시 등 식물의 모든 것을 섭렵해 이들을 통해 식물에 새 삶을 부여하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박 실장이 백공 가드너로서의 이력을 처음 시작한 것은 대학이었다. 원예학을 전공하던 그는 당시 원예학의 주류였던 채소 등 실용작물보다 꽃과 정원문화에 더 강하게 매료됐다. 강원도 대관령의 고랭지 채소 농가와 포도주 농장으로 실습을 다니면서도, 관심은 온통 꽃에 가 있었다.


하지만 대학을 졸업한 그가 선택한 직업은 뜻밖에 굴지의 과학책 전문 출판사였다. ‘사이언스북스’에 입사해 식물과 생태 분야를 맡아 책을 기획하는 한편 시간이 날 때마다 전국 각지에 있는 식물원을 방문했다.


“충남 태안에 있는 천리포수목원은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출신 가드너 칼 페리스 밀러(한국 이름은 민병갈)가 회원제로 운영하던 곳이었어요. 회원가입을 하고 주말마다 식물원에 찾아가 한쪽에 쭈그려 앉아 앙증맞은 야생화 사진을 찍곤 했죠.”


책 속의 식물만으로 만족할 수 없었다. 제주 여미지식물원으로 가서 일을 시작했다. 꿈에 그리던 가드너에 입문한 그에게 주어진 첫 임무는 비탈면에 쌓을 조약돌 옮기기였다. 현실로 마주한 가드너는 꿈꾸던 모습과는 완전히 달랐다. “사무실에 앉아 글만 쓰던 사람이 하루아침에 돌 나르고 삽 푸는 일을 하게 된 거죠.”


이후 식물원에 있는 수백 종의 식물을 공부하고 정원 가꾸기에 필요한 각종 연장을 능숙하게 다루는 법을 배웠다. 크리스마스 시즌에 눈사람 만들기, 리스 등의 연출 재료 구하기, 포토존 제작하기 등도 모두 가드너의 일이었다. 


힘들었지만, 가장 좋아하는 일인 꽃을 번식하는 순간에는 힘듦도 잊을 수 있었다. 식물은 저마다 자라는 모습이 제각각 다른데, 이렇게 매번 다른 모습의 식물을 다루는 것이 좋았다. 특히 빅토리아 수련을 콩알 크기의 씨앗으로 번식시켜 잎 하나를 2m가량까지 키우고, 딱정벌레 대신 직접 수분을 시킨 경험이 가장 인상 깊었다.

 

“빅토리아 수련은 밤 9시쯤에 파인애플 향기를 내며 활짝 펴요. 아마존에서는 딱정벌레가 꽃 안으로 들어가 수분을 시켜요. 딱정벌레가 들어가면 꽃잎을 닫아 24시간 가둬버리는 것이죠. 그럼 하얀 꽃이 다음 날 분홍색으로 변하며 잎을 열고, 이때 노란 수술이 발생해요. 온몸에 꽃가루를 묻힌 딱정벌레는 다른 암꽃으로 날아가 꽃가루를 옮겨요. 이로써 연꽃이 자가수정을 피하게 하죠. 아마존이 아닌 제주에서는 가드너가 직접 이 작업을 해 주는데, 깜깜한 연못에 들어가 4살된 딸이 비춰주는 랜턴 빛에 의지하며 딱정벌레처럼 꽃가루를 옮겨주던 그 한밤의 정적을 지금도 잊을 수 없어요.”


박 실장은 운영과 연구, 정원 연출 등을 체계적으로 배우고자 30대 후반의 적지 않은 나이에 세계적인 미국 롱우드가든의 국제 가드너 양성과정에 도전했다. “1년 동안 세계 최고 식물원의 시스템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전부 익혀 철저하게 벤치마킹하겠다는 목표였죠.”


이후 미국 델라웨어대 롱우드대학원에서 대중원예 석사학위를 받고 한국에 돌아와 테마파크인 에버랜드에서 정원 기획자로 일했다. 현재는 지난해 10월 개장한 국립세종수목원에서 전시기획운영을 책임지고 있다. 


‘식물의 신’처럼 보이는 가드너지만, 의외로 그는 수없이 많은 식물을 죽였다. 그는 식물의 죽음과 동물의 죽음은 다르다고 강조했다. “식물을 키울 때 죽일까 봐 고민하는 사람이 많은데, 식물은 번식, 증식을 통한 ‘순환’이 기본 원리예요. 생을 다한 잎을 제거해 줘야만 새순이 나는 것과 같은 이치죠.”


식물을 잘 키울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는 “무관심하되 항상 봐야 한다”라며 “흙을 만져보고 메말라 있을 때마다 물을 주고, 잎사귀를 한 번씩 들쳐 보고 진딧물이나 벌레가 없는지 확인해 줘야 한다”고 말했다. “식물을 키울 때 식물의 고향을 검색해 본 뒤, 그와 비슷한 온도와 습도를 유지해 주면 집에서도 온실 속 식물만큼 잘 기를 수 있다”고도 설명했다.


최근 식물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커져서 기쁘다는 그는 예쁜 정원을 가꾸는 것을 넘어 국내 자생식물의 아름다움과 중요성을 알리고 식물이 주는 긍정적인 영향을 널리 확산시키는 게 꿈이다. 
“선조들이 가꿨던 한국 정원의 아름다움을 재발견하고 그 철학과 미학을 제대로 살린 정원을 만들어 전세계에 자랑스럽게 선보이고 싶습니다.”

 

 

 

 

미지의 병 치유하는 식물 의사 │ 손 닿는 곳에 아픈 식물 없기를


이현주 경기도농업기술원 환경농업연구과 농업연구사 

 

 

경기도 화성시에 위치한 경기도농업기술원에는 독특한 병원이 있다. 진단서와 처방전이 수북이 쌓여있고, 성장에 문제가 있거나 병에 걸려서 진찰을 기다리는 환자들이 줄지어 대기하고 있는 모습은 여느 병원과 다를 바 없다. 환자가 사람이 아니라 식물이라는 점이 다를 뿐이다.


“보통 식물을 보면 ‘예쁘다’ ‘키우고 싶다’는 생각이 먼저 들겠지만, 저는 ‘어떤 문제가 있기에 잘 자라지 못할까’라는 생각을 먼저 해요.”
3월 10일 연구실에서 만난 이현주 경기도농업기술원 환경농업연구과 농업연구사는 2009년 경기도농업기술원이 식물병원을 처음 개원했을 때부터 자리를 지킨 ‘식물 의사’다. 농민과 식물 애호가가 자식처럼 키우는 식물이 고객이다.


식물병원은 농가의 진흥을 위해 설립됐다. 식물의 해충, 질병, 관리 등 각각의 전문가 10명이 식물을 진단하고 치료한다. 생계가 달린 귀중한 농작물이 한순간에 시들면 농부들은 열병이 난 갓난아이를 병원에 데려오듯 식물병원에 가져오곤 한다.


“한번은 잿빛곰팡이병이 걸린 줄 알고 살균제를 쳤는데 아무리 약을 줘도 시들시들하다며 식물병원을 찾은 농민이 있었어요. 진단 결과 그 식물은 해충 때문에 노균병이라는 질병에 걸린 것이었죠.”


독감에 걸린 사람이 장염약을 먹어 병을 악화시킨 것처럼, 해충 피해를 입은 식물에 곰팡이를 제거하는 살균제를 뿌려 오히려 병을 키운 것이다. 자칫 시기를 놓쳤다면 폐농까지 할 수 있던 순간이었다. 


온라인으로 운영되는 사이버 식물병원은 진단 시기를 놓치는 문제를 해결하고 식물병원에 직접 찾아오기 힘든 사람들을 간단하고 빠르게 도왔다. 가정원예를 하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사이버 식물병원을 찾는 방문객도 크게 늘었다. 현재 1년에 최대 1700건까지 질문이 올라올 정도로 식물 애호가들이 믿고 찾는 병원이 됐다. 이 연구사는 “이용자의 80~90%는 가정 원예를 하는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올해는 홈페이지를 개편하면서 10여 년간 병원에 쌓인 데이터를 토대로 식물병원 의사의 진단을 받기 전에 자가진단을 할 수 있도록 했다. 이 연구사는 “자가진단과 사례 검색으로 해결되지 않으면 질문을 꼭 하라”며 “물 주기, 영양제 사용 빈도 등 평소 어떻게 관리하는지를 보다 상세하게 적으면 정확한 진단에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치료가 연구로 이어지기도 한다. 2016년쯤 원예작물인 호야를 키우는 농가에서 병이 돌았다. 약을 쳐도 낫지 않았다. 일부 농가에서는 원인을 모른 채로 살균제만 뿌리다가 폐사하기도 했다. 알고 보니 고추, 토마토 등에서만 나타나는 토마토반점위조바이러스(TSWV)가 원인이었다. 이 연구사는 “살균제를 쓸 게 아니라 바이러스 매개충인 총채벌레를 잡았어야 했는데, 몰랐으니 사태가 심각해졌다”라며 “화훼 원예에서는 처음 발견된 사례다 보니 농민들이 속수무책으로 당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처럼 매년 새로운 질병 1~2건 정도가 꾸준히 보고된다”며 “사이버 식물병원은 이런 병을 연구하는 창구”라고 말했다. 


홈 가드너를 위한 ‘팁’을 묻자 그는 “가정 원예에 관한 질문은 대부분 질병보다는 관리에 관한 것”이라며 “가장 기본적인 물주기, 통풍, 햇빛 쫴주기만 잘해도 집에서 기르는 식물이 잘 자랄 것”이라고 귀띔했다. 


“식물도 사람과 비슷한 면이 있어요. 사람들이 환기를 안 하면 어지러워하듯, 식물도 온도가 올라간 낮에는 환기를 한 번씩 해 줘야 잘 자랍니다. 물을 지나치게 많이 줘서 식물이 시드는 경우도 많아요. 식물이 필요한 것보다 습해지면 뿌리가 숨을 못 쉬고 상해버리죠. 가장 중요한 뿌리가 망가지면 잎사귀, 꽃, 줄기 등 어떤 부분도 정상적으로 자랄 수 없어요. 특정 부분이 병들면 퍼져나가기 때문에 초기에 빨리 잘라내야 합니다. 마치 몸속에 종양이 생기면 더 커지기 전에 잘라내야 하는 것처럼요.”

 

식물 에세이스트가 된 베이시스트 │ 코로나 블루 치료사, 식물


임이랑 식물 에세이 작가·디어클라우드 베이시스트 

 

 

“셀 수 없을 정도로 많고, 굳이 셀 생각도 없어요.” 


3월 9일 서울 영등포구의 한 스튜디오에서 만난 임이랑 작가는 그의 집이 독특한 무늬를 가진 희귀 식물부터 천장에 닿을 만큼 키가 큰 식물, 식용 식물 등으로 가득 차 있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임 작가는 밴드 ‘디어클라우드’의 베이시스트, 팟캐스트 ‘임이랑의 식물수다’ DJ, 1만 부 이상이 팔린 식물 에세이 ‘아무튼, 식물’의 작가, 식물 유트브 ‘이랑’ 채널의 유튜버, 그리고 홈 가드너다. 식물이라면 준전문가지만 그 또한 “수없이 많은 식물을 죽여왔다”고 고백했다. 그는 “돌이켜보면 식물의 생리라는 관점에서 생각해 본 적이 별로 없었다”며 “내 위주로 식물을 키웠기 때문에 식물을 많이 죽였던 것”이라고 말했다. 

 


수많은 화분 속 식물을 흙으로 돌려보내던 6년 전 어느 날, 임 작가는 ‘이제는 한번 잘 키워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식물의 입장’에서 공부를 시작했다. 식물 원산지 확인은 물론, 각 식물의 번식 방법과 습성을 샅샅이 조사했다. 긴 시간 밴드 생활을 하며 예술계에 몸 담았던 음악가이기에 그는 “오랜만에 과학 공부를 많이 했다”면서 웃으며 말했다.


지금은 책과 영상으로 수많은 사람에게 가드닝 비법을 알려주는 베테랑 가드너지만, 본격적으로 가드닝을 시작한 초반에는 식물에 물 주기조차 어려웠다. 
그는 언제 식물에 물을 주기 시작했는지, 물을 줬을 때 식물의 반응은 어땠는지, 비료는 무엇을 썼는지 등을 매일 세세히 기록한 ‘물 주기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다년간 물 주기 일기를 써온 경험을 토대로 그는 “물 주기만 잘해도 식물은 어느 정도까진 잘 기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식물 출신지에 맞는 환경을 만들기 위한 노력도 아끼지 않았다. 건조한 환경에서 사는 식물끼리, 습한 환경에 사는 식물끼리 분류하는 등으로 방마다 식물의 환경에 맞춰 따라 온습도를 유지해 놓았다. 집 전체를 ‘식물의 입장’에 맞춰 둔 것이다.


임 작가는 “최선을 다해 식물을 죽이라”고 조언했다. 역설적으로 식물이 살아있는 동안 관심을 갖고 키울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점점 식물을 살리고 잘 키울 수 있게 됐다. 실제로 그는 아무리 바쁜 날도 가능한 한 시간 정도는 일찍 일어나서 식물을 돌본다. 불규칙적이던 그의 생활이 규칙적으로 바뀌는 긍정적 효과는 덤으로 따라왔다.


수백 종의 식물을 키웠지만, 그는 여전히 알고 싶은 식물이 많다고 답했다. 같은 종이어도 생장하는 방식, 잎사귀 무늬를 생성하는 방식 등이 모두 다르니 그 과정을 직접 보고 식물의 번식에 참여하는 게 새롭고 재밌다. 


“최근에는 아프리카 식물인 괴근식물에 관심이 많아요. 잎에 물을 머금고 있어 물을 주지 않아도 사는 식물이에요. 또 관엽식물인 필로덴드론의 하이브리드 종들도 많은데 아직 키워보지 않아 궁금해요.”


임 작가는 본인이 가장 좋아하는 식물인 몬스테라를 초보 가드너에게 추천했다. 그는 “초보 가드너들은 흔히 과습 실수를 많이 하는데, 몬스테라는 과습을 비교적 잘 견뎌주는 식물”이라며 “잎이 퍼질 때마다 상황에 맞게 갈기 요철 등이 변하는 모습을 보는 것도 재밌다”고 말했다.


그는 가드닝의 장점으로 생각을 비울 수 있다는 점을 꼽았다. 임 작가는 “화분 속의 흙을 만지면서 차분히 앉아 식물 관리를 할 때는 모든 잡생각이 사라진다”며 “가드닝을 하면서 식물에게 위로를 받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발생 이후 코로나 블루로 힘들어하는 사람이 많아요. 이 시기에 식물이 없었으면 어떻게 우울함을 이겨낼 수 있었을까 생각해요.”

 

소설 쓰다 식물에 빠진 SF 작가 │ 당신의 외계성에 주목하다


김초엽 작가

 

 

죽음의 먼지 ‘더스트’가 세계를 휩쓴 이후, 수십 년에 걸쳐 문명이 재건된 미래. 더스트 때문에 변화한 자연을 연구하는 생태학자 아영은 한 도시에서 ‘모스바나’라는 유해 잡초의 이상증식 현상을 발견한다. 아영은 이 잡초와 더스트 시대의 연관성을 찾아내면서 모스바나에 얽힌 미스터리를 풀어나간다.


김초엽 작가의 신작 소설 ‘지구 끝의 온실’의 줄거리다. 김 작가는 e메일 인터뷰에서 “잊혀진 여성 과학자들의 서사를 다시 발굴하는 주인공의 이야기를 쓰는 게 즐거웠다”며 “미래에도 어떤 서사들은 계속해서 지워질지도 모르지만, 그 서사를 끊임없이 쫓아가는 사람들 역시 있을 것이라 생각하면서 소설을 썼다”고 말했다. 


이번 작품은 온실과 식물을 다뤘다는 점이 특징이다. 김 작가는 “자연인 동시에 인공적이라는 점에서 온실이라는 공간을 좋아해 이를 소재로 소설을 썼다”고 밝혔다. 또 그는 “아포칼립스(대규모 재난 또는 인류 멸망 상황)에서 인간보다 더 잘 살아남을 수 있고, 멀리 퍼져나가고, 그러면서도 인간과는 시간 규모가 다른 생물이 필요했다”며 “그런 생물을 고안하다 보니 식물 이야기를 쓰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온실을 주제로 한 소설을 준비했던 만큼 소설에 참고가 될 만한 수목원, 식물원, 온실을 여럿 방문했다. 전시용으로 만든 화려한 온실은 소설 속의 수더분한 연구용 온실과는 달랐지만, 소설을 쓰는 데 많은 참고가 됐다. 특히 작중 배경인 말레이시아의 열대 식물 조사에 도움이 됐다. 


이외에도 등장하는 식물의 이미지를 잡기 위해 틈틈이 다양한 식물을 관찰했다. 소설 속의 유해 잡초인 모스나바는 덩굴식물로 낮은 위치에서 무성하게 퍼진다. 김 작가는 “모스나바를 구상하기 위해 거리에 무성하게 자란 잡초를 보면 사진을 찍고, 식물 앱으로 어떤 식물인지 바로 검색했다”고 답했다. 

 

 


김 작가는 “소설의 선공개 버전을 쓸 때는 ‘환삼덩굴’을 모델로 모스나바를 만들어냈으나, 추가 자료조사에서 외관 이미지는 ‘아이비’에 더 어울린다고 판단해 모델을 수정했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외관은 아이비가 모델이지만, 모스바나에는 다양한 환경에 잘 적응하고 성장이 빠르며 씨앗을 많이 생산하는 등 대부분의 잡초가 갖는 여러 특성을 조사해 더했다”고 설명했다.


김 작가는 ‘풀 초(草)’에 ‘잎 엽(葉)’을 써서 풀잎이라는 뜻의 이름을 가졌다. 하지만 이름에 걸맞지 않게(?) 식물에 대한 관심은 이번 소설을 쓰면서 생겼다. 활발한 작품 활동을 벌이는 소설가이지만, 식물 세계에서는 이제 막 발걸음을 뗀 초보 가드너다. 


그러나 이미 그의 작업실에는 반려식물 여럿이 자라고 있다. 직접 구매한 틸란드시아 이오난사부터 선물로 받은 몬스테라와 파인애플까지 매력적인 식물들이 작가의 작업실에서 숨 쉬고 있다. 


같은 처지의 초보 가드너를 위해 식물 잘 키우는 법을 묻자, “초보자가 키우기 쉬운 식물을 기르는 게 최고의 비법”이라는 명쾌한 답변을 내놨다. 그는 “현재 작업실에서 키우는 몬스테라, 파인애플 등은 열대지역이나 이국을 떠올리게 하는 식물이라서도 좋지만, 저 같은 초보 가드너가 키우기에 매우 쉬운 식물”이라고 말했다. 김 작가는 “스스로의 가드닝 능력을 믿지 못해 흙이 마르는 시기를 알려주는 화분 수분감지기까지 쓰고 있다”며 “도구의 힘을 빌리는 방법도 추천한다”고 말했다.  


김 작가는 “인간과 다른 시간 규모를 갖는다는 것이 식물의 매력”이라고 말했다. 본인의 작업실에서 키우는 몬스테라가 거의 한 달에 걸쳐 새로운 잎을 만드는 모습을 보며 떠올린 생각이었다.


“매일 출퇴근할 때마다 아주 조금씩 달라져 있는 잎을 보면서 인간의 시간 인지 감각이란 정말 특정한 범위에 한정돼 있다고 생각했어요. 만약 어떤 생물이 한 달에 걸쳐서 천천히 나에게 단 한 마디의 말을 건넨다면, 저는 알아들을 수 없겠죠? 식물은 곰곰이 생각할수록 낯선, 외계성을 지닌 생물인 것 같습니다.” 

 

2021년 04월 과학동아 정보

  • 조혜인 기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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