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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t issue] 한반도 폭설과 한파

북극과 태평양의 반란 때문


그야말로 ‘눈 폭탄’이었다. 거대한 눈 더미가 온 도시를 순식간에 집어삼켰다. 아름다움을 감상할 여유는 없었다. 눈이 20cm가 넘게 쌓이자 도시는 제 기능을 잃고 멈춰버렸다. 2010년 새해의 첫 출근을 나서던 사람들은 꽁꽁 얼어버린 길 때문에 사람들로 넘쳐나는 지옥철로 향해야 했다. 많은 눈이 쌓인 도로에는 승용차와 버스가 설설 기고 답답한 일부 운전자는 차를 길바닥에 버린 채 걸어가기도 해 아수라장이 따로 없었다.

대체 1월 4일 한반도 상공에는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눈은 수증기를 품은 습한 공기가 0℃ 이하의 찬 공기와 만날 때 생긴다. 수증기는 건조 공기보다 가볍기 때문에 건조 공기를 뚫고 올라가 상층에서 응결한다. 이렇게 생긴 물방울이 떨어지는 과정에서 차가운 공기를 만나 얼어버린다. 이것이 눈이다. 이때 두 공기 사이에 온도 차이가 클수록 강한 대류현상이 일어나고 눈구름대가 빠르게 발달한다.

1월 4일의 대기 상태가 그랬다. 당시 한반도 5km 상공에는 영하 30℃, 지상에는 영하 10℃의 차가운 공기가 위치하고 있었다. 평소보다 시베리아 고기압이 크게 발달했기 때문에 한반도 이남까지 차고 건조한 공기가 가득 찼다. 이런 상황에서 남서쪽에서 따뜻하고 습한 공기가 서해안 상공 1.5km 부근으로 계속 유입했다. 차고 무거운 공기 아래로 따뜻하고 가벼운 공기가 비집고 들어온 셈. 균형이 맞지 않는 두 공기 덩어리는 곧 불안정해져 강한 대류현상이 일어났다. 끝도 없이 두껍게 만들어진 눈구름. 이것이 한반도에 눈 폭탄이 쏟아지기 직전의 상황이었다.

 


북극 한기 막는 둑 터지니 중위도 ‘꽁꽁’

그렇다면 평소보다 시베리아 고기압이 크게 발달했던 이유는 뭘까.

폭설이 내리기 전 한반도에는 이미 크고 작은 한파가 계속되고 있었다. 지난해 12월 24일까지 두 차례의 일시적인 한파가 오더니 25일부터는 추운 날씨가 3주째 지속됐다. 시베리아 고기압이 3주 이상 북동아시아 지역에 머물며 맹위를 떨쳤기 때문에 한반도에는 삼한사온이 사라졌다. 희한하게도 이런 현상은 비슷한 위도에 위치해 있는 나라들에서도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났다. 중국 베이징에는 59년 만의 폭설이 내렸고, 미국 동부지역에서는 연이은 폭설과 한파로 7명이 목숨을 잃었다. 같은 시기에 유럽에서는 영하 20℃에 이르는 기온에 50~60cm의 눈이 내려 80명이 넘는 사람들이 사망했다. 이번 폭설과 한파가 일부 국지적인 기단이나 지형의 영향을 넘어선 더 큰 메커니즘 아래 일어났음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기상학자들과 기후학자들은 북극을 주목했다. 북위 40~50° 지역의 20km 상공에는 빠르고 강한 편서풍이 흐른다. 이름은 북극제트기류. 일종의 벨트처럼 지구의 어깨 부분을 감싸고 돌기 때문에 북극으로부터 동아시아, 유럽, 북미로 한기가 남하하는 것을 막는다. 반대로 기류의 흐름이 약해지면 북극의 한기가 중위도 지역까지 내려와 이 지역에 몹시 추운 겨울이 찾아온다.

기상청도 북극제트기류의 약화를 이번 한파의 원인으로 꼽았다. 기류의 흐름이 약해진 틈을 타 차갑고 건조한 공기들이 남쪽으로 내려왔고 여기서 갈라져 나와 생긴 고기압이 유라시아, 시베리아에 정체해 각 지역의 한파를 유발시켰다는 말이다. 여기에 눈 덮인 면적이 넓을수록 햇빛을 많이 반사해 지표면은 더 차갑게 식었다.



북극제트기류의 흐름이 세고 빠를 땐 북극점에서 본 벨트의 모양이 굴곡 없이 둥글둥글하다. 하지만 제트기류 흐름이 현저히 약해지면 차가운 공기 덩어리들이 기류를 넘어서려고 하기 때문에 모양이 울퉁불퉁해진다. 실제로 2005년 북반구에 한파가 강타했을 때 벨트 안에서 세 개의 차가운 공기 덩어리들이 발달해 제트기류는 삼각형 모양이 됐다. 북극제트기류의 세기와 성질은 ‘북극진동지수(Arctic Oscillation Index)’로 정량적으로 표현한다. 이 지수가 작을수록 제트기류의 세기가 약함을 의미한다.


기상청은 “폭설이 있기 전인 지난 12월 월평균 북극진동지수가 -3.2로 최근 60년간 가장 낮은 수치를 보였다”고 밝혔다. 극지연구소의 김백민 박사는 “한파가 계속되던 1월 중순에도 일일 북극진동지수가 최대 -6까지 떨어졌다”고 말했다. 김 박사는 “1950년 이후 월평균 북극진동지수가 -3 이하로 내려간 경우는 1~2번뿐이었고 게다가 이번처럼 일일 북극진동지수가 음의 상태를 3주 이상 유지하는 상황은 기후학적으로 굉장히 예외적”이라고 설명했다.

엄밀히 말하면 극진동은 중위도와 극 지역 해면기압 사이의 ‘시소타기’ 현상을 나타내는 말이다. 재밌게도 해면기압은 극 지역에서 높으면 중위도가 낮고, 반대로 극 지역에서 낮으면 중위도에서 높아진다. 이는 중위도와 극지역의 공기가 그 사이를 주기적으로이동하고 있음을 알려주는 신호다. 이 때문에 북극제트기류와 같이 공기의 강약에 따라 독특한 기상 현상이 일어난다.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허창회 교수에 따르면 평균적으로 겨울철에 10회 정도 발생하는 한파 가운데 약 30%는 북극진동과 관련된 것으로 추측된다(과학동아 2005년 6월호 ‘한반도 기후의 숨은 실세 극진동’ 참조).




그렇다면 이러한 북극진동 자체는 예측이 가능한 것일까. 아쉽게도 극진동의 변화에는 대기 내부의 여러 가지 비선형운동, 성층권과 대류권 사이의 상호 작용, 해빙의 녹음과 해류의 움직임, 에어로졸과 온실가스 등 다양한 요소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에 장기적인 예측이 쉽지 않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적도지방의 강력한 대류활동이 열대에서 중위도에 걸친 거대한 대기 순환의 변화를 유도한다고 조심스럽게 예측하고 있을 뿐이다. 다만 이번 경우처럼 강한 극진동이 오랫동안 유지된다면 어느 정도 일기 예보에 응용할 수 있다.

 


변형된 엘니뇨, 북태평양 고기압 위치 바꿔

두 번째로 이번 폭설에서 평소보다 많은 양의 습한 공기가 유입된 원인이 뭘까.기상청은 변형된 엘니뇨에서 원인을 찾았다. 엘니뇨는 남미 해안으로부터 중태평양에 이르는 대 태평양 해역의 해수면온도가 지속적으로 상승하는 현상을 말한다. 전형적인 엘니뇨에서는 열대 동태평양에 있는 해수면의 온도가 가장 높다. 하지만 지난 폭설 전 열대 태평양의 온도는 동태평양보다 중태평양이 더 높았다. 즉 온도가 높은 해수의 움직임에 변화가 생겼다는 얘기다. 이 변형 엘니뇨는 최고수온이 관측된 해역의 이름을 붙여 중태평양 엘니뇨(central pacific El Nin~o)라고 부른다.

일본에서는 ‘비슷하다’라는 뜻의 ‘모도키’를 붙여 ‘엘니뇨 모도키’라고 부르기도 한다.전형적인 엘니뇨에선 북태평양 고기압과 같은 아열대고기압이 강화된다. 하지만 중태평양 엘니뇨가 발생하자 필리핀 동부에 고기압이 발달했다. 고기압대가 서쪽으로 다소 이동한 것. 이 때문에 중태평양의 덥고 습한 공기가 한반도 서남쪽 방향에서 불어 들어왔다.

한편 기상청은 “1월에는 시베리아 고기압의 영향을 계속 받아 추운 날이 계속됐지만 2월에는 북쪽으로 물러나고 대신 중앙태평양 엘니뇨의 영향을 받아 기온이 평년보다 높고 강수량이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예측했다.





북극과 해양의 몸살은 지구온난화의 영향

역설적이게도 북반구가 폭설과 한파로 신음하고 있을 때 남반구에서는 더위와 태풍으로 몸살을 앓았다. 호주는 연일 40℃가 넘는 열대야를 겪었다. 작용과 반작용의 거대한 힘 아래 지구가 춤을 추고 있는 듯하다. 온 지구 시스템이 삐걱거리고 있다. 일부 과학자들은 북극제트기류의 약화가 지구온난화의 영향이라고 설명한다.

최근 북극의 기온은 평년보다 10℃나 높은 이상고온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는 북극 한기를 둘러싸는 북극제트기류를 약화시키는 직접적인 원인이 될 수 있다. 게다가 북극진동지수는 2000년까지 꾸준히 증가해 왔으나, 2000년부터는 북극진동지수가 더 이상 증가하지 않고 오히려 감소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해양과 빙하의 상호관계에서 파생되는 현상이다.

영국 국립해양과학센터의 해리 브리든 교수는 “지난 47년간 유럽 해안을 지나는 멕시코만류의 양이 1957년에 비해 30%나 줄었다”며 2005년 12월 ‘네이처’에 발표했다.멕시코만류는 적도의 열기를 영국과 스칸디나비아반도를 거쳐 북극해까지 전해주는 지구 최대의 ‘난방 보일러’이다. 그린란드에 도착한 멕시코만류는 그곳의 찬 바닷물을 만나 밀도가 높아져 심해로 가라앉고 다시 남쪽으로 돌아간다. 그런데 북극이 더워져 빙하가 녹기 시작하자 북대서양의 염분이 줄어 예전만큼 밀도가 높아지지 않았다. 가라앉아야 하는 한쪽 귀퉁이가 무너지면 이를 보충하기 위해 적도에서 오는 흐름도 약해질 터. 이 흐름이 멈춘다면 유럽과 북미는 최소한 3~3.5℃ 기온이 급강하해 빙하기를 맞게 될 수도 있다. 영화 ‘투모로우’처럼 말이다.

분명 이상기후는 어느 한쪽이 고장 났기 때문에 일어나는 불균형 현상이다. 하지만 현대 과학은 아직까지 대기권, 해양권, 생물권 등 수많은 요소들로 결합된 복잡한 지구를 모두 파악하지 못했다. 원인을 찾는다고 해도 그것이 어떤 결론으로 치달을지 예상하고 대비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북반구를 강타한 이번 폭설과 한파는 지구가 일시적으로 온도를 낮추기 위해 일으킨 현상일 수도 있다. 다만 그 표현 방식이 너무 거대하고 갑작스럽기 때문에 이산화탄소를 줄이자는 의견을 하나로 모으는 데만 십수 년이 걸리는 이기적인 인간들의 행태를 볼 때 지금의 이상기후는 우려스럽기만 하다.

2010년 02월 과학동아 정보

  • 김윤미 기자
  • 일러스트

    유한진
  • 자료출처

    사이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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