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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대에 속하면서도 무덥지 않은 섬. 자연의 아름다움과 인공(人工)의 편리가 조화를 이룬 낙원. 이 낙원은 누가 만들었나. 그것은 땅속의 힘으로 이룩되었다.

태평양 중부의 남동쪽에서 북회귀선을 따라 약 8백㎞에 걸쳐 점철되어 있는 1백30여개 섬의 '지상의 낙원' 하와이 제도. 이 섬들은 수심5천 수백m나 되는 바다 밑에서 솟아 오른 화산섬이다.

 

북위 18°55′~28°25′, 서경 154°48′~178°25′의 총면적 1만6천7백5㎢, 인구 약1백만명의 하와이제도는 1959년에 미국의 50번째 주가되었고 주수도는 '오아후'섬의 호놀룰루(인구 약 40만명)이다.
 

보통 하와이라 하면 남동쪽 끝의 하와이(면적 1만4백㎢)에서 북서쪽으로 마우이(1천9백㎢) ,카훌라웨(1백20㎢), 라나이(3백60㎢), 몰로카이(6백70㎢), 오아후(1천5백㎢), 카우아이(1천4백㎢), 니하우섬(1백90㎢)의 순으로 완만한 호를 그리며 배열되어 있는 8개의 섬을 말한다.

하와이 제도의 특징은 화산활동이다.

 

지금도 활발한 킬라웨아화산
 

하와이섬은 여러섬 가운데 제일 큰 섬이다. 삼각형인 이 섬은 킬라웨아(표고1천2백47m), 마우나로아(4천1백70m), 마우나케아(4천2백14m)등 화산으로 이루어져있다. 킬라웨아화산은 마우나로아화산 중턱에 있는 가장 활발한 화산이다. 정상에 직경 약4㎞의 칼데라(Caldera·화산 꼭대기에 원형으로 움푹 들어간 곳)가 있고 그 중앙에는 직경약1㎞의 '할레마우마우'분화구가 있다. 1924년경 까지는 이 분화구에 항상 용암을 내뿜는 용암호가 있어 관광객들이 몰렸다. 1866년에 캘리포니아의 신문'새크라멘토 유니온'지 특파원으로 파견된 '마크트웨인'이 용암호에 대한 르뽀기사를 쓰기도 했다. 이 분화구는 1924년의 폭발성분화가 일어난후 용암호가 소멸되었다.
 

킬라웨아에서는 1백70년 동안에 30회나 분화가 되풀이되어 정상에서 아래쪽 세 방향으로 생긴 균열을 따라 용암이 흘러내렸다. 이 용암은 섭씨 1천~1천2백도의 고온으로 1시간에 50㎞의 속도로 바다로 흘러 떨어져 증기를 내뿜으며 급속히 굳어져 해수에 바스러지고 파도에 씻겨 하와이섬 특유의 검은모래해얀(흑사해안)이 생겼다.
 

하와이섬 중앙부의 약간 남쪽에 '마우나로아'가 있다. 해발고도는 마우나케아 보다 낮으나 산덩어리(매시프)로서는 세계 최대이다. 깊이가 5천m나 되는 해저에서 솟아오른 산이기 때문에 높이가 9천m를 넘는 고산인셈이다. 따라서 이 산은 에베레스트 보다 높은 산이라 할수있다. 마우나로아는 지금까지 1백년동안에 50여회나 분화를 일으키면서 여전히 그 활동이 쇠하지 않고있다. 이런 마우나로아와 킬라웨아화산을 연구하기위해 1912년에 화와이 화산관측소가 설치되었다.
 

하와이제도의 최고봉인 마우나케아는 하와이어로 '하얀 산'이란 뜻이다. 산정부에 소형의 산악빙하가 만들어 놓은 빙식지형(氷蝕地形)이 남아있고 지금도 겨울에는 정상부에 눈이 쌓이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이 눈을 이용하여 하와이에서 스키를 즐길수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이 마우아케아는 분화가 언제쯤 있었는지에 대한 기록이 없고 앞으로도 분화가 있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또 섬의 서북부를 차지하고 있는 하울라라이와 코하라 화산도 사화산이다.

 

태평양의 하와이제도


마우이섬에서 니하우섬까지의 사하산
 

하와이섬의 북서쪽, 50㎞의 해협을 건너면 '마우이'섬이다. 좁은 지협으로 이어지는 두개의 산괴로 이루어진 이섬은 '계곡의 섬'이란 별명이 있다.
 

남동쪽 산지에 있는 할레아카라(3천56m) 정상에는 직경 약 10㎞의 분화구가 있으며 칼데라는 제일급의 크기다. 그러나 화산활동은 이미 끝났다. 칼데라 바닥에는 16개의 분석구가 있으며 그 경관은 달의 크레이터(crater·달의 분화구,달의 곰보)를 연상케 한다. 일찌기 달우주선 아폴로의 조종사들은 훈련을 이곳에서 했다.
 

마우이섬의 서남쪽에 있는 '카훌라웨'섬과 '라나이'섬은 모두 하나의 화산으로 이루어진 섬이다. 또 '몰로카이'섬은 두개의 산지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 최고봉은 '카마고우'산(1천5백15m)이다.
 

오아후섬도 동쪽의 '코라우'산지와 서쪽의 '와이아나에'산지로 이루어져 있다. 이산지도 전에는 모두 화산이었다. 그러나 침식이 진전되어 지금은 거의 화산이란 느낌을 주지 않는다. 겨우 화산활동을 연상케 하는 것은 '다이아몬드 헤드와 '펀치볼'이다.
 

다이아몬드 헤드는 '와이키키'해변 남동쪽 '카피오라니'공원 앞에 있는 표고 2백32m의 사화산이다. 그 정상일대는 현재 미육군의 기지로 쓰이고 있다. 와이키키 해변에서 바라보이는 그 광경은 언제 보아도 매력적이며 호놀룰루와 오아후섬의 상징이라 할수도 있다.
 

펀치볼을 절구모양의 분화구 흔적이며 여기서 내려다 보는 호놀룰루의 전망은 참으로 아름답다. 지금은 이곳에 태평양전쟁에서 베트남전쟁에 이르기까지의 미군 전사자 2만6천여명이 잠들어있으며 유명한 종군기자 '어니파일'의 묘도 이곳에 있다.
 

하와이 하면 먼저 연상되는 것은 와이키키 비치다. 야자수의 녹음과 모래밭과 끝이없이 푸른 바다. 그러나 실은 와이키키의 모래밭은 오아후섬 반대쪽에서 운반해온 모래로 조성한 인공비치인데 관광객은 그런건 아랑곳 하지않고 1백82ha의 이 비치에서 즐기고 있다. 기후도 이상적이어서 언제나 섭씨 22~27도, 비가 와도 여우비(Short spell of rain with sun shining)여서 비까지도 풍정을 돋우는 것이다.
 

'카우아이섬'은 침식이 진행된 둥근 모양의 섬이다. 그 최고봉은 '카와이키니'화산(1천5백98m)이며 그 남쪽 경사면에 침식이 진전되어 1천 m나 깊숙이 파인 '와이메아'대협곡이 있다. 또한 '니하우' 섬은 침식이 더욱 진행되어 섬이 대지(台地·수평 또는 수평에 가까운 지층으로 된 높고 평탄한 지역) 상태가 되어 있다.

 

산호초의 진화와 섬의 역사
 

이미 설명한 것처럼 하와이섬에서 시작하여 하와이제도 남동쪽에서 북서쪽을 향해 갈수록 화산활동이 쇠퇴해져있다. 그와 함께 섬의 침식과 침강도 현저해져 있다. 특히 오아후섬과 카우아이섬의 침식이 두드러진다.
 

그것은 이들 섬이 노령이며 섬이 만들어진 후 오랜 세월이 흘렀음을 의미인다. 방사성원소를 사용다여 재어본 섬의 연령이 이 점을 분명히 설명해 준다. 하와이섬의 연령이 제로라면 카우아이섬은 수백만년이나 된다. 오아후섬의 미해군기지 진주만(펄하버)은 이섬의 침강으로 생긴 만이다.
 

산호초의 발달은 섬의 침강과정을 잘 설명해준다. '찰즈 다윈'의 산호초진화 이론에 따라 풀어보면 섬의 침강과 산호초의 관계를 잘 알수있다.
 

산호초는 산호충이 쌓아올린 것이며 그끝은 1년에 약 1㎝씩 자란다. 최초에는 섬주변에 옷자락처럼 펼쳐진 소규모의 거초(裾礁·해양도나 대륙의 둘레에 발달하는 산호초)로 윤곽을 잡고 있을 정도이다. 섬은 침강해도 산호초는 위를 향해 성장한다. 산호초가 자라는데 비해 섬이 침강해가면 섬과의 사이에 수로가 생겨 산호초는 섬을 보호하는 형태의 보초(堡礁)가 된다. 이것이 더욱 발달하면 이윽고 환초(環礁)가 되는 것이다. 섬의 침강이 계속되면 끝내는 해면 아래로 잠겨 해산(海山)이 된다.
 

하와이제도 중에서 가장 남동쪽 아래에 있는 하와이섬 주변에서는 소규모의 거초를 볼수있다. 그러나 오아후섬까지 가면 보초가 되며 나아가 하와이제도 서북쪽 연장선상의 미드웨이섬에 이르면 산호초가 환초가 되어있다. 이 미드웨이섬의 연령은 약 1천5백만년이다. 하와이제도와 미드웨이 섬을 있는 직선을 따라 더욱 앞으로 뻗어가 북쪽으로 꺾인 캄차카반도에 이르는 부분에는 이렇게 생겼다고 생각되는 연령이 7천만년 가량된 해산이 줄지어있다.

 

킬라웨아 화산에서 힘차게 솟아오르고 있는 섭씨 1천도가 넘는 용암

 

판구조 지질학으로 풀어본 화와이 화산
 

하와이제도의 여러가지 독특한 현상을 명쾌하게 설명해주는 것이 플레이트 테크토닉스 이론이다. 플레이트는 판(板)이고 테크토닉스는 구조지질학이라는 의미다.
 

지구의 표면은 두께가 약 1백㎞되는 수십장의 플레이트로 이루어진다. 한장 한장의 플레이트는 정지하고 있는것이 아니고 조금씩 어느쪽을 향해 이동고하 있다. 태평양은 태평양플레이트라는 한장의 플레이트로 이루어져 있다. 남미 연안 바깥쪽 태평양에는 동태평양 해팽(海膨)이라는 해저산맥이 있다. 지구 내부에서 이곳을 향해 고온의 용암이 솟아나와 냉각되어 굳어지면서 태평양플레이트에 붙는다. 한편 태평양의 서북부에는 일본 앞쪽 태평양에 뻗어있는 일본해구를 미롯한 여러 해구가 있다.
 

태평양 플레이트는 동태평양해팽에서 시작하여 태평양 서북부에 있는 해구를 향해 서서히 이동하며 이 이동하는 힘으로 저온이고 노령이 된 태평양 플레이트의 선단이 해구에서 지구 내부를 향해 파고 밀어 들어가고 있다. 이 이동속도는 1년에 몇㎝ 정도씩이다. 이것이 플레이트 테크토닉스 이론으로 본 태평양 해저의 움직임이다.
 

하와이섬의 '마우나로아'나 '킬라웨아'바로 밑의 플레이트에서 더 깊이 들어가면 용암의 원천인 '핫 스파트' (고온부분)가있다.
 

지구표면의 플레이트는 남동쪽에서 북서쪽으로 행해 이동하지만 핫 스파트는 지구 내부 깊은 곳에 고정된채로 있다. 핫 스파트의 고온의 용암은 플레이트를 꿰뚫고 치솟아 올라 킬라웨아나 마우나로아와 같은활화산을 만든다.
 

그러나 플레이트는 남동에서 북서로 향해 이동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활화산은 이윽고 핫 스파트루트에서 이탈되어 용암공급이 끊기고 만다. 그때문에 활화산은 끝내는 하와이섬의 미우나케아, 후알라라이, 코하라, 마우이섬의 할레아카라, 오아후섬의 다이아몬드 헤드, 펀치볼처럼 사화산이 되어버린다.
 

남동에서 북서로 향해 이동하는 사이에 처음에는 고온이었던 플레이트도 냉각되면서 수축되어 간다. 그때문에 침강이 생기며 오아후섬의 진주만, 하와이제도의 산호초나 해산군 같은 지형을 이루게된다.
 

이렇게 플레이트 테크토닉스와 핫 스파트 이론은 하와이제도에서 현재 일어나고 있는 모든 신기한 현상에 대한 의문을 풀어준다.

 

와이알레아레산.


비가 많이 와 생긴 숲
 

하와이로 향해 부는 무역풍은 북북동 또는 북동에서 온다. 비를 머금은 무역풍이 산으로 거슬러 오르면 공기가 냉각되어 수분이 비가 되어 떨어진다. 따라서 이 무역풍을 맞는 쪽 산의 경사면에는 비가 오지 않는 날이 거의 없다. 비가 오지 않더라도 구름이 덮이지 않은 날은 더욱 거의 없다. 이런 원인으로 강우량이 최대에 이르는 지대는 표고1천~2천m 사이의 지대다. 따라서 이런 지대에는 강우림이 생긴다.
 

이 강우림은 땅 바닥에서부터 나무 끝에 이르기까지 온통 녹색 일색이다. 그중 가장 두드러진것이 커다른 양치식물이다. 그 줄기가 5m 이상이나 되는것도 있으며 그 위에 다시 길이 5m나 되는 잎이 뻗어 옆으로 벌어지면서 서로 엉켜 태양빛을 차단한다. 그 아래쪽에는 그늘에서 잘 견디는 식물이나 기생식물만이 성장한다.
 

쓰러진 나무나 낙엽은 급속하게 부식하며 달팽이, 거미, 곤충등이 이곳에서 서식한다. 석탄기(약3억5천만년 전부터 2억8천만년전) 즈음의 산림이 이러했던 것이 아닐까하고 생각케 할 정도다.
 

강유량이 많은 것으로 유명한 산은 카우아이섬의 '와이알레아레'산(1천5백69m)이다. 이곳의 연간 강우량은 1만2천㎜, 즉 12m나 되어 이 강우량을 정확히 측정하기 위한 우량계를 산 꼭대기에 설치하는데 큰 고충을 겪었다는 일화가 있다.
 

북동쪽의 경사면에서 습기를 털어버린 공기가 남서쪽 경사면으로 내려오면서 따뜻해지면 팽창한다. 그러나 평지에 이르러서는 한류를 따라온 바람과 섞여 사바나(Savanna) 기후의 시원한 바람이 된다.
 

하와이섬의 킬라웨아와 마우아로아 정상과 마우이섬의 할레아카라 정상 부근은 1916년에 하와이화산군(群) 국립공원이 되었다. 이곳이 국립공원으로 지정되기까지 애쓴 사람은 호놀룰루의 신문발행인 '로린 서스틴'과 1912년에 화산관측서장으로 이곳에 부임한 '토머스 재거'박사였다. 그리고 1961년에는 할레아카라를 포함한 마우이섬의 독립된 국립공원이 되었다.

 

하와이 생물의 독특한 진화
 

하와이는 대륙에서 3천5백㎞나 떨여져있다. 그러므로 인간을 제외한 동물이 스스로 대륙에서 하와이로 이동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대륙에서 하와이로 옮겨간 동물은 거의가 폴리네시아인들이 이주할때 옮겨진것이라고 밝혀지고있다. 또 하와이에서 번식한 동물이 대륙의 원산지로 돌아갈 기회도 거의 없다. 따라서 이곳에 온 생물은 그 종(種)의 기원에서 격리되어 별도로 진화과정을 거쳐 새로운 종이 되었다.
 

이때문에 하와이에서 현재 볼수있는 꽃이 피는 식물의 98%가 하와이에서만 있는 독특한 것이다. 그중 포자가 바람에 날려 쉽게 번식되는 양치류는 65%가 하와이에만 존재하는것이다. 이런 점에서 화와이제도는 찰즈다윈이 생물진화를 연구하게 한 갈라파고스제도와 비슷하다.
 

하와이제도에서 서식하는 홍작새는 갈라파고스제도의 검은방울새처럼 원래의 종에서 격리되어 진화했다. 이 새는 현재 약 20종을 넘지만 그 부리는 각각 다른 특징을 갖고 있으며 환경에 따라 별도로 진화되었음을 쉽게 알아볼 수 있다.

 

주민과 기후
 

하와이제도의 원주민은 폴리네시아인으로 1천 5백여년 전에 동남아시아에서 미크로네시아, 마르케사스, 소시에테제도를 거쳐 이주했다. 그후 약 1천년간 그들은 마르케사스와 소시에테제도 사이를 카누로 왕래하면서 살았다.
 

1778년에 영국해군의 '제임즈 쿠크'함장이 카우아이섬을 발견, 샌드위치제도라고 명명했다. 1795년에는 '카메하메하'1세가 왕조를 세워 마우이섬의 '라하이나'에 수도를 정했다. 1820년에 뉴잉글랜드의 선교사가 이주하면서 백인들이 대거 이주, 파인애플과 사탕수수농장을 개척했다. 1893년 '릴리오카라니'여왕이 내각과의 충돌로 퇴위하자 임식정부가 공화국을 선포하고 미국에 합병을 요청, 1898년에 미국의 속령이 되었고, 1959년에 미국의 50번째 주가 되었다.
 

하와이제도에는 처음에 약 30만명의 폴리네시아인이 살고 있었으나 백인들이 이주하면서 번진 병원균과 강한 알콜의 영향으로 거의 줄어 현재는 1백만명 전체 인구의 1.3%에 불과하다.
 

주민의 인구비율은 백인계가 33.7%, 일본계가 28.4%, 필리핀계가 13.2%, 중국인계 5.7%, 한국계 1.6%등이다.
 

한국계 주민은 1903년 1월 1백 2명이 사탕수수농장의 노동자로 이주한 것을 비롯, 1905년 12월까지 65차에 걸친 7천 4백여명의 농장노동자 이민이 1세였고 지금은 이들의 자손인 1세와 3세 및 60년대 이후의 이민등 1만6천여명이다. 1세인 농장노동자들은 자녀들의 교육에 힘을 써 지금은 정치가 행정가 변호사 교육자 실업가를 많이 배출하고 있고 일제시대에는 독립운동의 지원기지 역할도 했다. 이들이 처음 이민갈때 마지막 작별의 무대였던 인천에 학교를 세워달라고 성금 15만달러를 보내 세운 대학이 바로 인하(仁荷)대학이다. 인천의 仁자와 당시 하와이를 한자로 표시한 荷와伊의 荷를 붙인 이름이다.
 

하와이는 흔히 '지상의 낙원'아라고 말한다. 북위 18°55′에서 28°25′에 이르는 적도에 가까운 열대지방이면서 북동무역풍과 한류의 영향으로 항상 섭씨 22도에서 27도정도이고 바람이 서늘하여 체감온도는 더 낮아 쾌적하기 때문이다. 또 오염되지 않은 원시림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연중 내내 관광객이 끊이지 않고 몰린다. 연간 관광객은 약 3백만명으로 주민 1인당 관광객 3명 꼴이어서 그 비율은 세계 제1위이다.

하와이어는 폴리네시아어의 한 분파이지만 19세기의 선교사들이 A, E, I, O, U의 다섯 모음과 H, K, L, M, N, P, W의 일곱자음으로 문자화하여 소박한 아름다움을 나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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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02월 과학동아 정보

  • 이갑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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