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여러 지역에서 정원을 가리키기 위해 사용되는 단어 중에는 ‘울타리가 쳐진 닫혀있는 공간’이라는 어원을 갖고 있는 단어가 많다. 영어의 가든(garden)이 대표적이다. 한자의 원(園) 역시 울타리로 둘러싼 형태를 본땄다. 인류가 수렵 생활을 접고 농사를 짓기 시작하면서 자신이 사는 곳 안에 채소와 가축을 기를 수 있는 장소를 만든 게 정원의 시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류는 동시에 주거지를 아름답게 만들기 위해서도 식물을 심었다. 서양 정원의 모태라고 불리는 ‘페르시아 정원’도 식물 대부분은 식용이었지만 화려한 꽃을 피운 식물도 가득했다. 점차 창의력을 동원해 정원에 식물을 심는 사람이 늘었고, 이를 즐기는 정원 문화도 발전했다.
정원을 만들고 식물을 장식하거나 돌보는 것은 오직 인간만이 할 수 있는 매우 인간적인 일이다. 자신의 주거지를 조성하는 생명체는 인간 외에도 존재한다. 일부 새들은 암컷을 유혹하기 위해 주거지를 꽃과 나뭇가지로 장식한다. 하지만 인간처럼 자신의 주거지를 형형색색의 식물로 채우고 가꾸는 일에서 보람과 정신적, 육체적 위로를 받는 생명체는 지구상에 없다.
‘가든’과 ‘가드닝’의 사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영문 백과사전 ‘브리태니커’에 따르면 가드닝은 ‘구획(laying out)하고 땅을 돌보고(care of ground) 식물을 키우고(growing plants) 식물을 조합시켜 그 주변과 어울리게 예술적으로 관리하는 일’이다. 그리고 영어권에서 정원은 13세기 이후 닫힌 공간(enclosed)이라는 의미로 정착됐다. 그런데 이 가드닝이라는 단어가 본격적으로 쓰인 시작한 시점은 18세기부터다. 정원의 역사를 돌아보면 왜 이 시점인지를 이해할 수 있다.
15세기 르네상스 시대에 이탈리아에서는 독특한 기하학적 패턴과 조형미를 강조한 정원이 등장했다. 메소포타미아 문명이 일군 정원 문화가 이탈리아에서 좀 더 발전된 모습으로 나타난 것으로, 자연이 지닌 특징을 완벽하게 거부한 정원이었다. 그리고 이 문화가 17세기 프랑스의 바로크 정원으로 확장되면서 정원은 더욱 인간의 예술 공간으로 확실하게 자리를 잡게 됐다.
하지만 이에 대한 반발이 18세기 영국에서 등장했다. ‘영국식 풍경 정원’이다. 정원 문화는 기존과는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인간의 예술성과 정형성을 거부하고, 자연 본연의 모습을 살리고자 했다. 식물 자체의 아름다운 형태와 스스로 자라는 자생력에 집중했다. 식물을 깎고 다듬는 개념에서 식물이 잘 살아갈 수 있도록 돌본다는 개념도 탄생했다.
바로 이때부터 다양한 식물을 돌보고 구성하는 행위를 뜻하는 단어 ‘가드닝’이 대중적으로 쓰이기 시작했다. 정원의 식물을 돌보는 사람이자 식물을 배치하고 관리하는 사람을 지칭하는 ‘가드너’라는 말도 본격적으로 쓰였다.
19세기에는 식물에 대한 호기심과 관심이 크게 확장됐다. 여기에는 당시의 정치적 상황이 큰 영향을 미쳤다. 유럽 각국은 제국주의 시대에 돌입했다. 식민지를 쟁취하기 위해 경쟁을 벌이는 과정에서 신대륙에 진출했고, 이 과정에서 그곳에 자생하는 이국적인 식물이 대거 유럽에 소개됐다. 각국은 새로운 식물 수집에 열광했다. 특히 영국은 ‘식물 사냥꾼’을 아메리카, 오세아니아, 아프리카, 인도, 중국, 일본 등 전 세계에 파견해 샅샅이 뒤지며 식물을 수집했다. 오늘날 영국 런던 시민들이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세계 최대 규모 식물원인 ‘큐 왕립식물원’이 바로 이 시기의 호기심과 활동에 의해 탄생했다.
가드닝이 불러일으킨 정원 문화
20세기 초에는 영국의 정원 문화를 현대적인 의미의 가드닝으로 바꾸는 획기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가든 디자이너 거트루드 지킬이 ‘초본식물 화단(Herbaceous border)’을 선보였다. 초본식물 화단은 영국이 그간 수집해왔던 수많은 식물을 바탕으로 아름다운 식물을 찾아내고 그 식물을 조합해 심으며, 이들을 가꿔 유지하는 모든 일을 하는 곳이었다. 초본식물 화단의 등장으로 가드닝을 전제로 한 정원 문화는 고도의 예술로 승격됐다. 열풍처럼 번진 지킬의 초본식물 화단 디자인은 오늘날 ‘영국식 정원(잉글리시 가든)’이라고 부른다.
지킬이 불러일으킨 변화는 대단했다. 정원의 개념이 가드닝을 전제로 한 공간으로 바뀌었다. 정원에 필요한 식물의 대량 재배라는 개념도 등장했다. 정원 일을 위한 패션이 유행했고 정원 용품이 개발되는 등의 산업적인 측면에서 변화가 나타났다. 새로운 재배종을 소개하는 플라워 쇼가 등장했고, 식물과 정원용품을 판매하는 가든 센터, 전문성을 갖춘 가든 디자이너를 탄생시켰다. 가드닝 문화도 꽃을 피웠다.
영국 런던 서남부 지역인 첼시에서는 해마다 5월이면 ‘첼시 플라워쇼’가 개최된다. 이 행사에서는 이전에는 지구에 없던, 인간이 새롭게 재배에 성공한 식물을 선보인다. 이 거대한 가드닝 쇼에서 사람들은 식물을 사거나 팔고 가드닝 계획을 세우며 어떤 식물을 심을지 고심하며 정원을 꿈꾼다.
현대 정원의 진화, 가드닝과 도시 생활
일부에서는 정원이라는 공간이 도시화로 인해 줄어들거나 사라진다고 우려하지만 많은 학자는 정원에 공간적 한계는 없다고 말한다. 가드닝을 할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라도 정원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가드닝 문화의 가장 최근 모습을 볼 수 있는 곳이 바로 실내 정원이다. 땅이 없는 실내 환경 속에서도 작은 용기에 식물을 심고 그 식물에게 물을 주며 햇볕을 쬐어 주고, 때로는 분을 갈아주고 가지치기를 해주는 가드닝이 일어난다면 그곳이 바로 정원이 될 수 있다.
가드닝은 우리 몸의 육체적, 정신적 상처를 회복시키는 효과가 있다. 수술 환자의 회복 속도를 높여주거나 진통제 투약량을 줄여준다는 보고도 있고, 자존감이 떨어지고 우울증이 심할 경우 가드닝이 좋은 효과를 보인다는 연구도 있다. 식물은 대화를 하는 존재는 아니지만 살아 있는 생명체로, 타인과의 소통에서 오는 스트레스에 의한 질병에는 식물을 통한 치료가 매우 탁월하다.
도시가 더욱 발달하고, 밀집된 환경 때문에 삶이 힘들어질수록 가드닝 문화에 대한 열망은 커질 것이다. 살기 위해, 건강하기 위해 우리 몸이 본능적으로 식물을 찾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도시 밀집화가 어느 나라보다 심한 우리나라에서 가드닝 문화에 대해 관심은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커질 것이다. 코로나 시대를 살면서 어떻게 살아야 할 지 고민이 깊어진다. 그 고민의 어디쯤에서, 자신의 책상 앞에 식물 화분 하나 올려놓는 것으로부터 답을 찾는 분들이 많아지지 않을까, 그런 확신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